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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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심리묘사에 탁월하고 특유의 서간체 형식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미나토 가나에의 신작 미래 에는 하나같이 어른들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안은 채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다.

어린 나이에 아빠를 잃고 힘든 생활을 하게 되는 아키코를 중심으로 아키코와 연관이 있는 아이들 혹은 어른들의 어린 시절부터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데 각자의 삶이 녹록지 않다.

평범하지 않다는 걸 떠나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비밀들을 안고 있는 아이들은 선택의 순간에 어쩌면 당연하게도 더욱 진흙탕 속으로 끌려가는 안타까운 선택을 해 읽는 내내 불편함을 줄 정도였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매일 인형이 돼버린 엄마를 돌보며 살아가는 아키코에게 20년 후의 자신으로부터 편지가 온다.

지금은 힘들지만 꿋꿋이 버티면 좋은 날이 있을 거니까 조금만 힘내라는 그 편지에는 자신의 말을 믿을 수 있도록 하는 징표도 들어있었는데 그건 바로 도쿄 드림마운틴 30주년을 기념하는 책갈피였다.

그리고 그런 미래의 자신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쓰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키코

언제나 멍하게 인형인 상태로 누워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엄마를 둔 사춘기의 어린 여학생은 누군가의 표적이 되어 괴롭힘을 당하거나 죽을 만큼 힘들어도 손 내밀어 줄 사람도 보호해 줄 어른도 없다.

오히려 자신들 주변을 맴돌면서 무기력한 엄마와 자신을 이용해먹으려고 하는 나쁜 어른들뿐...

그런 사람들로부터 약한 엄마를 보호하고자 노력하지만 처음 만난 할머니라는 존재는 자신의 뜻을 반한다는 이유로 알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비밀을 거침없이 폭로해 아키코에게 깊은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아키코의 친구 아리사와 동생 역시 어릴 적부터 부모에게서 제대로 된 보살핌은커녕 폭력에 노출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둘이서 서로를 알아보는 건 당연한 결과

이렇게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어릴 적부터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 학대를 당하며 살아오고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어른이란 존재는 보호자가 아니라 아이들을 괴롭히는 학대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 모두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집에서 살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어 누구도 그 집안에서 벌어지는 참담한 일을 눈치채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침묵하는 쪽을 택한다.

집에서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학교에서조차 또래의 아이들에 의한 따돌림에 시달린다.

영악하게도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해도 그 아이들을 도와줄 어른은 없다는 걸 알고 하는 행동이란 게 더 씁쓸하다.

그런 아이들 아키코와 아리사,지애리가 서로를 알아보고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들을 괴롭힌 어른들을 없애버리고자 합심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스스로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끼리 뭉쳐 난관을 헤쳐나가고자 노력하는 것에 반해 책 속에 등장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비겁하거나 이기적이고 뒤틀려있다.

도저히 아이들을 키워서는 안 될 모습을 한 채 자신보다 약한 아이들을 힘으로 제압하고 그런 자식들을 돈을 받고 팔아 버리기도 하는 등 해서는 안 될 짓을 거침없이 저지르면서도 죄책감은커녕 얼굴조차 붉히지 않는 몰염치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가장 보호받아야 할 가정 내에서 오히려 위험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어른을 불신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누구도 그 아이들에게 관심을 주거나 도움을 주려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들 앞에서 거침없이 자행되는 짐승 같은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자신들의 집에 불을 지른 행위는 아마도 부정하고 싶은 자신들의 모습을 정화하고 모든 걸 태워버린 후 새롭게 출발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자신들을 억압한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게 방화라면 드림랜드로 가고자 하는 행위는 더 이상 힘들어하지 말고 밝은 미래를 꿈꾸고 싶은 발상에서 나온 게 아닐까?

에피소드에서 의문점들이 하나둘씩 풀리면서 드러나는 진실은 타르처럼 끈적하다.

손에 들면 단숨에 읽어 내려가는 작가 특유의 가독성이 좋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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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어하우스 - 드론 택배 제국의 비밀 스토리콜렉터 92
롭 하트 지음, 전행선 옮김 / 북로드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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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 아침에도 난 어제저녁에 아침거리로 주문한 것들을 배달 받아 가볍게 해결하고 출근을 했다.

