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첩보전 2 - 안개에 잠긴 형주
허무 지음, 홍민경 옮김 / 살림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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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자신 역시 쓰다 버릴 장기판의 졸이었음을 죽음의 순간 깨닫게 되는 진주조의 가일은 생각지도 못한 한선의 도움으로 죽다 살아나지만 너무 많은 비밀을 알게 된 그를 조비가 살려둘리 없고 결국 상관의 도움으로 위를 떠나 동오로 오게 되면서 이곳 오나라에서 그가 보고 겪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2편이다.

그의 재능을 귀히 여긴 오나라 오후 손권의 여동생 손상향의 발탁으로 이곳 동오에서도 해번영의 도위로 적을 두지만 당연하게도 적이었던 그를 받아들이지 않아 겉돌고 있다.

오나라 역시 겉으로는 평온을 유지하고 있지만 내부로는 회사파와 강동파로 크게 나눠 세력 다툼이 치열하고 그런 와중에 회사파의 이인자인 감녕장군의 암살 시도가 일어난다.

그런 시도를 눈치챈 가일의 활약으로 암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지만 가일의 행동은 오히려 의심을 사게 되고 오랫동안 적으로 그와 싸웠던 해번영의 우청을 비롯한 사람들은 이 기회에 그를 제거하려 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뜻하지 않은 도움을 받아 오히려 의심을 벗어났을 뿐 아니라 감녕장군의 암살을 조사할 권한을 가지고 가장 의심스러운 서촉의 관우와 그 주변을 조사하기 위해 형주로 향한다.

형주는 한나라의 황실을 곁에 두고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조조의 위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손권과 유비가 동맹으로 맺은 곳이자 현재는 촉의 관우가 책임지고 있는 곳이기도 할 뿐 아니라 오랜 세월 동맹관계를 유지한 이유로 형주 사족과 강동파의 관계가 특히 돈독한 곳이고 사건의 증거인 촉나라의 연노가 가리키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감녕의 암살 미수 사건을 조사하는 데 있어 회사파와 강동파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나라의 사람도 아닌 가일이 가장 객관적으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이기도 하다.

십수 년간 동맹으로 인해 편안하게 보이는 형주는 사실 관우 오직 한 사람의 힘으로 유지되고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 유비와 관우가 저물어가는 왕조인 한나라를 위해 조조를 척결하고자 하는 충의로 부단히 일어나 왕조를 위해 전쟁을 하고 있지만 그런 그들의 충의는 자신들의 이익과 안위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형주 사족의 반발을 사고 있을 뿐이었고 전략과 전술에는 탁월하지만 음모와 모략에는 약한 관우는 그런 은밀한 움직임에 대해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것이 패착의 원인이자 삼국의 균형이 깨지는 밑바탕이 된다.

이런 복잡한 사정에 손권의 동오에서는 그의 곁에서 회사파의 일인자로 강동파를 견제하고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해오던 여몽이 와병 중이며 다음 실권을 강동파에게 넘기려는 손권의 의지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회사파에선 다음 실권을 감녕에게 넘기려 하고 이런 치열한 권력 다툼에 감녕 암살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가일이 끼어든 형상이지만 어느 쪽에서도 그런 그가 눈에 가시로만 여겨질 뿐... 이곳에서도 가일의 위치는 바둑판의 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위치라는 걸 이제는 자각하는 가일은 스스로 살길을 도모한다.

사건을 수사하던 중 그가 데려간 해번위의 사람들을 비롯해 위에서 온 사절단까지 암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번에는 어찌해볼 도리 없이 간자로 몰려 도망치는 신세가 되지만 한선의 도움으로 번번이 위기를 벗어난다.

사건을 캐들어가면 갈수록 모든 혐의는 강동파와 형주 사족의 협잡으로 드러나지만 동맹관계인 그들이 굳이 이런 위험을 무릅쓰는 이유를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번번이 간단한 지령과 함께 꼭 살아남으라는 명을 내리는 한선의 정체와 그들의 목적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간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나는 손권의 야욕은 평화로웠던 형주를 안갯속 정세로 몰고 갈 뿐 아니라 전쟁에서는 더 이상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걸 깨닫게 해주고 굳건하던 명장 관우가 어떻게 죽음으로 내몰렸는지 그 과정이 아주 치열하면서도 세심하게 그리고 그 속의 복잡한 정세의 변화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미 기울어져버린 왕조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던지는 유비와 관우의 충의에 대한 평가가 뜻밖에도 냉정하다는 것과 비굴한 모사꾼으로 흔히 묘사되던 조조의 냉철한 판단과 왕조가 아닌 백성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노력하는 실리적인 정치에 대해 호의적이라는 것이 우리가 알던 삼국지에서의 인물과는 많이 달랐다는 점이 의외로 느껴졌다.

