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삼촌 브루스 리 2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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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합쳐 무려 800페이지나 되는 이야기다보니 2권에 들어가며 점점 캐릭터에 친근함이 느껴지면서 저절로 조금씩 감정이입이 되며 출연하는(??) 인간들 한 명 한 명에게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주요 인물은 결국에 삼촌과 원정이라 하는 삼촌의 애인이라고 할 수 있고 2명만으로 이야기를 온전히 끌어가기에는 너무 길어 삼촌의 조카들 이야기도 좀 나온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영악한 사람도, 너무 순진힌 사람도 드물다. 적당히 욕심을 갖고 살아가고 적당히 모른척 넘어가면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딱히, 나쁜 놈도, 착한 놈도 없이 어느 정도 나쁜 짓도 하고 어느 정도는 착한 행동도 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삶을 살아가며 재미있는 세상을 만들어 낸다.

 

평균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소설을 비롯한 문학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이 세상의 많은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만들었을까하는 마음마저 든다. 아침에 일어나 러시아워에 사람들에 부대끼며 출근하고 직장에서 일하고 점심먹고 일하고 간식먹고 일하고 상사눈치보며 퇴근하고 집에 와서 밥먹고 TV보다 잠 자고 다시 일어나 출근하는 반복되는 삶을 작품으로 쓸 생각을 할 작가는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똑같이 보이는 우리 삶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있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꺼리를 갖고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다소 하품이 나오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야기하는 당사자에게는 그 누구보다 소중한 자신의 인생이고 역사인것이다. 이런 사람들중에서도 평범이라는 범위에서 조금 더 벗어나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직업도 중요하다. 평범한 직업에는 누구나 예측가능한 행동을 보여주지면 익숙하지 않은 직업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경험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의 저자 천명관은 영화 작가 출신이라고 한다. 소설은 재미있는 이야기꾼으로 재능을 발휘했지만 보여주는 시나리오는 소설만큼의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던 듯 하다. 그래도 작년에 나온 '이웃집 남자'의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이웃집 남자'는 소소하게 볼 만한 영화라고 생각을 했다. 영화예고편을 볼 때 전혀 몰랐는데 천명관도 같이 광고를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이 얼마전에 크랭크 업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천명관은 이야기는 재미있게 한다는 것은 확실한 듯 하다.

 

책에서 삼촌은 순진무구하면서 모든 사랑을 한 여자에게만 쏟는 인물이다. 그렇에도 여러 여자를 만나고 임신도 시킨다는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말이다. 순진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삼촌은 무도인의 길을 영화에서 '으악배우' - 으악 하고 죽는다는 의미 - 로 자신의 무도인 길을 걸어가며 우연히 보게된 원정이라는 배우와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진심은 통한다고 원정이라는 배우와 사랑을 확인하고 정분을 쌓게 되지만 헤어지고 결국에는 다시 만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 소설은 80~9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2000년대도 나오기는 하지만 실제적인 활동무대는 아니다. 우리나라가 가장 좋았을 때라고 사람들이 말을 하는 시기이다. 직장은 평생직장이고 어느 정도 먹고 사는 것도 해결이 되어 열심히 일만 하면 된다고 믿었던 시절이다. 당시를 살던 사람들에게는 억압과 자유에 대한 갈구는 있었지만 지나고 나서 지금 사람들이 항상 좋았을 당시를 이야기하는 시절이 아마도 80~90년 일 것이다.

 

최소한, 자신이 노력하면 먹고 사는데 지장없다고 믿었던 시절이다. 지금이 그 당시보다 더 살기 좋은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당시를 그리워한다. 그렇게 추억은 모든 것을 변경하고 치환하고 왜곡하고 아름답게 그려낸다.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인데 그렇다고 대단한 인생을 살았다고 할 만한 인물은 삼촌이지만 특별한 의식을 갖고 살아간것이 아니라 그저 운명의 거대한 흐름에 어쩔 수 없이 흘러 갔을 뿐이다.

