0 영 ZERO 零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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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에서 연인과 헤어지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여자

남자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오로지 그녀를 바라보며 분노하고 비난하며 그녀가 자신에게 이제껏 저지른 일들을 나열하며 결별을 통보하고 사라진다.

숱한 연인들의 이별 장면과 비슷한 듯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전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일단 남자가 쏟아내고 분노하는 모습은 여느 연인들과 비슷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여자의 모습은 잔잔하고 우아하기 그지없다.

겉으로 봐선 절대로 이별하는 연인의 모습이라 할 수 없는 이 둘의 상이한 모습은 이내 그녀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세상에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힌다고 그래서 누구보다 오래 살아남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이고 머리를 써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녀는 주변의 모든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평등한 태도를 보인다.

자신이 가지고 놀 장난감이나 혹은 먹잇감으로...

그렇게 타고나길 포식자로 타고난 그녀는 운 좋게도 제법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머리까지 좋아 이제껏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한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어린 시절 독일에서 주변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히 남자들에게 강력한 매력을 발산해 모두를 사로잡아 버리는 크리스티나라는 소녀와 겪은 일은 그녀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야말로 완벽한 포식자로 모두 위에 군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얻은 그녀

그렇게 주변 사람들을 알게 모르게 그녀의 눈에 띈 사람 모두를 자신의 실험 대상이 자 놀잇감으로 삼고 있는 그녀는 단순하게 본다면 절대 악의 모습을 하고 있다.

겉으로는 위하는 척 입에 발린 말로 그 사람을 붕 띄어놓고 슬쩍 슬쩍 흔들어서 원하는 걸 갖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어놓고서 그걸로 부족해 약간의 눈물로 죄책감마저 심어놓는다.

마치 자신은 미개하고 아둔한 사람들보다 좀 더 높은 지능을 가진 관찰자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그녀

그런 그녀의 눈에는 모두가 자신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사람 좋은 척 친구인척하면서도 그들의 불행을 누구보다 더 바라고 그 들의 불행을 통해 자신의 초라한 현재의 모습을 위안 삼는다는 걸 알기에 그녀는 자신의 이런 행위에 대한 죄책감은 전혀 없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변을 조종하고 그걸 재미 삼는 그녀의 시니컬함을 통해 작가는 뭘 전달하고 싶었던 걸까

1부에서의 그녀가 마치 모든 것을 재미 삼아 이리저리 장난치는듯한 모습을 보였다면 2부에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혼란스럽게 한다.

그녀가 이제까지 가지고 놀았다고 생각했던 전 연인과 제자가 사실은 오히려 그녀의 이런 성향과 성격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녀가 오히려 놀잇감이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심어준다.

그렇다면 진실은 뭘까 누가 누구를 가지고 놀았으며 누가 포식자이고 누가 먹잇감인 걸까

내뱉듯 덤덤하고 건조한 1인칭 시점으로 쓰인 글이라 더욱 삭막하게 느껴졌지만 무엇보다 서늘하게 느껴진 이유는 세상을 먹고 먹히는 이분법으로 나눠 제로 상태 즉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라고 하는 부분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우연히 잔인한 포식자인 그녀에게 걸린 피해자라 생각했던 당사자들 역시 단순히 피해자가 아닌 포식자였을 수도 있음을... 그래서 세상은 결국 먹지 않으면 먹힐 수밖에 없다는 그녀의 말을 증명해주고 있는듯하다.

쉽게 읽히지만 밑바탕에 깔린 철학과 세계관은 쉽지 않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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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 - 독일인에게 배운 까칠 퉁명 삶의 기술
구보타 유키 지음, 강수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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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에 지쳐 모든 것을 놓고 어릴 적 잠시 산 적이 있는 독일로 훌쩍 떠나 지금까지 베를린에서 살고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독일과 일본 그리고 우리의 사는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 그 차이를 조근조근 들려주고 있다.

늘 시간에 쫓기고 일에 치여사는 모습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일본

저자 역시 매일매일 그렇게 살다 어느새 자신의 모습도 조금씩 변해가고 웃을 일이 없이 사소한 일에 짜증과 스트레스가 늘고 있음을 우연히 깨닫게 되면서 휴식의 필요성을 깨닫고 쉬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떠올린 게 독일이었단다.

