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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지나간 후
상드린 콜레트 지음, 이세진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평점 :
처음 쓰나미가 덮쳐 자신의 가족이 사는 섬이 잠겨버렸을 때 루이와 아이들은 자신들이 평소 힘들게 오르던 언덕 맨 위에 자신들의 집이 있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했다.
주위 이웃들 대부분은 그 쓰나미에 집이 잠겨 빠져나올 새도 없이 수몰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이 섬에 살아남은 사람은 루이네 가족 11명뿐이지만 가족 모두 무사한 것과 집이 남아 있어 굶주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했다.
하지만 감사했던 마음도 잠시 모든 것을 앗아가버린 쓰나미가 지나간 후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와 바람은 그들의 집조차 안전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했고 가족은 좀 더 크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만 했다.
문제는 그들 가족 모두가 타기에는 배가 너무 작았다는 것이다.
다 같이 죽지 않으려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만 엄마 아비는 자신의 뱃속으로 나은 자식을 버리는 짓을 할 수 없다 울부짖고 격렬히 반대한다.
결국 아빠이자 가장인 파타는 섬에 남을 아이들을 선택했고 먹을 것과 물을 남겨둔 채 몰래 떠나게 된다.
아비도 사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죽지 않으려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파타가 한 짓을 용서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렇게 어느 날 느닷없는 재해로 한 가족이 자신의 터전을 잃고 거기에다 자식들마저 일부 남겨 둔 채 떠날 수밖에 없는 죽음보다 더 깊은 선택의 고통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는 이 책은 남겨진 아이들 3명과 선택된 아이들을 싣고 떠난 부모의 이야기로 나눠 그들이 겪는 고통과 생의 투쟁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고 일어나 보니 엄마 아빠도 언니 오빠도 없고 어린 동생들마저 없이 그저 자신과 같은 방에선 잔 동생들만 남겨져있다는 걸 발견한 소년 루이의 나이는 고작 11살
아무리 둘러보고 불러봐도 자신들만 남았다는 걸 깨달은 루이는 자신들이 버려졌다는 걸 깨닫는다.
비록 엄마가 남겨둔 편지에는 안전한 곳에 도착한 후 반드시 자신들을 찾으러 올 거라고 쓰여있지만 루이는 그 말을 믿을 수 없다.
그리고 자신들이 왜 선택된 건지 마음속 깊이 이해하고 체념하지만 동생들은 다르다.
엄마 아빠가 반드시 오리라 믿는 동생들을 대신해 자신이 모든 걸 진두지휘하고 살아남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런 노력이 아쉽게도 비는 계속 오고 집은 서서히 잠기고 있다.
자신들도 떠나지 않으면 집과 같이 잠겨버릴 거라는 걸 깨닫지만 배가 없고 어린 자신들의 힘으로는 뗏목조차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절망한 순간 누군가가 나타난다.
하지만 그 사람조차도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지 못한다.
그에겐 이 아이들이 가진 음식만 필요할 뿐이란 걸 깨닫는 순간 루이는 대장으로서 특단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그 순간 루이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장난치는 것에 열중했던 아이의 순진함을 벗어난다.
이렇게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아이들을 버리고 떠난 부모 역시 평탄하지 않다.
자식을 버렸다는 죄책감을 감수해야 하는 것과는 별개로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폭풍우와 거친 파도에 작은 배로 맞서야 할 뿐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자식들의 칭얼거림도 감수해야 하고 밤낮없이 노를 저어 나가야 함은 물론이고 그 들 뒤를 바짝 쫓는 바닷속 괴 생명체를 따돌리기도 해야 했다.
이런 와중에 뜻밖의 불행으로 자식마저 눈앞에서 잃어버린다.
그들 가족이 겪는 엄청난 불행과 고난의 순간이 처절하도록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읽으면서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마치 한 편의 재난영화를 보는듯 그려져있다.
아이들이라고 다를 바가 없는 게 어린아이들 셋이서 겪는 일 역시 지독하도록 힘들고 고통스러워 읽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편치 않았지만 여느 작품들과 다른 점은 이 모든 불행에서 아이들이라고 예외를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겨진 아이들이 조금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끝내는 부모와 행복한 조후를 한다는 식의 평범한 전개가 아니라 극히 현실적인 묘사를 통해 아이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그리고 좌절의 순간을 그려내고 있다.
파도와 폭풍우같이 거친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투쟁을 생생하고 치열하게 묘사해서 글에서 박진감과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고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불안과 공포에 잠식된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에 대한 냉정한 통찰은 이 책을 읽기 편하지 않게 한 요소이지만 그게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뻔한 재난 영화나 소설보다 훨씬 더 긴박감 있고 긴장감이 넘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