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일본 경시청 공안부 외사과. 일본 내 테러리스트들과 외국 스파이들의 활동에 대항한 대첩보활동을 전담하는 부서이다. 어느 날 북한의 테러리스트가 핵물질을 입수하고, 일본제 기폭장치까지 얻으려 한다는 첩보가 입수되었고, ‘마물’이라고 불리는 전설적인 외사과 형사 스미모토 겐지의 팀이 사건을 맡아 수사를 진행한다.

 

     용의자의 주변 인물들을 포섭하고, 신분을 위장한 채 조직에 침투하는 등, 한국과 일본을 오고가며 핵 테러를 막기 위한 양국의 수사기관들이 벌이는 치열한 머리싸움이 펼쳐진다.

 

 

 

2. 감상평 。。。。。。。   

 

     나름 괜찮은 액션 스릴러 물이었다. 일본에선 꽤 유명한 텔레비전 드라마 시리즈라고 하던데, 그 인기를 바탕으로 이렇게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다고 한다. 제법 많은 한국 배우들이 참여하긴 했지만, 일본 제작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준다. 요샌 아이리스 같은 드라마를 통해서 총격전이 좀 나오는 편이지만, 여전히 총기규제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총질을 해 대는 것도 그렇고, 스케일이 제법 커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드라마적 요소가 강하다.

 

     빠르게 화면이 전환되고,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며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높게 산다. 특히 연기파 배우들이 등장해서 극에 몰입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다만 주연인 스미모토 겐지 역의 와타베 아츠로의 한국어 대사처리는 많이 노력을 했다지만 여전히 자막 없이는 발음을 정확하게 이해하기가 좀 어려웠다. 또, 드라마를 배경으로 제작된 극장판 영화이기 때문인지, 각 배우들의 독특한 캐릭터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예컨대 앞서 언급한 스미모토 겐지는 왜 ‘마물’이라고 불리는가)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는 관객들을 위한 것이었을까.

 

 

 

     다만 판을 크게 벌였음에도 왜 판이 그렇게 커졌는지, 혹은 왜 그런 식으로 수사를 진행하는지 딱히 납득이 되지 않게 하는 설명 부족이 아쉽다. 예를 들면 영화 초반부터 핵무기를 부단히 만들려고 했던 북한 테러리스트는 왜 그런 일을 시도하고 있는 건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설명되지 않고 있고, 굳이 일본 내 북한공작원의 집에 들어가는 데 그의 아내를 이용해야만 하는지(그냥 자기들이 들어가면 되는 거 아냐?), 또 리모컨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오리를 그녀의 두 딸과만 아무런 보호 없이 내버려둔 이유 같은 것들은 치밀한 수사관들의 방식이라고는 잘 납득이 안 된다. 사건을 키우고 꼬는데 집중한 나머지 너무 쉬운 데서 허점을 보인다.

 

 

     심심하지 않게 볼 만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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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과 ‘블루 드레스’ - 사면, 역사 바로 세우기와 국민 통합

 

 

영화 ‘26년’이 한동안 흥행을 일으켰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 희생된 이들의 아이들이,

‘그 사람’을 처단하기 위해 나선다는 이야기입니다.

강풀이라는, 노력하는 웹툰 작가의 탄탄한 원작과 캐릭터 위에

두 주연 배우인 진구와 한혜진의 연기력이 적절하게 녹아들면서

꽤나 괜찮은 작품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좀 더 주목을 받는 이유는

역시나 실제 인물과 사건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 민간인을 학살하고,

수 천 억의 비자금을 챙기고도 자신은 29만원 밖에 없다면서,

종종 적반하장식의 어이없는 발언을 쏟아내는 그 사람 말입니다.

일각에는 그 사람을 영웅시 하는 이들도 있지만,

뭐 이 글은 정상인을 위한 거니까 특별히 언급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 사람’과 같은 뻔뻔한 사람들이 자꾸 나오는 이유는

역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법체계 탓이 큽니다.