 

한편으로는 너무 세상에 대해 몰랐고 지식이 없었고 물정을 몰랐고 세상을 믿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다. 오로지 무도인의 길을 걸어가려 했고 평생 사랑하는 여자만을 바라보고 살았다는 이유로 그처럼 많은 몹쓸 경험을 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본인의 의지로 선택한 인생도 꽤 많다는 것을 생각할 때 꼭 운명이라고 할 수는 없을 듯도 하다.

 

책에서 나온 나라는 인물도 역사에서 아주 평범하게 살면서 잠시 세상과 사회에 대한 고민도 하지만 우리 대다수처럼 그저 삶을 살아갈 뿐이다. 잠시 '꿱'하고 소리를 질러 보지만 그 소리는 그저 잠시 퍼져 사라질 뿐이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바로 눈에 앞에 있는 현실에 적응하여 살아 갈 뿐이다.

 

어떻게 보면 오로지 삼촌만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개척하여 살아갈 뿐이다. 남들처럼 생각없이 뻔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타나는 역사 흐름에 굳이 발버둥치지도 않지만 또한 굳이 벗어나려고 하지도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을 내린 삶을 살아간다. 마지막 장면을 볼 때면 해피엔딩이지만 그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소설속 판타지이다.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작가가 했기에 이번 작품을 끝으로 영화와는 결별을 한다는 작가의 변이 있었다. 또한, 이 작품을 블로그에 연재한 작품이라고 한다. 매일같이 작품을 썼다고 하니 그 점은 놀랍다고 본다. 외부 공간에 매일같이 소설을 쓴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였을텐데 이렇게 완성했을 때 그 보람은 무척 크지 않았을까 한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실패하지도 성공하지도 않은 인물들의 이야기다. 성공했다고 생각한 인물도 죽음으로 성공을 유지하지 못했고 실패라고 할 수 있는 인생도 없는 인물들이 그저 삶을 살아갈 뿐이다. 저자는 소설은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라며 성공을 꿈꾸는 사람은 읽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죽기 전까지는 인생에 있어 실패도 없고 성공도 없다. 또한, 죽으면 성공이나 실패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고로 나는 오늘도 소설을 읽는다.

 

 

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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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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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은 이야기꾼이라는 소리를 듣는 작가이다. 그 말은 그가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뜻이 된다. 왜 그런 사람들이 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누가 하면 더 재미있고 감칠맛 나는.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이야기를 하는데 있어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처럼 묘사를 잘 한다는 것이다. 또한,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한다. 쉴 때 쉬어주고 소리를 높혀야 할 때 높혀 주고 똑같은 말이라도 단어와 감탄사를 달리 하여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증에 못 이기게 만든다.

그런 이야기를 글로 사람들에게 알린다면 그가 쓴 글을 재미있게 '오~~ 그래!!'하면서 읽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뜻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같은 주제와 소재를 갖고도 얼마든지 다양한 이야기를 쓸 수 있고 같은 경험을 했어도 그 경험을 이야기하는 사람에 따라 재미가 달라 지듯이 비슷한 주제와 내용을 글로 전달해도 이야기꾼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천명관이 하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누구나 늘 항상 똑같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사람의 평균이라는 것이 있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나의 삼촌 부르스 리'는 솔직히 어떻게 보며 뻔하디 뻔한 내용을 얼마나 재미있게 풀어내느냐가 관건일텐데 나에게는 그닥 재미있지는 않았다.

아직 1권까지만 읽은 상태라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유보해야 하겠지만 1권까지만 읽은 현재의 생각은 천명관의 '고래' '고령화가족'에 비하면 재미가 덜 하다는 것이다. 고래가 진정으로 그 어마어마한 이야기에 압도되어 '거 참 대단하네'하면서 읽었고 '고령화가족'이 독특한 캐릭터를 갖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빠져 들어 읽었다면 '나의 삼촌 부루스 리'는 딱히 그런 느낌이 없다.

