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공장
엘리자베스 맥닐 지음, 박설영 옮김 / B612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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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직업을 갖는 것도 쉽지 않고 남편 이외의 남자와 같이 다니는 것도 금기시되고 있는 시절

거기다 남자들의 전유물이었고 여자들은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었던 그림을 그리며 당대의 평론가인 존 러스킨의 후원을 받았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엘리자베스 시달에게서 영감을 얻어 나온 캐릭터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아이리스라는 설명이 흥미로웠다.

과연 그 시대에 앞서가던 여류 화가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쌍둥이 언니와 눈을 떠서 잘 때까지 작은 공간에 갇혀 인형의 얼굴을 그리고 옷을 입히는 일로 청춘을 보내고 있었던 아이리스는 언니와 가게를 하고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다는 은밀한 꿈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 형편으론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그녀에게 일생일대의 기회 즉 당대의 젊은 화가 그룹의 일원인 루이가 모델 일을 제의해온다.

하지만 그 시절의 모델이란 창녀와 마찬가지 취급을 받던 천한 직업이어서 보통의 여자들은 생각지도 않는 일이지만 아이리스는 그들이 그린 그림을 보고 자신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망에 승낙하게 되고 그로 인해 부모로부터는 물론이고 쌍둥이 언니로부터도 외면당한다.

부모와 언니의 외면은 가슴 아프지만 매일매일 원하던 그림을 배우고 그리는 즐거움에 한껏 취해있는 그녀를 눈여겨보는 사람이 있었다.

나면서부터 엄마의 폭력에 시달리고 제대로 된 애정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남자 사일러스는 죽은 동물에게서 박제를 하고 뼈를 분리하는 일에 재능이 있을 뿐 아니라 비틀리거나 기괴한 것에 병적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수집가이다.

그런 남자가 아이리스를 본 순간... 그녀의 나면서부터 뒤틀린 쇄골과 큰 키 그리고 어딘지 기품 있는 모습에 매료되었을 뿐 아니라 그녀 역시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혼자만의 위험한 착각에 빠져 그녀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다.

자신의 주변으로 위험이 다가오는지도 모른 채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젊은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조금씩 발전시켜나가는 아이리스는 자신을 창녀처럼 취급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점차로 신경 쓰지 않게 되고 자신감을 얻게 되지만 그런 순간도 잠시 그녀 곁을 맴돌던 사일러스로 인해 단숨에 꿈이 꺾일 위기를 맞는다.

시대적 배경이 여자들에게 자유는커녕 제대로 사람 취급조차 받지 못하던 시절에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이러스라는 여성은 분명 진취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그녀조차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도 별다른 불만을 표현하기보다 참기만 하고 루이로부터 처음 모델 제의를 받았을 때도 주위의 반대에 하고 싶으면서도 흔들려 거절하려 했을 뿐 아니라 언제나 주변을 살피고 조심스러워하던 그녀가 당시의 화풍에 전면적으로 도전했던 젊은 화가들의 모임인 라파엘전파 형제회들의 회원과 교류하면서 점점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자신의 그림이 인정받으면서 자신감 있는 여자로 점차 변화해가게 된다.

그런 변화는 결국 그녀를 곁에 두고자 수집하려 했던 사일러스와의 대결에서 보통의 여자라면 진즉에 꺾였을 의지를 절대로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을 내어주지 않고 끝내 남자의 도움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위기를 벗어날 원동력이 되어 마침내 당당한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존재가치를 발한다.

어둡고 침침한 그 시절의 뒷골목의 분위기를 제대로 묘사하고 이상한 것들을 수집한 사일러스의 음산함을 공포스럽게 표현해 그가 아이리스를 노리며 주변을 맴도는 장면에서 마치 서서히 조이는 올가미를 보는 듯한 긴장감을 제대로 표현했다.

