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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요 네스뵈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1년 10월
평점 :
너무 좋으면 오히려 뭘 써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이 책 킹덤이 그랬다.
일단 너무 애정 하는 작가의 신작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해리 홀레 시리즈가 아님에도 이야기 전체를 아우르는 어둡고 우울함 가득한 허무의 향기가 짙게 느껴져 요 네스뵈 특유의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하나의 돌이 구르는 것처럼 처음엔 천천히 그리고 뒤로 갈수록 엄청난 속도로 굴러가면서 한순간도 놓칠 수 없는 몰입감을 보여준다는 것 역시 이 책의 매력이었다.
주인공은 두 남자 로위와 칼이고 이 둘은 형제다.
한 살 터울의 두 형제는 여느 형제와 다른 점이 있었다.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끈끈함과 결속력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둘을 연결하는 건 무엇보다 두 사람이 아직 미성년일 때 부모가 눈앞에서 집 앞 도로의 위험한 예이테스빙엔 에서 떨어지는 차 사고를 당해 졸지에 고아 신세가 되는 사고의 경험을 공유했다는 게 이유로 작용하는 것 같다.
그 외에도 두 사람의 관계적인 측면 역시 둘의 남다른 가족애에 한몫한다.
잘생긴 외모와 훤칠한 몸을 가진 동생 칼은 어릴 적부터 주변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히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사람들을 유쾌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의 소유자였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여자친구나 아내 때문에 칼을 질투하는 남자가 많아 어디서든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칼이 문제에 휘말리거나 곤란한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일을 나서서 해결해 주는 사람이 바로 형 로위였다.
로위는 칼처럼 주변 사람에게 인기가 있거나 반짝거리는 빛과 같은 존재가 아닌 혼자 있기를 즐기고 말도 별로 없는 유형이지만 동생의 뒤에서 그를 보살피며 책임을 다하고 칼을 돌보는 게 당연한 일이라 생각해왔다.
사실 로위가 이러는 건 칼에 대한 부채감 때문이기도 했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칼이 자신을 필요로 했을 때 동생이 처한 상황을 눈앞에서 뻔히 보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어 모른 척 외면해야 했던 과거의 자신에 대한 수치심일 것이다.
동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죄책감과 수치심은 끝내 그가 극복하지 못한 것 중 하나였고 그가 끝내 칼을 외면하지 못한 이유였다. 피로 맺어진 가족이 그 어떤 가치나 그 무엇보다 우선한다고 배운 덕분이기도 하다.
이렇게 둘은 모든 면에서 마치 빛과 그림자와 같은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칼이 밝은 쪽, 인기 있는 쪽이라면 로위는 뒤에서 말없이 칼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고 책임져주는 관계
하지만 이런 굳건했던 둘의 관계도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남자들의 문제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듯이 이번에도 여자가 이 둘의 끈끈한 관계를 꼬이게 한다.
두 사람의 특별한 가족애가 다른 사람들과 별다를 것 없는 이유로 벌어진다는 점은 다소 의외이긴 한데 평소 작가의 작품에서처럼 그 관계 역시 건강한 관계가 아닌 서로를 파멸로 몰아가는 관계라는 설정을 보면 납득이 갔다.
칼이 똑똑한 머리를 내세워 미국으로 대학 공부를 하러 떠나면서 두 사람에게도 공백기가 생겼지만 그렇게 떠났던 칼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로위의 예상처럼 온갖 문제 역시 돌아왔다.
칼은 조용하지만 쇠락해가는 동네에 호텔을 지어 마을 사람 모두를 부유하게 만든다는 꿈같은 프로젝트를 가지고 금의환향했고 덕분에 마을은 모처럼 활기를 띠지만 로위의 예상대로 이내 문제에 봉착한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문제를 안고 시작했던 프로젝트가 난관에 부딪치는 건 예견된 결과이지만 오로지 칼만 그걸 몰랐던 것 같다.
대책 없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사람이 곁에 있으면 얼마나 피곤한 일들이 발생하는지를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칼 역시 뚜렷한 근거 없이 희망적인 미래비전을 제시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지금 이 마을의 상황이 어찌해볼 수 없을 정도로 쇠락해가고 있던 중이라 사람들은 칼의 이야기에 제대로 된 검증 없이 매료되어 이 일에 빠져들었다는 점에서 그들 역시 이 계획의 공범들이라 할 수 있다.
모두의 희망과 기대를 걸었던 호텔 공사가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그동안 가려뒀던 문제들이 표면 밖으로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칼이 저지른 짓을 로위가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 역시 더 크고 어두운 법이듯이 이번엔 수습하는 게 쉽지 않다. 게다가 로위에겐 칼의 문제를 냉정하게 처리할 수 없게 된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누구도 찢어놓을 수 없을 것 같은 형제애에 여자가 끼어들면서 둘의 관계에도 틈이 생긴다.
게다가 이제껏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 생각해 모든 일에 냉정하고 침착함을 유지했던 로위에게도 지켜야 할 것이 생겼다는 것이 약점이 되어 로위는 처음으로 자신이 하는 일이 실패할까 두려움을 느낀다
위태롭기 그지없는 거짓말과 사고로 위장한 살인사건...
그리고 언제 들킬지 모르는 두 사람의 행각을 지켜보는 내내 아슬아슬하고 긴장감이 넘쳐 어떻게 위기를 넘길지
아니 언제 범행이 발각될지 숨죽여가며 읽느라 밤새는 줄 몰랐을 지경이었다.
엄청난 몰입감으로 700페이지가 넘는 동안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끝장나게 재미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