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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을 굳이 두 가지 분류로 정하자면 순수 문학 소설과 장르 소설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근거를 갖고 이렇게 나누게 되었으냐고 묻는다면 내가 감히 할 말은 없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긍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솔지히, 순수 문학소설을 조금 더 고상하고 위로 쳐주고 장르 소설은 그 하위문화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장르소설은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하면 - 그런게 과연 시대를 초월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먀는 - 순수 문학소설은 그 시대의 흐름과 정서를 올곧이 담고 있다는 점이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에 나오는 배경은 책이 나온 시간과는 동 떨어져 있다 해도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설을 읽으며 과거가 아닌 현재에 대하 비유나 은유로 생각하니 말이다.
순수 문학소설도 굳이 따지자면 남성작가의 소설과 여성 작가의 소설로 나눌 수 있다. 성 차별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이렇게 구분을 한 것은 여성이 지은 소설과 남성이 지은 소설은 서로 필력이라고 할까,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 지금까지 여성 작가와 남성 작가의 순수 문학 소설을 읽은 비율을 따지자면 - 당연히 국내만 - 7대 3으로 여성 작가의 소설을 많이 읽었다. 이유는 없지만 그렇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남성보다는 여성 작가의 소설이 더 활발하게 출판되고 사람들의 인기를 끌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런 비교와는 전혀 상관없이 어떤 소설을 읽을까하고 여러 경로를 통해 검색을 하다보면 몇 몇 작가들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 책 '빛의 제국'의 작가인 김영하도 바로 그런 인물이다. 특별히 국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저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해서 읽는 스타일이라 국내 작가중에 유명한 누군가의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관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하여 김영하의 소설중에 가장 많이 소개가 되어 있다고 보여지는 '빛의 제국'을 선택해서 읽게 되었다. 그 전에 읽은 박민규나 천명관의 소설과는 느낌이 꽤 다르다. 박민규와 천명관의 소설은 어딘지 비슷한 스타일이라면 비슷한 스타일이 느껴졌는데 김영하의 소설은 그보다는 좀 더 올바른 사람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표현하면 좀 그럴 수 있겠지만 말이다.
아마도 비슷한 연배이지 않을까 하는데 - 그냥 5년 내외는 비슷하다고 한다 - 그렇다면 개인적인 경험은 조금씩 다를 수 있어도 우리나라를 살아가며 느끼는 동시대적인 동질감과 이질감은 조금씩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다 같이 2부제 수업을 들었고(아닌가??) 5공, 6공등과 서울 올림픽, IMF, 월드컵이라는 국가적인 이벤트도 경험하면서 알게 모르게 공유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소설은 아주 일상적인 하루로 시작한다. 대부분의 작품처럼 너무 평범한 일상의 시작은 엄청난 소용돌이에 들어가기 전 누구나 다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폭풍에 휩쌓일 수 있다는 전제를 위한 본 음식전의 전채와도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오늘 오전에 양치질을 하지 않았다고 오후에 누군가를 총으로 죽이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총 하루동안 일어난 일을 시간대별로 구성하여 이야기가 진행된다. 물론, 굳이 시간대별로 진행할 이유까지는 없다. 내용 구조상 일주일이여도 상관없고, 한 달이라도 상관은 없다. 차라리 시간대별로 치밀하게 얼기고 설키는 이야기로 구조를 만들었으면 훨씬 흥미진지하게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는 주로 장르소설에서 많이 나온다. 왜일까?
시간대별로 주인공의 가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들이 펼쳐지지만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각자 과거에 대한 회상을 하기 때문에 시간구성이 꼭 하루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하루라는 시간은 참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고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다. 어이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가족이라고 하는 울타리안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함께 살고 있는 배우자가 과거에 누구와 만났고 어떤 일을 했는지 알려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지금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어도 누구와 만나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 방법은 없고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게 가족이니까라는 말에 모든 것이 포함된다. 상대방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뜻도 포함되고, 상대방에 대해 적당히 무지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것도.
소설의 주인공은 '간첩'이다. 그것도 이미 남한이라는 곳에서 20년을 살아 온. 더구나, 10년 넘게 북한과는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남한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둥바둥친 똑같은 인간이다. 특별히 북한에서 단 돈 10원 하나 보태주지도 않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살아온 인생이다. 자신이 간첩이라는 사실마저도 잊고 살아온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한 마디로 지금 당장 거리에 나가 걷다 어깨를 부딪치는 바로 그 사람일 수도 있을 정도의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예비군 훈련을 가면 농담조로 "야~~야~~ 우리보다 간첩이나 북한 군부가 더 많이 알고 있을텐데 무슨 비밀이냐? 비밀은?"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지극히 평범한 우리 개인들보다 북한이 더 잘 우리나라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북한 주민들보다 우리들이 더 많이 북한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들 각자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과 실제로 자신의 모습이 다를 수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A라고 보여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나에게 B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들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간직하며 살고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들은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비밀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할 때 흥미를 갖게 되고 동질감을 획득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 위치나 상황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벗어나고 싶다고 하지만 막상 그런 기회가 주워진다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책에서 주인공은 지극히 평범한 나날을 살아오다 어느날 갑자기 북한으로 돌아오라는 지령을 받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삶을 파괴하지 못하고 순응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자신에 대해 부정을 해야만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인데 그걸 부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 기회라는 것이 말이 기회지 실제로 더 좋아질 지 나뻐질지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다면 더더욱 사람은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조금은 힘들더라도 지금까지 익숙하게 살아왔던 현재의 삶을 유지하려 한다. 나라면 현재의 가족을 버리고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라고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 소설에 대한 리뷰를 썼는데 솔직히 지금 쓴 리뷰는 '빛의 제국의 전체적인 맥락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 수 있다. 소설과는 전혀 상관없이 전적으로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썼다. 책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딱히 책과 관련되어 쓸꺼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게 바로 소설이 갖고 있는 향기가 아닐까 한다. 꼭 책에 맞는 무엇인가를 써야 할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다만, 이 책으로 통해 김영하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고 향후에도 김영하의 소설을 마저 읽기로 했다. 특별히 기발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엄청 어렵게 이야기를 풀어내지도 않았지만 소설에는 지금 이곳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고민에 대한 것이 난 읽혀진다. 난 그걸 풀어낼 능력도 없고 펼쳐 보여 줄 능력도 더더욱 없고 이렇게 누군가 쓴 글을 통해 읽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