우리에게 익숙한 삼국지의 그 유명한 명장들이 아닌 교위라는 보잘것없는 지위를 가진 가일을 통해 권력자들의 시선이 아닌 아무것도 모른 채 언제든 죽음으로 쉽게 내몰리거나 그저 작전을 위한 돌처럼 쉽게 쓰이고 내버려질 힘없는 평민들의 시선에서 천하를 내 건 패권전쟁을 보고 있다는 점이 삼국지와는 또 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그 누구에게도 쉽게 속을 드러내 보일 수 없는 치열하고 치밀한 정보전

그리고 그 속에서 매미가 되기 위해 칠 년을 땅속에서 숨죽이고 살아야 했던 것처럼 뜻한 바를 얻기 위해 오랜 세월 인내하고 참아내 마침내 원하는 것을 손에 쥐는 한선이라는 조직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머리는 영민하지만 보잘것없는 가일이 과연 그 한선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을지... 그걸 지켜보는 것도 이 책의 또 다른 재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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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첩보전 1 - 정군산 암투
허무 지음, 홍민경 옮김 / 살림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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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라고 하면 완독한 사람은 많지 않지만 그 내용을 모르는 사람 또한 거의 없을듯하다.

도원결의를 맺은 유비 관우 장비의 이야기를 비롯해 조조와 제갈공명 동탁 등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영웅호걸을 비롯해 온갖 전술과 전략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천하를 얻고자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삼국지

그 중 특히 사람들이 좋아하고 관심을 많이 가진 부분은 이 들 각국의 인물들이 서로 나라의 명운을 걸고 임한 전투에서 보인 온갖 전술과 전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 삼국지 첩보전은 바로 그 부분 ...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이름난 전투에 숨겨진 이야기와 그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 정보를 훔치고 때로는 속임수를 쓰는 등 전투만큼 치열했던 은밀한 첩보전을 다루고 있다.

저물어가는 왕조인 한나라에서 세 개의 나라로 쪼개어진 위. 촉, 오는 서로를 겨누고 있는 관계다

그중에서도 가장 세력이 큰 조조의 위나라는 한나라 왕가의 핏줄이라 칭하는 촉의 유비와 대립관계이지만 자신들에 비해 열세라고 생각해 무시하고 있던 중 명장 하후연이 이끈 35만의 부대가 전략상 중요한 요지인 정군산전투에서 생각지도 못한 패배를 하고 하후연 마저 목숨을 잃는다.

이 전투에서 한선이라는 첩자가 나타났으며 군사기밀이 이 한선에 의해 노출되었음을 알게 되지만 그 누구도 한선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없다.

위왕 조조가 촉과의 전쟁을 이끌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간 한중에서도 생각지도 못한 촉의 반격에 변변한 승리를 거두기는커녕 허도로 돌아갈 길마저 여의치 않다.

이곳 역시 촉의 첩자가 활약하고 있어 중요한 정보가 술술 세 나가고 있었고 위왕과 그의 책략가인 정욱은 양수에게 의심의 시선을 돌린다.

양수는 바로 위왕의 아들 조식의 오른팔 격인 인물로 집안 대대로 나라에 충성하고 개국공신의 집안이었을 뿐 만 아니라 부와 명예에 관심이 없어 가장 의외의 인물이지만 그렇기에 그가 바로 촉의 간자로 선택된 배경이기도 하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인물이자 가장 의심받지 않을 인물

그리고 그런 인물들을 선택해 오랫동안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조직에 녹아들게 해 필요할 때 적재적소에 그 쓰임을 다하도록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베일에 가려져있는 한선이다.

위왕이 없는 허도에서는 자신이 아닌 조비가 세자로 책봉된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조식에게 누군가가 암살 시도를 했고 그 사건을 수사하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세자 조비가 이끄는 첩보조직 진주조의 교위인 가일이었다.

그 역시 사건을 수사하면서 한선의 흔적을 발견했을 뿐 만 아니라 조식이 한의 이름뿐인 왕과 결탁하고 뭔가 책략을 꾸미고 있었다는 걸 눈치채지만 증좌는 없고 심증만 갈 뿐이었다.

