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에 살고 싶다 - 예술과 문화를 입힌 찬연한 도시에서 미래를 꿈꾸다
경향신문 기획취재팀 엮음 / 시대의창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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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무조건적인 아파트 건설을 반대한다. 분명히 아파트는 한국사회에서 더 쾌적하고 편리한 주거유형이다. 앞으로도 이보다 더 좋은 주거유형은 힘들지 않을까 예상한다. 하나의 변수만 없다면. 그것은 국가에서 얼마나 국민의 주거에 관심을 갖고 참여를 하느냐에 따라 꼭 아파트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다른 주거유형도 충분히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으로 본다. 과도하게 민간에게 주거와 관련된 모든것을 떠넘기고 있는 한국사회가 쉽지 않겠지만.


재개발을 하면 가구숫자는 줄어든다. 아파트가 건설되면 더 많은 사람이 살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원룸에서 10가구가 살고 있어도 재개발이 되어 아파트가 되면 단지 1가구만 살아간다. 좀 더 넓은 주거면적이 좋긴 하지만 현재 다가구와 다세대, 단독 주택의 주거면적은 다소 작다. 최근에 짓는 아파트는 아무리 적다해도 예전보다는 크다. 이런 식으로 새롭게 아파트를 짓게 되면 오히려 거주하는 사람은 줄어든다.


기존에 잘  살아가고 있는 원주민이 쫓겨나야 하는 이런 시스템이 과연 좋은 것인가에 대해 난 부정적이다. 투자 차원에서는 긍정적이다. 투자자라고 해도 함께 살아가는 사회구조다. 나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사회에서 내가 잘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남들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처럼 손해를 좀 보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구조를 선호한다. 갭투자가 좋은 투자 방법 중 하나지만 몇몇 투자자들은 무조건 전세가격을 힘껏 올리며 시장에 내놓는 것도 난 상당히 안 좋게 본다.


투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을 무엇이라 하긴 힘들지만 그렇게 올려 자신의 금액을 최소로 하는 것도 좋지만 그 부메랑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시세에 맞게 내 놓는 것은 몰라도 과도하게 상승시킨 금액은 반대한다. 물론, 시세대로 몇 년에 한 번씩 올려야 한다. 내가 평생 가지고 있을 주택이고 임차인이 아니라면 말이다. 나중에 그 임차인은 시세대로 임대금액이 안 되면 나중에 이사를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서울에서만 나고 자란 나에게 서울은 대도시가 아니다. 그저 내가 살아가는 도시일 뿐이다. 과거에 비해 서울은 더 거대해졌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간다. 과거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지만 최첨단의 도시다. 최고급 주택과 쓰러져가는 주택이 공존한다. 점점 갈수록 이런 대비가 극명해졌다. 그렇기에 오래된 주택을 다시 새롭게 변모하자는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다소 갸웃하고 있다. 새 주택은 좋지만 터전을 잃은 사람에 대한 배려는 없다.

대안으로 현재 마을이 주목받고 있다. 과거로 회귀한다는 느낌도 있다. 과거에는 마을단위로 사람들은 거주했다. 마을 안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았다. 교통수단이 발전하지 않아 공동체처럼 마을 주민들이 함께 살았다. 그 안에서도 신분과 계층의 구분은 있었지만 말이다. 이를 위해 다른 국가의 도시를 들여다보는 책이 <이 도시에 살고싶다>인데 아무래도 대 도시보다는 소규모 도시를 주로 소개한다. 자전거로 모든 것을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네덜란드 하우턴 같은 경우다.


그 외에 박물관을 유치하며 도시가 살아난 빌바오도 소개한다. 쇠락하는 도시가 살아나려면 새 건물을 짓는다고 되지 않는다. 해당 도시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문화가 함께 어울러져야 가능하다. 바르셀로나는 너무 문화와 도시가 잘 융합되어 관광객의 천국이 되었지만 오히려 시민들은 불편하다고 한다. 오히려 너무 과도한 관광객을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적절한 조화가 참 어렵다. 서울에서도 연남동 같은 경우 동네주민끼리 잘 있었던 동네였다.


예술가들이 와 함께 어우러지며 동네가 유명해지고 사람들이 몰리며 정작 동네에 살던 원주민이 치솟는 임대료에 동네를 떠나게 되었다. 걔중에 착한 건물주도 있어 10년 동안 임대료를 올리지 않겠다고 계약하는 경우도 있다. 뒤늦게 건물을 매입한 사람으로써는 임대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 가치를 올린 것은 건물주인가 임차인인가. 함께 공존하는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며 건물주가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특색있는 임차인이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 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손해라는 표현은 어패가 있다.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다는 것이지 이익은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다. 나도 상대적으로 그렇게 한다. 내가 다소 손해를 보며 양보해도 그래도 이익이 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해 준다. 결국에 이 모든 것은 사회구성원들의 가치관, 개념, 기타등등이 어울리며 사회적 합의를 보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부러워하는 북유럽 같은 곳이 바로 개개인의 사회적 합의가 시간이 지나며 정착된 결과로 보인다. 한국은 지금까지 미국적 자본주의가 들어온 극단적인 결과로 보인다.


책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많고 참 좋다. 다만 책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그것들이 거의 대부분 소규모에서만 통용가능하다. 네덜란드 자전거도시도 인구가 늘어나며 그 비율이 줄었다고 한다. 책 마지막 장에 나온 마을들도 유명해지며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가야할 지경이다. 사실 모든 도시는 누구에겐 살고 싶고, 누구에겐 도망가고 싶다. 나에게 서울은 고향이기에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살고 싶다. 올라가는 주택가격에 어지럽긴 해도.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적절한 사진이 좀 아쉽다.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다양한 도시의 생존력


함께 읽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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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승리 - 교육의 승리


http://blog.naver.com/ljb1202/220505436216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내가 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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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가치 -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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