확인을 해 봐야 정확하게 알겠지만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고래'의 다음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고래'가 일제 직후부터 박정희 시대의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다면 이 책은 박정희 이후의 시절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측면에서 굳이 억지로 갖다 부친다면 부모의 인생을 되풀이 하는 어느 자녀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농촌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어 서자로 태어나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대의 흐름에 저절로 엮이면서 겪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점에서 '고래'와 비슷하다고 보인다. 다만, '고래'가 어딘지 판타지적인 뉘앙스로 여러가지 것들이 섞이며 그럴 수도 있다는 개연성을 갖고 읽게 되는 반면에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내용전개는 비슷한데 판타지적인 요소가 없이 순수한 현실만 그리고 있어 거꾸로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그만큼 답답한 시절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면 읽는 나에게는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철저한 착각일 뿐이고 - 설마, 저자가 나를 상대로 책을 펴 냈을리 없으니 - 1권에서는 무엇인가 나올 듯 나올 듯 하면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1권의 페이지가 400쪽이나 된다는 것은 이야기꾼이라는 칭호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묘사보다 서사성, 플룻을 중시하는 내게 소설이란 마지막 장면으로 가는 과정 진술이다'라는 작가의 한마디처럼 이 모든 것은 2권으로 이어져서 마지막에 어떤 결론을 나에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다. 1권에서는 별로 였는데 2권부터는 본격적으로 더 재미있고 흥미로울지도 모르니 말이다.

사실, '고래'같은 경우에도 초반에는 재미있고 흥미롭지는 않았고 뒤로 갈수록 점점 내용에 빠져들고 어떻게 진행이 될지 궁금했다는 걸 떠올려보면 '나의 삼촌 브루스 리'도 2권부터는 본격적인 삼촌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2권 거의 후반까지 삼촌이야기만 하다 본격적으로 삼촌이야기를 하고 있던 내 이야기가 펼쳐지는 걸 보면 둘의 이야기로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확실한 것은 2권까지 읽은 후에 내린 판단이 정확할 것이다. 그런고로, 2권으로 고고씽~~

저자의 고래(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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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 개정판 파란미디어 셰익스피어 시리즈 1
진산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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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들에게 무협지가 있다면 여자들에게는 로맨스 소설이 있다. 청소년들을 위한 로맨스 소설이 하이튼 로맨스 소설이라고 하여 예전에 귀여니라는 사람이 특히 유명했다. 인터넷으로 소설을 올려 책으로도 나오고 영화로도 만들어지는 열광적인 열풍이였다. 그 외에 20대 이상을 위해서는 할로퀸이라는 로맨스 소설이있다. 아니, 장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멋진 남자와 여자가 만나 밀고 당기면서 사랑을 나눈다는 내용인데 흔히 TV 드라마에 나오는 연애이야기에 조금 더 과감한 애정씬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장르는 여성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고 이 장르만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들도 있고 독자들도 있다. 최근에는 이 장르가 좀 더 발전해서 꽤 적나라한 애정씬이 묘사되고 있다고 한다.

 

로맨스 장르도 교배와 융합을 통해 발전하고 있어 최근에는 판타지와 섞여 열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트와일라잇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남성들에게는 유치하다는 평을 듣지만 여성들은 열광하면서 빠져 들어 진정한 판타지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자들이 '영웅본색'에 빠져 미쳐있던 것과 비교하면 그게 그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로맨스 소설을 읽을 것이라고는 솔직히 생각하지 못했지만 보내준다는 책을 마다한 적이 없어 읽었는데 거두절미하고 재미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밀고 당기며 알콩달콩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낙담하고 다시 확인하려고 하는 일련의 과정이 아주 유쾌하게 그려졌다. 나도 예전에 그랬지까지는 아니지만 현재 남자친구가 없는 - 정확하게 표현하면 애인이겠다 - 여성 분들에게는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특히, 작가의 전공답게 연극을 소재로 해서 어딘지 있어 보이고 지적 분위기도 풍기는 연출자를 남자 주인공으로 한 점도 상당한 플러스요인으로 보였다. 너무 당연하게도 심지어 상당히 큰 재단 이사의 손자에 외국 유학까지 갖다 온 갖고 있을 수 있는 것은 다 갖고 있는 완벽남으로 그려지고 있어 더더욱 그렇다.