언제부턴가 시작된 새벽 배송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아직 한 번도 안 시켜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시킨 사람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 정도로 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는 서비스이다.

그래서 주문 한 물건을 한 시간 내 드론이 배달해드린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기업 클라우드의 이야기가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고 현실 가능한 이야기라고 믿는다.

어쩌면 땅이 넓어 택배 물건을 배송받기까지 몇 날 며칠이 걸리고 우리만큼 편리하면서도 최첨단의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 사람들에게는 다소 과장된 걸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웨어하우스는 이런 편리함 속에 숨은 위험을 보여주고 있다.

클라우드 기업이 등장하면서 지구 온난화의 문제라든가 어느 대통령도 해내지 못해 늘 총기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국민들을 그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면서 각광받게 됨과 동시에 주문한 물건을 언제든지 배송받을 수 있는 편리함으로 그리고 수천 명의 사람을 고용함으로 실업난 해소에 앞장서게 된다.

고용을 창출하고 탄소 배출량을 극도로 줄여 지구 환경보호에 앞장서고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기업이 바로 클라우드이고 당연히 이런 이유들로 인해 클라우드는 나날이 커져가 마치 하나의 나라처럼 그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런 빛이 있으면 그림자는 존재하는 법

보다 싸고 편리함을 내세운 클라우드는 나날이 몸집이 커져가고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 다른 기업들은 무너지고 도산해버린다.

덕분에 클라우드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아 또다시 주변 상권을 무너뜨리고...

결국은 새로운 실업자를 양산하는 시스템인데... 가만 보면 오래전 대형마트가 주변 상권을 다 잠식하며 몸집을 키워오던 과정과 흡사하다.

클라우드의 가격 인하 압박으로 인해 자신이 온 힘과 정성을 다해 만들었던 회사가 무너지고 끝내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클라우드에 취업을 해야만 했던 팩스턴이 그런 케이스이다.

그래서 팩스턴과 산업 스파이로 클라우드에 잠입한 지니아는 다른 취업자들과 달리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클라우드에 취업을 했지만 난공불락 같은 클라우드에서 원하는 바를 얻기가 쉽지 않다.

마치 하나의 공장처럼 사람들마다 티셔츠의 색깔로 나눠져 각 자가 맡은 일이 다를 뿐 만 아니라 빡빡하게 짜인 일정은 숨 돌릴 시간, 물 마실 시간까지 정해져 있을 정도로 노동강도가 심하고 거기다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잠잘 때 외에는 손목에서 뗄 수 없는 시계에는 GPS 기능이 갖춰져 있어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고 노출된다.

엄청난 강도의 노동과 억압된 자유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반항하거나 의문을 제기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채점을 매겨 조금만 등한시해도 관리 대상이 되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하는 시스템은 이런 반항을 할 여지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조차 잘 짜인 시스템의 일부가 된 것처럼...

이런 환경은 지니아로 하여금 제대로 된 역량을 발휘하기 힘들게 하고 그런 지니아에게 예전 교도관으로서의 커리어를 인정받아 이곳에서 보안과에 근무하는 팩스턴의 대시는 도움이 되었다.

처음부터 일련의 목적 즉 자신이 기업체 기업의 입장이었을 때 자신의 회사에 가한 클라우드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했던 팩스턴이었지만 차츰 이곳 환경에 적응을 하면서 조금씩 변화된 모습을 보이면서 융화되어간다.

다른 곳에선 지금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많고 그들은 오늘 하루 잠자리와 식사를 걱정해야 하지만 자신은 쾌적한 곳에서 생활할 뿐 아니라 지금 하는 일로 성공하면 관리자가 될 수 있다고... 그런 이유로 그토록 자신이 싫어했던 교도관으로서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한 지금의 일이 싫으면서도 어느새 이곳에서 보안 책임자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심지어 그로부터 칭찬받고 싶어 하는 모습은 시스템이 사람을 어떻게 길들이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는 언젠가부터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도 그리고 누군가를 감시하는 감시자의 일원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에도 익숙해져서 자유가 통제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 채 시스템에 스스로 동화되어가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제는 클라우드가 아니어도 자신의 사업은 잘 되지 못했을 거라고 합리화를 시작한다.