한 사람의 집착과 광기에 대한 표현에서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보는 듯 다크하면서도 매혹적이었고 당대에 활동했던 화가들을 주인공의 주변 인물로 등장시킨 부분에서는 그 시대의 미술계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기류에 대한 뒷이야기를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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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코스트 블루스
장파트리크 망셰트 지음, 박나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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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기업의 간부이자 아내와 딸 둘의 평범한 가장인 조르주가 어떻게 살인을 하게 되었는지의 과정을 그려주고 있는 하드보일드 소설 웨스트 코스트 블루스는 길지 않은 페이지 전체에서 재즈며 클래식, 블루스 음악과 함께 온 사방에 피가 튀고 살이 터져나가는 장면으로 가득하지만 잔인하다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마치 누아르 영화에 음을 소거한 느낌이랄까... 너무나 평범한 일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거라는 징조조차 없이 자연스럽게 폭력으로 이어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이 벌어지는 과정이 군더더기 없어 일상처럼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에 간결한 문체로 연결되어 있고 여백이 있어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곱씹어 읽어야 제대로 그 상황이 이해가 되고 전후 맥락이 연결되는 느낌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깊은 몰입감을 보이게 했다.

조르주는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났지만 도착한 호텔도 장소도 마음에 들지 않아 불만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를 비웃듯 그곳에서 낯선 두 사람의 느닷없는 공격으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서 간신히 빠져나왔지만

생과 사의 순간 가족도 주변의 사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의 눈앞에서 죽었어도 그 이유를 몰랐을 거라는 사실은 그로 하여금 새삼 죽음의 두려움과 함께 삶의 허망함을 느끼게 했고 순간적인 판단으로 가족에게 말하지 않은 채 파리로 돌아온다.

그런 그를 따라와 또다시 공격해오는 남자들로부터 죽음의 위기를 맞아 반격한 조르주는 위기에서 탈출해 정신없이 도망치지만 집으로 돌아가거나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막연하게 달아날 뿐...

그가 왜 살인자들의 표적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두 번째 공격으로 인해 그가 표적임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렇다면 평범한 가장이자 직장인인 그가 왜 표적이 된 걸까 하는 의문이 드는데 그런 의문에 대한 답과 무관하지 않는 남자는 책 초입부터 등장했었다.

하지만 그 사람과 조르주의 연결고리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집요한 살인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조르주의 행보는 지독하게 고생스럽다.

기차에서 떨어지고 돈도 없이 추운 계곡에서 며칠 밤을 새우고 다리가 부러지고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로도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맨정신으로 상황을 견뎌내는 모습을 보면 그가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생각이 들기 보다 도대체 얼마나 재수가 없으면 이런 생고생을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모습은 처절하다.

하지만 전문가의 솜씨가 분명한 두 살인자로부터 살아남은 게 단순한 한 번의 행운이 아니었던 게 그를 도와주고 상처를 보살펴준 남자로부터 산속의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기술들을 전수받으면서 도시에서 생활하는 직장인이 아닌 헌터의 모습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그토록 자신을 집요하게 노리는 살인자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가 왜 표적이 된 건지를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라는 게 참으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단순해서 그가 겪은 죽음의 위기와 생고생이 한순간에 웃음거리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평범한 사람의 일상이란 게 그토록 쉽게 깨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삶의 부조리한 면을 폭력으로 보여주고자 한 의도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더 이상 숨어 다니지 않고 자신이 직접 찾아 나서는 조르주의 모습에서 평범했던 직장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그는 사냥꾼의 본능이 깨어난 헌터이자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자를 찾아 나선 복수의 화신이 되었고 원하는 결과를 얻고서야 집으로 귀환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전쟁에서 겨우 살아나온 패잔병의 모습처럼 보였다.

마치 오랫동안 집을 떠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돌아와 일상을 누리지만 때때로 깊은 밤 홀로 깨어 있는 모습으로 끝을 맺었는데 그가 도시인의 평범한 삶을 권태로워하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깨어난 사냥꾼의 본능은 언젠가 제 모습을 찾고자 하는 게 아닐지...

흑백필름 같은 느낌의 누아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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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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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살해한 범인을 스스로 잡고 런던으로 돌아갔던 케이트가 다시 스카보로로 돌아온다.

