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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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의 글을 통해 천명관이라는 작가가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하여 그의 소설을 읽게 되었다. 그 분이 이야기한 책은 '고래'였는데 내가 택한 책은 '고령화 가족'이였다. 고래를 읽고 싶었으나 있는 책이 고령화가족이라 고령화 가족을 읽게 되었다. 읽고나서 재미있었다. 그 당시에 막 박민규의 소설들도 읽으며 현대 남자 작가들의 소설도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단 두명을 통한 통계의 오류일 수 있어도 의도하지 않게 주로 한국 현대소설은 여자 작가들의 소설들만 읽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1년이 넘어 드디어 고래라는 책을 다시 집어 들어 읽게 되었다. 아마도 책의 두께때문에 계속 괜히 주저했던 것이 아닐까싶다. 두꺼우면 어딘지 모르게 기피하게 되는 심리가 있다. 후다딱 읽어 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 생각대로 책의 글씨도 작고 빼곡하게 적혀있어 읽는 과정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한 장씩 읽어가며 내 생각은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야기꾼이라는 이야기는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초반에는 좀 헤매기는 했지만 - 도입부가 정말로 도입부로 소설 전체를 볼 때 중요하면서도 꼭 읽지 않아도 무방은 했다 - 도입이 지난 후부터 눈에 들어오고 이름들이 하나씩 친숙해지면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이 된다. 내용이 사실 황당하다고 하면 황당할 수 있는 내용이다. 기승전결이 있지만 현실과 환상이 번갈아가며 교차되고 나오는 이야기들에 점점 빠져들게 만든다.

 

모든 나라에서 '고래'가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고래'가 어딘지 이상향이나 유토피아와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 이유는 모른다. 그저, 워낙 드문 존재이고 쉽게 접할 수 없어 그럴 수도 있고, '고래사냥'을 통해 새롭게 정립된 개념이 아닐까싶기도 하다.

 

책에서 고래는 초반에 일찍 등장한다. 산골에 살던 금복이가 바닷가에서 거대한 고래를 보고 마음이 설레고 뛰는 모습을 묘사하며 등장한다. 그 후에는 특별히 등장하지 않는다. 책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의 시작을 알리는 메타포로 등장한다고도 할 수 있는데 다르게 보면 딱히 그런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 말도 안된다는 느낌도 든다.

 

여하튼, 우리나라의 창에서 등장하는 추임새같기도 하고 마당놀이에서 뜬금없이 극이 진행되다 관객들에게 이야기하는 마당쇠나 방자같기도 하고 서커스에서 등장하는 삐에로처럼 작가가 갑자기 등장하여 극의 흐름을 이끌어간다. '얼씨구'하기도 하고, '그렇지'하기도 하고, '좋구나'하면서 '이런,,이런'하면서 소설의 재미를 더해주기도 하고 어딘지 모르게 정말 이야기꾼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앉아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 든다.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묘사가 죽인다는 것이다. 듣고 있으면 실제와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엉덩이가 나도 모르게 덜썩 덜썩 거리며 일어나 점점 이야기에 빠져 들어 다음 내용을 재촉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라는 말에 꼭 당장 이야기하지 않고 뜸을 들이고 엉뚱한 이야기로 긴장을 더하는 것처럼 중간 중간마다 '이 어찌 구슬픈 이야기가 아닐쏘냐'하며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지'라며 맞장구를 치게 만들어준다.

 

고래의 내용은 굳이 이야기하자면 근대사를 관통하는 두 여인의 이야기다. 꼭 이야기하하자면 한 여인 - 나중에는 남자로 변한다고 믿게 된다만 - 의 이야기에 번들상품으로 그 딸에 대한 이야기가 같이 곁들여진다. 그런데, 솔직히 이 소설의 내용은 끝이 없는 네버엔딩스토리가 될 만한 이야기다. 작가가 끝을 냈으니 끝이 난 것이지 마음만 먹었으면 계속 이어져 지금까지 내용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정도였다.

 

소설같은 현실이고 소설보다 더 거짓말 같은 현실이라는 표현을 하지만 '고래'의 내용은 정말로 소설적이다. 지극히 통속적이고 뻔하고 닳고 닳은 내용이 나온다. 지금은 조금 더 세련되었지만 우리가 늘 TV 드라마에서 나오는 바로 그 내용이 천연덕스럽게 나온다. 심지어 예측을 하지 않아도 가나다라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편으로는 상당한 스펙타클 대하역사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두 여인의 이야기면서도 우리나라 근대사의 성장기를 빼곰히 담고 있다. 비록, 정면에 맞서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살짝 살짝 비틀어서 말한다. 누구인지 유추하지 않아도 알게 되고 어떤 상황인지 묘사하지 않아도 저절로 깨닫게 된다.

