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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방대수 옮김 / 책만드는집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20년 전 정도에 읽지 않았을까한다. 고백하자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보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드라마 제목을 먼저 알고 있었다. 알고 보니 드라마가 톨스토이의 제목을 차용한 것이였지만. 제목만 보면 너무 철학적이고 무거운
내용을 말하는 책이라 여겨진다.
최근에도
여전히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하여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나오고 있다. 다만, 예전과 달리 단순하게 권선징악의 내용이 아니라 어떻게하면 잘
살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실려있는 경우가 많다. 자기계발서적류의 책중에 동화형식을 빌어 나온 책들도 있는데 이 중에는 대박을 친 책들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책이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이다. 대박을 넘어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책이다. 우리나라에서 '배려'와
같은 책도 꽤 많은 사랑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고 현재도 소설형식을 빌어 무엇인가를 의도적으로 알려주려고 하는 실용서적들이 꽤 많이
존재한다.
소설형식으로
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고 딱딱한 내용을 부드럽게 해 주는 효과는 있지만 지금까지 읽은 책들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제외하면 너무 오글거리고 낯간지러운 내용과 문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알리려고 하는지는 알겠는데 워낙 눈에 뻔히 보이고 작품성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개연성과 글의 힘이 느껴지지 않아 최근에는 아예 읽을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내가 한 번 써 볼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용을
보여주기위한 글이 조악한 것이 많다.
그런
저자들과 톨스토이를 비교한다는 것은 너무 죄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톨스토이의 작품은 이미 고전이라는 반열에 오르기도 했고 톨스토이 자체가
거장이라는 호칭에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번에 이 책을 읽기전에 무려 90여권이나 되는 저서가 있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워낙 위대한 작품들을
우리들에게 선사해서 몰랐다.
거장이라
대단한 작품 몇개가 있는줄 알았는데 이토록 많은 작품을 세상에 내 놨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책 내용과는 상관없지만 확실하게 무엇인가 대단한
작품 단 하나만 내 놓겠다는 생각 자체가 이토록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여러 권의 책을 펴 내는것에 대한 계면쩍은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꼭 그럴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확신했다. 나처럼 별 거 없는 사람은 오히려 더 많은 글을 쓰고
펴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걸 말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우연히 딸의 책상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2년 전에 교회 선생님에게서 선물 받았다고 하는데 책 두께를 보면서
무릎을 쳤다. 2013년 150권을 채우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마지막 한 권을 얇은 책으로 했으면 했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선택해 읽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 말이다.
예전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사랑이라는 생각을 했다면 이번에도 그 결론은 똑같다는 판단을 했지만 진정으로 나 자신에게 물어봤을 때 도대체,
사람인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답변할 꺼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사랑으로 산다는 진부하지만 확실한 진리말고 나는 지금까지
무엇으로 살았고 앞으로 무엇으로 살 건인지에 대한 답변을 하지 못할 만큼 바쁘게 산 것도 아니니 생각없이 살았다는 뜻이 되어버린다. 그렇다고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 생각한다고 그렇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변은 완전히 다른 의미다.
지금,
나는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책을 펴 내고 투자를 하고 살고 있는데 이것들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무엇으로에 대한 답이 아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아우르는 개념이다. 개인적으로 사랑보다 상위개념은 없다고 본다.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말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내 원수도 사랑해야 하는것이 인간으로써 과연 할 수 있는 감정이란 말인가? 내 자신은 안 보면
된다는 생각이라 사랑보다는 역지사지에 좀 더 가깝다.
결혼을
하면서 아이가 생기면서 나 혼자와 다른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 혼자라면 얼마든지인데, 식구들때문에 쉽사리
선택하고 결정할 수 없고 홀가분하게 할 수 없다는 비겁한 순간이 많아진다. 나 혼자 망하면 되는데 남은 식구들에게 최소한 어려움을 주는것은
아니지 않나싶다. 나라는 사람은 그렇게 볼때 가족으로 사는 것일까? 이것도 아니다. 가만히 나를 보면 아무리 내 가족이라고 해도 결국에는 내가
먼저인 순간이 많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닌 아빠라 그런 듯 하다. 엄마가 더 위대하다. 아빠가 뭐라고 해도.
대답이
없는 아니, 답변하기 힘든 현 상황에서는 더이상 물고 늘어지는 것은 무의미할 듯 하고 머리속에 넣고 뜨문 뜨문이라도 떠오르면 되지 않을까 싶다.
한편으로는 답을 찾는다고 해서 달라질 인생이 될 것같지도 않고.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와 '바보이반'은 욕심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에게 꼭 필요한 의식주를 제외한 것들은 얼마나 더 욕심을 갖고 사느냐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진다. 또한, 가장 필수적인 의식주를 제외한 의식주마저도 인간의 욕심에 의해 과시욕구와 자기 만족을 채워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살아 생전에 좀 더 많은 땅을 가지면 그만큼 풍요롭게 살 수 있다. 권력과 자본이 있으면 이 역시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지만.
얼마나
이 욕심과 욕망과 기본적인 욕구를 잘 다스려서 살아가느냐가 인간의 행복과 궁극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더 가질수록 더 좋은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이다.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무의미하다고 말하지만 그걸 말하는 사람들도 그만큼의 소유를 했느냐의 여부가 문제이고 그만큼 소유를 해 본
결과에서 나온 통찰인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고 가지지 못한 자의 체념인지도 모른다.
그렇다해도
결국에는 자신의 결정이 중요한 부분이다. 금으로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왕이 자신의 욕심만큼 가질 수 없는 역설적인 상황에 빠지는 것처럼
욕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소유의 문제이다. 하긴, 소유냐 존재냐라는 철학적인 명제가 있을 정도이니 이 부분은 인간의 오래된 화두일 듯
하다. 개인적으로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바보이반'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는데 우습게 여기고 볼
수 있는 책이 아니다. 톨스토이라는 시대를 통찰하고 혜안을 가진 위대한 성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 말이다. 연말에 본 마지막 책으로 쉽게
보고 가볍게 읽었지만 울림은 몇 천페이지의 책과 비교하여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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