당초 내란죄로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전씨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퇴임을 얼마 앞두지 않은

1997년 12월 22일 지역감정 해소 및 국민 대화합이라는 명분아래

전격적으로 사면됩니다.

군부독재 세력인 노태우와 손을 잡고 3당 합당을 추진해

결국 대통령까지 되었던 김 전 대통령으로서는

마음이 빚을 그런 식으로 해소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자칭 문민정부를 표방했던 민주정권에서 수여된 이런 식의 사면은

당초의 명분은 전혀 달성하지 못한 채

범죄자들에게 면죄부만 주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외부의 적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는 것이 임무인 군대를

도리어 국민들을 죽이고 억압하는 도구로 전락시킨

극악한 범죄자를 풀어주고 벌을 면제해 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국민화합에 도움이 되는지

누구도 설명하지 않았고,

결과는 오늘날 보는 바와 같습니다.

 

역사는 그렇게 잘못 쓰였고,

범죄자들 뻣뻣하게 목에 힘을 주고 다니며,

재임 시 빼돌린 돈으로 사치스럽게 사는 꼴을 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그런 인물을 추종하는

비정상적인 이들까지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구요.

 

사면은 근본적으로 삼권 분립을 규정한

헌법을 무력화시키는 초헌법적 개념입니다.

사법부의 결정을 무효화 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대략적인 관례라는 것이 있긴 하지만,

이건희 단독 특사에서 볼 수 있듯이 얼마든지 무시되기도 합니다.

야당이나 시민사회의 반대와 비난은 잠시 귀를 막으면 되고,

잠시 얼굴에 철판만 깔면 비리로 구속 중인 측근들을

빼내오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물론 사면을 통해서 행정적이고 사법적으로 엉킨 문제들을

단 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없진 않지만,

지금처럼 어떤 원칙도 없이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이와 관련해 알비 삭스의 ‘블루 드레스’라는 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초대 헌법 재판관 중 한 명이었던 그는

악명높은 인종차별정책에 맞서 변호사로서 싸워왔습니다.

그 와중에 정부에서 보낸 공작원들이 설치한 폭탄으로

한쪽 팔과 눈을 잃어버리는 사건까지 겪습니다.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의 대통령이 되고

‘아파르트헤이트’가 끝났을 때,

그는 헌재 재판관으로 지명됩니다.

 

헌재 재판관으로써 그는 차별정책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

분열된 국민들의 마음을 통합시키는 큰 책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당면한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이전 정부가 저지른 각종 불법적인 사건들을

어떤 식으로 정리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전 국가적으로 자행되었던 범죄와 공작들을

모두 밝혀내 처벌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우선 관련자들이 너무나 많았고, 증거는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알비 삭스를 비롯한 재판관들과 정치인들은

과감히 ‘사면’이라는 카드를 꺼내듭니다.

국민통합과 미래지향적 가치의 정립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의 경우와는 좀 다른 과정이 보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난 과오를 공적으로 시인하고,

자발적으로 그 불법적 사건들을 입증하는 이들에게만

사면이라는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국민통합이었습니다.

이전에 과오를 저질렀던 사람들도 사면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 제도는 당사자들의 직접적인 증거 없이는

그 전모를 밝히기 어려웠던 과거의 어두운 사건들을

역사의 빛 아래 밝히 드러내는 결과도 가져왔습니다.

말 그대로 과거사를 바르게 세우게 된 것이죠.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굵직굵직한 사면들은 어떻습니까?

대통령 자신의 정치적 빚을 청산하기 위한 도구나

과거를 덮어버리고 털어내는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았습니까?

역사가 바로 서지 못하니

과거 총과 폭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던 독재자와

그에 빌붙어 살던 것을 충성으로 포장하는 기회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전성기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회상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대통령의 모든 통치 행위는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가 가진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한다면 말입니다.

사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처럼 그저 대통령 개인의 기분에 좌우돼서는 안 됩니다.