그곳 독일에서 살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는 독일 사람들의 모습과 생활방식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조금씩 납득하게 되면서 몸도 마음도 편안해졌음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생긴듯 하다.

책에는 독일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과 쉬는 모습 그리고 의식주에 대해 나눠서 다루고 있는데 읽어보면 파트를 나눴을 뿐 전반적으로 독일 사람들의 삶의 철학과 살아가는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봐도 될듯하다.

독일 사람들의 모습과 삶의 방식에 대한 호의가 대부분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그들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한 것은 아닌 것이 일하는 시간이 짧고 개인 시간을 중시하는 사회다 보니 뭔가 문제가 발생했을 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모되는 시간이 많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그런 부분에선 능률적인 일처리를 자랑하는 일본에서 산 저자 역시 서비스 부분이나 공공 기관에서의 느슨한 일처리에 답답해하면서 애를 먹었지만 독일에서의 생활이 길어진 만큼 그 부분에 대해서 익숙해지고 아예 그러려니 하는 마음을 먹게 되면서 그런 부분마저도 이해하게 되었다는데 그만큼 다른 부분에서 만족도가 높다 보니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늘 유럽 사람들을 보면서 휴가 기간이 긴 것이 부러웠는데 독일은 가장 긴 휴가를 주는 나라다.

그래서 매년 초 휴가 계획을 짜고 여행 패키지 또한 다양하면서도 저렴해 돈이 없고 시간이 없어 휴가를 가지 못한다는 게 있을 수 없다니 얼마나 부럽던지...

또 직장인이라면 야근이 별다른 일이 아닌 우리에게 너무나 부럽게도 유럽 쪽은 야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하고 제시간에 업무를 마친 사람을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우리와 다른 부분이다.

정해진 시간에 업무를 마치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하는 걸 당연시하는 사회

그래서 독일인들은 가족과 건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물론 우리도 그렇지만 말뿐인 우리와 달리 실제 삶도 그렇게 실천하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여유 있고 제대로 된 삶을 사는 것 같아 부러운데 그런 그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잠시 쉬러 갔다 그곳에 눌러앉은 저자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그들과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안달하던 마음도 여유를 가지게 되고 느긋해지면서 자신의 삶을 즐길 수 있게 된 저자가 부럽게 느껴진 부분이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남들보다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자동차를 몰고 보기에 멋진 음식을 자랑하듯 sns에 올리는 게 마치 행복의 척도처럼 되어버린 요즘 세대의 눈에는 100년이 된 낡은 집에 살면서 손수 하나하나 고치고 필요한 걸 만들기도 하면서 사는 수수해 보이는 삶이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그들의 삶이 여유로워 보여서 부러울 지경이다.

남들 눈을 의식할 필요 없이 편한 복장을 하고 화장을 하지 않는 걸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 어찌 보면 남자들도 편할 수 있겠지만 특히 여자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들이 많다.

아이를 양육하고 집안일을 하는 것도 당연하게 나눠하는 모습도 그렇고 식사 준비 역시 간단히 빵에다 뭔가를 얹어 먹거나 곁드리는 걸로 끝이라니 주부뿐만 아니라 남자들 아니 아이들도 간단히 준비할 수 있다.

그야말로 여자들의 천국이 아닐까 싶었는데 이 모든 것이 근무시간이 짧고 법적으로 그런 권리가 보장된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남의 눈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만족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는 사회가 진정 선진국이 아닐까 생각하면 아직 우리나라도 그렇고 일본 역시 먼 일인 듯하다.

책 속 곳곳에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독일인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많았는데 사진만 봐도 그들의 얼마나 여유로운지를 알 수 있었다.

