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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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귀환은 다른 누군가의 파국이 된다.

작가의 전작 초크맨 역시 누군가의 귀환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그 사람이 몇십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과거의 한 사건과 연결되어있었고 그 과거의 사건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다시 사건들이 발생하게 된다는 식의 전개를 보였는데 이번에도 한 남자의 귀환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되지만 전작에 비해 공포가 더 가미되었다.

아무것도 볼 것이라고는 없는 폐광촌 마을 안힐로 온 남자 조 손은 이 마을 출신이면서 이곳에서 벌어진 참담한 비극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가 이곳으로 돌아올 것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사실 조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라곤 없는 막장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기에 이곳으로의 귀향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이 마을에서 아들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자신마저 스스로 목숨을 버렸던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 소식을 들으면서 조는 오래전 자신의 집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사실은 그가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누군가가 자신에게 보낸 이메일을 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때 자신의 동생 애니에게 벌어졌던 일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는 메일의 문구는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고 얼마 전의 그 처참했던 사건 역시 애니가 겪었던 일과 다르지 않음을 직감하는 조는 그 비극을 막고 싶어 한다.

이곳에는 아무도 가서는 안되는 곳이 폐광 안에 존재하고 있는데 애니와 그 아이 모두 그곳으로 갔다 돌아온 후 이상하게 변해버린 공통점이 있다.

그곳을 들어갔다 온 후로 변한 아이들의 모습의 묘사는 책의 분위기를 섬뜩하게 만드는데 일조를 한다.

온몸에서 풍겨오는 이상하고 지독한 냄새, 예전과 전혀 달라진 행동들, 그리고 텅 빈 눈동자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그 아이에게서 뭔가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이라기보다 죽은 시체의 모습에 가까웠고 무엇보다 그렇게 달라진 아이를 지켜보는 가족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분명 우리 아이의 모습인데 우리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부모는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자신의 아들을 잔인하게 죽였으면서 벽에다 피로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그 엄마에게서 찾을 수 있다.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 변해버린 아이를 되돌려놓을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절망의 끝에서 내린 선택이라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지만 그것은 이미 인간이 어찌해볼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 책에는 인간이 만들어내지 않은 공포와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인간의 탐욕과 악의가 만들어내는 공포가 공존하고 있다.

특별한 뭔가가 나오는 게 아님에도 분위기만으로도 음산함을 자아내는데 여기에다 마을 사람들이 외부인에게 보이는 적의와 숨겨진 비밀까지 더해져 더욱 폐쇄적이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초자연적인 공포와 현실에서의 공포를 교묘히 섞어놓은 이 책의 분위기는 스티븐 킹의 공포소설과 닮아있는 부분이 많은데 킹의 인간의 힘으로 헤어 나오기 힘든 무겁고 끝을 모르는 어둠을 힘겨워하는 사람이라도 이 책은 괜찮은 선택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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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보는 여자
민카 켄트 지음, 나현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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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텀은 이웃집 여자를 훔쳐보고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집안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고 특히 그 집의 안주인인 대프니에 대한 관심은 도가 지나칠 정도지만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자신이 낳았지만 어쩔 수 없이 입양 보내야만 했던 딸을 키우는 게 바로 대프니와 그레이엄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이 입양 보낸 딸의 엄마를 sns에서 발견한 후부터 오텀의 모든 관심은 그 여자에게 쏠렸고 그 아이 곁에 있기 위해 그 집 옆집에 사는 남자 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유혹할 정도로 오텀은 맹목적이었다.

오텀이 벤에게 접근하는 방법은 기상천외할 정도는 아니지만 알고 보면 오싹해지는 방법을 쓰고 있다.

우리가 늘 곁에서 무심코 사진을 찍어 올리고 몇 줄의 글을 쓴 개인 sns를 통해 그 사람에 대한 정보, 즉 취미나 좋아하는 것, 가족 사항부터 시작해서 심지어는 그 사람의 취향이나 이상형까지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조사한다면 그야말로 그 사람의 상당히 개인적인 부분까지 알 수도 있다는 걸 오텀이 증명해준다.