 

우리들에게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에 대해 그저 한 마디로 표현을 한다. 그건 바로 '00의 법칙'이다. 귀찮게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없이 연애의 법칙이라든지 그건 당연한 중력의 법칙이라는 한마디로 모든 것을 일축해 버린다. 법칙이라는 데 토를 달 수가 없다. 이를테면 위에서 떨어지는 것은 중력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누가 뭐라 그런단 말인가? 바로 이것이 진정한 이야기꾼의 구라가 아닐 수 없다.

 

내용을 볼 때 전체적으로 조망을 하면 슬프다고 하면 슬픈 내용인데 그런 감정은 그다지 생기지 않았다. 어느 재미있는 이야기를 누군가가 나에게 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슬픈조가 되어버리면 이게 또 이야기가 재미없어 진다. 익살스럽고 위트가 넘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다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여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죽어버리니 허망하다는 느낌은 든다. 결국에는 전부 죽는구나. 이렇게 전부 죽어버리면 소는 누가 키우나하는 쓸자데기 없는 생각도 한다. 잘난 놈도 못난 놈도 전부 죽는다. 남을 등쳐 먹는 놈도 당하는 놈도 전부 죽어버린다. 예쁜 년도 미련한 년도 죽어버린다. 태어나면 죽게 되어 있는 우리네 인생이다.

 

주저리 주저리 묘사가 많이 나오는 것보다는 이야기에 충실한 작품을 더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고령화 가족도 그렇고 고래도 마찬가지로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준다. 깊은 내공이나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그런 건 모르겠다. 그저, 읽고 재미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소설읽으면서 인생을 깨닫기 보다는 페이지를 넘기며 재미있는데 하는 것도 아주 좋은 독서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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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책 읽기 -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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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린 여인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그가 보는 곳이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정면을 향하고 있지만 그의 시선은 내가 알 수 없는 곳을 보고 있다. 그곳에는 무엇이 있는지, 어떤 생각으로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모델이 아니라 스스로 직접 책 표지모델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다. 이유없이 서점에 갈 때마다 눈에 띄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어 내가 볼 정도로 가판에 올라 와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아는 지인과 열심히 수다를 떨다가 우연히 이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더더욱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얼마나 귀가 얇은 존재인지. 누가 좋다고 하면 흔들리는 마음을 여지없이 꽉 잡아준다. 순간, 망설이고 주저하던 바람은 멀리 날아가고 확신의 감정이 들어온다. 한편으로는 굳이 확인할 생각은 없어도 저 여인의 모습이 궁금했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많이 있지만 이 책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보다는 책을 읽는 우리들의 자세와 생각과 모습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굳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 책은 우리에게 무엇인지 책을 통해 사람을 세상을 볼 수 있는지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책에서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많은 이야기를 보지만 책보다 더 신기한 이야기를 주변사람들에게도 듣는다. 책에서는 각 챕터마다 저자가 주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들의 이야기는 어떤 책보다 진솔하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솔직히, 정말로 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가 맞을까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어지간해서 모르는 사람들과는 낯을 가려 쉽게 이야기하지 않는 내 성향과 비교해서 부러웠다.

 

8가지 질문으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자가 다양한 사람들에게 질문받았던 내용을 추려 자신만의 생각을 우리에게 담담하게 설명한다. 꼭 그렇게 해야한다고 주장하지도 않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 책을 매일 밤마다 썼다고 마지막에 밝히는 글을 읽으면서 그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밤은 우리를 센치하게 만들고 극단적인 우울이나 감동을 전달해주는데 그럼 감정으로 쓴 것이 아닐까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저자가 들었던 질문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하나씩 글로 써 내려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따라쟁이가 되겠지만 똑같은 질문을 갖고 사람마다 다르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거나 이야기를 듣는 이유라 본다. 그것도 그렇지만 궁금했다. 스스로 나는 저자가 한 질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까하는.