독일인의 삶을 보여주면서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아마도 스스로를 좀 더 사랑하고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약간의 여유를 가지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라 충고하고 싶은 게 아닐까

사진과 적절한 분량의 글이 섞여 있어 보기에도 부담이 없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사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져서 읽는 내내 부러움의 한숨이 나오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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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일 때 더 잘한다 -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내향인의 섬세한 성공 전략
모라 애런스-밀리 지음, 김미정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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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경쟁이 치열한 요즘을 사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스피드한 결정과 빠른 실행력을 필요로 하고 또 그런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어디서든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기 의견을 말하고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람들의 성향은 외향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향적인 사람도 있기 마련인데 모두가 적극적이고 외향적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분위기나 주변 사람들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기 본연의 성격을 숨기고 모든 것에 자신만만한 척 사람들과 만나고 적극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스트레스가 쌓이기 마련이고 삶의 질은 떨어지고 점점 더 위축되기 마련이다.

마치 나만 빼고 주면 사람들 모두 잘나가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즐거운 듯한 모습을 보면서 그렇지 못한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그런 모습에서 점점 더 스트레스를 받는 데 사회 전체가 마치 이러이러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커다란 프레임을 씌운 모습에서 적극적이지도 외향적이지도 않지만 성공할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는 이 책은 소심한 사람들이나 사람과의 관계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외향적이지 않아도 조금 소심해도 얼마든지 일을 잘 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다는 걸 저자 스스로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증명하고 있는데 의외로 저자가 걸어온 길을 보면 어릴 적부터 성공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립학교에서 명문대에 입학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까지...

하지만 이후부터는 조금 다른데 몇 년의 직장 생활 중 9번씩이나 회사를 이직하다 끝내는 퇴직하고 집에서 두문분출하는 모습에서 그녀가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은 직장에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와 압박에 시달렸는지 알 수 있었다.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던 그녀가 자신이 그동안 사람들에게서 외향적 인간인 척하고 있었음을 자각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하고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함을 느끼기 위한 일을 찾아 끝내는 성공할 수 있었기에 자신의 경험을 비슷한 일로 고민하는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다.

본인 스스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조언이기에 직접적이고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그녀의 조언에 따르면 일단 남들보다 소극적이고 외향적이지 못한 자신이라 할지라도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우선이고 남과 굳이 비교해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해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있다.

요즘은 특히 sns 같은 걸 보면서 상대방과 비교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많은데 외면적으로 보이는 그런 것들은 무시하는 게 좋다.

또, 남과 같이 일을 하면서 시너지를 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서 일을 하는 것이 더 편하고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도 있기 마련... 그렇게 혼자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모두가 혼자서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언제까지 힘들다고 누구도 만나지 않을 수 없다면 스스로 나름의 방법을 익히는 것도 좋은데 이를테면 나름의 기준과 한계를 정해놓는다거나 외향적인 척할 필요가 있을 경우를 대비해 조금 연습을 해서 사람들을 만남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전문성을 갖추고 준비한다면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별한 방법을 제시한 건 아니지만 무엇보다 내향적이고 소심하다고 해서 성공할 수 없거나 어디가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단지 성향이 다를 뿐이라는 걸 다른 누구도 아닌 내향적인 성향의 저자가 스스로 이뤄낸 성공을 바탕으로 하는 조언이라 더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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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자작 감행 - 밥도 술도 혼자가 최고!
쇼지 사다오 지음, 정영희 옮김 / 시공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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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지금처럼 혼밥하는 사람이 흔하지 않았을 때에도 나는 가끔씩 혼자서 맛있는 밥을 먹으러 다니고 재밌는 영화를 조용히 감상하기 위해 영화관을 찾고 했던 사람이다.

그런 나를 주변에선 조금 색다르게 보는듯했지만 그때는 그런 시선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기에 별 상관이 없었는데 이제 주변에서 온 밥이니 혼술이니 하는 게 자연스러워진 요즘 오히려 혼자서 뭘 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그래서 온 밥을 하고 자작을 하면서 감히 감행이라는 표현을 쓴 저자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갔다.