벤에 대해 조사해 그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그에게 접근해 완벽하게 그를 사로잡는 것

오텀은 원하는 게 있으면 상당히 집요하고 끈질기며 원하는 이성에게 어필하는 방법을 알 정도로 영리하다.

이렇게 오텀은 그 집안을 옆집에서 몰래 훔쳐보고 있었고 그녀가 지켜본 바로는 자신의 딸을 키우는 대프니는 그야말로 완벽한 여자다.

아름답고 지적이며 우아한 데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우는 엄마이자 남편을 사랑하는 헌신적인 아내이기도 하다.

그녀의 눈에 비친 맥멀런가는 그야말로 완벽한 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부유하고 사랑이 넘치며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애정을 쏟는 매력적인 부부의 모습은 오텀으로 하여금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했음을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았기에 그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지만 오텀의 마음속에 점점 더 그들의 곁에서 자라나는 그레이스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커지면서 조금은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 곁에서 직접 들여다본 부부의 모습은 상상과 좀 달랐다.

부부 사이는 sns 상에서만큼 사랑으로 빛나지 않으며 남편인 그레이엄은 늘 회사일로 바빠서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없고 대프니는 아직 어린 세 아이의 양육을 혼자서 감당하기 버거워 지쳐있는 상태다.

sns 상에서 보여준 아이들과 가족을 위한 유기농으로 차려진 완벽한 식탁과 서로 사랑하는 눈빛으로 다정하게 바라보는 부부의 모습은 현실 속에서 조금씩 어긋나 있었지만 오텀은 인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은 자신의 딸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완벽한 가족이어야 했다.

자신은 비록 가짜로 꾸며진 인생을 살지만 그들 가족조차 그렇게 행복함을 꾸미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가짜 인생을 살 수도 있다는 걸 몰랐던 오텀의 실망감은 그녀 자체를 뿌리째 흔들어 놓고 그 탓에 그녀의 일상조차 무너져내리면서 책의 분위기도 점점 아슬아슬하게 바뀐다.

오텀의 모습을 보면서 현실의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누군가가 올린 sns 사진 속의 모습을 부러워하고 동경하며 자신의 처지와 비교, 한탄하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과 오버랩이 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전혀 행복하지도 않으면서 습관적으로 자신의 행복함을, 부를 누군가에게 자랑하듯 사진을 찍어 올리는 대프니의 모습 또한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런 사진을 보고 마냥 부러워하고 질투하다 자신의 처지와 비교해 깊은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는... 이런 현상은 언제부턴가 자신의 일상을 사진을 찍어 올려 공유하면서 벌어지는 모습이기도 하다.

현대인의 공허함이 드러나는 모습이기도하다.

터질듯한 긴장감은 없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벌어지면서 조금씩 조금씩 위기감이 고조되다 결국은 파국을 맞는 후련함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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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나의 집 모중석 스릴러 클럽 46
정 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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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말해주듯이 집은 안식을 주고 휴식을 안겨주는 평화로운 곳이어야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집에서 가장 많은 사건과 사고가 발생하고 더 나아가 가족 간의 갈등으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 사람도 많다.

그래서 서로를 증오하고 미워하면서도 피로 연결된 가족이라는 이유로 외면할 수도 무시할 수도 없어 괴로워하며 서로에게 지옥처럼 되어버린 가족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많은 소설이나 드라마가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인 경과 매 그리고 진 역시 그런 가족 중 하나지만 이 가족은 여기에다 낯선 타국에서 유색인종으로 살아야만 했다는 핸디캡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진입하기 쉬지 않은 미국의 주류층에 입성한 성공한 가족이기도 한데 이것은 오롯이 진의 능력만으로 당시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을 이겨내고 대학 내 종신교수가 된 케이스이다.