물밑으로 뭔가 진행되고 있지만 제대로 실체를 파악하기도 전 암살범의 공격을 받고 죽음의 위기를 겪으면서 한선이라는 인물의 정체에 한 발 다가가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들이라 그조차 자신이 맞는 건지 의심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의외의 인물이 짠 작전에 휘말렸다는 걸 허도의 성이 불타고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야 알게 되나 자신이 마음을 준 전천의 죽음 이후 삶에 별다른 미련이 없었던 가일은 죽음조차 각오하지만 그런 가일을 구해준 건 뜻밖에도 한선이었고 그의 도움으로 가일은 모든 비밀을 간직한 채 위를 버리고 촉으로 와 또다시 치열한 정보전의 선두에 서게 되는 내용이 2편으로 연결된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누구도 예외를 두어 선 안되는 치열한 첩보 전쟁은 세 나라가 자신의 나라 존폐를 걸고 있기에 그만큼 치열하고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그런 치열함 속에서 가일이나 양수와 같은 인물은 그저 장기판의 졸일 뿐 그 쓰임새를 다하면 흔적 없이 사라져가야 하는 그런 존재지만 한선의 뜻에 의해 또다시 촉에서 정보전에 뛰어든 가일이 어떤 활약을 펼칠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한선이라는 인물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 정체 역시 궁금해서라도 얼른 다음 편을 읽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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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지나간 후
상드린 콜레트 지음, 이세진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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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쓰나미가 덮쳐 자신의 가족이 사는 섬이 잠겨버렸을 때 루이와 아이들은 자신들이 평소 힘들게 오르던 언덕 맨 위에 자신들의 집이 있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했다.

주위 이웃들 대부분은 그 쓰나미에 집이 잠겨 빠져나올 새도 없이 수몰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이 섬에 살아남은 사람은 루이네 가족 11명뿐이지만 가족 모두 무사한 것과 집이 남아 있어 굶주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했다.

하지만 감사했던 마음도 잠시 모든 것을 앗아가버린 쓰나미가 지나간 후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와 바람은 그들의 집조차 안전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했고 가족은 좀 더 크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만 했다.

문제는 그들 가족 모두가 타기에는 배가 너무 작았다는 것이다.

다 같이 죽지 않으려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만 엄마 아비는 자신의 뱃속으로 나은 자식을 버리는 짓을 할 수 없다 울부짖고 격렬히 반대한다.

결국 아빠이자 가장인 파타는 섬에 남을 아이들을 선택했고 먹을 것과 물을 남겨둔 채 몰래 떠나게 된다.

아비도 사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죽지 않으려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파타가 한 짓을 용서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렇게 어느 날 느닷없는 재해로 한 가족이 자신의 터전을 잃고 거기에다 자식들마저 일부 남겨 둔 채 떠날 수밖에 없는 죽음보다 더 깊은 선택의 고통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는 이 책은 남겨진 아이들 3명과 선택된 아이들을 싣고 떠난 부모의 이야기로 나눠 그들이 겪는 고통과 생의 투쟁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고 일어나 보니 엄마 아빠도 언니 오빠도 없고 어린 동생들마저 없이 그저 자신과 같은 방에선 잔 동생들만 남겨져있다는 걸 발견한 소년 루이의 나이는 고작 11살

아무리 둘러보고 불러봐도 자신들만 남았다는 걸 깨달은 루이는 자신들이 버려졌다는 걸 깨닫는다.

비록 엄마가 남겨둔 편지에는 안전한 곳에 도착한 후 반드시 자신들을 찾으러 올 거라고 쓰여있지만 루이는 그 말을 믿을 수 없다.

그리고 자신들이 왜 선택된 건지 마음속 깊이 이해하고 체념하지만 동생들은 다르다.

엄마 아빠가 반드시 오리라 믿는 동생들을 대신해 자신이 모든 걸 진두지휘하고 살아남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런 노력이 아쉽게도 비는 계속 오고 집은 서서히 잠기고 있다.

자신들도 떠나지 않으면 집과 같이 잠겨버릴 거라는 걸 깨닫지만 배가 없고 어린 자신들의 힘으로는 뗏목조차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절망한 순간 누군가가 나타난다.

하지만 그 사람조차도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지 못한다.

