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도 그렇고 책의 판형도 딱 손바닥만 한 것이 귀엽다. 하얀 바탕에 “귀여워”라는 제목만 딱 앉혀 놓은 표지도 담대하지만, 제목의 'ㅇ' 두 개마다 귀여운 얼굴이 들어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확실히 눈길을 끄는 표지. 도대체 이 책은 무슨 내용일까 궁금해 진다.
책은 “귀여움”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미학적, 역사적, 사회학적 연구를 담고 있다. 귀여운 표지와 달리 꽤 묵직한 방향이다. 여섯 명의 저자들의 글을 담고 있는데, 귀여움이라는 주제는 공통적으로 갖되 각 저자마다 약간의 집중점이 다르다.
물론 여러 저자가 쓴 글이니 만큼, 각 글마다의 수준이나 방향성이 제각각이다. 개인적으로는 귀여움에 관한 미학적 분석을 시도한 첫 번째 글과 역사적 맥락을 추적한 두 번째 글이 가장 인상적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귀엽다고 느끼는지에 관한 흥미로운 제안 중 하나가 ‘킨첸슈마’라는 개념이다. 이는 몸에 비해 큰 머리, 통통한 체형과 뺨, 큰 눈 같은 신체적 특징을 가리키는데, 마치 아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외형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보는 사람에게 아이를 보호하고 돌보고자 하는 행동양식을 유발하게 된다는 것.
정신영의 두 번째 글에서는 이 개념의 역사적 근원과 발전 과정을 추적해 간다. 귀여움 담론의 진원지는 일본인데, 70년대부터 대중문화 속 아이돌 가수나 만화 주인공들에게 특유의 귀엽고 순진하며 사랑스러움을 표방하는 존재들이 범람했다. “가와이이”라는 표현은 이들에 대한 찬사이자 감탄사일 뿐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인사가 되었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또 다른 흥미로운 포인트를 읽어낸다. 가와이이라는 개념에는 상대가 명백한 약자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 1988년 중병을 앓던 일왕 히로히토에 관한 보도가 나오자 이부 10대 소녀들이 그를 ‘가와이이 할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데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 타자를 귀여워할 수 있는 필수조건은 이쪽의 현저한 힘의 우위가 전제되었다는 것.
그러면서 일본 사회에서 이 개념이 유행하게 된 것은, 앞서 첫 번째 글의 내용과 연결된다. 생물학적 기준에서 귀여움은 더 힘 센 존재로부터 부호를 받기 위한 절심함의 표출인데, 패전 후 일본은 그런 미숙함의 표출을 통해 절대 강자인 승전국 미국 앞에서 자진해 약자로 포지셔닝을 했다는 것. 역사적 맥락의 해석으로는 흥미로운데, 과연 정말로 일본인 개개인들이 그런 이유로 귀여움에 빠져들었을까 하는 의심은 든다.
귀여움을 여성주의(3장)나 퀴어적 관점(5장)과 연결해서 설명하려고 하는 다른 글들은 조금은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준다. 특유의 목적의식이 지나치게 앞서서 주변의 주제들을 줄 세우는 모습. 귀여움을 장애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6장은 내용과는 별개로 귀여움과의 연관성이 조금은 약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전 세계 수 억 명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귀여워하는 동물이 있다. 바로 고양이다. 하루에도 시시때때로 추천되는 짧은 고양이 영상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시간을 써버릴 때가 많다. 이건 무해한 취미가 아닌가 하며 애써 변명하지만, 아무튼 내 시간을 잡아먹는 건 사실이다.(또 각종 고양이 굿즈에 들어간 돈을 생각하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귀여워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무슨 이유인지 한 번쯤 고민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작업이다. 이런 게 인문학의 매력.
일본의 임종기 의료 전문가 나가오 가즈히로는,
사람들이 맛집은 열심히 찾아다니면서
정작 자신의 마지막에 대해선 무작정 의사에게 맡겨버린다고 꼬집었다.
정말 그렇다.