자신이 나고 자란 집을 처분하지 못해 세를 놓았는데 세입자가 집을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려놓고 몰래 떠나버린 덕분에 어쩔 수 없이 고향집을 찾은 케이트는 엉망인 집 덕분에 근처의 콘도에 방을 빌렸지만 하필이면 그 집의 딸아이 아멜리가 실종되면서 또다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게다가 얼마 전 같은 나이의 소녀 사스키아가 실종되었다 시체로 발견된 날 아멜리가 대낮의 쇼핑몰에서 실종된 사건은 경찰뿐만 아니라 언론의 집중 관심을 받기 충분했다.

케이트가 런던에서 온 경찰이라는 걸 안 아멜리의 부모는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고 아버지의 살인사건으로 이미 케일럽과 많은 의견 충돌을 겪었던 터라 이번에는 개입하지 않으려 하지만 두 번의 실종사건 전에 또 한 번의 실종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 케이트는 경찰의 신분이 아닌 비공식적인 신분으로 수사를 한다.

두 사건전에 발생한 실종사건의 주인공인 소녀 한나 역시 이번 사건들과 같은 14살의 소녀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깜쪽같이 사라져 이제까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점 등 케이트가 보기엔 연관성이 보이지만 케일럽을 비롯한 이곳 스카보로의 경찰들은 이번 사건과 한나 사건의 연관성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또다시 남의 관할에서 수사에 끼어들 수 없었지만 도저히 모른척할 수 없었던 케이트는 자신의 신분을 기자라 속이고 사건 관계자를 차례로 만나보면서 케일럽은 놓쳤던 단서를 찾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실종되었던 소녀 라일라가 갇혀있던 곳에서 탈출해 구조되는 일이 발생하면서 모두가 이번에는 속칭 고원지대 살인마라 일컫는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만 소녀는 충격으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케일럽은 라일라를 구한 목격자와 또 다른 목격자가 무언가 숨기고 있다 직감해서 그 둘을 수사하지만 두 사람은 뚜렷한 혐의점이 없다. 단지 케일럽의 직감만이 그 둘을 의심에서 내려놓지 못할 뿐이고 소녀가 기억해 낸 납치범의 모습과는 전혀 닮은 점이 없다.

하지만 목격자는 그를 고마워하는 라일라의 부모의 호의에 기생해 그들 주변을 맴돌면서 돈을 요구하면서 케일럽의 의심을 수긍할만한 행동을 하는 등 어딘지 석연치 않을 뿐 아니라 그 외에는 뚜렷한 범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 작품 전에 나왔던 작품들처럼 이번에도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을 추적하고 쫓는 과정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 않아 용의자를 특정 짓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기존의 크라임 스릴러와 달리 스피디하거나 연속해서 사건이 터져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준다기 보다 등장인물들의 내면의 갈등이나 심리에 더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 사건 해결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보기엔 다소 밋밋하다 느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범인을 특정 짓기가 쉽지 않아 책을 보면서 범인을 추리하는 재미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을 두고 그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리와 감정의 변화 그리고 사건 이면에 숨겨진 갈등에 대한 차분하지만 치밀한 묘사는 서서히 사건의 진실을 향해가면서 조여오는 듯한 긴장감이 장점인 심리 스릴러의 묘미를 제대로 살리고 있다.

여기에 주인공인 케이트는 남다른 직감과 범죄의 냄새를 맡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유능한 커리어 우먼이지만 이제까지 남자 형사가 주인공인 시리즈의 특징... 예를 들면 알코올중독이나 사고로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를 가진 것처럼 큰 핸디캡을 가지고 있다.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바닥이라 제대로 된 데이트는커녕 연애조차 해보질 못했고 남자들이 자신을 좋아할 리 없다는 생각이 그녀가 가진 능력을 발휘하는 데 영향을 끼칠 정도... 그런 이유로 남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 늘 최악의 선택을 해서 스스로 상처를 자초하지만 이번엔 그런 그녀에게도 누군가가 다가온다.