그에겐 이 아이들이 가진 음식만 필요할 뿐이란 걸 깨닫는 순간 루이는 대장으로서 특단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그 순간 루이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장난치는 것에 열중했던 아이의 순진함을 벗어난다.

이렇게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아이들을 버리고 떠난 부모 역시 평탄하지 않다.

자식을 버렸다는 죄책감을 감수해야 하는 것과는 별개로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폭풍우와 거친 파도에 작은 배로 맞서야 할 뿐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자식들의 칭얼거림도 감수해야 하고 밤낮없이 노를 저어 나가야 함은 물론이고 그 들 뒤를 바짝 쫓는 바닷속 괴 생명체를 따돌리기도 해야 했다.

이런 와중에 뜻밖의 불행으로 자식마저 눈앞에서 잃어버린다.

그들 가족이 겪는 엄청난 불행과 고난의 순간이 처절하도록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읽으면서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마치 한 편의 재난영화를 보는듯 그려져있다.

아이들이라고 다를 바가 없는 게 어린아이들 셋이서 겪는 일 역시 지독하도록 힘들고 고통스러워 읽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편치 않았지만 여느 작품들과 다른 점은 이 모든 불행에서 아이들이라고 예외를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겨진 아이들이 조금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끝내는 부모와 행복한 조후를 한다는 식의 평범한 전개가 아니라 극히 현실적인 묘사를 통해 아이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그리고 좌절의 순간을 그려내고 있다.

파도와 폭풍우같이 거친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투쟁을 생생하고 치열하게 묘사해서 글에서 박진감과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고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불안과 공포에 잠식된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에 대한 냉정한 통찰은 이 책을 읽기 편하지 않게 한 요소이지만 그게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뻔한 재난 영화나 소설보다 훨씬 더 긴박감 있고 긴장감이 넘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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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율리 체 지음, 이기숙 옮김 / 그러나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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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를 둔 아빠 헤닝은 부자는 아니지만 직장이 있고 안락한 집도 있으며 1년에 한두 번 가족이 함께 휴가를 갈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는 평범한 가장이다.

아이 때문에 시간차 재택근무를 선택하게 되면서 급료가 줄었지만 이것 또한 아내와의 협의를 통한 결과이기에 부부간의 갈등은 없다.

이렇게 남들이 봐도 평범한 헤닝 부부이지만 최근 헤닝에게 생긴 변화는 그들의 평온을 깼다.

느닷없이 찾아오는 그것

언제 올지 어떨 때 올지도 모른 채 늘 불안에 떠는 헤닝에게 그것은 공포 그 이상이지만 언제부턴가 헤닝은 자신의 이런 상태를 모두에게 숨기고 평온을 가장한다. 심지어는 아내에게 조차도...

책을 읽으면서 정체가 뭔지도 밝히지 않은 채 그저 헤닝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그것이 뭔지 궁금할 즈음 드디어 생각지도 못한 그것의 정체가 밝혀진다.

헤닝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거나 압박감을 느낄 때 현대인들이 많이 앓고 있는 바로 그 병 스트레스성 압박감 혹은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었고 언제부턴가 그런 자신의 상태를 모두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절대로 정신과적 치료를 받지 않으려 거부한 채 곧 나을 거라고 자기 암시를 걸고 있다.

언제 또 공황발작이 올지 몰라 두려워하면서도 병이라고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헤닝의 태도는 자신의 병을 인정하면 그 순간 남자로서 가장으로서의 힘을 잃어버리고 경쟁에서 밀려날 거라는 걱정 때문인듯하다.

그의 이런 불안은 아내인 테레자의 사소한 거부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심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연히 알게 된 란사로테섬에서의 휴식으로 새해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던 헤닝이 스스로의 상태를 이겨내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페매스로 가는 언덕을 오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언덕으로 오르던 헤닝은 생각지도 못한 경사로 고생하며 갈증으로 괴로워하다 그 언덕 외딴곳에 있는 집을 발견하고 집주인의 배려로 집안에 들어서면서 순간적으로 기시감을 느낀다.

자신이 이곳 페매스에 온 적이 있었다는 걸 문득 깨닫게 되면서 이야기는 급속도로 빨라지기 시작한다.

언덕에 오르기 전의 헤닝은 자신의 일과 그것 때문으로 인한 고민을 하면서 여유롭게 올라온 것처럼 이야기 자체도 여유롭지만 뚜렷한 방향성을 보이지 않았다면 의외로 험한 길로 인해 갈증과 근육의 떨림으로 고통받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아내의 이별 통보를 받으면서 서서히 긴장감이 높아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그 집에서의 과거가 번개처럼 내리치듯 깨달으면서 이야기는 장르가 변한 것처럼 긴박감이 넘친다.

