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 작은 독서 모임
프리다 쉬베크 지음, 심연희 옮김 / 열림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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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색깔의 책을 좋아한다.

어떤 사연이 있어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 누군가의 발자취를 쫓다 오랫동안 묻혀있던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을 극적이거나 스펙터클하지 않게 그저 덤덤하게 그려놓은 작품... 이를테면 건지 감자껍질 파이 북클럽 같은 작품을

그래서일까 이 책 역시 소개 글만 보고 비슷한 느낌을 받아 단숨에 읽고 싶어졌던 책이다.

건지~ 가 2차 전쟁 전후의 이야기가 주 배경이었다면 이 책은 그런 극적인 배경과는 상관없지만 30년 전 여행을 간 후 홀연히 사라져버린 여동생을 찾기 위한 언니와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호텔을 지키기 위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30년 전 스웨덴에서 실종돼버린 동생을 가슴에 묻어두고 살던 퍼트리샤에게 어느 날 자신이 선물해 준 동생의 목걸이가 배달되어 왔다.

동생에 대한 죄책감과 미련을 놓지 못하던 퍼트리샤는 이번이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진실을 알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스웨덴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대대로 호텔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제는 몸도 경제사정도 여의치 않아 고전 중인 모나와 그 친구들과 함께 작은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이야기는 실종된 동생 매들린이 이곳 유셰르의 교회에서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그 일련의 과정과 지금 현재 이곳에서 벌어지는 사태들... 즉 더 이상 운영하기 어렵게 된 호텔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퍼트리샤와 모나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퍼트리샤의 내면은 많은 변화를 겪는다.

사실 매들린이 이곳으로 오기 전 집안에서 물려준 고향 농장의 운영 때문에 다툼이 있었고 섭섭한 마음에 동생의 편지에 제대로 답장을 하지 않았던 것에 늘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던 퍼트리샤는 이곳으로 와 모나와 친구들로 인해 조금씩 마음속의 죄책감을 덜 수 있었고 고향 농장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주변 모두에게 벽을 치고 외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된다.

이 책이 더 좋았던 이유는 단순히 매들린이 사라진 그날 밤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는 모나와 친구들의 모습과 함께 동화 속 마을같은 아름다운 스웨덴의 유셰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개성적이면서도풍성하게 그려놨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나와 각양각색의 친구들과의 케미도 좋았지만 호텔 경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소동들을 너무 따뜻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리고 밝혀진 진실 또한 설득력 있어 가슴 아프지만 전체적인 조화가 너무 좋았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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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바닥 - 제44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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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소재를 바탕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케이도 준의 데뷔작은 역시 작가 특유의 강점을 드러내고 있는 은행내부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작가 본인이 은행에 근무했던 이력이 있어서인지 은행 내부 간에 벌어지는 수많은 알력이나 권력 투쟁을 비롯해 일반인들은 모르는 기업 대출의 이면을 바탕으로 한 작품에는 디테일함이 살아있어 더욱 인기를 끄는 게 아닌가 싶다.

이번 작품 끝없는 바닥 역시 은행에서 대출을 둘러싼 흑막과 더불어 연이어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잘나가다 한순간의 선택으로 좌천된 은행원 이기는 자신의 동기이자 믿음직한 친구였던 사카모토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게다가 그 친구가 은행돈을 횡령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자 더더욱 믿을 수 없게 되었고 사카모토의 업무를 인계받아 그가 최근까지 조사하던 건을 조사하던 중 수상한 정황을 포착한다.

누군가가 그의 조사를 방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카모토가 조사하던 일의 일부 서류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제 사카모토의 죽음 이면에 뭔가가 있음을 확신하는 이기에게 누군가의 공격이 시작되고 경찰마저 죽은 사카모토와 마지막으로 대화한 상대이자 그의 아내와의 인연을 이유로 이기를 용의자로 보고 있다.

이기는 사카모토가 밟아왔던 과정을 따라가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진실을 알게 되고 이제까지 알아왔던 모든 것에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음을 밝혀낸다.