보다 투명하고 합리적인 절차와 규정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국가반역죄를 저지르고 수감된 폭력배나

엄청난 금액의 경제범죄를 저지른 마피아 두목 같은 이들을

국민 중 하나인 대통령이 제멋대로 풀어주는 일은

용납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면이 이루어질 때마다

통치자들은 국민통합과 같은 좋은 가치들로 이를 포장합니다.

실제로 발표되기 전까지 꽁꽁 숨겨두다가

어떤 공론이나 여론을 모으는 작업도 없이

당일이 되어서야 전격적으로 발표하고 숨어버리는 건

마치 무엇이 국민을 통합시킬 수 있는지,

무엇이 나라의 미래를 위한 것인지는

오직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다는 오만한 태도일 뿐입니다.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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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감 레슨 - 불안에서 평안으로 이끄는 수업
카론 필립스 굿먼 지음, 유진숙 옮김 / 예수전도단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1. 요약 。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난 이후에도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여전히 근심과 걱정, 불안이 찾아온다. 무엇이 문제일까?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근본적인 안정감을 부여해줄 수 있는 ‘하나님과의 동행’이라는 주제에 관해 말하고 있다.

 

    매 챕터의 시작은 저자와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부딪히는 문제들을 제시하고, 이어지는 내용들에서는 그 문제들을 위한 조언들을 덧붙이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2. 감상평 。    

 

     책 내용이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좀처럼 책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대화를 묘사해 둔 부분은 종종 오글거리기까지 하고, 내용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이것을 해라, 저것을 해라 하는 식의 명령문들만 반복되다보니 금방 지치고, 페이지가 진행되어도 딱히 내용상 발전이 느껴지지 않고 나왔던 이야기들의 반복처럼 보인다. 저자가 ‘규칙’이라고 말하는 것들에서 딱히 어떤 원칙성이나 규칙성이 보이지도 않으니..

 

     다시 말하지만, 책의 내용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거나, 혹은 너무 어렵다거나 뭐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책이 주관적으로 쓰였다는 느낌이 드는 게, 사람들이 직면하는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하게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딱히 내 상황을 날카롭게 분석해내고 있구나 하는 공감대가 잘 형성되지 않는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 안에서 읽은 탓도 있었겠지만, 저자의 글쓰기 방식이 나와는 잘 맞지 않는 게 아닌가 싶다. 아마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나 문제에 대한 원리적 차원에서의 분석 없이, 바로 처방들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이 주요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간만에 묘하게 안 읽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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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
익스트림 필름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1. 줄거리 。。。。。。。     

 

     이탈리아 남부의 한 작은 마을. 염소를 치는 노인은 자신의 병을 낫게 해 줄 것이라는 기대로 염소젖과 바꾼 성당 바닥의 먼지를 매일 밤 물에 타 마신다. 날이 밝으면 염소들을 데리고 집근처 풀밭으로 나갔다가 저녁이 되면 돌아오는 일상의 반복. 어느 날 평소와는 다르게 노인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와 함께 다니던 개만 요란하게 짖는다. 작은 사고로 우리가 무너지면서 염소 떼가 밖으로 쏟아져 나왔고, 집까지 들어온 그 중 몇 마리를 바라보며 노인은 숨을 거둔다.

 

     그러나 염소를 치는 일은 누군가에 의해 계속되고, 새로 태어난 새끼 염소 한 마리는 산에서 길을 잃는다. 다른 것들보다 월등하게 키가 컸던 나무 한 그루는 베어져 마을의 축제에 사용되고, 축제가 끝난 후에는 숯가마로 넘겨져 숯으로 변한다.