그런 팩스턴에게 지니아와의 외출에서 마주친 저항군들과의 대화는 작은 의심을 심어주고 그로 하여금 처음 이곳으로 온 목적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속도를 낸다.

게다가 지니아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이곳의 작은 틈 즉 자신의 시계를 차지 않고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란 게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쉽다는 건 어쩌면 복잡하기 그지없는 시스템의 맹점이란 이처럼 단순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편리함을 앞세운 미래 기업 클라우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앞으로 우리가 마주하게 될 미래 모습의 한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웨어하우스는 독점기업의 병폐와 편리함에만 익숙해져서 그곳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의 인권이나 권리 등의 불편한 진실에 눈 감으면 어떤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 그 허와 실을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다.

다소 딱딱할 수 있는 소재를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는 웨어하우스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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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사이드 하우스
찰리 돈리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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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기숙 사립 고등학교에서 한 밤에 벌어진 잔혹한 살인 사건은 모두에게 충격을 안겨주지만

사건 발생 후 수일 안에 범인인 교사를 잡으면서 쉽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사건 이면에 뭔가 엄청난 비밀이나 음모가 있지 않을까 하고 의심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그런 사람들로 인해 괴담과 미스터리는 생명을 얻는데 사람들의 관심과 화젯거리를 재빨리 캐치해서 방송으로 연결해 돈을 버는 사람들의 눈에 이 사건은 안성맞춤의 먹이였고 그런 이들로 인해 이 사건은 다시 부활한다. 또다시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부잣집 아이들의 전유물 같은 명문 기숙 사립 고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범인이 그들을 가르치던 교사라는 소재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인데 범인이 잡힌 후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했고 그날 밤 살아남은 학생들 역시 하나 둘 사건 현장으로 돌아와 그 선생의 뒤를 이어 똑같은 방법으로 자살을 감행한다.

왜 그들은 자꾸만 살인 현장으로 다시 돌아와 자살을 하는 걸까?

그들의 행동의 수수께끼는 누군가에게 의문을 갖게 하고 이 사건을 추적 수사하던 기자의 본능을 자극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자신의 의문과 그날 밤 사건의 수수께끼를 적은 기록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았고 당연히 이 사건엔 뭔가 있음을 직감한... 그리고 돈이 될 것이라는 걸 깨달은 사람들은 팟캐스트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시작하면서 살인사건은 마치 쇼와같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자극적이면서도 비밀이 있는듯한 이 사건은 사람들을 열광케하고 흥분에 휩싸이게 하지만 그런 열광은 당연하게도 누군가의 주의를 끈다. 그리고 당연한듯 다시 살인은 시작되었다.

그날 밤에 대해 비밀을 밝히려던 소년 역시 사람들의 눈앞에서 보란 듯이 자살하면서 이 사건 뒤에는 정말 인간의 힘이 아닌 악령이나 초현실적인 그 무엇이 존재하는 건 아닐지 하는 의심이 들 즈음 이 사건을 맡아 팟캐스트에 올리던 유명 진행자와 그를 도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온 프로 파일러가 누군가에 의한 폭발사고를 당해 팟캐스트 진행자가 죽음을 맡는다.

이로 인해 이 사건들이 악령이나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닌 인간에 의해 벌어진 살인사건이라는 게 명백해졌고 범인으로 지목됐지만 자살미수로 식물인간 상태가 된 교사의 혐의는 벗겨진다.

그렇다면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그는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하는 궁금증과 더불어 그날 밤 살아남은 아이들의 연이은 자살 사건으로 보면 그날 아이들이 뭔가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지만 침묵했고 그 죄책감 때문에 연이어 자살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심증이 굳어가지만 범인에 대한 정체는 좀체 드러나지 않았다.

누군가가 정신과 상담을 하면서 자신이 저지른 살인사건에 대한 고백의 일기와 지금은 졸업했지만 이 고교에 다녔던 한 남자가 가졌던 이 학교 그중에서도 자신이 원했지만 속하지 못했던 맨 인 더 미러 클럽에 대한 원망과 회한들로 미뤄볼 때 두 남자가 이 사건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되었을 거라 짐작만 할 뿐...