 

글을 읽으면 저자가 나 이런 책을 읽었다고 자랑하지도 않고 책을 많이 읽는다고 내세우지도 않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독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저절로 책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전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잘 알지 못하는 책으로도 설명한다. 하지만, 더 큰 울림은 저자가 만난 사람들과 한 이야기를 통해서이다. 그들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잘 포착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잘 버무리고 원하는 책의 글도 보여주면서 전달하는 글을 읽으며 방송국 PD의 능력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책에 대해 소개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책을 읽는 것도 색달랐지만 그저 책을 읽는 것에 대해 다양한 방법과 소재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책이 나에게 더 재미있었다. 그런 것 보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도 그렇고 책을 소개하는 것보다는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책들이 더 재미있다. 나에게는. 그건, 아마도 책은 내가 읽으면 되는 것이지만 책을 소개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오로지 당사자에게만 들을 수 있는 것이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큰 듯 하다.

 

"그렇게 살아도 돼요?"라는 질문을 마지막에 한다. 무척이나 뜬금없고 '그렇게' 라는 단어 앞에 어떤 단어가 사라졌거나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뭘 그렇게 살아도 돼요라는 질문인지 말이다. 마지막 단락을 다 읽었지만 여전히 무엇에 대한 질문이고 무엇에 대한 답변인지를 파악하지 못했다. 누구한테 하는 이야기지? 어떤 삶을 말하는 것이지? 어떻게 살고 있기에 그런 질문을 들은것이지? 질문을 한 상대방이 궁금해 할 삶을 살고 있나보지? 어떤 모습으로 보이기에 그런 질문을 들은거지?등등 온갖 망상이 맴돌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책을 읽고 나서에 대해 책을 언제 읽는지에 대해 책을 어떻게 읽을건지에 대해 책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등등 많은 이야기를 한다. 책을 읽는편에 속한 나도 읽으면서 이런 저런 잡다한 생각을 했다. 그저, 서평을 쓰는 한 사람이지만 좀 더 발전된 책과 관련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다보니 더더욱 이런 책을 통해 배우게 되고 생각하게 되고 스스로의 방향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삶을 바꾸는 책 읽기'라는 제목으로 들어가서 생각할 때 과연 나는 책을 읽어 내 삶이 변했는가에 대해서 여전히 의문이고 미해결이다. 꼭 삶이 바꿔야 하는가에 대한 쓸데없는 개똥철학도 갖게되고. 근본적으로 내 삶에서 책은 무엇이었냐에 대한 궁금증도 생긴다. 이런 부분은 나중에 따로 서평이 아닌 글로 써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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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그림자 2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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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을 약간 어영부영인 상태로 읽었다. 제대로 집중하지 않고 추리소설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읽다 그건 아니라는 자각을 한 후 2권은 집중을 하며 읽었다. 대체로 잘 만들어진 소설이다. 특히, 두 사람이 묘한 대칭을 이루면서 서로 살아온 발자취를 따라가며 또한 그 발자취가 반복되며 벌어지는 일들이 보여지면서 작가가 상당히 심혈을 기울여 썼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참, 열심히 읽고 있는데 중간에 정말 나도 모르게 '내가 지금까지 막장드라마를 보고 있었던 거야?'라고 외친 순간이 있었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출생의 비밀 말이다. 소설은 전체적인 내용은 아주 치밀하고 탄탄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볼 때 특히 드라마를 평소에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자주 등장하는 출생의 비밀로 시작되는 대하 근현대 50부작 드라마라고 규정지을 수 있을 듯 하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있고 이 둘을 질투하는 악역이 나오고 그 둘을 반대하는 부모들이 나오고 주인공을 도와주는 친한 친구가 나오는 이야기는 사실 우리나라 드라마의 전형이다. 게다가 여자나 남자 둘 중에 한 명은 가난하고 한 명은 부자집이고 서로 운명처럼 만나게 되고 운명처럼 헤어져 평생을 그리워하고 이 두사람을 질투한 인물은 아무런 부연설명도 필요없이 오로지 말도 안되는 질투와 복수에 불타 모든 것을 제거하는 형사로 나오는 것은 뻔하디 뻔한 내용이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지만 사폰은 -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럴지 몰라도 유럽에는 상당히 참신하고 획기적인 내용 전개일지도 모른다 - 고급스럽게도 표현을 한다. 이야기한 내용은 이 책의 화자가 우연히 발견한 책 소설속 인물들의 이야기이면서 과거의 이야기였다. 하나씩 하나씩 호기심에 못 이겨 밝혀내면서 점점 자신의 인생에 침범을 하고 자신의 인생과 오버랩이 되면서 자신 또한 소설 작가와 비슷한 인생을 다시 살게 된다.