맛있게 잘 먹고 있는데도 혼자라는 이유로 저 사람은 친구나 동료도 없나 하는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 때문에 한갓진 곳에 있는 노포를 찾아 조용히 스며들듯 들어가 조용히 메뉴를 주문한다는 저자의 표현은 참으로 적절하면서도 왠지 그 모습이 연상되어 웃음이 난다.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도 많고 나름의 방식 즉 가장 잘 어우러지는 조합이란 게 있는데 대부분 미식가라 칭하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은 분명 맛있기야 하겠지만 조금은 특별한 요리가 많다 보니 볼 때는 와 하다가도 내가 사 먹기는 쉽지 않은 반면 저자는 평범한 음식을 가지고 맛있게 혼자 즐기는 모습이 많아 그 맛이 연상되어 입맛이 돌게 한다.

물론 우리나라와 다른 음식도 많지만 우리도 익히 아는 맛 이를테면 뜨끈하게 갓 지은 밥에 구멍을 파서 버터를 넣고 간장을 부어 살살 비벼 먹는 버터 간장밥 같은 거라든지 카레라이스 혹은 돈가스 카레 같은 건 우리도 익히 아는 맛이라 저자가 나열한 맛있게 먹는 방법을 읽고 난 뒤 나도 모르게 허기가 들었다.

거창하게 어떤 음식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 책이 정감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라면을 끓여주는 라면 가게 사장님이 TV를 보면서 생면을 건지는데 그 미묘한 시간 차이 때문에 안달하는 모습은 웃음이 나온다. 그런 손님의 마음은 모른 채 라면을 끓여 내준 사장님께 불만을 가지다가도 한 입 가득 먹은 라면 맛에 살짝 삐쳤던 것도 잊고 행복해하는 것도 남들과 달리 우동과 소바를 같이 시켜놓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봐가며 한 입 한 입 맛보면서 세상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행복을 느끼는 모습은 소박해서 더 인간미 있게 느껴졌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그 모습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그렇게나 잘 표현한 건 사람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느낀 바를 표현한 것이기에 그의 글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것... 혼자 마시는 술은 맥주도 좋지만 도쿠리에 담긴 술이 좋다거나 혹은 정식은 체인점이 아닌 노포에서 먹는 게 좋다거나 아니면 돈가스 카레 정식은 주가 돈가스일까 아니면 카레일까 같은 의문에 나름의 이유를 들어 명쾌한 답을 한다거나 굴튀김은 한 접시에 몇 개가 좋은가 같은 사소하다면 사소하지만 그럼에도 나름의 규칙이나 맛있게 먹는 방법을 찾아 혼자만의 맛있는 혼밥 혼술을 감행하는 모습이 자못 여유롭게 느껴졌다.

바쁘게 살면서 온갖 장식이 가미된 화려한 음식에 익숙하다 이렇게 소박하면서도 늘 먹어왔던 음식을 재치 있는 표현으로 묘사한 글을 보며 이제껏 먹어왔던 음식이 색다르게 느껴지기도 했고 저자가 먹는 방식으로 한번 먹어보고 싶은 유혹이 느껴졌다.

소박한 글과 함께 곁들여진 삽화를 보는 것도 솔솔한 재미를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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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얼굴의 여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5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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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스스한 괴담과 이에 버금가는 무시무시한 살인사건을 결합시켜 읽으면서 뒤가 당기는 느낌 혹은 누군가가 지켜보는 것 같아 섬찟한 느낌을 주는 표현을 미쓰다 신조만큼 제대로 표현하는 작가가 있을까 싶다.

그래서 그가 쓰는 괴담이나 공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 그 신조가 또 다른 시리즈를 내놨다.

괴담과 괴이한 사건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도조 겐야시리즈와 그 괴가 닮은듯하지만 시대적 배경이 전후라는 점 그래서 괴담이 미치는 영향이 많이 옅어진 가운데서 벌어지는 괴이한 사건이라는 점 무엇보다 괴담보다 사건 추리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이 조금 달랐다.

시리즈의 다른 편에선 또 어떤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전후, 사람들의 생활은 피폐해지고 무엇보다 천황이라는 존재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신적인 존재가 아닌 인간이라는 인정으로 인해 오랫동안 믿었던 가치관이 흔들려 모든 것에서 허무해진 마음으로 정처 없이 전국을 떠돌던 하야 타는 대학을 나온 엘리트임에도 탄광에서 광부로 일하게 된다.

