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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밥벌이 - 하루 한 시간이면 충분한
곤도 고타로 지음, 권일영 옮김, 우석훈 해제, 하완 그림 / 쌤앤파커스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메이저 신문사의 기자가 느닷없이 탈 도시를 외치며 하루 1시간 농사만으로 자신이 먹을 쌀을 자급자족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렇게 보면 마치 그가 농부의 길을 가는 듯 하지만 그건 또 아닌 것이 단지 자신이 먹을 쌀농사만 하고 남은 시간은 오로지 자신이 하고 싶은 글을 쓰는 일에 투자하고 싶다고 외치는, 요즘 시대의 간 큰 이 사람은 아사히 신문사에서 30년 넘게 기자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느닷없는 선언을 한다.
사실 이 선언에도 사연이 있는 게 오랫동안 결심을 해서 이런 결과를 얻은 것이 아닌... 막연하고 다소 충동적인 결정이었는데 이를 윗선에서 받아들여 도시 토박이인 그를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은 나가사키현의 촌 이사하야지국으로 발령 내버린다.
후회해도 이미 모든 것이 결정 나 버린 뒤... 그는 까짓 해보자는 마음으로 이사하야로 향한다.
중고 포르쉐를 몰고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당당하게 입성한 그의 좌충우돌 농촌에서의 생활을 그리고 있는 최소한의 밥벌이는 일단 심각하지 않다.
요즘같이 취업하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가기 보다 힘든 현실에서 이처럼 결정하기란 쉽지 않을 터
하지만 그는 늘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의 이런 선택이 아주 의외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조금은 흥미로운 프로젝트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듯하다.
일단 이사하야로 내려온 그가 맨 먼저 한 일은 자신의 목적에 맞는 논 구하기
아무런 정보나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온 그지만 의외로 그의 목적을 듣고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는 사람이 있어 쉽게 원하던 논을 빌렸을 뿐 아니라 농사의 처음부터 하나씩 가르쳐주는 스승을 만난 게 가장 큰 운이었다.
물론 지방 도시 곳곳에는 더 이상 젊은 인력을 구할 수 없어 놀고 있는 논과 밭이 많다는 것도 한몫했지만 그렇다고 외지에서 온 모르는 사람에게 선뜻 자신의 땅을 내주기가 쉽지는 않을 터...
여기에서 그의 현실적인 조언이 빛을 발한다.
농촌으로 가려면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걸 그의 경험을 통해서 쉽게 이해시켜준다.
도시와 달리 농촌은 대대로 농사를 짓다 보니 알게 모르게 서로 간 깊은 암묵적인 이해와 나름의 규칙이 있는데 이런 걸 모른 채 도시에서 내려와 터를 잡으면 도시와는 많이 다른 문화 차이나 혹은 관습의 차이, 사고의 차이로 인해 서로 갈등이 생기고 오해가 쌓여 걷잡을 수 없는 관계로 치달을 수 있다.
논에다 물 대기 같은 걸 예를 들어주는데 자신이 쓰고 남으면 서로 나눠 쓰면 되고 무엇보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에 임자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물을 독점해서 필요한 물을 보내주지 않는 걸 저자뿐 아니라 보통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건 오랜 세월 암묵적으로 어떤 순서로 물을 대고 어떻게 한다는 걸 결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이 비록 경우 없는 짓을 해도 직접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기 보다 조금씩 그 사람과의 관계를 좁혀 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이해, 결국은 논에 물 대기에 성공하는 부분을 보면 모든 문제에 원칙이 우선이 아닐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한다.
또, 저자의 글 중 인상적인 건 유기농 농사에 관한 부분이다.
비료도 농약도 없이 지은 농작물만이 인간의 건강에 유익할까 하는 의문부터 도시에서 귀농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유기농을 고집하며 오랫동안 농사를 지은 그 지역의 사람들과 대립관계가 되는 경우가 많은가 하는 이유까지... 알고 보면 유기농 농사를 짓는 논과 밭 주위에는 온갖 벌레와 해충이 결국 이웃한 논에 해를 끼친다는 글을 보고 왜 유기농 농사를 짓는 농부를 주위에서 환영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해소되기도 했다.
오랫동안 놀고 있던 땅에 잡초를 제거하고 물을 대서 모내기를 하고 서툴게 벼농사를 짓는 모습이 힘든 것 같으면서도 대대적인 농사는 힘들겠지만 저자처럼 우리 식구만 먹을만한 농사라면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생기게 한다.
모두가 아등바등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요즘, 이렇게 농촌에서 한갓지게 하루 1시간 농사를 지어 식량을 해결하고 원하는 글을 맘껏 쓰겠다는 생각은 언뜻 생각해도 배부른 소리로 들린다.
저자 역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거란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한 번쯤 발상을 전환해 볼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자신을 혹사해가며 하루하루를 버티는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는 살 수 없을까?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 농촌 생활은 그에게 원하는 시간 맘껏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을 여유를 주게 했다.
가장 중요한 먹고사는 것에 대한 부담은 이렇게 자급자족의 형태로 짧은 시간의 투자로 해결하고...
물론 그에게는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이란 게 있어 안전장치가 있다.
그렇지만 살면서 주위 사람들과 모든 걸 비교하면서 필요도 없는 걸 산 적은 없는지? 주위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서 혹은 누군가의 기대치에 맞추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듯...
딱딱하지 않은 글에다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겪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나 좌충우돌을 재밌게 표현하지만 마냥 가볍고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 속에 담긴 의미는 누군가에게 발상의 전환의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