 

또한, 그저 소설속 이야기이고 과거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현재를 살고 있는 나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관계된 인물들과 한 명씩 만나며 복잡하게 돌아가는 내용은 정말로 치밀하게 잘 구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내용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이렇게 할 것이라고 대략적인 구도를 만든 후에 쓴 것인지 아웃라인만 정하고 하다보니 이런 내용으로 전개되었는지 궁금할 정도이다.

 

책과 연관된 내용이 많이 포함된다. 이야기 시작이 세상에서 유일한 자신만의 책을 헌책방에서 고르고 그 책을 통해 여러가지 관련된 이야기가 쏟아지고 책방을 운영하고 있고 책과 관련된 사람들이 나와 책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를 해 주면서 적당하게 지식의 향연도 펼치는 모습에서 저자의 내공이 엄청나다고 느꼈다.

 

책 마지막에 소설 전체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우리들은 책 속에서 이미 우리안에 지니고 있는 것만을 발견한다'는 내용은 평소에 생각하던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많이 와 닿았다. 우리도 그렇겠지만 유럽이라고 크게 다를 바는 없을 것이다. 점점, 책이 예전과 같은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이 내용은 주인공이 성장하여 아버지가 하던 서점을 이어받으면서 점점 쇠락하는 서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온 내용이다. 그만큼 책은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가면 갈수록 우리가 환호하고 대단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들의 모티브가 거의 예외없이 소설과 책에서 나온 내용을 토대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책 말미에는 다시 처음 책을 발견할 때와 같이 은밀한 서점으로 가서 자신 만의 책을 선택하러 가면서 책은 마무리된다. 책을 다 읽으면서 책의 내용이 애잔하게 가슴에 남는다는 것이 느껴졌다. 추리소설이라고 하기도, 연애소설이라고 하기도, 성장소설이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여러가지 장르가 뒤섞여 있어 잘 버무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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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그림자 1 ㅣ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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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신문을 읽고 있는데 유럽에서 유명한 작가에 대해 설명을 하는 기사를 읽게되었다. 거기서 두 명의 작가를 소개하는데 한 명은 요네스 뵈로 이미 두 편의 작품을 읽은 작가였지만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은 처음 듣는 작가였다. 한 명은 이미 작품을 읽어 알고 있어 그런지 몰라도 기사의 내용을 볼 때 요네스 뵈보다는 사폰이라는 작가가 더 유명하고 많은 판매고를 했다는 것을 보였다.

 

당연히 재미있는 작품에 대해서 늘 목말라 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머리에 키핑을 했다가 작가에 대해 알아보니 꽤 유명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어느정도의 인지도를 갖고 있는 작가였다. 장르는 당연히 추리, 스릴러 작품으로 생각했고 사폰의 첫 작품인 '바람의 그림자'부터 무려 4편의 작품이 우리나라에 이미 다 출판되어 있어 첫 작품인 '바람의 그림자'부터 읽기로 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찾는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보니 이번에 내가 읽은 문학과 지성사가 아니라 문학동네에서 출판을 다시 했다.

 

요네스 뵈와 함께 소개된 작품이니 추리, 스릴러 작품이라고 생각했고 의례 그렇듯이 미국류의 추리 소설로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정통 유럽소설이였다. 아가사 크리스티 작품처럼 최근에 국내에 소개된 유럽 추리소설과는 또 다른게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스토리가 중시되는 작품이 아니라 일반 문학작품과 같이 소소한 내용들과 묘사가 추리 소설과는 달리 문학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아니, 이 소설은 추리 소설로 생각하고 읽는것보다는 한 소년의 성장소설로 생각하고 읽는 것이 더 좋을 듯 하다. 마이클 코넬리의 추리, 스릴러 장르를 생각하고 읽게 되면 그 느림에 답답함을 느끼게 될테고, 최근 우리나라에서 한참 유행하고 있는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의 넬리 노이하우스를 생각하면 범인은 커녕 도저히 추리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처음에 추리 소설을 읽는다는 심정으로 읽었고 어딘지 음밀한 서점에서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책을 선택한다는 묘사에서는 제대로 된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읽게 될 것이라는 묘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서서히 양파 껍질을 까듯이 작품속에 나오는 추리가 나온다.