그런 그에게 나쁜 손길을 뻗쳤던 사람을 기지로 물리어준 아이자토를 따라 그가 일하는 넨네 갱으로 온 하야타는 조국의 재건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 하나로 힘든 탄광에서의 일을 견뎌내는 데 그런 와중에 갱도가 무너지고 자신을 이끌어준 아이자토가 그 갱도에서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사람들이 갱도에 몰려있던 그 때 탄광 주택 1호동에서 누군가가 죽은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탄광 전체에 음울한 분위기가 감도는데 신조의 장기인 음산하고 괴괴한 분위기가 눈앞에 보이듯이 그려져 더욱 으스스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죽은 사람이 하필이면 광부들이 신성시 여기는 신물 즉 여우신을 모시는 사당을 둘러친 금줄로 목을 맨 것인데 더군다나 그가 죽기 직전 그 집으로 검은 얼굴을 한 여우가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아이들의 증언으로 광부들과 그 가족은 모두가 공포와 두려움에 떤다. 그리고 보란 듯이 연이어 사람들이 같은 모습으로 죽은 채 발견되기 시작한다.

죽음을 가깝게 하고 있는 직업에서는 유난히 금기시되는 것들이 많은 데 땅끝 즉 막장으로 내려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곳에서 작은 불빛 하나에 의존해 석탄을 캐내는 광부들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수많은 금기들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신성시 여기는 금줄을 이용해 보란 듯이 살인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살인이 일어나기 직전 검은 얼굴의 여우신이 보였다는 점 그리고 죽은 사람 모두 같은 모습의 밀실 상태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이 범인의 대범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괴이한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는 것도 충분히 사람들을 두려움에 빠지게 할만 한데 그들이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으로 여기던 검은 얼굴의 여우가 죽은 사람의 근처에서 발견되었고 죽은 사람 외에는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밀실 상태라는 점을 넣어 사건들이 마치 사람이 아닌 그 이외의 존재에 의한 행위 즉 처벌처럼 느껴진다는 점 때문에 설득력 있는 설명이나 사건의 경위를 파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인사건 간의 공통점이나 용의자를 차분하게 찾아서 하나씩 소거해나가는 하야타의 모습은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충분히 탐정이나 형사의 모습과 닮아있다. 새로운 시리즈를 예감케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야타 본인은 전시에 대학을 나온 엘리트이기도 한데 그가 대학에서 배운 교육과 현실에서 일본군에 의해 자행되는 현실의 부조리함에 의문을 품었다 나중에는 그들과 자신이 같은 민족이라는 부끄러움과 함께 환멸을 느낀... 마치 일제시대 때의 현실에 무기력했던 우리나라의 지식층을 보는 것 같은 인물인데 다른 점이라면 그가 충분히 부끄러움을 아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역시 가해자의 입장에서 하는 문제 제기라는 점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전쟁 당시 지독했던 탄광의 환경에서 일했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조선 사람이며 그들이 원해서 온 것이 아닌 끌려왔거나 속아서 온 사람들 즉 강제징용이었다는 자기반성을 넣고 그들에게 속죄하고 싶어 하는 아이자토를 내세웠지만 그 사람들을 괴롭힌 사람 중 가장 많이 그리고 지독하게 괴롭힌 사람은 일본 사람처럼 이름을 바꾸고 그들을 감독한 조선인이었다는 식이다.

하야토 역시 전쟁 때 자기 민족들이 조선인이나 만주인에게 행하는 모든 불합리한 폭행과 비인간적인 처사에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전후 원폭으로 인해 고통받는 동포를 보며 미국에 대해 분노하면서 마치 자신들 역시 전쟁에 무고한 피해자인 것처럼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이중적인 느낌으로 다가와 개운치 않았다.

어쨌든 조금은 감상적인듯한 엘리트 하야토라는 인물을 내세워 괴담의 으스스 함에 함몰되지 않고 냉철하게 그 이면에 깔린 냉혹한 살인사건을 진실을 파헤치고 있는데 다 읽고 난 후의 감상은 확실히 도조 겐야 시리즈보다 괴괴함은 줄었고 사건추리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를테면 도조 겐야시리즈의 대중화라고 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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