 

여 주인공은 아직까지 사랑을 해 본적이 없다. 성이 개방되어 있다고 해도 여전히 한번도 남자친구와 사귀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여성분들의 가장 큰 타겟층이 아닐까싶기도 하다. 그래야, 그들의 궁금한 호기심을 제대로 풀어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총각으로 이 책을 읽었으면 지금보다 재미가 덜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유치하잖아'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총각이 아닌 유부남으로 그런 과정을 이미 겪어본 사람으로써 읽어보니 서로 호감을 갖고 상대방에 대해 궁금해 하고 궁금한 점을 해소하며 상대방을 알아가면서 생기는 에피소드와 감정들을 읽으면서 살며시 웃음이 났다. 어쩌면, 남자라는 늑대가 갖고 있는 본성이 들어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대체적으로 여자 주인공의 관점에서 내용이 진행되고 가끔 중간 중간 나는 이렇게 느꼈지만 과연 남성들은 어떤 감정으로 행동했을까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남성주인공의 일기형식으로 알려주는 친절함까지 제공한다. 더구나, 이 책은 단순하게 판타지로써의 연애를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현실적인 모습으로 연애를 그리고 있어 보다 현실성이 있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판타지요소가 섞여있고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해도 - 여기서 말하는 판타지는 여성 입장에서 본 남성이라고 해야 할 듯 - 현실에 기반하지 않으면 철저하게 트와일라잇으로 가야하는데 이 책이 나온지 10년이 넘어 그 당시에는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판타지요소를 차용한 작품은 없던 것으로 기억한다.

 

으레 그렇듯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점도 좋았다. 더구나, 아주 현실적인 해피엔딩이라 작가의 나이에 맞게 현실적인 감각도 결코 무시하지 않으면서 결론을 냈구나싶었다. 그런 걸 보면 남자들이 갖고 있는 여성들의 판타지보다는 여성들이 갖고 있는 남성들의 판타지가 훨씬 더 긍정적이고 좋은 듯 하다. 최소한 그래도 여성들은 어느정도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남성들의 판타지는 이미지만이 강해서.

 

커튼콜은 연극작품을 올리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소재도 함께 소개되고 있어 지루하지않고 읽을 수 있다. 양념처럼 세익스피어 이야기도 나오고 극의 흐름에 기름칠도 해주고 어딘지 고급스럽게 보여주는 향기도 내 뿜는다. 솔직히, 남성들에게는 모르겠으나 여성분들에게는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분명히 결혼을 한 여성분들에게도.

 로맨스 소설은 아니지만 이 책도 사랑이야기입니다.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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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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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에 비춰볼 때 이 소설속에서 윤동주 시인은 형무소에서 나가지 못하고 죽는다는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과연,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어떤 식으로 그려 나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 올바른 독해로 읽어야 할 듯 하지만 '별을 스치는 바람'은 윤동주 시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죽음을 맞이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실질적인 주인공은 글자를 알게 되고 글자를 통해 단어를 배우고 단어가 합쳐져서 문단을 읽고 문단이 뭉쳐져서 하나의 언어가 되어 한 개인의 가슴속에 들어와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문자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다. 문자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받아 들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는 뜻이 된다. 우리에게 수 없이 보여지는 영상들과 달리 글은 우리에게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다. 영상이나 글자나 똑같이 수동적인 자세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영상보다는 글자를 읽을 때 우리의 뇌는 좀 더 활발하게 움직이고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들어 주고 글자가 의미하는 바를 그리게 된다.

 

책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고 흥미로운 추리가 이어진다. 윤동주 시인이 형무소에서 인체실험을 통해 죽었다는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윤동주 시인이 형무소에 있으면서 그 안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그럴만하다는 함의안에 펼쳐진다. 책을 읽으면서 책의 줄거리보다는 시종일관 이야기하는 언어가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책을 읽는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책을 읽은 사람이 변한다는 사실에 대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 의미에 대해 깊게 빠고 든 것은 성격상 못했고 그저 가볍게 잠시 하게 되었다.