 

우연히 발견하여 갖게된 작품이 내 인생에 스며들고 그와는 상관없는 듯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점점 주인공은 성장한다. 이 책을 어린 시절에 발견하고 성장하여 청년의 시절이 될 때까지 사소하지만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사람들을 한명씩 만나고 혼자 돌아다녀도 될 나이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이 작품의 제목이자 주인공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바람의 그림자'와 관련된 본격적인 탐험이 시작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여전히 주변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진행되고 그 인물들이 주인공이 찾고자 하는 '바람의 그림자'의 저자와 알게 모르게 조금씩 다 연관되어 있다는 걸 하나씩 알게 된다.

 

1부에서는 그 어떤 해결도 보여주지 않는다. '바람의 그림자'라는 작품을 남긴 저자와 관련된 주변인물과 저자의 과거에 대해 조사를 하며 점점 그 실체로 들어간다. 여전히 알고자 하는 궁금증에 꼬리정도만 알게된다. 주인공은 1부에서 점점 사춘기의 성장통을 겪고 청년이 되어 새로운 사랑도 하고 주변 사람들이 모여 들지만 그들도 알 수 없는 의문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다.

 

솔직히, 읽으면서 좀 지루했다. 순전한 추리소설을 생각했는데 그런 작품이 아니라 그에 대한 선입견을 벗어나기가 꽤 힘들었다. 작품에 대한 칭송이 워낙 훌륭해서 더더욱 '밀레니엄'을 생각하고 읽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한다. 차라리 아무 고정관념없이 소설 한 편을 읽는다는 생각으로 읽었다면 좀 진득하게 읽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러다 보니 좀 조바심을 갖고 책을 읽게 되었고 책 후반에 가서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본격적으로 읽게 되었다. 그나마, 책이 1,2부로 나눠져 있어 2부부터는 보다 차분한 마음으로 추리 소설을 읽는다는 생각이 아니라 일반 소설을 읽는다는 개념으로 읽어야 할 듯 하다.

 

그나저나, '바람의 그림자'의 저자와 주인공은 분명히 어떤 연관성과 연결고리가 있을 듯 한데 그에 대한 이야기가 언제 나올지 궁금하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치밀하게 작가가 구성한 인물로 보이는데 이 들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바람의 그림자'에서 생각지도 못한 놀랄일을 하게 될지 2부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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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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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라마리아인들'은 우습지 않게도 국방부에서 유명하게 만들어 준 책이다. 어쩌면, 그 점을 이용한 어느 단체의 이득을 본 것일 수도 있고. 장하준의 책들은 특별한 이유없이 보지 않게 된 유명한 저자들의 책처럼 읽지 않게 되었다. 특히, '나쁜 사마리아인들' 같은 경우에는 워낙 유명해져서 나에게 차례가 오지 않았다. 읽을 수 있게 된 순간에는 워낙 유명한 책이라 책이 꽤 더러워지고 너덜해져서 괜히 잃기 싫어 이리 저리 미루다보니 이제서야 뒤늦게 보게 되었다.

 

유명한 책들을 뒤늦게 읽는 것에 대한 가장 큰 단점은 바로 유명한 책에서 이야기하거나 주장하는 내용이 이미 다른 책을 통해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다른 책들을 통해 지식을 이야기하고 있어 특별하게 색다르다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읽어볼 만 한 가치는 있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겠지만.

 

무엇보다 이 책을 읽다 문뜻 '맞다! 이 책이 불온서적으로 선정되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을 때 도저히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위정자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도 많이 보이던데 내가 잘 못 읽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읽고 또 읽어도 - 그렇다고 두 번 읽었다는 것은 아니고 - 책에 나온 이야기에서 불온한 기미를 느끼지 못했다. 국방부에서 정했으니 우리에게는 북한이 주적이니 - 일본은 아닌듯 하다 - 좌파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있을 것이라 판단되지만 무엇보다 내가 좌파의 사상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해 위험할 수 있지만 절대로 좌파적인 사상은 없어 보인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사상에 대해 바로 알려주는 책이다. 신자유주의 사상으로 인해 잘못된 것이 무엇이고 그로 인해 세계 많은 나라들에게 입은 피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공기업이 나쁘고 민영기업이 좋다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공기업도 좋다고 한다. 부정부패가 꼭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부정부패로 인한 부가 어디로 흘러가느냐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부분은 냉정하게 경제학자로써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인데 심지어 독재자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로 이야기한다. 이거 위정자들이 좋아할 만한 논리이다. 독재도 부정부패도 나쁜 것은 아니라고 하니.