연이은 자살로 사람들의 관심을 드높아졌지만 단서로 사건 전체를 맞출 사람이 필요할 때 드디어 해결사가 등장한다.

사건 속으로 들어가 그 날밤 사건들을 하나씩 꿰맞춰 빠진 그림을 찾아 진실을 파헤치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이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는 하지 못하는 다소 특이한 성격의 범죄 재구성 전문가 로리는 연이은 자살 사건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 이 사건들이 자살이 아닌 누군가에 의한 타살일 수도 있음을 입증해낸다.

연이어 발생하는 기이한 사건들이지만 들여다보면 개개의 사건들이 서로 얽히고 순간의 판단 하나로 전체의 그림이 뒤틀렸음을...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미스터리한 사건이 되었음을 알 수 있도록 현재와 사건 당시 시점을 보여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빠른 속도감과 복잡해 보이는 사건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면서 억지스러운 설정이나 반전을 위한 어설픈 뒤틀림 없이 그 자체만으로 독자를 설득해나가는 힘이 있는... 가독성 좋은 스릴러였다.

상당히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이자 특별한 능력을 가진 로리 무어와 레인 필립스 두 콤비의 활약을 그린 작품이 더 있는 것 같은데 그 작품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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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버드, 블루버드
애티카 로크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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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가 참으로 어울려 더더욱 눈에 띈 이 책은 읽는 내내 제목처럼 나지막하면서도 묵직한 소울과 블루스의 음악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미국 남부의 사막의 열기와 고즈넉한 풍경 그런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남북 전쟁의 원인이었던 흑인 노예들이 가장 많았던 곳... 그래서인지 21세기인 지금도 인종 차별이 여전한 건 어쩌면 이 지역이 가지고 있는 정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건이 벌어진 장소 역시 눈에 보이는 인종차별이 극심한 텍사스의 한적한 카운티의 작은 마을 라크

이곳의 주민은 불과 200여 명 남짓하지만 일주일 동안 무려 2건의 사망사건이 발생했다는 것 자체부터 벌써 이채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이 적당히 처리하고 넘기려던 찰나 난데없이 한 사람이 사건으로 뛰어든다.

그 남자의 이름은 대런 매슈스였고 그는 흑인이면서 텍사스의 레인저였다.

레인저라는 게 그저 영화 속에서 악당을 무찌르는 히어로 정도로만 알았었는데 엄청난 명예와 자부심을 가질만한 위치를 지닌 존경 받는 특수 경찰 비슷한 뭐 그런 정도였고 그런 이유로 그가 처음 이 사건을 맡았을 땐 여느 형사물처럼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이면에 숨은 진실을 찾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질 거라는 예상은 당연하지만 빗나갔다.

일단 대런은 레인저이면서 한 사건에 연루되어 자신의 위치가 불안한 상태였고 라크의 사건을 맡았을 땐 상부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닌 다른 동료로부터 이 사건을 의뢰받아서였기에 시작부터 위치가 어중간했었다.

게다가 그가 온 이곳은 겉으로는 21세기의 문명인들이 사는 조용한 마을이지만 오랫동안 인종 간 서로 같이 어울려 술 한 잔도 같이 하지 않을 정도로 극심히 편이 갈린 곳이었고 그런 곳에서 일주일 사이에 인종 간의 살인사건이 벌어져 긴장이 고조되던 찰나였다.

처음 타지에서 온 흑인 변호사의 죽음은 제대로 수사도 하지 않은 채 단순 사고사로 처리했지만 불과 며칠 후 이번엔 백인 여성이 죽었을 땐 명백히 분위기가 달라져 라크가 보는 앞에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마을의 술집이자 흑인들의 아지트를 뒤집어 놓았을 뿐 아니라 모든 포커스를 그들에게 맞춘 편법 수사가 자행되었다.

그가 레인지임을 밝혔음에도 어디 가서든 그들에게 향하는 존중은 보이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그가 수사에 참여하는 걸 방해하기까지 하는 라크의 보안관과 지역 경찰들...

