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에서 계속 내고 있는 C. S. 루이스 선집들 중 하나다. 이번에는 제목에 나와 있는 것처럼 부활절 시즌을 겨냥한 책으로, 40일간 매일 루이스의 다양한 책들에서 뽑아낸 글을 하나씩(일부는 두 개씩) 읽도록 구성되어 있다. 두란노에서 자체적으로 기획한 건 아니고, 알라딘 검색을 해 보니 2017년에 나온 외서가 보인다. 10년 만에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온 셈.
일부 서간집의 내용과 루이스의 시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이미 홍성사에서 출판되어 있는 루이스의 저작에서 읽어봤던 글들이다. 때문에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책을 읽으면서 이 글은 어느 책에서 온 건지 맞춰가는 재미로 시작했고, 또 대부분은 비슷하게 맞았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면서 그런 ‘놀이’는 점차 잊히고 역시나 루이스의 글이구나 하면서 푹 빠져든다. 사실 두란노에서 이런 선집 시리즈를 내면서 기존의 홍성사 번역과 달리 경어체가 아닌 번역을 한 게 어색하다고 느꼈는데(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이번엔 좀 다른 식으로도(이제는 더 나오지 않는 새로운 글을 읽는 느낌?) 이해할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사순절에 맞춰 읽을거리를 만들다 보니, 죽음, 부활 같은 주제들을 중심으로 글을 모은 것 같다. 하지만 처음부터 루이스가 그런 목적으로 글을 쓴 것도 아닌지라, 정확히 그 분위기에 맞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또, 이런 선집의 특성상 매일 읽어가는 글들 사이에 연계라든지, 발췌한 부분 전후의 문맥을 알 수 없다는 점 등은 (시리즈 자체의) 아쉬운 부분이다. 다만 이건 선집이라는 형식이 갖는 한계인 거고, 늘 말하지만 그 가운데서 좋은 글을 발견했다면 전체 책을 찾아 읽어보면 될 일이다.
제목도 그렇고 책의 판형도 딱 손바닥만 한 것이 귀엽다. 하얀 바탕에 “귀여워”라는 제목만 딱 앉혀 놓은 표지도 담대하지만, 제목의 'ㅇ' 두 개마다 귀여운 얼굴이 들어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확실히 눈길을 끄는 표지. 도대체 이 책은 무슨 내용일까 궁금해 진다.
책은 “귀여움”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미학적, 역사적, 사회학적 연구를 담고 있다. 귀여운 표지와 달리 꽤 묵직한 방향이다. 여섯 명의 저자들의 글을 담고 있는데, 귀여움이라는 주제는 공통적으로 갖되 각 저자마다 약간의 집중점이 다르다.
물론 여러 저자가 쓴 글이니 만큼, 각 글마다의 수준이나 방향성이 제각각이다. 개인적으로는 귀여움에 관한 미학적 분석을 시도한 첫 번째 글과 역사적 맥락을 추적한 두 번째 글이 가장 인상적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귀엽다고 느끼는지에 관한 흥미로운 제안 중 하나가 ‘킨첸슈마’라는 개념이다. 이는 몸에 비해 큰 머리, 통통한 체형과 뺨, 큰 눈 같은 신체적 특징을 가리키는데, 마치 아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외형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보는 사람에게 아이를 보호하고 돌보고자 하는 행동양식을 유발하게 된다는 것.
정신영의 두 번째 글에서는 이 개념의 역사적 근원과 발전 과정을 추적해 간다. 귀여움 담론의 진원지는 일본인데, 70년대부터 대중문화 속 아이돌 가수나 만화 주인공들에게 특유의 귀엽고 순진하며 사랑스러움을 표방하는 존재들이 범람했다. “가와이이”라는 표현은 이들에 대한 찬사이자 감탄사일 뿐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인사가 되었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또 다른 흥미로운 포인트를 읽어낸다. 가와이이라는 개념에는 상대가 명백한 약자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 1988년 중병을 앓던 일왕 히로히토에 관한 보도가 나오자 이부 10대 소녀들이 그를 ‘가와이이 할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데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 타자를 귀여워할 수 있는 필수조건은 이쪽의 현저한 힘의 우위가 전제되었다는 것.
그러면서 일본 사회에서 이 개념이 유행하게 된 것은, 앞서 첫 번째 글의 내용과 연결된다. 생물학적 기준에서 귀여움은 더 힘 센 존재로부터 부호를 받기 위한 절심함의 표출인데, 패전 후 일본은 그런 미숙함의 표출을 통해 절대 강자인 승전국 미국 앞에서 자진해 약자로 포지셔닝을 했다는 것. 역사적 맥락의 해석으로는 흥미로운데, 과연 정말로 일본인 개개인들이 그런 이유로 귀여움에 빠져들었을까 하는 의심은 든다.
귀여움을 여성주의(3장)나 퀴어적 관점(5장)과 연결해서 설명하려고 하는 다른 글들은 조금은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준다. 특유의 목적의식이 지나치게 앞서서 주변의 주제들을 줄 세우는 모습. 귀여움을 장애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6장은 내용과는 별개로 귀여움과의 연관성이 조금은 약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전 세계 수 억 명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귀여워하는 동물이 있다. 바로 고양이다. 하루에도 시시때때로 추천되는 짧은 고양이 영상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시간을 써버릴 때가 많다. 이건 무해한 취미가 아닌가 하며 애써 변명하지만, 아무튼 내 시간을 잡아먹는 건 사실이다.(또 각종 고양이 굿즈에 들어간 돈을 생각하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귀여워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무슨 이유인지 한 번쯤 고민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작업이다. 이런 게 인문학의 매력.
일본의 임종기 의료 전문가 나가오 가즈히로는,
사람들이 맛집은 열심히 찾아다니면서
정작 자신의 마지막에 대해선 무작정 의사에게 맡겨버린다고 꼬집었다.
정말 그렇다.
죽음을 위해 한 끼 식사 만큼의 노력도 안 하다니
한심하지 않은가?
- 김이경, 『애도의 문장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