연이어 벌어지는 실종사건과 그 사건을 수사하면서 드러나는 실종된 소녀들이 처한 환경의 문제점은 소녀들의 실종이 사건인지 아니면 자발적인 실종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수사에 혼선을 주고 그런 혼선으로 수사의 방향이 어떤 식으로 틀어질 수 있는지 왜 미해결 사건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복잡한 등장인물, 단순하지만 쉽게 풀릴 수 없는 사건, 드러나지 않는 사건의 목적, 그로 인해 종잡을 수 없는 용의자... 샤를로테 링크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공통적인 플루트를 그대로 따른 작품

전작들을 재밌게 읽었다면 이번 작품도 마음에 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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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지 말 걸 그랬어 케이스릴러
김하림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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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자신의 기억과 달리 11년이 지나버렸고 유일한 핏줄이던 동생마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 여자가 자신이 잠들어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동생은 왜 죽었는지를 밝혀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깨어나지 말 걸 그랬어는 제1회 k 스릴러 작가 공모전 대상에 빛나는 작품이다.

그런 만큼 짜임새 있게 잘 쓰인 작품이기도 한데 무엇보다 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좀체 짐작할 수 없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일단 11년 만에 깨어난 여자 연영이 알게 된 사실은 오랫동안 자신이 언니로서 마치 자식을 돌보듯 돌봐왔던 동생의 믿을 수 없는 죽음이다.

더군다나 동생 수경이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는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연영을 온통 뒤흔들기 충분했지만 그녀를 이제껏 보살펴온 존재이자 수경이의 가장 절친이던 은지의 엄마 상미의 말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수경이는 왜 자살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 연영은 동생의 학창 시절에 대해 잘 아는 동생 친구들의 도움을 받고자 하지만 그들 역시 11년이 흐른 사건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어 별 도움이 안 되지만 연영은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의 사고가 누군가가 밀어서 생긴 사고였다는 걸 기억하는 연영에게 수경이의 죽음 역시 자살로 위장한 살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지만 그녀가 잠들어있는 동안 너무 많은 것이 변했고 많은 증거들이 이미 사라진 후라 수경이의 흔적을 찾는 것이 막막하기만 하다.

이렇게 아무런 기억도 없고 아무런 증거 하나 없으면서 그저 동생이 자살할 이유가 없었다는 언니로서의 막연한 느낌은 동생의 동창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동생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는 후회와 미련만이 남는다.

이야기의 초반은 연영이 깨어나면서 알게 된 이런저런 충격적인 이야기로 관심을 끌었다면 중간까지는 수경이의 학창 시절에 대해 알아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진실... 즉 수경이가 생각처럼 친구관계가 좋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절친이었던 은지와도 멀어졌었다는 사실을 수경의 동창들의 입을 통해 들려준다.

중반까지 이렇게 별다른 범죄의 이유나 동기가 밝혀지지 않고 큰 사건성이 없이 그저 언니가 몰랐던 동생의 학교생활을 알게 되면서 연영이 받은 충격과 자책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어 다소 느슨하게 느껴졌다.

설마 이대로가 끝인 걸까 싶을 정도로 뚜렷한 사건성이 보이지 않아 조금 실망스럽게 느껴질 즈음 처음부터 가졌던 의문 즉 왜 친구의 엄마가 그토록 오랫동안 연영을 돌봤을까 하는 것에 대한 답이 밝혀지면서 그때부터 본격적인 반전이 시작되고 거침없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드러난 진실은 충격적이기보다는 슬픔을 느끼게 해서 제목이 더 와닿았다.

아마도 깨어나지 말 걸 그랬어는 연영의 회한이 담긴 독백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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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플린 베리 지음, 황금진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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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를 만나러 간 노라가 발견한 것은 칼에 찔려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 있는 언니와 언니의 애완견이었다.

자신이 직접 눈으로 확인한 언니의 죽음이지만 노라는 충격을 받아서인지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고 그저 멍한 채 구급 대원을 막연하게 기다렸고 이내 경찰이 와서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 테이프를 둘렀지만 여전히 노라는 그저 남의 일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그녀의 행동은 피해자 가족이 느끼는 충격을 여실히 보여주지만 경찰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행동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될 수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된다.

언니인 레이첼은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미혼 여성이지만 외딴곳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의 강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매인 노라와 이곳저곳을 여행 다니길 좋아했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 그녀에게 몇 번의 칼을 찌를 정도로 원한을 살 만한 사람도 없었고 최근까지 진지하게 사귀는 남자도 없어 누가 그녀에게 이런 짓을 했는지 경찰은 막연하기만 한데 사랑하는 언니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는 노라는 언니 집 주변을 둘러보다 누군가 언니의 집 근처에서 몰래 레이첼을 지켜본 흔적을 발견하고 경찰에게 알린다.

