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시대 열린책들 세계문학 77
이디스 워튼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에 순수가 들어갔다. 순수는 아무 것도 섞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다는 뜻도 갖고 있다. 그만큼 <순수의 시대>가 제목이라 궁금했다. 뭐가 그렇게 순수할까라는 의문이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전혀 인식하지 못하다가 거의 마지막이 되었을 때 깨달았다. 정말로 순수하구나. 지금 관점에서 보니 순수한 것인지, 당시 관점에서도 순수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제목이 <순수의 시대>니 당시가 그랬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소설은 실제로 2명이 핵심이다. 뉴랜드 아처와 엘렌 올렌스카다. 나는 2명을 위주로 소설을 읽었는데 3명을 중요하게 본다. 뉴랜드 아처의 아내인 메이 웰랜드까지 3명이다. 이것도 똑같이 소설의 끝에 가서야 2명이 아닌 3명이 맞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볼 쌔 작가인 이디스 워튼이 얼마나 구조를 잘 짰는지 감탄하게 된다. 배경은 19세기 후반 뉴욕이다. 뉴욕에서도 상류 사회 출신 인물들이다. 뭔가 예의를 차리고 타인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는 느낌이 저절로 든다.

여전히 유럽의 영향이 컸기에 백작 등도 있지만 뉴욕만의 개방적인 문화도 있다. 유럽에서 어떤 가문이었는지가 여전히 뉴욕에서 영향을 미쳤다. 상류 사회가 다른 점은 문화 생활이다. 극장에서 다양한 공연이 이뤄진다. 이들은 당장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인물들이다. 이런 곳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누군가 파티를 열었을 때 참가하는 것도 예의다. 파티를 개최하기 위해 사람들을 초청하는데 거절한다면 큰 결례다. 누군가를 왕따시키기 위해서 거절한다.

소설 속에 그런 사례가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파티에 초청받았지만 참석하지 않으려 한다. 이럴 때 등장하는 것이 상류 사회에서도 탑급인 존재다. 이마저도 유럽에서 넘어 온 사람이 역할을 한다. 오히려 파티에 자주 참여하지 않으면서 존재감을 더욱 높게 한다. 아무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파티에 참여 의사를 밝히자마자 모든 사람이 동참한다. 이런 식으로 소설에는 19세기 후반의 뉴욕 상류 사회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보여준다. 실용적이지 못하고 허례의식이 크다.

이런 배경에서 뉴랜드 아처는 메이에게 청혼으로 약혼을 발표한다. 모든 사람이 축하하는데 뉴랜드는 오히려 주춤한다. 자신이 메이와 결혼하고 살아간다는 점에 대해 물 흐르듯이 가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엘렌 올렌스카 문제가 대두된다. 엘렌은 이혼을 하려 한다. 이 당시에 이혼한다는 건 분명히 쉬운 선택은 아니다. 더구나 엘렌은 백작 부인이다. 남편은 뉴욕이 아닌 유럽에 살고 있다. 생각보다 이미 이 당시에 이혼에 대한 생각이 닫혀있지는 않다는 느낌이었다.

분명히 이혼에 대해 찬성하지 않지만 배척하지도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가문을 중시하려는 문화로 볼 때 엘렌의 이혼은 탐탐치 않은 일이다. 될 수 있으면 이혼을 하지 않도록 설득해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 변호사인 뉴랜드가 엘렌을 찾아가기로 한다. 여기서 다소 놀랐다. 뉴랜드와 엘렌의 어떤 접점을 그다지 발견하지 못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둘은 만나자 마자 서로에게 첫 눈에 반한 것일까. 이해할 수 없지만 뉴랜드의 태도가 막판에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즉시 뉴랜드는 엘렌에게 직접적인 고백은 아니지만 함께 하자는 말을 한다. 엘렌도 그 말에 흔들리는 듯하지만 남자인 뉴랜드와 달리 엘렌은 좀 더 신중하다. 뉴랜드는 좀 더 급진적이고 감정에 충실한 편이다. 어떻게 보면 뒤를 생각하지 않고 실행하려 한다. 아마도 자신이 가진 모든 걸 포기하고 새롭게 출발했어야 한다. 이미 이혼을 결심했던 엘렌 입장에서는 오히려 찬성할 일이기도 했다. 엘렌은 자신만 생각하지 않고 가문과 여러 평판까지 전부 고려한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런 전개와 함께 1부가 끝난다. 조금이라도 둘의 관계가 연결될 것이라는 눈치를 챘으면 모르겠다. 그런 느낌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둘이 연결되니 놀랐다. 그것도 뉴랜드는 이제 막 약혼을 발표한 상태였는데 말이다. 둘이 대화할 때도 그다지 열정적이지 않았다. 다소 차분하게 서로 할 말을 하고 헤어진다. 뉴랜드 마음속에는 엘렌이 차지하고 있지만 딱히 행동하는 건 없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뉴랜드 입장에서 바라보고 설명을 한다.

엘렌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독자가 알지 못한다. 엘렌이 하는 말을 통해 뉴랜드와 똑같이 유추해 낼 뿐이다. 둘이 서로 사랑했을까라는 생각마저도 솔직히 든다. 뉴랜드가 엘렌을 좋아한 건 사실이지만 그마저도 조심했다. 자신이 엘렌을 좋아한다는 마음을 들키지 않도록 노력한다. 심지어 지레짐작으로 누가 알까봐 스스로 조심한다. 엘렌을 몇 번 찾아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럴 때마다 뉴랜드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만 그다지 직접적이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엘렌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대부분 차분하게 대처한다. 뉴랜드를 엘렌이 좋아하는 건 같지만 그게 사랑까지 일까라는 생각은 든다. 엘렌의 선택은 분명히 사랑하는 사람같지는 않았다. 사랑이 무서운 건 이성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우선이기에 자신의 상황이나 그 외 모든 걸 전부 뒤로 돌려버린다. 이성적인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사랑은 무조건 감정적이다. 뉴랜드도 언제나 항상 젠틀하고 순수하다. 엘렌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까지였다.

그 이상의 행동을 한 적도 없고, 스킨십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책 제목인 순수의 시대라는 표현이 딱 맞는다. 둘은 서로 현 상황에서 도망가자는 암묵적인 의견을 가졌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이 부분마저도 엘렌이 동의했는지, 뉴랜드의 감정적인 착각은 아니었을까하는 의문은 든다. 여기까지 둘 만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메이는 다소 한 발 떨어진 존재로 보였다. 거의 대부분 뉴랜드 관점이기 때문이었다. 메이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느낌은 든다.

책의 마지막에 가서야 메이가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했는지 깨닫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엘렌의 결정에 대해 뉴랜드는 절망하고 좌절한다. 메이 입을 통해 엘렌의 결정을 들을 때 더욱 그렇다. 여전히 엘렌에 대해 마음을 접지 못했지만 메이의 한 마디에 그는 책임을 택한다. 책임져야 할 일을 택한 후 아주 평범하게 산다. 소설은 연애 소설일 수 있다. 당시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이 감정이냐, 이성이냐에 어떤 식으로 결정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용기가 없던 걸까?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순수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