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탕에서 생긴 일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1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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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목욕탕 즉 여탕이란 말은 왠지 은밀하게 들린다.

마치 그 속에선 뭔가 남모를 일이 있을 것 같고 남자들은 모르는 비밀이 숨겨져있을 것만 같은 신비감마저 풍기는 곳

알고 보면 남탕과 비슷한 구조에 비슷한 풍경일듯한데 아마도 남자들의 은밀한 상상 속에선 여탕에는 뭔가가 있을 것처럼 느껴지나 보다. 그래서 투명 인간이 된다면 그렇게들 여탕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걸보면...ㅎㅎ

생활 속의 작은 풍경이나 일상을 에세이나 혹은 만화로 너무 잘 표현하는 마스다 미리가 이번에는 여탕에서의 풍경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책이 바로 이 책 여탕에서 생긴 일이다.

일단 책 속의 대중목욕탕의 모습은 현재의 모습이 아니다.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독립하기 전까지 다닌 동네의 대중목욕탕에서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만큼 현재의 멋들어진 설비와 시설을 갖춘 사우나와는 그 모습이 많이 다르다는 점을 참조해야 할듯하다.

지금보다 20~30년 전의 모습으로 상상하면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웬만한 집에 다 갖추고 있는 목욕시설이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중목욕탕을 이용하던 저자의 어린 시절은 매일 밤 엄마와 두 딸 즉 세 모녀가 목욕탕으로 가는 것이 일과 중 하나였는데 그곳에서 목욕을 다 마치고 나오면서 마시는 청량음료를 언니와 동생이 한 입이라도 더 먹으려고 다툰 기억부터 자신들 키보다 더 깊은 탕 속에 엄마의 팔에 매달려 들어간 기억들은 우리의 어릴 적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도 예전에는 집에서 샤워는커녕 목욕탕에 가서 씻는 것이 일주일의 연례행사 같았던 시절이 있었고 그때 목욕을 마치고 나와 평상에서 마시던 바나나우유의 달콤함이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맛이다.

이렇게 우리와 비슷한 풍경이 있는가 하면 옷을 벗고 있는 여탕에 남자가 들어오는 일 같은 건 우리에게는 생각도 못 한 일인데 일본에서는 예사로 보아 넘기는 모습이란 게 좀 충격적이긴 했다.

탕도 약한 전기가 흐르는 전기탕이란 게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무엇보다 큰 차이는 다른 사람을 많이 신경 쓴다는 점인데 우리의 정서로는 뭐 그렇게까지 신경을 쓸까 싶은 부분도 있지만 문화와 정서의 차이라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남에게 등을 밀어달라 부탁할 때도 타이밍을 봐가며 부탁한다는 것도 그렇고 소리를 쳐서 남탕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한다는 부분도 우리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점이라 신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우리의 목욕탕 모습과 많이 닮아있어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특히 사춘기를 지나면서 몸에서 성징이 나타날 때의 그 미묘했던 감정... 즉 누가 볼까 부끄럽기도 하고 나만 다른가 싶어 걱정하기도 했다가 나와 비슷한 나이의 여학생의 행동을 보며 안도했던 모습 같은 건 여자라면 많이들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매일매일 가는 목욕탕이다 보니 늘 봐오던 사람들과 안부를 묻고 재밌게 본 드라마 이야기며 온갖 일상 이야기를 하면서 하는 목욕은 언제 봐도 정겹게 느껴진다.

어쩌면 옷 하나 걸치지 않고 오로지 맨살로 숨기는 것 없는 상태에서 하는 말과 행동이라 더 진솔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지만...

목욕탕에서 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별다를 것 없는 행동에도 사람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다는 걸 발견해낸 저자는 어릴 적부터 남을 관찰하고 그걸 묘사하는 재주가 남달랐던 것 같다.

그런 작은 차이를 찾아내서 글로 표현해 많은 사람으로부터 공감을 끌어내는 것... 저자 마시다 미리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릴적 추억을 생각하며 읽기에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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