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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대리인 ㅣ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3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민심이라고? 너는 민심을 몰라.
그런 고상한 행동만 하면, 로마는 수도원이 돼버려.
사람들은 한때는 감동도 하겠지만 금방 싫증이 나버릴 거야.”
[ 요약 ]
르네상스로 알려진 시기의 종반부를 살았던 네 명의 교황에 관한 이야기다. 비오 2세, 알렉산데르 6세, 율리우스 2세, 레오 10세가 그들이다. 네 명의 인물은 언급된 순서로 교황의 자리에 오르는데, 각기 나머지의 교황들과는 구분되는 독특한 면들을 지니고 있다. 흔히 많은 교황들이 거의 무색무미의 재위 기간들을 보내다가 사라져버린데 반해, 이 네명의 교황들이 연이어 올랐던 이 시기는 좀 이례적이라고 하겠다.
먼저 비오 2세는 노구의 몸을 이끌고 다시 한 번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려 했던 교황이다. 이전에 마지막으로 일어났던 십자군과는 무려 200년이 넘는 시차가 있었다. 시대는 물론 사람들도 변해버린 상태. 이미 민족국가의 개념은 거의 기정사실화가 된 그 시대에 과연 새로운 십자군의 결성은 가능했을까.
알렉산데르 6세는 사보나롤라라는 이름을 가진 피렌체의 수도사와의 대결로 알려진 인물이다. 또, 체사레 보르자라는 ‘아들’(양자도 아니고 친아들)을 통해 이탈리아의 지배를 꿈꿨던 인물이기도 하다. 나나미 여사는 알렉산데르 6세와 사보나롤라 사이에 오고갔던 서신 등을 근거로, 알렉산데르 6세의 교활함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율리우스 2세는 즉위 초부터 직접 전장터를 돌아다녔던 교황이었다. 물론 그의 개인적인 용명을 떨친 적은 없었지만(그러기엔 나이가 너무 많았다.) 제법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율리우스 2세의 공적은, 이탈리아 반도에 영향력을 끼치려는 강대국들(주로 프랑스나 스페인, 독일 등의)의 ‘독’들을 또 다른 ‘독’과의 연합을 통해 물리쳐 낸 일이다. 그의 재위 기간 내에 적과 파트너들은 계속해서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율리우스 2세의 연극에 배우로서 참여하는 듯 했지만, 결국 그가 죽기 직전 최후로 남겨진 것은 전혀 변하지 않은, 아니 좀 더 악화된 것 같은 이탈리아의 상태였다.
마지막인 레오 10세는 시오노 나나미가 ‘마지막 귀족적인 교황’이라고 부르는 인물이다. 세 사람의 교황의 재산(전임 교황인 율리우스 2세의 저축금, 자신의 재산, 다음 교황이 떠맡은 빚)을 탕진한 인물로 이름이 높았던 그는, 통치를 하는 내내 물 쓰듯 돈을 낭비했던 인물이다.
이런 인물들이 ‘신의 대리인’의 자리에 올랐던 시기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시오노 나나미는 딱딱한 ‘설명’이 아니라 리드미컬한 ‘이야기’로 이 시기를 잘 포착해내고 있다.
[ 감상평 ]
네 명의 개성 있는 교황들을 통해,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는 당시의 독특한 시대적 분위기를 그려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채 500페이지가 안 되는 분량으로, 그것도 많은 내용을 담기에 ‘효율적’인 ‘설명’이라는 방식이 아니라, 그 반대인 ‘이야기’라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그 당시 상황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중에서도 저자는 뛰어난 통찰력으로 중요한 포인트들을 잡아냄으로써, 하나의 이어지는 이야기로 구성해낸다는 쉽지 않은 작업을 훌륭하게 해 내고 있다.
군데군데 시오노 나나미 특유의 강력한 반 종교적 사관이 엿보인다. 예컨대 저자는 글의 시작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독설’을 퍼붓는다.
‘지나친 금욕은 흔히 광신의 온상이 된다. 금욕생활로 몸은 수척해지지만, 상상력은 오히려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정의라고 믿고, 자신이 믿는 것은 모두 신의 계시라고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신의 선택을 받은 자신이 그 계시를 지상에 구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그들의 가슴을 활활 타오르게 한다.’
한 인물의 평생의 작업을, 저자는 배고픔으로 인한 정신착란쯤으로 평가절하 해버린다. 그것도 저자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정세판단과 어긋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이쯤 하면 슬슬 시오노 나나미의 강력한 반 종교적 성향에 인상부터 찌푸려진다. 저자가 쓴 20권이 넘는 책들을 직접 읽어 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자의 종교분야에 관한 독선과 아집은 점점 완고해져만 가는 듯 하다.
역시 역사란 단편적으로 알아서는 부족하다. 책을 읽기 전에 서로 다른 세 권의 책을 통해 이 책에 등장하는 교황들 중 세 명에 관해서는 이미 접해 봤었지만, 그들이 이런 식으로 연이어 교황이 되었다는 것과, 그들의 정책 사이에 나타나는 중심추의 독특함, 그리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 등에 관한 지식은 이 책을 통해서 정리하게 되었다. 용케도 흥미로운 시기를 잘 포착해 이야기로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를 싫어하는, 아니 때때로 조롱하고 경멸하는 사람이 쓴 기독교 인물에 관한 이야기.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시종일관 독설과 비난일색인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한 사람(비오 2세)만 빼고는 나머지 교황들이 순수하게 ‘종교적인’ 인물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꼭 교회 역사에 관심이 있지 않더라도, 르네상스 시기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관해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만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