이렇게 직장에서 성공하고 자신만의 특허로 많은 부를 축적한 그는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모범적인 가장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는 집안에서 폭군처럼 군림하고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아내를 폭행하면서 풀은 과거가 있다.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며 자란 경은 아버지의 폭행으로부터 엄마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더불어 부모 두 사람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다는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어 성인이 된 후 자신의 가정을 그들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그들과의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노력은 이제 물거품이 되기 직전이다.

분명 괜찮은 선택이라 생각해 산 주택으로 인해 모든 재정이 파탄 나기 일보 직전이고 이제는 아내 질리언의 말처럼 집을 팔거나 세놓고 부모님의 저택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해 숨이 막힐 즈음 부모님의 집에 끔찍한 사건이 벌어져 그가 그토록 원했던 그들과의 거리를 넓히는데 실패했다.

이제 서로를 미워하는 그들이 한 집에 모여살게 되면서 악몽은 시작된다.

강도가 침입해 매가 오랫동안 꾸미고 가꿔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그 집을 난장판으로 부셔놓은 걸로 모자라 진과 매를 폭행하고 심지어는 가정부와 매를 잔혹하게 성폭행한 사건은 이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부셔놓게 되는데 늘 그들 위에 폭력으로 군림하던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폭행당하고 굴복했다는 사실은 경에게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무엇보다 그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누구보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매가... 늘 남편에게 순종적인 모습만 보였던 엄마가 남편을 거부하고 반기를 들었을 뿐 아니라 가장 먼저 자신을 추스르는 강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사실 경은 어린 시절 그렇게 잔인하게 폭행당하면서도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던 엄마를 연민함과 동시에 경멸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성인이 된 후 폭행당사자인 아버지 진보다 희생자였던 어머니 매를 더 미워했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경의 아내 질리언은 경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전혀 들은 적이 없었기에 남편이 그의 부모를 향한 미움과 적대감에 당혹스럽기만 하다.

그녀는 비록 경처럼 부유하게 자라지는 않았지만 부모를 공경하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자랐기에 파산직전인 상태에서도 부유한 부모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기를 거부할 뿐 아니라 손자를 보여주는 것조차 꺼리고 거리를 두었던 경의 태도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더군다나 그들이 누군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할 때조차 유일한 혈육인 남편이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기를 꺼리는 경의 태도는 그녀의 눈에 이성적으로도 성숙한 성인으로도 비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서 그저 달아나기만을 바라는 모습은 실망스럽게 느껴져 그들 사이도 위태로워진다.

아내에게 그토록 숨기고 싶어 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가 드러나면서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들, 아내와 아들에게 든든한 가장이고 자신의 집안에는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걸 막고자 했던 그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면서 경은 스스로를 가뒀던 자신을 놔버린 채 자포자기하며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런 남편을 곁에서 지켜보는 질리언은 자신이 사랑하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경이 누구도 진심으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벽을 치고 있는 성인의 모습을 한 미성숙한 남자라는 자각을 하면서 그에게 깊은 실망을 하게 되고 경은 어느 누구에게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부모를 향한 깊은 원망과 분노를 드러내지만 그가 자신 안에 내재된 분노를 제대로 표출하고 화해의 시간을 갖기도 전에 부모는 그에게 또 한 번 강력한 한방을 먹인다.

그것은 완벽한 한 방이었다.

태풍처럼 휘몰아친 감정의 끝에서야 마주 보는 부자 진과 경

그들은 그저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고 지키고자 한 이방인이자 힘없는 가장이었을 뿐이라는 걸 자각하고서야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고 연민하게 된다.

