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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코스트 블루스
장파트리크 망셰트 지음, 박나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6월
평점 :
중간 기업의 간부이자 아내와 딸 둘의 평범한 가장인 조르주가 어떻게 살인을 하게 되었는지의 과정을 그려주고 있는 하드보일드 소설 웨스트 코스트 블루스는 길지 않은 페이지 전체에서 재즈며 클래식, 블루스 음악과 함께 온 사방에 피가 튀고 살이 터져나가는 장면으로 가득하지만 잔인하다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마치 누아르 영화에 음을 소거한 느낌이랄까... 너무나 평범한 일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거라는 징조조차 없이 자연스럽게 폭력으로 이어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이 벌어지는 과정이 군더더기 없어 일상처럼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에 간결한 문체로 연결되어 있고 여백이 있어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곱씹어 읽어야 제대로 그 상황이 이해가 되고 전후 맥락이 연결되는 느낌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깊은 몰입감을 보이게 했다.
조르주는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났지만 도착한 호텔도 장소도 마음에 들지 않아 불만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를 비웃듯 그곳에서 낯선 두 사람의 느닷없는 공격으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서 간신히 빠져나왔지만
생과 사의 순간 가족도 주변의 사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의 눈앞에서 죽었어도 그 이유를 몰랐을 거라는 사실은 그로 하여금 새삼 죽음의 두려움과 함께 삶의 허망함을 느끼게 했고 순간적인 판단으로 가족에게 말하지 않은 채 파리로 돌아온다.
그런 그를 따라와 또다시 공격해오는 남자들로부터 죽음의 위기를 맞아 반격한 조르주는 위기에서 탈출해 정신없이 도망치지만 집으로 돌아가거나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막연하게 달아날 뿐...
그가 왜 살인자들의 표적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두 번째 공격으로 인해 그가 표적임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렇다면 평범한 가장이자 직장인인 그가 왜 표적이 된 걸까 하는 의문이 드는데 그런 의문에 대한 답과 무관하지 않는 남자는 책 초입부터 등장했었다.
하지만 그 사람과 조르주의 연결고리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집요한 살인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조르주의 행보는 지독하게 고생스럽다.
기차에서 떨어지고 돈도 없이 추운 계곡에서 며칠 밤을 새우고 다리가 부러지고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로도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맨정신으로 상황을 견뎌내는 모습을 보면 그가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생각이 들기 보다 도대체 얼마나 재수가 없으면 이런 생고생을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모습은 처절하다.
하지만 전문가의 솜씨가 분명한 두 살인자로부터 살아남은 게 단순한 한 번의 행운이 아니었던 게 그를 도와주고 상처를 보살펴준 남자로부터 산속의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기술들을 전수받으면서 도시에서 생활하는 직장인이 아닌 헌터의 모습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그토록 자신을 집요하게 노리는 살인자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가 왜 표적이 된 건지를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라는 게 참으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단순해서 그가 겪은 죽음의 위기와 생고생이 한순간에 웃음거리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평범한 사람의 일상이란 게 그토록 쉽게 깨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삶의 부조리한 면을 폭력으로 보여주고자 한 의도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더 이상 숨어 다니지 않고 자신이 직접 찾아 나서는 조르주의 모습에서 평범했던 직장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그는 사냥꾼의 본능이 깨어난 헌터이자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자를 찾아 나선 복수의 화신이 되었고 원하는 결과를 얻고서야 집으로 귀환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전쟁에서 겨우 살아나온 패잔병의 모습처럼 보였다.
마치 오랫동안 집을 떠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돌아와 일상을 누리지만 때때로 깊은 밤 홀로 깨어 있는 모습으로 끝을 맺었는데 그가 도시인의 평범한 삶을 권태로워하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깨어난 사냥꾼의 본능은 언젠가 제 모습을 찾고자 하는 게 아닐지...
흑백필름 같은 느낌의 누아르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