헤닝은 왜 그렇게 이곳 페매스에서의 기억을 깜쪽같이 잊고 있었던 걸까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라도 분노할 만큼 엄청난 일이었고 헤닝의 마음속 깊은 곳의 암연이 드러나면서 그가 왜 그토록 불안 증세와 공황발작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는지 그 트라우마의 근원이 밝혀진다.

깊고 맑은 바다와 그곳을 내려다볼 수 있는 조용하고 그림 같은 집에서 벌어진 폭력은 보는 내내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로 그 대비가 극적이었고 비극적이었다.

가족이라는 게 서로에게 얼마나 상처를 줄 수 있는지... 단단해 보이는 가족이란 형태가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지를 새삼 느꼈고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인간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헤닝 남매를 통해 새삼 알게 되었다.

조용하게 시작했단 벼락처럼 뒷통수를 치는...결말조차 의외여서 신선하게 다가 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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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 (리커버 에디션)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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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모여든 건강 휴양지 평온의 집

이들은 누군가는 삶의 의욕을 잃고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누군가는 잃어버린 사랑 때문에 얻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혹은 느닷없이 가족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곳으로 왔고 평온의 집은 그런 그들의 목적을 완벽하게 수용해주는 듯했다.

탄력 있고 균형 잡힌 몸매에 엄청난 설득력과 카리스마를 갖춘 이곳의 원장 마샤의 지휘 아래 적절한 처방에 따른 식단과 운동요법 그리고 명상을 통해 마음의 안정과 휴식을 주는 프로그램은 충분히 만족스러워 가지고 온 전자기기와 소지품을 압수당한 불만을 잠재우기 충분했다.

처음의 약속대로 이대로 열흘간이 흘러갔다면 그들은 각자 적당히 친해지고 나름대로 성과를 얻기도 하고 적당히 만족하며 돌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사람들에게 다시 태어나는 기쁨을 맛 보여주고 싶어 하는 마샤는 사람들의 동의 없이 약물을 투입했고 자신의 상태에 민감한 한 사람으로 인해 이 같은 사실이 모두에게 밝혀진다.

당연히 사람들은 분노하고 항의했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마샤 또한 범상치는 않은 인물

사람들의 이 같은 반응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터라 당황하지 않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을 그대로 진행하고자 하면서 마찰을 빚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작은 마찰은 곧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고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적당히 거리를 뒀던 아홉 명의 사람들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문제와 싫어도 마주하게 된다.

한때 잘나가던 로맨스 작가이고 늘 남자들로부터 인기를 얻었던 프랜시스는 이제 자신이 한물간 작가이자 더 이상 남자들로부터 찬양받고 받들어지는 게 당연하지 않다는 걸 마침내 인정하게 되었고 어느 날 갑자기 복권에 당첨되면서 모든 것이 변해버린 벤과 제시카 부부는 부부로서의 삶도 함께 변해버렸음을 그리고 네 딸을 낳은 자신에게 여자로서 매력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며 새로운 여자를 찾아 떠난 남편 때문에 여자로서의 자존감이 무너져버린 카멜 역시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남편의 마음이 변했을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자신감을 되찾는다.

느닷없이 가장 아프게 자식을 잃은 부부에게도 그리고 은퇴 후 모든 것이 변해버린 걸 인정하기 힘들어 무기력했던 남자에게도 깨달음은 벼락같이 찾아오지만 그 과정들이 일반적이지 않아 회원들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는 게 문제다.

사람들 각자가 내면에 감추고 싶었던 비밀이나 마음의 짐을 스스로가 원해서 내려놓은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투약한 약물로 인해 원치 않게 비밀이 밝혀졌기에 그들은 분노하고 거칠게 항의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마샤 또한 실망하고 지겨워하게 되고 서로 간의 대립이 극단적으로 치달으면서 이야기는 극적 긴장감이 최대로 높아진다.

이제 이 대립의 끝이 어디를 향할지 궁금할 즈음 의외의 결말이 기다린다.

아홉 명 하나하나의 캐릭터가 각자의 매력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고 각자가 가진 사연 또한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라 더 몰입이 되면서 결말에 공감을 하게 된다.

스릴러적인 면은 약하지만 스토리 자체는 아주 재밌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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