스릴러이면서도 살인사건이나 큰 사건이 발생하는 건 아니지만 서로에게 쌓인 불만과 원망이 많은 이 가족이 작은 집에 같이 모여 살게 되면서 그 분노가 언제 어떻게 표출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독자를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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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링 미 백
B. A. 패리스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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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사라진 그녀가 나타났다. 러시안 인형과 함께... 그리고 시작된 파국

브레이크 다운이나 비하인드 도어를 통해 잔인한 살인사건이나 연쇄살인마가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일상에서 늘 주위를 둘러싼 친구나 배우자 혹은 연인처럼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생각해왔던 사람들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공포를 주로 그리고 있는 B.A 팰리스의 신작은 이번에도 여러 명의 등장인물이 나오지 않고 오롯이 연인과 그 연인의 전 애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심리게임을 소재로 하고 있다.

결혼을 앞둔 핀과 엘런 커플에게 어느 날부터 시작된 이상한 일들... 그것은 마치 12년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한 여자 레일라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그녀와 그들만이 아는 흔적만을 남길뿐이다.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져 사라져버린 그때까지 단 한시도 레일라 그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핀에게 그녀의 행방불명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엘런을 만나 간신히 다시 사랑할 힘을 내었지만 레일라의 등장은 그가 겨우 다시 세울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뿌리째 흔들리게 했다.

오래전의 옛 연인의 등장만으로 이 커플이 뿌리째 흔들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레일라가 사라진 날같이 있었던 사람이 바로 팀이고 그는 잠시나마 그녀의 살해 사건 용의자가 되었던 전적이 있었을 뿐 아니라 옛 연인인 레일라가 바로 지금 현재의 연인인 엘런의 친동생이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한데 두 사람의 결합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도 많지만 무엇보다 엘런 자신이 동생에 대한 부채감을 가지고 있는 데다 연인인 핀 이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의 걱정이 지나치지 않은 것은 핀에게 있어 레일라는 절대로 잊지 못하는 사랑일 뿐만 아니라 그녀가 돌아왔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핀 역시 흔들리고 있다는 걸 그녀가 알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두 사람을 흔들어대는 레일라는 핀에게 메일로 연락만 취하고 자신이라는 증거로 오래전 자매가 가지고 있었던 러시안 인형을 계속해서 보내기만 할 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레일라의 그런 태도에 진짜 그녀가 맞는 건지 아니면 그들을 잘 아는 누군가의 악의인 건지 계속 의심하게 되는 핀은 자신이 믿고 의지하던 형 래리와 전 연인이자 정신적으로 의지가 되었던 루비까지... 주변 모두를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보게 되면서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는 정신적인 빈사상태가 된다.

차라리 레일라가 모습을 드러냈다면 이 두 사람은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었을 텐데 그녀는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고 이 두 사람의 곁을 맴돌면서 계속 사인만 보낼 뿐 아니라 다시 핀과의 재결합을 원하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속절없이 흔들리는 핀.... 그리고 그런 그를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는 엘런

이렇게 뭔가 사건이 벌어질 것 같으면서도 아무런 일은 없는 아슬아슬함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즈음 마침내 레일라가 강력한 요구를 해온다.

엘런을 사라지게 하라는...

이성으로는 그녀의 요구가 말이 안 된다고 저항하면서도 그녀를 만나고 싶고 다시 한번 그녀와의 완벽한 재결합을 꿈꾸는 그에게도 엘런은 어느샌가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어있다.

레일라는 진짜 돌아온 걸까? 아니면 범인은 따로 있는 걸까? 핀은 그녀의 요구를 들어줄까?

보면서 느끼는 것은 불확실성이라는 게 얼마나 사람의 정신을 피폐해지게 하는 건지... 사람의 평온은 얼마나 쉽게 무너 질 수 있는 건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사실 범인의 정체나 범행의 방법을 찾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런 점에 초점을 맞추는 독자에게는 다소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지만 저자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서서히 변해가는 사람의 심리와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심리 스릴러라는 걸 생각하면 살인사건이 나오거나 뚜렷한 뭔가 행동을 하지 않고도 서서히 사람을 광기로 몰아가는 과정을 잘 표현한 심리 스릴러 다운 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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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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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친구 둘이서 작당을 해서 남편을 살해하고는 시체를 감추고 완전범죄를 꿈꾼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는 듯 보였지만 한 사람을 살해하는 일이 그렇게 쉬울까?

