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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삼촌 브루스 리 2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2월
평점 :
1,2권 합쳐 무려 800페이지나 되는 이야기다보니 2권에 들어가며 점점 캐릭터에 친근함이 느껴지면서 저절로 조금씩 감정이입이 되며 출연하는(??) 인간들 한 명 한 명에게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주요 인물은 결국에 삼촌과 원정이라 하는 삼촌의 애인이라고 할 수 있고 2명만으로 이야기를 온전히 끌어가기에는 너무 길어 삼촌의 조카들 이야기도 좀 나온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영악한 사람도, 너무 순진힌 사람도 드물다. 적당히 욕심을 갖고 살아가고 적당히 모른척 넘어가면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딱히, 나쁜 놈도, 착한 놈도 없이 어느 정도 나쁜 짓도 하고 어느 정도는 착한 행동도 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삶을 살아가며 재미있는 세상을 만들어 낸다.
평균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소설을 비롯한 문학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이 세상의 많은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만들었을까하는 마음마저 든다. 아침에 일어나 러시아워에 사람들에 부대끼며 출근하고 직장에서 일하고 점심먹고 일하고 간식먹고 일하고 상사눈치보며 퇴근하고 집에 와서 밥먹고 TV보다 잠 자고 다시 일어나 출근하는 반복되는 삶을 작품으로 쓸 생각을 할 작가는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똑같이 보이는 우리 삶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있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꺼리를 갖고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다소 하품이 나오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야기하는 당사자에게는 그 누구보다 소중한 자신의 인생이고 역사인것이다. 이런 사람들중에서도 평범이라는 범위에서 조금 더 벗어나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직업도 중요하다. 평범한 직업에는 누구나 예측가능한 행동을 보여주지면 익숙하지 않은 직업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경험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의 저자 천명관은 영화 작가 출신이라고 한다. 소설은 재미있는 이야기꾼으로 재능을 발휘했지만 보여주는 시나리오는 소설만큼의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던 듯 하다. 그래도 작년에 나온 '이웃집 남자'의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이웃집 남자'는 소소하게 볼 만한 영화라고 생각을 했다. 영화예고편을 볼 때 전혀 몰랐는데 천명관도 같이 광고를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이 얼마전에 크랭크 업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천명관은 이야기는 재미있게 한다는 것은 확실한 듯 하다.
책에서 삼촌은 순진무구하면서 모든 사랑을 한 여자에게만 쏟는 인물이다. 그렇에도 여러 여자를 만나고 임신도 시킨다는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말이다. 순진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삼촌은 무도인의 길을 영화에서 '으악배우' - 으악 하고 죽는다는 의미 - 로 자신의 무도인 길을 걸어가며 우연히 보게된 원정이라는 배우와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진심은 통한다고 원정이라는 배우와 사랑을 확인하고 정분을 쌓게 되지만 헤어지고 결국에는 다시 만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 소설은 80~9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2000년대도 나오기는 하지만 실제적인 활동무대는 아니다. 우리나라가 가장 좋았을 때라고 사람들이 말을 하는 시기이다. 직장은 평생직장이고 어느 정도 먹고 사는 것도 해결이 되어 열심히 일만 하면 된다고 믿었던 시절이다. 당시를 살던 사람들에게는 억압과 자유에 대한 갈구는 있었지만 지나고 나서 지금 사람들이 항상 좋았을 당시를 이야기하는 시절이 아마도 80~90년 일 것이다.
최소한, 자신이 노력하면 먹고 사는데 지장없다고 믿었던 시절이다. 지금이 그 당시보다 더 살기 좋은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당시를 그리워한다. 그렇게 추억은 모든 것을 변경하고 치환하고 왜곡하고 아름답게 그려낸다.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인데 그렇다고 대단한 인생을 살았다고 할 만한 인물은 삼촌이지만 특별한 의식을 갖고 살아간것이 아니라 그저 운명의 거대한 흐름에 어쩔 수 없이 흘러 갔을 뿐이다.
한편으로는 너무 세상에 대해 몰랐고 지식이 없었고 물정을 몰랐고 세상을 믿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다. 오로지 무도인의 길을 걸어가려 했고 평생 사랑하는 여자만을 바라보고 살았다는 이유로 그처럼 많은 몹쓸 경험을 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본인의 의지로 선택한 인생도 꽤 많다는 것을 생각할 때 꼭 운명이라고 할 수는 없을 듯도 하다.
책에서 나온 나라는 인물도 역사에서 아주 평범하게 살면서 잠시 세상과 사회에 대한 고민도 하지만 우리 대다수처럼 그저 삶을 살아갈 뿐이다. 잠시 '꿱'하고 소리를 질러 보지만 그 소리는 그저 잠시 퍼져 사라질 뿐이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바로 눈에 앞에 있는 현실에 적응하여 살아 갈 뿐이다.
어떻게 보면 오로지 삼촌만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개척하여 살아갈 뿐이다. 남들처럼 생각없이 뻔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타나는 역사 흐름에 굳이 발버둥치지도 않지만 또한 굳이 벗어나려고 하지도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을 내린 삶을 살아간다. 마지막 장면을 볼 때면 해피엔딩이지만 그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소설속 판타지이다.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작가가 했기에 이번 작품을 끝으로 영화와는 결별을 한다는 작가의 변이 있었다. 또한, 이 작품을 블로그에 연재한 작품이라고 한다. 매일같이 작품을 썼다고 하니 그 점은 놀랍다고 본다. 외부 공간에 매일같이 소설을 쓴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였을텐데 이렇게 완성했을 때 그 보람은 무척 크지 않았을까 한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실패하지도 성공하지도 않은 인물들의 이야기다. 성공했다고 생각한 인물도 죽음으로 성공을 유지하지 못했고 실패라고 할 수 있는 인생도 없는 인물들이 그저 삶을 살아갈 뿐이다. 저자는 소설은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라며 성공을 꿈꾸는 사람은 읽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죽기 전까지는 인생에 있어 실패도 없고 성공도 없다. 또한, 죽으면 성공이나 실패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고로 나는 오늘도 소설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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