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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된지 오래되어 아직도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도대체, 어떤 이유가 이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주었을까? 베스트셀러란 그 당시의 시대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책이 나온 시대에 맞지 않는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면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란 쉽지않다. 정말 좋은 책이라면 꼭 책이 출판된 당시가 아니라도 사람들에 의해 회자되어 관심을 받기는 하더라도 흔한 경우는 아니다.

 

책 소개에 의하면 책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주제에 대해 어제 오늘 갑자기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변함없이 열심히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무엇인가 급진적이고 신선한 개념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마이클 샌델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며 논문을 제출하기도 하고 미국이라는 사회의 주요 인물이 되어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것인지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사람들에게 큰 공감과 울림을 준 것인지에 대해 잘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성찰의 시간을 준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인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점이 2010년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며 금융위기라는 시대적 상황과 빈부격차가 날로 커진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갈수록 희망이라는 단어보다는 암울이라는 단어를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점점 쇠놰당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이끌어냈는지는 책을 읽어보면 금새 깨닫게 된다.

 

책 제목처럼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과거에는 단순하게 선한 것과 악한 것으로 구분되고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이분법적인 갈라짐을 당연히 받아들이며 심지어 내 편과 상대편으로 편 가르기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잣대가 단순할 수 있었다.

 

갈수록 사회가 복잡해지고 과거와는 다른 개념과 다른 사상들이 나오고, 점점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모호해지며 최소한 내가 옳다면 상대방이 잘못되었다는 - 아니면 다르다는 - 판단을 내린다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갖기 힘든 시대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려 그게 맞지~!"했던 것이 이제는 "글쎄다. 그것이 맞는 것인지 확신하기 힘들구나~!"라고 답을 할 수 밖에 없는 시대라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새 시대를 나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가치관의 혼돈인지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에 맞는 가치관을 심어주지 못한 위정자들의 판단착오인지 과거와는 다른 잣대로 무수하게 벌어지는 현상을 거대한 담론이라는 포장으로 또 다시 획일화시키는 과정인지 모르겠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답을 주지도 않고 있고 줄 수도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른 답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책을 읽다보면 동일하지만 약간만 다르게 각색을 해도 다른 답을 찾게 되는 내 자신에게 - 또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이 현상에 대해 나는 자신있게 내가 옳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인지가 낯설어 진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가장 큰 화두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였다. 이 개념과 관련되어 미국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dreams come true'가 바로 선진국이라고 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지향하고 본받으려했던 유일한 사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대부분의 것을 미국이라는 나라가 절대선이 되어 버린 나라에서는 그 정도가 더 심해진 것이 아닐까싶다.

 

5,0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고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와 글자를 갖고 있는 민족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못 살았던 시대에 '잘살아보세~!'라는 구호는 모든 담론을 덮고도 남았다. 우리에게는 정신적풍요는 사치이며 주위를 돌아보기 전에 누구보다 나 먼저 잘 살아보자라는 단 하나의 가치관을 갖고 대한민국이 전진을 한 결과로 우리는 물질적인 풍요를 이뤘지만 그에 따른 물질만능주의로 치닫아 '노블레스 오빌리제'와 같은 것은 완전히 무시되고 천민자본주의만이 득세하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갈수록 무엇이든지 넘치면 다시 비우는 과정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무엇이 옳은가와 같은 테제에 대해 점점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에 따른 충돌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이에 대해서 제대로 된 고민과 토론이나 논의가 없다보니 저절로 가진자들로 보이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으로 대변되는 사람들의 헤게모니에 제대로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혼돈을 겪게 있다.

 

이러한 시대 정신에 맞춰 이 책은 엄청난 반향과 공감을 사람들에게 이끌어주고 있고 그에 대한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들어준다. 그동안 우리가 혼돈스러워하고 과거에는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왜 이제는 제대로된 판단을 내리지 못했는지에 대해 한쪽면을 보여주고 다른 쪽면을 보여주면서 하나씩 궁금증을 알려준다.

 

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지금까지 내 눈에 가려져 있던 진흙이 떨어지거나 씻겨 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이 세상은 흑백논리로 명쾌하게 제단할 수도 없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이것이 옳고 저것이 틀렸다라고 판단내릴 수 없다.

 

책의 목차인 1강부터 10강까지 각 챕터에 맞춰 생각을 하며 글을 써야 할 만큼 많은 이야기들로 가득한 책이다. 정의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가변적인 개념이지 어느 시대에서나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개념은 아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정한 고민과 생각을 만들어 주는 고전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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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연구원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예전부터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그 정확한 느낌이 오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 그나마 좀 알게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과 이 책이 물리학책이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책이라 사고의 확장이라는 지식을 얻기 위해 선택해서 읽은 책이다. 책을 다 읽었지만 여전히 엔트로피에 대해 완벽하게 느낌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 책을 다 읽은 소감이다.