 

어쩌면, 교묘하게 정책과 정치를 해야 하는데 너무 적나라하게 이야기를 해 줘서 진심이 밝혀져서 불편해졌나 싶기도 하다. 쓰다보니, 서평을 쓰면서 좀 위험하겠다. 끌려가고 싶지 않으니 여기서 그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이 책이 나왔을 때 기억으로는 우리나라가 FTA로 나라 전체가 떠들썩 했을 때이다. 이 책은 한마디로 부자나라들에게는 좋은 것이고 가난한 나라나 개발도상국에게는 불리한 제도라고 이야기한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는 그다지 변한 것은 없어 보인다고 볼 때 과연 그 제도를 체결한 것이 우리나라에게 이익이 되었으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답은 나오지 않았다. 좀 더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이론과 다른 현실의 문제이다. 다만, 굳이 급하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문제로 보인다.

 

신자유주의 사상은 결국에는 부자나라들이 더 잘 살게 하려는 이론적인 토대가 된다. 신기하게도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다 맞는 것도 아니고 다 틀린 것도 아니다.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있다. 다만, 장하준교수가 이야기하듯이 틀린 부분에 대해서는 변경을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인정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이미, 역사를 통해 잘못된 점들이 많이 밝혀졌는데도 자신들의 이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책에서 보면 문화나 민족과 같은 엉뚱한 것으로 몰고가고 있다.

 

우리나라같은 경우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보다 강했지만 신자유주의 사상에 나라가 움직였다. 또한, 많은 경제학자들이 시카고 학파라고 불리우는 이론을 교육받은 사람들이 다시 또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경제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경제에 대해 제대로 된 공부를 한 적도 없고 그저 말랑말랑한 경제학 책이나 보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뭐라 할 수 없지만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라고 본다.

 

자신의 아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 것에 모든 내용이 다 들어있다고 본다. 우리들이 아이들을 키울 때 일정 시간까지는 - 또는 자립할 수 있는 - 부모로써 보살펴 줘야만 이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여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어떻게 삶을 살게 되는지 우리는 여러 프로를 통해서 지금도 일주일에 최소한 한 번은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국가도 자립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예전에 식민지 시대와 같은 나라가 될 수도 있다. 부자나라들이 예전과는 달리 주변 시선을 의식하고 더욱 교묘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식민지화 하는지도 모른다. 먹을 것만 먹고 필요없는 것은 버리는. 자신들이 살고자 한다는데 무엇이라 할 수 없겠지만 책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과거를 볼 때 부자나라들이 지금과 같이 신자유주의로 무장해서 전 세계에 퍼뜨리지 않고 오히려 어느정도 자립할 수 있고 기다리고 도와줬을 때 자신들 나라에게 더 도움이 되었다는 실증을 보여준다.

 

그렇게 볼 때 당장 눈 앞의 이익을 볼 것인가와 좀 더 기다리고 함께 공존할 것이가의 문제일 수 있는데 사람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고 기다리는 것은 힘들다. 특히, 당장 눈 앞의 이익을 참는다는 것은 힘들다. 더구나, 그게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나 단체나 민족이나 국가라는 외피를 뒤집어 쓰면 더더욱.

 

우리는 현재 부자나라라고 하기에는 애매하고 가난한 나라라고 하면 욕을 먹을 위치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나라가 향후 세계속에서 어떤 나라가 될지 모르겠지만 국가라는 이름안에서 부자나라들의 이익과 욕망을 따라하지 않았으면 한다. 문제는 그러면서도 우리도...라는 명제에 대해 딱히 특별한 대안은 현재 없어 보이기는 한다.

 

대기업이 더 많이 벌기위해 더 많은 곳을 침투하고 문어발식으로 계속 확장하여 이익을 벌이면 그 이익에 혜택받는 사람들도 있지만 소외받는 사람들도 있다. 무조건 막는 것도 역차별이 될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대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버는 돈으로 또 다시 누군가는 그 돈이 돌게 되어있으니 말이다. 이런 문제를 국가나 세계나 어떻게 슬기롭게 잘 헤쳐가느냐가 결국에는 이 자본주의가 향후에 갈 방향인데 누구도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서로가 여러가지로 모색하는 전환의 시기에 살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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