죽음을 위해 한 끼 식사 만큼의 노력도 안 하다니
한심하지 않은가?
- 김이경, 『애도의 문장들』 중에서
책 제목이 조금 생소할 수 있다. 특히 신학을 전공하지 않았거나, 최소한 헬라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더욱 그럴 터. 책 제목에 쓸 정도면 이 책의 내용에서 “에고 에이미”라는 구문이 꽤 중요하게 다뤄질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란, 영어의 I am과 비슷한 용법이다. “에이미”는 영어 be동사와 유사한 에이미동사의 1인칭 단수형인데, 영어로도 어떤 문장에서 I am 이라고만 끝마치면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처럼, 헬라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저자는(그리고 여러 학자들은) 이런 조금은 어색한 구문에서 특별한 신학적 의미를 찾아낸다. 이 표현은 구약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으로 계시하셨던 “여호와”(저자는 또 여기에서 히브리어 본래 발음에 더 가까운 건 ‘야웨’라고 쓰는데, 애초에 이 단어의 정확한 발음을 모른다는 상황에서 야웨가 더 가까운 발음이라는 것 또한 추측일 뿐이다.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기에 기억과 전승을 통해서 단어를 발음하는데, 일부에서는 ‘야웨’의 모음은 ‘그 이름’이라는 뜻의 “하 쉠”이라는 단어에서 모음을 가져다가 붙였을 뿐이라고 보기도 한다)라는 이름과 같은 의미라는 것. “여호와”라는 단어의 의미로 추정되는 것 중 하나가 “나는 나다”, 혹은 “나는 스스로 존재한다”라는 데에서 의미적 유사성이 있다는 말.
그렇게 저자는 “에고 에이미”라는 구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한 신성 주장을 읽어낸다. 다만 이 주장에는 한 가지 반론도 존재하는데, 요한복음에서 “에고 에이미”라는 구문을 말한 예수님 이외의 인물이 존재한다는 점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이 사람이 정말 그 사람이 맞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하자, 그가 나서서 말한다. “에고 에이미”. 번역하면 “나야(나 맞아)”다.(요 9:9) 그렇다면 이 표현이 예수님만 사용하신 독특한 표현이라는 주장이 조금 헐거워진다.
물론 그것(요 9:9)과는 상관없이 요한복음의 저자가 예수님의 신적 주장이라는 의미를 담아 이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했다고 보는 것도 크게 무리한 주장은 아니다. 어쨌든 요한복음에서는 이 구분이 반복되면서 예수님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다양한 모습으로 계시하셨으니까. 거기에 집중하면 된다.
다만 책에서 빠진 설명이 하나가 있는데, “에고 에이미”라는 구문이 갖는 또 한 가지의 독특한 점은 헬라어 동사에는 애초에 성과 수가 다 포함되어 있어서, 굳이 주어(이 경우에는 “에고”)를 붙이지 않아도 뜻이 통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에이미”라고만 써도 “나는 ~이다”라는 의미가 다 있다. 여기에 굳이 1인칭 주격 대명사인 “에고”를 붙이면 이중으로 “나”를 강조하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조금 의역하면 “그게 바로 나다” 정도일까.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자기 계시는, 그렇게 시작한다.
책은 요한복음의 “나는 ~이다”라는 아홉 개의 본문과 저자가 생각하기에 중요하다고 여기는 또 한 가지 주제를 각 장에 펼쳐서 설명한다. 리뷰 초반에 “에고 에이미”라는 표현에 트집 아닌 트집을 잡았지만, 책 내용 자체는 표준적이고 안정적인 해석과 적용이 담긴 설교문이라는 느낌이다.
사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나는 ~이니”라는 연속되는 구절들은 내용도 아름답고, 깊은 교리적 진리를 담고 있어 사랑받는 본문들이다. 이런 긴 강화는 다른 복음서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요한복음만의 독특한 특징적 본문이다. 책은 이 본문들을 너무 어렵지 않게 잘 설명한다. 누구에게 권해 줘도 나쁘지 않을 만한 책일 것 같다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