읽으면서 이 작품이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마치 지금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은 탄탄한 플루트와 치밀한 복선 그리고 은행 내부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권력투쟁의 구도까지 완벽하게 짜인 스토리는 엄청난 흡인력을 보여줬다.

더불어 신인다운 다듬어지지 않은 다소 거친 표현까지 더해져 기존의 작품과는 다른 매력을 어필하고 있다.

단순한 사고사로 추정되던 사건의 의문점을 쫓다 그가 왜 살해당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밝혀내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은행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되면서 은행도 자신들의 이익을 내기 위해선 뭐든 할 수 있는 기업이라는 걸 새삼 일깨워 준다.

작가는 기업이 인수되거나 합병되고 도산되는 과정에는 많은 사람들의 생사가 달려있지만 언제나 그저 남의 일로 치부하면서 봤었던 그 내부의 이야기를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끌고 온다.

그래서 그 속에서 홀로 분투하며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주인공의 허황되기까지 한 무모한 용기에 파이팅을 보내게 되는 데 이번 편에선 이기가 그렇다.

남들보다 유리한 고지에서 탄탄하게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끝내 주변 사람들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고 홀로 끝까지 진실을 파헤치는...이제는 트레이트 마크처럼 된 돈키호테같은 주인공의 활약은 읽는 사람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전해주는 존재다.

언제나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인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힘을 모아 거대 기업의 횡포를 이겨내거나 진실을 밝히는 모습이 좋았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선 힘들지만 소설 속에서나마 대기업의 횡포에 어퍼컷을 날리는 그런 부분을 좋아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이 작품은 데뷔작이어서인지 그런 부분은 다소 아쉬웠지만... 다소 거친 전개에도 나름 신선함이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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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끔찍한 남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7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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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0권의 시리즈 중 일곱 번째 작품인 어느 끔찍한 남자는 살인사건을 통해 당시의 사회적 비판을 담고 고발을 해오던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인다.

이번 편은 피해자를 비롯해 모든 부분에서 일반인을 배제한 채 경찰에 의한 경찰을 위한 작품이다.

그동안 시리즈 내에서도 당시 스웨덴 국가의 경찰 조직 내에서 가지고 있던 여러 부조리한 상황과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정책에 대한 불만을 주인공인 베크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입으로 주장한 바 있는데 이번 편에선 그 점을 작정하고 부각시키고 있다.

일단 피해자부터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경찰 그것도 경찰서장이었던 사람이 병원에서 입원 중에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온통 피로 물든 병실에서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단숨에 살해당한 남자 뉘만은 상부에서는 인정받던 경찰이었지만 평소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라면 폭력을 휘두르는 게 예사인... 그야말로 나쁜 경찰의 전형 같은 사람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베크는 그에게 부당한 일을 당했거나 그로 인해 억울함을 겪은 민원인을 비롯해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하지만 범인은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고 또 다른 경찰이 피격당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모두의 시선은 한 곳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이번 편에선 흥미롭게도 전편들에서 자주 등장했지만 주연은 아니었던 경찰들의 이야기가 많다.

이를테면 자신들의 순찰구역에서 어떻게 하든 살살 벗어나 시간을 때울 생각만 하고 귀찮은 일에 연루되기를 극도로 꺼렸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버스 안에서 벌어진 대량학살 사건을 목격했던 멍청한 두 순찰 경찰이 이번에도 근무시간에 농땡이를 치려다 오히려 범죄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또한 늘 경찰 내에서 온갖 규정을 들먹이고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면 고발을 난발해서 모두의 치를 떨게 했던 경찰 역시 이번 편에 등장해 이제까지의 그의 행동에 대한 이유가 밝혀진다.

사실 어느 끔찍한 남자에서 발생한 사건은 이제까지의 시리즈 속 사건들보다는 복잡하거나 꼬여있지 않다.

그런 대신 단순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묵직하다.

경찰로 근무하다 전쟁이 난 후 군인이 되었고 군대에서도 팀원을 이끌다 전후 다시 경찰이 되면서 승진은 누구보다 빨랐던 뉘만은 조직에 최적화된 남자의 전형 같은 인물이었다.