당연하게도 남편의 실종을 인정하지 않는 남편의 본가에서 사람을 사서 스스로 조사에 들어가면서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그녀들의 범행이 발각될 처지에 놓인다.

그렇다면 그녀들은 왜 이렇게 위험한 공모를 한 걸까?

우연히 나오미가 그녀의 친구인 가나코의 몸에서 폭력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모든 일은 시작된다.

가나코가 남편과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나오미는 그녀를 설득해 결혼생활을 종지부 찍고자 하나 어느새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자존감이 떨어지고 무기력에 빠진 가나코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할 뿐 아니라 친정 부모에게까지 해를 끼칠 것을 두려워하는 가나코를 보면서 나오미는 친구의 남편을 살해하기로 결정한다. 폭행의 피해 당사자가 아닌 그 친구로부터의 살해 결정이라니...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나오미가 아무리 가나코의 친한 친구라 해도 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나오미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명분을 주는데 그녀 역시 어렸을 때부터 집안의 독불장군이자 폭군으로 가족들을 폭력으로 다스린 아버지를 두고 있어 어린 시절 늘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었다는 공통점을 준다.

나오미에게 가나코의 남편을 제거하는 것은 단순히 가나코를 폭력으로부터 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어린 시절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스스로에 대한 일종의 징벌 행위와도 같았고 평생을 폭행과 폭언에 시달리면서도 스스로 자립할 능력이 없다는 구차한 핑계로 안주해버린 엄마를 향한 경멸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모든 계획을 짜고 직접 행동을 지시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일견 완벽하게 계획대로 되는 듯하지만 당연하게도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이들의 계획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은행원인 남편이 고객의 돈을 횡령한 후 외국으로 달아난다는 계획은 언뜻 보면 괜찮은듯하지만 고객의 돈을 횡령하려는 은행원이 가족의 계좌로 돈을 보낸다는 것부터 해서 요즘 웬만한 곳에는 다 cctv가 있다는 걸 간과한 두 사람의 행보는 허술함을 넘어 헛웃음을 자아낼 정도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들의 계획에서 가장 쓸만한 것은 남편의 대역을 찾았다는 것과 남편의 시신을 제대로 처리했다는 것 정도뿐...

하지만 이 허술한 계획도 완전범죄가 될 뻔했다는 사실.

남편의 행방불명을 단순 가출로 처리해 관심조차 안 가지는 경찰과 횡령한 돈의 액수가 적은 것만 다행이라 여기고 얼른 덮어버리려는 은행 측에만 맡겼다면 대부분의 성인의 행방불명을 단순 가출로 처리하는 것처럼 이 사건 역시 그저 그런 은행원의 일탈로 덮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은 약간의 미심쩍은 점과 수상한 점을 그냥 넘겨보지 않는다. 그들이 납득할 때까지 사건 종결이란 있을 수 없는 법!

두 사람의 행보도 이런 가족의 힘 앞에 결국 무너져 내린다.

올가미가 조여오듯 서서히 그들을 향해 오는 듯한 긴박감과 스릴을 원한다면 이 책은 기대에 못 미친다.

결정적으로 죽은 남편이 꼭 그렇게 살해당해야만 할 정도일까? 왜 이혼이라는 걸 고려하지않았을까? 하는 부분에서 가나코의 변명이 있지만 그게 그렇게 와닿지않아 설득에 실패하지않았나싶다.

당연하지만 살인의 이유가 공감받지 못해 그녀들의 일탈에 몰입하기 쉽지않았고 그래서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즉 여자라는 이유로 가장 강력한 용의자임에도 가볍게 여기는 경찰이나 공권력의 추적을 따돌리면서 작가가 독자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한 장치에서 크게 와닿지도 속시원함도 느낄수 없었다.

그저 두 여자의 일탈을 보고 오쿠다 히데오식의 비틀린 유머를 가볍게 즐기기엔 좋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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