 

고대에는 지금과 같이 책이라는 매체(??)가 없고 책이라 하여도 글자라는 것을 새긴다는 현실이 녹록치 않아 거의 대부분 한 개인에게서 한 개인에게 전달되었다. 전달되는 방법은 자신이 외우고 있는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다시 외우게 한 것이다. 그렇게 외우고 외우고 외운 것들이 전달되는 과정에 널리 퍼지지 못하고 - 또는 안하고 - 특정 개인들에게만 전수가 되며 그들이 전수되지 못한 사람들보다 우월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다양하고 많은 정보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다. 예전처럼 비밀스러운 내용들은 아직도 몇 몇 개인들에게만 구전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 내가 안다면 비밀이 아닐테니 - 알고자 하는 바를 우리들은 얻을 수 있고 누군가는 그토록 알고자 한 바로 그 내용들이 손쉽게 산재해 있지만 보지 않으려 한다.

 

수없이 많은 주옥(??)같은 글들이 우리 곁에 언제든지 숨 쉬고 있지만 우리들은 보고도 못 본척하고 읽으려고 하지않고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는 이유로 알려 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그럴까? 예전처럼 지금도 누군가는 사람들이 은밀하게 - 하지만 책으로 글로 펴낸 - 이야기한 비밀을 읽고 생각하고 남들과는 다름 세상을 보고 삶을 살아간다. 겉으로 볼 때는 이런 진실을 알지 못한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구분도 되지 않는다. 긴 시간이 흐른 후에 겨우 알아챌 수 있게 된다. 알아 챌 때는 이미 나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글이란 우리에게 그런 힘을 가져다 주지만 우리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알아채지 못하고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 꼭, 고전을 읽지 않아도 얼마든지 우리 인생에 보탬이 되는 글들을 우리는 멀티미디어시대라는 현실에 갖혀 읽지 않는다. 바로, 그 멀티미디어에 가장 필요한 것은 보고 읽고 제대로 깨닫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일텐데 말이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생각을 읽는다는 것이고 그가 이야기 하려는 의미를 알아챈다는 의미가 된다. 그 이야기는 세상을 보는 시선을 갖게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갖고 싶어하는 미래에 대한 예측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대단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글을 제대로 읽고 그 본래의 뜻을 안다는 것이다. 다시 생각하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게 된다. 누군가 하는 이야기에 대한 숨은 뜻을 파악하게 된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조정할 수도 있고.

 

'별을 스치는 바람'을 읽으면 소설의 내용이나 추리소설과 같이 얽히고 설힌 실타래가 하나씩 하나씩 풀려가는 과정에 대해서는 오히려 흥미가 없고 글자와 글자를 읽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또 하나는 올 해 들어 여러번, 최근들어 더 자주 이유없이 자주 도스톱옙스키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여러 책을 통해 계속해서 눈에 들어오고 언급되는 것을 보게 된다. 올 해 읽은 책들이 꼭 올 해 출간된 책들만 읽은 것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별을 스치는 바람'은 1권부터 2권 중간까지는 사실 소설적인 재미로는 그다지 썩 흥미진지하게 읽지는 않았다. 2권 중반부부터는 비밀이 풀리고 윤동주 시인이 죽음에 이르면서 조금 감정이입은 되어 몰입은 되었지만 그보다는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이 책이 아니였으면 평생에 걸쳐 이만큼 많이 읽지 않았을 듯 싶고 글이라는 것에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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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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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와 '바람의 화원'으로 유명한 이정명의 작품은 '별을 스치는 바람'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소설을 읽지는 못했어도 '뿌리 깊은 나무'는 정말로 본방사수하면서 본 작품이였다. 내용이 재미있어 드라마로 제작이 되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내용 자체가 팩션이라고 하여 과거에 있었던 사실과 진실을 교묘하게 섞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이며 허구는 어느 정도가 섞여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게 잘 만든 작품이라 드라마로까지 제작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에 새로 '별을 스치는 바람'이라는 작품도 역시 팩션이라는 장르(??)로 만들어졌다. 처음에 이 책을 접했을 때 일제 말기에 일어난 사실을 재미있게 그려낸 추리소설이라 봤다. 한 마디로 제대로 소설의 광고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얼핏 광고문구만 보고 내린 판단이였다. 책을 집어 들어 읽으려고 하자마자 등장하는 이름이 있었다. "윤동주"

