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저자는 “에고 에이미”라는 구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한 신성 주장을 읽어낸다. 다만 이 주장에는 한 가지 반론도 존재하는데, 요한복음에서 “에고 에이미”라는 구문을 말한 예수님 이외의 인물이 존재한다는 점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이 사람이 정말 그 사람이 맞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하자, 그가 나서서 말한다. “에고 에이미”. 번역하면 “나야(나 맞아)”다.(요 9:9) 그렇다면 이 표현이 예수님만 사용하신 독특한 표현이라는 주장이 조금 헐거워진다.
물론 그것(요 9:9)과는 상관없이 요한복음의 저자가 예수님의 신적 주장이라는 의미를 담아 이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했다고 보는 것도 크게 무리한 주장은 아니다. 어쨌든 요한복음에서는 이 구분이 반복되면서 예수님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다양한 모습으로 계시하셨으니까. 거기에 집중하면 된다.
다만 책에서 빠진 설명이 하나가 있는데, “에고 에이미”라는 구문이 갖는 또 한 가지의 독특한 점은 헬라어 동사에는 애초에 성과 수가 다 포함되어 있어서, 굳이 주어(이 경우에는 “에고”)를 붙이지 않아도 뜻이 통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에이미”라고만 써도 “나는 ~이다”라는 의미가 다 있다. 여기에 굳이 1인칭 주격 대명사인 “에고”를 붙이면 이중으로 “나”를 강조하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조금 의역하면 “그게 바로 나다” 정도일까.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자기 계시는, 그렇게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