사실 그들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레인저인 그를 수사에서 배재 시키고 따돌리는 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지만 같은 인종인 흑인들조차 자신들을 돕기 위해 온 대런을 피할 뿐 아니라 진술조차 거부하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는데 어찌 보면 그들의 입장에서는 대런조차도 자신들에게서는 타인이자 제3자일 뿐 일 수도 있겠다 생각하면 납득이 갔다.

사건만 해결하면 떠날 사람을 위해 진술을 하고 돕는다는 건 뒤에 남아 같이 살아갈 사람들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는 행위임을 이해하면 그들의 답답할 정도로 폐쇄적인 행동은 십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살인사건과 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담은 범죄소설이기는 하지만 범인을 찾는 것보다 그들 사이에 흐르는 인종 간의 갈등에 더 무게중심을 뒀고 그런 이유로 전개가 다소 답답하게 흘러 빠른 전개와 장면전환을 선호하는 사람에겐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 전반을 흐르는 인종 간의 갈등과 차별에서 오는 서로를 향한 명백한 적의와 증오의 묘사는 너무 생생해서 때론 숨 막혔고 답답하게 느껴졌을 정도로 빼어났다.

오랜 세월 차별과 서로를 향한 적의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사랑은 누군가에겐 아름답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가슴 아픈 상처이자 회한이기도 하다는 건 불변인 듯... 단순한 살인사건 밑에 흐르는 사랑과 질투, 증오와 복수의 감정은 인종을 넘고 세월을 뛰어넘어 변함없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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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 쿤룬 삼부곡 1
쿤룬 지음, 진실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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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도 그렇고 표지도 그래서 가벼운 일본식 블랙 유머가 가미된 소설이려니 생각했었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도 제법 있지 않을까?

사실 도입부에서 눈 깜짝할 새 납치와 감금이 벌어지고 연이어 살인사건이 벌어지는데도 잔인하다거나 무섭다는 생각보다 살인사건을 저지르고도 주변을 청소하는 데 더 열중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처음 생각이 맞구나 싶었었다.

일단 살인이라는 비정상적인 일을 벌여놓은 사람의 행동이라 하기엔 주인공 스녠의 행동은 일반적이지 않다.

그가 살인 현장을 청소하는 게 보통의 상식과 달리 증거를 인멸하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핏자국이 난자한 곳을 청소하면서 이런저런 흔적을 지울 수도 있지만 스녠의 청소에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 즉, 그는 무엇보다도 더럽고 지저분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중증의 결벽증을 가지고 있다.

늘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살인마가 심각한 결벽증을 가지고 있어 살인보다 청소에 더 공을 들인다는 설정만 보면 어처구니없는 부조화에 웃음이 나오지만 이야기가 점점 더 진행되고 그가 강박적일 정도로 결벽증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밝혀지면서부터는 나도 모르게 애처로운 이 소년 같은 청년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10년이라는 뜻을 가진 스녠이라는 이름부터 그가 가지고 있는 비극을 증명하고 있다.

나면서부터 버려져 보육원에서 자랐지만 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그는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한 가지 목적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재미로 사람들을 납치해 살인을 일삼고 자신의 행위를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 영상으로 업로드하는... 살인마 잭을 숭배하는 집단 J의 일원을 자신의 손으로 하나씩 처단하는 것

그가 죽인 사람들은 단지 나쁜 놈이라거나 하는 단순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쾌락을 위해 살인을 하고 심지어는 인육을 먹기도 하는 미친 살인마 집단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런 그들을 찾아내 처리하는 그에게 동조하고 응원하게 된다.

아마도 그의 이런 면 때문에 뒤에서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스녠이 찾은 목표물에 대한 정보를 주며 그의 행위를 구경하던 구경꾼 다비도프나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자리에서 오로지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할 목적으로 살인을 방관해 스녠으로 하여금 영원히 지워지지않을 트라우마를 남겨줬던 닥터 야오 같은 사람들마저도 그를 도와주게 하는 스녠의 힘은 아마도 자신의 욕망이나 욕심 때문이 아닌 오로지 살인마 집단을 처리하겠다는... 어쩌면 숭고하기까지 한 그의 집념에 매료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가벼운 문체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울림을 준다.

어쩌면 이 팀을 소재로 다음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예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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