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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묵은 가지에서 피네 세트 - 전3권 ㅣ 블랙 라벨 클럽 12
윤민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공녀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가 안타깝고 슬프게 느껴진건 한참 나이가 들어서인것 같다.
어릴적 역사책에서 배울때에야 그냥 공녀로 끌려간 여자들이 많고 진상품처럼 바쳐친여자들이라는...그야말로 사전적인 의미로 밖에 와닿지 않았던 단어가 조금은 나이를 먹고 우리나라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그네들의 아픈 이야기가 결국은 작은 나라에 태어나 주변 강국의 눈치에서 단 한순간도 독립적이지 못한 나라를 가진 여자들의 아픈 이야기라는걸 깨닫는 순간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특히 고려시대부터 공녀로 끌려간 여자들이 많은데 조선에 와서도 그런 역사는 반복되었을뿐 아니라 결국은 가장 힘없고 당시로는 마치 재산의 하나처럼 취급되던 여인네를 팔아서 나라의 안위를 도모했다니...슬프고 부끄럽기까지하다.
이 책 `꽃은 묵은 가지에서 피네`를 읽다보면 저자가 역사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에 대해 많은 공부와 고증 그리고 자료조사를 거쳐서 집필한 노력이 여실히 보인다.
책 속에 나오는 주요인물은 실질 역사속에 등장하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당시에 크고 작은 사건과 변란은 모두 실제 역사속 진실이라는 점을 보면 역사와 픽션 그 사이사이의 빈공간을 참으로 잘 찔러 마치 그런일이 있었을수도 있겠다고 나도 모르게 수긍하게 한다.
이런 글을 쓰자면 얼마나 많은 연구와 공부를 했을지...작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별볼일 없는 가문이었던 한씨 집안은 맏딸을 대국인 명에 공녀로 바치고 그 딸이 당시 천자였던 영락제의 총애를 받는 여비가 되고 마침내는 영락제와 함께 순장된 덕분에 단숨에 조선에서 무시못할 지위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 권력의 맛에 취한 오라비 덕분에 막내딸인 이선 역시 언니에 이어 공녀로 바쳐지는 신세가 되고 자금성에 갇혀 수많은 처첩과 후궁들 그리고 궁녀들 사이에서 목숨을 건 외줄타기를 하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도움을 주지않는 고립무원의 상태
어릴적부터 영리하고 용기가 있는 이선은 그러한 자금성의 판세를 읽고 황제에 눈에 들기보다는 언니처럼 개죽음을 당하지않고 살아남기를 바라게 되면서 다른 후궁들과는 다른 횡보를 하게 되지만 너무나 영리한 그녀의 처신은 외려 황제와 황후의 눈에 띄고 자신은 원하지않았지만 피튀기는 혈투에 끼어드는 결과를 얻게 된다.
그런 그녀의 외로운 싸움에 도움의 손길을 보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황제의 5번째 아우인 왕야 주첨선 양헌왕과 명나라의 충신이자 타고난 무인이었던 우겸이었다.
특히 우겸은 다른 사람에게 말 못할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못하는 외로운 처지인지라 여자 혼자의 몸으로 자신을 지키고자 죽도록 노력하는 이선이 다른 의미로 다가왔고 마침내는 마음에 품게 되었지만 그녀는 황제외의 남자와는 눈조차 마주쳐서는 안되는 황제의 여자
이제 그 둘은 목숨을 건 사랑을 하게 되고 이선과 또 다른 인연이 있던 양헌왕은 이 두사람의 사랑을 지지하는...
로맨스소설이라기보다 한편의 대서사시와 같은 소설이었다.
방대한 스토리를 끌고 가는 힘과 중국역사에 정통하지않으면 도저히 나올수 없는 이야기이기에 단순히 로맨스소설로만 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 영락제부터 시작하여 짧은 기간 보위에 있었지만 성군이라 칭송받던 선덕제에 이어 그의 아들들간의 왕위 쟁탈전에다 명의 국운을 걸고 오랑캐인 와랄족과의 전쟁이야기 여기에다 당시 자금성 내부에서 휘몰아치던 피튀기는 후궁들의 암투까지 역사적 사실에다 소설적 재미를 더해 실질 인물이었던 한씨가 공녀의 신분에서 끝까지 살아남을수 있었던 과정을 흥미롭게 재구성하고 있는데...사실과 픽션의 교묘한 조합이 참으로 빛나는 작품이었다.
여기에 책속 등장인물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연심을 표현하는데 많은 한시가 등장하고 있는데 그 시와 등장인물의 마음이 참으로 조화로워 그 시를 읽는 재미도 제법 쏠솔했다.
등장인묻들 사이의 갈등 역시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였는데... 서로 대척점에 있던 황태후와 한이선은 같은 목표를 가졌을때 동지였다 그 이후 서로 알면서도 모른척 묵인하거나 협박을 해서라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움직이게 하는 등 정치적 정적이자 동반자의 모습을 하고 있고,토목보에서의 대패로 인해 인질이 된 황제와 그로 인해 새로운 황제가 된 성황의 생명을 건 정치게임은 영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쓰러져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잘 만들어진 연극같은 정치의 비정함을 잘 보여준다.
특히 정적을 무너뜨리는데 사용되던 갖가지 술수와 정치적인 판단의 날카로움은 마치 바둑대국을 보는듯한 긴장감과 스릴을 준다.
과연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온 힘없고 연줄없는 한이선이 이 거대하고 잔인하기 그지없는 자금성이라는 감옥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그리고 황제의 여자라는 신분에서 어떻게 자신의 사랑을 지켜내는지 그 여정이 스팩터클하고 긴장감있게 그려지고 있다.
각권이 모두 6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임에도 로맨스와 정치 게임 그리고 역사적 사실에서 어느 한쪽도 치우침이 없는 안정감있는 분배로 끝까지 흥미를 잃지않게 하는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다 읽고나서 왠지 뿌듯한 성취감마저 느끼게 하는 작품이자 한 여인과 오로지 그녀만을 위한 남자의 사랑이 돋보이는...쓸쓸한 가을밤에 읽기좋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