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파괴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적이야말로 구세주다.

적의 존재만으로도 인간은 충분히 역동적으로 살 수 있다.

적이 있음으로써 삶이라는 이 음울한 사건은 웅장한 서사시가 되는 것이다.

 

 

 

[ 요약 ]

 

        일본에서 태어나서 살다가 일곱 살 때 중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한 벨기에 소녀의 이야기다. 이런 유랑의 삶을 살게 된 이유는 그녀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직업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외교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 이야기는 여기서 끝. 이 소설은 일곱 살짜리 소녀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중국 주재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베이징의 외국인 거주 구역으로 이사를 온 소녀. 비록 어린 나이었지만 소녀는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피부로 느낀다. 남다른 관찰력과 깊은 사고를 좋아하는 소녀는 ‘공산주의 국가란 선풍기가 있는 나라’라는 독특한 고찰을 한다. 공산주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경색된 느낌과 경제적인 빈곤을 매우 잘 잡아낸 고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이야기가 ‘일곱 살짜리의 눈으로 본 공산주의 사회’와 같은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아이는 아이일 뿐. 이야기는 외국인 거주 지역이라는 폐쇄된 지역에서 벌어진 아이들 사이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이 이야기에는 ‘전쟁’이 두 번 등장한다. 하나는 독일인 아이들과 여타의 유럽지역 아이들로 구성된 ‘연합군’과의 ‘골목전쟁’이다. 소녀는 연합군의 일원이 되어 독일인 아이들을 골탕 먹이고 괴롭힌다. 하지만 이런 ‘외적인’ 전쟁 말고도 또 하나의 전쟁이 소설에는 숨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밀고 당기기’가 그것이다.

 

        두 건의 거대한 전쟁에 직접 참여한 일곱 살짜리 소녀의 이야기. 저자는 소녀의 눈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가면서,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소녀의 심리상태를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 감상평 ]

 

        책의 표지 바로 다음 장에 저자의 통통한 얼굴이 실려 있다. 책이 발행일이 1999년이라서 그런가? 최근에 나오는 책들에 실려 있는 갸름한 얼굴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화장기술, 혹은 촬영, 조작 기술의 발달인지, 아니면 대대적인 다이어트를 감안한 것인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뭐 아무려면 어떤가, 아멜리 노통브가 쓴 책이 아닌가. 작가가 쓴 다른 책들에서 받은 ‘감동’이 어느 정도 이상이었기에, 저자의 이름만 보더라도 이제는 손이 가게 되어 버렸다.

 

 

        책장을 넘기면서 자연스럽게 든 생각은, 저자의 다른 소설인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이라는 책과 유사한 분위기라는 것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이 세살짜리 아이의 눈으로 본 일본 세계라는 주제였다면, 이 소설은 일곱 살짜리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이니까.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시각을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두 책은 비슷하다. 사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은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과 이어진다.

 

        하지만 내용상으로 넘어가면 좀 다른 느낌이다. 앞의 책이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는 세 살짜리 꼬마가 바라본 세상의 경이로움이 주요 주제라면, 이 책은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조금 더 성장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여전히 소녀는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이해하지만, 뭐 소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철저히 ‘나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하지 않는가.

 

 

        작가가 비교적 초기에 쓴 이야기라서 그런지, 최근에 나온 책들과는 달리 왠지 풋풋한 느낌도 드는 책이다. 하지만 아멜리 노통브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처음부터 이 책을 읽으라고 추천하기에는 약간 어려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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