강압적이고 고압적이며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한 뉘만이 어떻게 군대와 경찰 내에서는 빠른 인정을 받을 수 있었는지를 보면 당시 스웨덴의 사회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피해자였으면서 가해자가 된 범인에게 동정심과 약간의 죄책감을 가지게 된 베크의 심리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이번 편에서는 범인 찾기보다 왜 이런 일을 벌이게 되었는지 그 동기 부분에 중점을 두었고 뉘만의 이력을 추적하면서 이제까지 같은 팀원이면서도 서로 대면 대면하거나 상대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던 팀원들이 서로를 조금 이해하게 된 부분이 재밌었다.

역시 가독성 좋고 스토리도 탄탄했지만 이번 편은 무엇보다 스펙터클한 총격전과 작전 수행이 인상적이었다.

자신들을 향한 공격에 살아남고서야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 팀원들의 행보도 궁금하지만 무엇보다 이제 마지막까지 3권밖에 남지 않은 게 그저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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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죽은 밤에
아마네 료 지음, 고은하 옮김 / 모로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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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이면 희망이 죽었다는 표현을 쓸까

제목에서부터 뭔가 어두운 상황을 표현하고 있는 희망이 죽은 밤에는 모든 걸 잃어버린 어린 소녀들의 이야기이다.

이 소녀들은 어떤 상황에 처했길래 이런 표현을 쓴 걸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는 전개되고 있다.

새벽의 이른 시간 순찰을 하던 경찰에 의해 사건 현장이 발각된다.

그곳에는 목을 맨 소녀의 시신과 함께 경찰을 보자 달아나려다 붙잡힌 소녀가 있었다.

붙잡힌 소녀 네가는 이내 자신이 한 짓이라 자수하고 순순히 경찰에게 연행되어 왔지만 자신이 죽였다는 사실 외엔 묵비권을 행사하는 중이어서 죽은 아이 노조미와의 관계를 비롯해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범인인 소녀가 스스로 모든 잘못을 시인한 바 사건은 그대로 검찰로 송치되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본부로 발령 나서 처음 배정받은 사건이기에 완벽하게 마무리 짓고 싶었던 마카베와 평소 십 대의 사건사고에 많은 애정과 관심을 쏟고 있는 생활안전과 소속 나카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사건을 좀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면서 사건의 진상이 밝혀져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겉으로 봐선 접점이 없었을 것 같았던 두 소녀 네가와 노조미

한 사람은 학교에서 같이 할 친구도 없고 매일매일 수업 시간에 잠자기 예사일 뿐 만 아니라 제대로 된 케어를 받지 못한 가난한 아이라는 표식을 달고 다니는 것 같은 네가에 비해 첼로를 하면서 언제나 밝게 빛이 났던 부잣집 아이 노조미는 모든 게 극과 극인 아이들이었다.

게다가 주변 누구도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걸 본 적도 없을 뿐 아니라 둘은 서로 어떤 연락도 취하지 않는... 드러나는 걸로 봤을 땐 완벽한 타인 같은 사이였다.

그런 두 사람이 왜 사람이 다니기도 쉽지 않은 빈집에서 그런 모습으로 발견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선 두 사람이 어떤 접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밝혀야 했기에 두 사람의 교우관계를 비롯해 주변의 평가를 들어보지만 여기서도 특이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네가가 그런 짓을 할 아이가 아니라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그 과정에서 하나둘씩 드러나는 네가의 가정 형편은 우리가 흔히 외부모 가족 그중에서도 특히 모자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이고 담임을 비롯해 주변에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도음의 손길을 보내는 사람이 없었다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왜 두 소녀에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된다.

겉으로 봐선 부잣집 딸로만 보이는 노조미의 경우는 그 아이가 처한 현실을 좀처럼 알 수 없었다는 걸 이해하지만 이에 반해 누가 봐도 어려운 처지에 몰린 게 뻔히 보이는 네가마저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건 참으로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선진국인 일본에서... 빈곤에 허덕여 밥을 굶고 어린 소녀가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리도록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건 분명 사회 시스템의 어딘가가 잘못된 것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는 두 아이의 부모의 처지를 보면서 한 번의 실패가 가져오는 파장의 크기가 엄청나다는 것에 공포감을 느끼게 했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데서 오는 공포가 아닐까 싶다.