 

'서시'로 유명한 바로 그 윤동주이다. 그러고나서도 윤동주가 등장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기만 했지 윤동주에 대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학생시절에는 윤동주의 서시가 무척이나 많이 등장했다. 시라는 장르 자체가 그 당시에는 어느정도 알려질 당시였다. 한 참 '홀로서기'나 대학생들의 낙서를 묶어 시라고는 할 수 없는 시집 비슷하게도 나왔던 당시가 아마도 가장 시가 전성기가 아니였을까 한다.

 

지금은 시라는 장르 자체가 소멸되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읽기도 듣기도 힘들다. 한 때는 서점의 한 공간을 당당하게 차지했지만 어느덧 시라는 책 자체가 어디 있는지도 보기 힘든 실정이다. 누군가는 SNS가 시라는 표현도 하지만 그건 시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만든 시와 단문의 글을 비교한다는 것을 말이다.

 

거르고 자르고 최대한 배제한 것이 시라면 보태고 늘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것이 글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주저리 주저리 이것 저것 쓰는 것은 해도 도저히 압축해서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정제된 글을 쓸 능력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시만이 갖고 있는 표현의 확장과 공감이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지금 시가 갖는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시에 대하여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이 책은 소설이지만 시라는 것에 대해, 글이라는 것에 대해, 읽는 것이라는 의미에 대해, 글자라는 것이 내포하고 있는 함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라 보기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의 시가 단지 저항시라 유명해 진 것이 아니라고 본다. 시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과 절제된 글자, 표현되지 않은 수 많은 의미가 행간에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읽었기 때문이라 본다.

 

이런 윤동주가 형무소에 있을 때 벌어진 내용에 대해 팩션으로 그린 소설이다. 도입단계와 책의 중반정도까지는 윤동주가 등장을 하지만 그다지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지 않아 그저 윤동주가 인물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 윤동주라는 인물에 접근하기 위한 메타포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인물들이 등장을 한다.

 

소설이지만 많은 시가 나온다. 저절로 간만에 시를 많이 읽게 된다. 그것도 교과서로 읽거나 제목만 알고 있지 정확하게 차분하게 읽어 본 적이 없는 윤동주의 시가 그 의미와는 다를 수 있지만 - 이 소설은 팩션이라 - 큰 의미에서 벗어나지 않는 의미를 책 내용과 결부되어 읽으면서 더욱 시를 읽게 만들어 준다. 어떻게 보면 그것으로도 이 책의 목적은 달성한 것일 수도 있다.

 

단순하게 윤동주라는 시인의 형무소에서의 마지막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글이라는 것에 대해 여러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읽는 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단지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글은 들리는 말과 보이는 글자보다 더 깊은 의미가 그 안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은 조사 하나로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고 그가 하려는 말과 글에 숨어있는 본심을 읽어낼 수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표현을 하는 것처럼 본인이 숨기려 해도 미묘한 단어 하나로 그 사람의 진심이 흘러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걸 제대로 집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이런 것은 꾸준히 읽고 읽어 깨달을 수도 있다.

 

'별을 스치는 바람'에서는 윤동주와 교도관이 스기야마가 벌이는 지적 싸움에서 - 서로 말과 글로 상대방을 끌어 들이고 유혹하고 의미를 알아 채라고 외친다 -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윤동주 시인이 쓴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덕분에 그저 재미로 읽는 작품이 아니라 여러가지에 대해 읽으면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계속 펼쳐질지 2권으로 넘어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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