평범한 시민인 그녀도 발견할 수 있는 걸 왜 경찰은 발견하지 못한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 노라는 이곳 경찰에 대해 믿을 수가 없어 자신이 직접 그놈을 찾고자 하면서 문득 그 남자가 떠오른다.

사실 레이첼은 아주 오래전 낯선 남자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해 중상을 입은 전적이 있지만 당시 레이첼과 친구들이 밤새 술을 마신 상태였다는 이유로 경찰은 그녀의 증언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고 사건이 제대로 수사되지 않은 채 범인도 못 잡고 흐지부지된 경험이 있었다.

그 이후로 레이첼은 자신을 때린 그 남자를 찾기 위해 신문에 폭행이나 강간 같은 기사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자매는 오랫동안 그 일을 계속 해오다 그만둔지 오래인데 자신에겐 비밀로 한 채 얼마 전까지 언니가 계속 조사를 해왔었을 뿐 만 아니라 다른 곳으로 이사를 계획했었다는 것도 경찰의 말을 통해 알게 되면서 노라는 계속 당황한다.

왜 언니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진실을 감췄을까

범인을 찾기 위해 실마리를 찾는 것과 별개로 하나씩 드러나는 언니의 이야기는 자신이 이제껏 잘 안다고 생각했던 언니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었을 뿐 아니라 드러난 진실은 노라에게 충분히 혐의가 갈 만한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경찰은 노라에게 언니인 레이첼을 죽일 동기가 있었다고 생각해 그녀를 취조하면서 노라 역시 숨기고 있었던 게 드러나게 되고 이제까지 한 그녀의 행동과 말이 자신의 범행을 숨기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의심하게 만든다.

그만큼 그녀의 행동은 피해자 가족이 할만한 행동이라 생각한 모습 즉 상실감에 괴로워하고 언니와의 추억에 고통스러워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범인을 잡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고.... 그러면서도 언니를 잘 몰랐다는 현실을 부정하고 믿고 싶어 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를 보여줬는데 이 모든 게 거짓이라면 그녀는 대단한 거짓말쟁이거나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피해자 가족이 사건 해결의 단서를 찾는다는 설정은 여느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범인을 찾는 과정이나 범행 동기가 중요한 다른 스릴러와 달리 이 책은 범인의 정체나 범행 동기보다 갑작스럽게 가족의 죽음에 직면한 남은 가족이 느끼는 상실감과 슬픔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긴박감이 넘치거나 긴장감이 있지는 않다. 오히려 죽은 사람과 함께했던 것들을 추억하고 현실과 과거가 뒤섞여 어딘지 모호하고 사건 자체도 흐릿하게 느껴져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범인이 잡히고 그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범행 동기가 드러나는 완전한 결말을 원하는 사람에겐 다소 낯설지만 회상하면서 언니가 무심결에 했던 말 중에 어떤 단서가 있지 않을까 다시 떠올려보고 또다시 곱씹어 보면서 누가 그녀를 죽였을지 자신만의 근거를 토대로 범인을 추적한다.

경찰의 수사로 밝혀지는 레이첼의 행적을 통해 드러나는 그녀의 성격과 행동은 노라의 증언이나 추억에서 드러나는 모습과 차이가 많이 나면서 누구의 말이 맞는지 의심이 생기게 되고 노라가 중요한 부분을 고의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경찰이 노라를 의심하는 게 설득력을 얻으면서 뒤로 갈수록 긴장감이 흐르도록 했다.

비슷한 연령에 비슷해 보이는 외모의 자매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어울렸고 서로에게 온갖 이야기를 다 털어놓는 여느 자매 사이같이 보이지만 비슷한 외모에도 어딜 가던 눈에 띄는 언니로 인해 늘 비교당하는 삶을 살아야 했던 노라

그렇다면 그녀가 진짜 자신의 언니인 레이첼을 죽인 걸까?

사랑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늘 질투와 질시의 시선을 보냈던 자매의 이야기가 살인사건과 뒤섞여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는 여성들의 심리 표현과 일상에서 여자들이 느끼는 공포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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