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사다리 - 불평등은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키스 페인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용어가 있다. 과거에는 위로 올라갈수 있는 사다리가 존재했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충분히 정상으로 갈 수 있다고 확신을 했다. 갈수록 사회가 고착화되고 시대가 역동성이 사라지면서 점점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이 약해졌다. 그 이유는 위에 있는 놈들이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진짜로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는지 사회가 워낙 안정되며 역동성이 사라져 그런지 모르겠다.


이 부분에 있어 보수쪽은 개인에게 집중하며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보쪽은 시스템을 언급하며 변경해야 한다고 말한다. 둘 다 틀린 것은 아니다. 양쪽이 노력하는 부분이 함께 같이 가야 하는 개념이다. 이럼에도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불평등이다.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개념이 종곡선이다. 두텁게 가운데가 블록하며 대부분 사람들이 모여 있다. 양극단에는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있다. 이렇게 볼 때는 이해하기 힘들다.


이를 다시 인간의 키로 보면 달라진다. 전체 소득의 80%가 발목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체 99%까지 해도 인간 키의 무릎까지도 못온다. 남은 1%가 무릎 이상을 전부 차지한다. 이런 상황이 바로 사람들이 불평등을 느끼는 구조다. 불평등의 개념에서 핵심은 사실 비교다.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가장 근복적인 이유다. 많은 소득을 버는 사람이 있어도 모든 사람이 전부 평등하다고 믿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불만을 갖지 않는다.


여기서 다시 철학적인 문제로 들어간다.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 개념이다. 우주 비행을 하고 있는데 잠이 깼다. 문제는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내가 부자인지, 가난한지를 모른다. 혼자 있기에 스스로 똑똑한지 멍청한지 여부도 모른다.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서서히 행성에 가까워 진다. 선택을 할 수 있다. 2개의 행성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한 행성은 불평등이 존재한다. 노예도 있고 빈부격차는 물론이고 계급도 존재한다.


다른 행성은 모든 사람이 전부 평등하다. 빈자와 부자의 차이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떤 행성을 택할 것인가. 내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무조건 후자의 행성을 택한다. 내가 가진자라면 전자를 택하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모든 리스크를 제거한 평등한 행성을 택해야 한다. 이게 바로 모든 불평등의 시작이다. 평등과 불평등은 상대적이다. 어떤 상황에서 공정한지 여부가 결정된다. 공정하다면 평등하다고 느낀다.

누구나 자신이 가진자이고 선택된 사람이라면 바로 전자 행성을 택한다. 왜 아니겠는가. 아무리 평등을 부르짖고 공정한 사회를 꿈꾸고 투쟁한다고 하여도 자신이 가진 자라는 사실만큼 좋은 일은 없다. 이처럼 불평등은 상대적이다. 경제적 빈곤은 바로 이 불평등에서 찾아온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 중에 1000년 전에 살던 왕보다 못 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당시 임금보다 더 잘 먹고 더 혜택을 누린다. 이건 부정할 수 없다.


과거에 더워도 인간이 부채질을 해야만 했다. 아무리 임금이라도 선풍기에서 나오는 바람을 사람이 이길 수 없다. 선풍기 바람이 훨씨 더 시원하다. 맛있는 음식마저도 지금이 훨씬 더 좋다. 그럼에도 지금이 더 살기 힘들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행복지수를 발표할 때 빈부격차가 심하면서 잘 사는 국가보다는 못 살지만 빈부격차가 적은 곳이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런 아이러니가 나오는 이유가 바로 불평등하다고 사람들이 느끼기 때문이다.


더 못사는 조건과 힘든 조건에서 사람들이 만족해 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다들 사다리를 타고 올라 갈 수 없는 환경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그렇다. 모든 걸 포기했기에 차라리 현 상황에 만족하고 즐겁게 살아가려 한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우매한 환경을 제시하고 가능성을 제거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반대로 무엇때문에 이런 사회적 현상이 생기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다리를 걷어찬 사람이나 기관이나 시스템 때문이 아니다. 그런 경우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벌어지는 현상이 평등에 역행하고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점 때문이다. <부러진 사다리>는 과거와 달라진 현 사회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다. 거의 대다수가 미국과 유럽에 치중하고 있다. 신분뿐만 아니라 종교와 인종문제까지 함께 다루고 있다. 갈수록 중간 단계가 사라지고 있다. 여기서 중간단계는 결코 중산층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산층이 많이 사라진 것이 아닌 과거보다 사람들이 중간단계가 아닌 양극단으로 의식이 고착화되어 그렇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 대해 존중하지 않고 배척하려 한다. 이런 점은 내 생각에는 솔직히 사회가 점점 안정화되어 가기 때문이라 본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역동성이 사라지며 사회가 더 잘살게 되었지만 개개인이 느끼는 불평등이 더 확대되어 그렇다. 문제는 갈수록 이런 상황이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책에서 소개한 공정한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한다. 빈부격차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환경이지만 누구나 똑같이 공정한 기회와 대접을 받는다면 불평등하다는 느낌은 갈수록 줄어들지 않을까. 북유럽이 가장 불평등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서 출발하니 말이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가볍게 읽을 줄 알았다.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묵직한 생각을 갖게 해 준다.


함께 읽을 책

https://blog.naver.com/ljb1202/221057415812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 노르딕 이론


https://blog.naver.com/ljb1202/220945548835

행복한 나라의 조건 - 얀테 법칙


https://blog.naver.com/ljb1202/153318422

부자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