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토지 제1부 3 - 박경리 원작
박경리 원작, 오세영 그림 / 마로니에북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워낙 호흡이 긴 소설이라 그런지 3권에 들어와서 인물간의 속 사정이 하나씩 나온다.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는 솔직한 심정이 밝혀진다. 이전까지 병풍처럼 서 있다고 생각하던 인물이나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잘 몰랐던 인물들이 한 명씩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알려주마..식으로. 인간의 각자 사정이 있다.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한 인간이 갖고 있는 인식의 범위는 대부분 경험에서 나온다.


과거 책이 없던 시절에 인식 범위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교통수단이 발달되지 않아 같은 지역 안에 함께 부대끼는 지역민을 뛰어넘는 사고를 갖기 힘들었다. 양반들은 그나마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고 확장을 할 수 있었겠지만 그 아래 신분은 어쩔 수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사고가 깊어 질 수 없다. 하루 하루는 반복되고 만나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보니 자기들끼리 별의별 난리를 벌인다.


다른 사람을 만날 일도 드물고 딱히 새로운 문물을 접할 기회도 없다보니 자기들끼리 매일 같이 마주보며 똑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지금도 여전히 조금 더 확장되었을 뿐 변한 것은 없다고도 볼 수 있다. 한 개인이 움직이고 만나는 사람의 패턴은 한정적이다. 그 안에서 지지고 볶고 한다. 공간이 좀 더 확장되었을 뿐이다. 그래도 예전과 달리 지금은 좀 더 많은 사람과 문물이 있어 <만화 토지>처럼 그 지역 안에서만 사건, 사고가 나는 것이 아닐 뿐.


3권에서 최치수와 윤씨부인의 속 사정이 나온다. 왜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밝혀지고 최치수는 대범하거나 쿨해보였지만 안에서 삭고 삭은 감정이 뛰쳐나오며 실행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욕망 덩어리인 귀녀는 드디어 포섭당하는 척 하며 신분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을 한다. 이들 모두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과 지역을 뛰어넘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저 이것이 최선이라 여기며 움직인다. 


평사리에 살고 있는 모든 농민은 예전과 달리 자신이 살아가야 할 운명이라고 여기지 않지만 - 동학 혁명과 같은 새로운 개념을 이제 알게 되었으니 - 그저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으려니 하며 평사리 안에서만 좀 더 잘 살기를 희망할 뿐이다. 인간의 인식범위가 이런 이유로 중요하다. 아는 만큼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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