 

엔트로피라는 뜻은 아는 한도내에서 최대한 풀어 쓰자면 에너지라는 것이 건드리지 않으면 그 자체로 에너지가 유지되지만 에너지를 건드리게 되면 그 에너지는 움직이게 되는데 에너지가 갖고 있는 전체의 합은 변함이 없지만 에너지가 움직이며 극히 일부분만 원하는 방향으로 쓰이게 되고 거의 대부분의 에너지들은 처음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거나 무질서하게 에너지가 쓰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끈임없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활용한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의도하지 않은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곳에서 그 에너지를 발산하여 우리에게 이익이 된 것보다 더 많은 불이익으로 오게 되는데 그 사실을 우리는 당장에 모르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불이익이 어느 곳에서 언제 어떻게 올 수 없다는 것이다. 당장 눈 앞에 펼쳐지지 않기 때문에 갈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눈 앞의 이익에만 더 초점을 맞춰 행동할 수 밖에 없다.

 

물리학은 과학이지만 철학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고 실제로 물리학은 종교와도 깊은 관련이 있을 정도로 대단히 형이상학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이면서도 과학이외의 것이 더 큰 단서나 해결방법을 던져주는 학문이다.

 

이 책이 나온 시기뿐만 아니라 엔트로피가 발견된 시점을 포함하여 지금까지도 세계는 기계론적인 세계관이 지배를 했고 이 기계론적인 세계관이 경제와 만나 극단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를 만들어 미국에서 만개하여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여 갈수록 무엇이든지 더 갖는 것이 선이며 한계를 모르는 포만자만이 성공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뉴튼이 발견한 물리학 법칙인 중력의 법칙은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에서 패러다임을 완전히 변화시킨 엄청난 발상의 전환함으로써 이후에 인류는 중력의 법칙이라는 거대한 화두는 이후의 철학자들에게 획일적인 사상을 심어주게 되었다는 것이 엔트로피에서 주장하는 바이다. 더 거대한 놈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승자독식의 사회도 여기서 출발하지 않았나 한다.

 

이 후에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자들에 의해 상대성이론이 발견되고 엔트로피와 같이 기존의 물리학 법칙이 뒤집히는 새로운 진실이 밝혀졌어도 여전히 인간은 탐욕이라는 거대한 이익 앞에서 모든 것을 부정하며 오로지 전진만 했다. 내가 더 잘 살고 모든 것을 갖게 되면 최소한 나는 잘 먹고 잘 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계론적인 사고관을 통해 점점 살기 좋은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지만 엔트로피에 의하면 유용한 에너지를 쓴 이후에 쓰이지 못하게된 더 많은 에너지가 점점 우리에게 큰 걱정거리를 끼치고 있다. 환경문제라든가 과거에는 미처 알지 못하고 다양한 문제들이 하나씩 나오고 있어 엔트로피증가라는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고 있다.

 

갈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게 되어 고엔트로피가 진행되어 다시 더 많은 에너지로 기존과 같은 삶의 안락함을 추구하게 되면 결국에는 파멸만이 우리에게 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엔트로피에서 말하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저엔트로피를 위해 노력해야한단다.

 

읽다보면 저엔트로피라는 것이 무소유와 가장 관련이 큰 것으로 보이고 최근에 유행하는 템플스테이와 같은 개념과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고 있다. 덜 가질수록 더 행복하고 - 행복을 설문하는 조사에서 늘 빈민국이 오히려 상위권에 속하는 것처럼 - 육류소비가 아닌 야채소비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이 나오는 것들을 보면 저자의 이야기는 서서히 우리 사회에서 표면화되고 있는 듯 하다.

 

책에 나와 있는 곳에 그렇다고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저엔트로피를 위해 출산을 억제해야 한다는 것 같은 주장은 더더욱 그렇다. 내 생각에 과거나 현재나 인간들이 출산하는 비율은 크게 차이가 없다. 오히려 과거가 더 많은 출산률을 보였지만 지금과 같은 생존률을 보이지 못한 것은 어디까지나 의술이 발달해서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인류가 살기 위해서는 스폰지 게임처럼 더 많은 인류가 늘어나면 해결할 수 있지만 갈수록 출산률은 줄어들고 있고 이러한 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해서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어야 한다는 사실때문에 무한정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는 바람직하지 못하겠지만 저절로 평행상태에 도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저자가 이야기하는 엔트로피에서 말하는 물리학 1법칙이 내가 너무 획일화된 개념으로 이야기할지 몰라도 바로 에너지가 평형상태로 유지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결국에는 플러스 마이너스라는 것들이 합쳐져서 평형상태에 이룰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 그 과정에서 엄청난 이익과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겠지만 - 이런 생각이 새로운 엔트로피인지 기계적 세계관인지 모르겠다. 기계론적인 세계관이 더 많이 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나온지 벌써 몇 십년이 흘렀다. 그 이후의 세계를 볼 때 책에서 예견한 것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들도 그때와는 달리 개선된 것들도 있지만 엔트로피 사고관에 입각하면 아직까지는 정확한 결론이 난 것은 아닌 듯 하다.

 

현재와 같은 기계론적인 세계관이 아직까지 지배하고 있는 세상은 결국에는 파멸로 이르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엔트로피를 발견한 것도 인간이고 인간세계에는 획일적인 사고만 있는 것이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고 이들의 다양한 사고와 행동은 갈수록 세계를 더 개선하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 본다. 물론, 책에서는 긍정적으로 봐도 현재와 같은 기계론적인 세계관에 입각한 개선은 아니라고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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