한창 꿈을 꾸는 나이의 어린 소녀들이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에서 보내는 시간만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는 게 씁쓸하게 느껴졌다.

끝내 두 아이가 느꼈을 절망의 크기가 가슴 아프게 다가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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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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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가장 기대작 중 하나인 오승호의 로스트

경찰관 100명에게 납치 몸값을 배송하게 한다는 설정부터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는 로스트는 그의 작품답게 페이지 수도 어마어마하다.

과연 이 많은 페이지에 무슨 이야기를 담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시작한 로스트는 역시 첫 장부터 흡인력 있게 빨아들인다.

이제까지 수많은 범죄 중에 가장 성공률이 낮은 게 납치 범죄라고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난다.

그만큼 성공할 확률이 거의 없는 범죄일 뿐 아니라 제대로 몸값을 받는데 성공한 예가 거의 없다고 들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책에서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납치극을 보여준다.

콜센터의 한창 콜 주문이 쏟아지는 시간에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는 모든 걸 바꿔놨다.

자신이 콜센터 아르바이트생인 무라세 아즈사를 납치했으니 몸값 1억 엔을 준비하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게다가 범인은 이 돈을 경찰 100명에게 나눠서 자신이 지시한 곳으로 오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하지만 이 모든 일련의 과정에서 범인은 돈에는 관심이 없을 뿐 만 아니라 마치 게임을 즐기는 듯한 태도마저 보여 사건을 담당한 형사를 비롯한 모두는 그를 이른바 쾌락범으로 생각하게 된다.

100명의 형사를 여기저기로 배치하고 자신이 지정한 시간에 맞추지 못하는 사람은 아웃시키며 하나둘씩 탈락시키는 과정이 마치 장난처럼 가볍게 느껴져 사건의 중대성을 잊어버릴 때쯤 작가는 또 하나의 폭탄을 터트린다.

아즈사가 결국 토막 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 용의자로 보이는 남자 역시 검거된다.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발상으로 납치극을 보이고 과연 이 납치극은 어떻게 결말이 날까 하는 궁금증을 가졌었는데 납치된 아즈사의 죽음이라는 다소 허무한 결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 뒤의 수많은 페이지에는 아마도 죽은 아즈사와 납치범과의 어떤 인과관계를 보여주고 경찰이 하나둘씩 그 단서를 쫓아 범인을 찾는 과정을 그릴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겠지만 작가는 여기서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쩌면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아즈사의 토막 난 시신 곁에서 검거된 용의자는 아즈사가 소속된 연예 기획사의 사장 아즈미였고 그는 자신이 누명을 쓴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신 역시 아즈사를 납치한 범인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는 그의 주장은 하지만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곤 누구도 증명할 수 없다.

게다가 그 단 한 사람은 아즈미에게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어 절대로 그에게 유리한 증언을 할 리 없는 사람이었다.

범인 역시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아즈사를 죽인 범인은 처음부터 그녀를 노린 것일까 아니면 그가 노린 건 사장인 아즈미였을까?

나오는 인물들의 복잡한 인과관계를 비롯해 빈틈 없이 짜인 스토리는 읽는 사람조차 숨돌릴 틈 없이 몰아친다.

서로 얽혀있는 사연과 사건 전후의 교묘한 서술은 진상을 파악하기 점점 어렵게 하고 읽으면 읽을수록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피해자인지조차 헷갈린다.

아마도 작가가 노린 게 그런 부분이 아닐까 싶다.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과거에 지은 죄를 지금 받고 있다면 그 사람은 가해자로 볼 것인지 피해자라고 봐야 하는 것인지...

한번 죄를 지은 사람이 평생을 속죄하고 산다면 그 사람의 죄는 용서받은 것인지...

무거운 소재를 특유의 필체로 도발적이면서도 강렬하고 묵직한 한 방을 날린다.

죄와 벌 복수 그리고 속죄에 관한 이야기라는 소개 글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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