 

 

2. 감상평 。。。。。。。     

 

     대사 한 마디 없이 염소들 목에 달려 있는 종소리와 교회의 종탑, 개가 짖는 소리와 바람이 풀과 나무들을 스치는 소리들로만 사운드를 구성한 영화. 사람들은 몇 마디를 나누는 장면도 있으나, 그런 부분은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 속으로, 혹은 카메라를 뒤로 멀리 빼 대화가 들리지 않게 처리한다. 목소리를 인위적으로 줄이고 말 그대로 자연의 소리를 담아내려고 한 작품.

 

     당연히 감상이 쉽진 않다. 특별히 주인공이 누구인지 말하기도 어렵고, 사건의 전개라고 할 것도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영화 속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불분명하다. 매일처럼 규칙적인 노인의 삶은 이게 앞에 나왔던 장면인지 새로운 장면인지마저 헛갈릴 정도이고, 영화의 구성 자체도 가장 처음과 끝이 동일하게 숯가마를 비춰주고 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말 그대로 자연(自然)을 담아낸 영화라고 할까.

 

 

     영화엔 시간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되풀이된다는 식의 윤회론적 시간관이 두드러진다. 누군가는 죽고, 또 누군가는 새롭게 태어나고, 울창하게 자란 나무는 베어져 숯이 되고, 다시 숯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그 가운데 사람과 염소는 딱히 달라 보이지 않는다. 결국 말하고 싶은 건 이런 건가.

 

     사람들이 예술영화라고 하고, 영화의 형식 자체도 좀 파격적이라 뭔가 감동을 느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들기도 하지만... 어쩌랴.. 딱히 그렇겐 하기 싫은 걸. 영화 자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해 일부러 멋들어진 문장들을 남발하며 짐짓 젠 체 하는 건 내 취향도 아니고. 영화 속 비어 있는 공간들은 과도하게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기 보단 그냥 비어 있는 채로 내버려두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영상 속 염소들의 모습이 예쁘다. 어떻게 이런 장면들을 연출(?)했나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염소들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영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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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적 금융 사회 - 누가 우리를 빚지게 하는가
제윤경.이헌욱 지음 / 부키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1. 요약           

 

     가계 부채가 1000조가 넘어 간다는 우리나라. 60%가 넘는 가계가 빚을 안고, 이고 살아가는 상황은 위기임이 분명하다. 1부에서 과도한 빚으로 초래된 비참한 상황을 보여주는 두 명의 저자들은, 2부에서는 이렇게 된 상황의 일차적인 원인을 계획 없이 빚을 내기 시작한 채무자들에게서 찾는 대신, 정확한 설명 없이, 나아가 정보를 감추고, 자신들에게 (과도하게) 유리한 방식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은행과 대부업자들, 나아가 빚을 권하는 정책을 펴는 정부와 언론의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3부에서는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어렵게 만드는 제도와 벽을 비판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몇 가지 제언들을 담고 있다.

 

 

 

2. 감상평 。。。。。。。   

 

     우리는 이제까지 과도한 빚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비판해왔다. 갚을 능력도 없으면서 과도한 빚을 내 흥청망청 써 버린 무책임한 인간, 뭐 이런 이미지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들은 정반대의 주장을 한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은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신용을 제대로 평가하지도 않은 채 무조건 돈을 빌려주고, 값을 수 없게 되면 담보를 뺏어 가면 그만이라는 식의 편의주의적 영업태도를 가지고 있는 채권자들의 약탈적 경영행태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채무자들은 일종의 피해자로 그려진다.

 

     일견 일리 있는 주장이다. 나 같은 사람한테도 뭘 믿고, 무담보로 몇 천 만원씩 빌려줄 수 있다는 문자 메시지가 날아오는 걸 보면 이들은 뭔가 꿍꿍이속이 있는 게 분명하다. 이 책은 그들의 ‘꿍꿍이 속’이 어떤 것인지를 밝히 드러낼 뿐만 아니라, 가계 대출을 늘림으로써 손쉽게 경기부양 효과를 얻으려는 정부의 몰지각한 정책결정과 이에 호응하듯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각종 제도들, 그리고 이 허점을 파고들며 집요하게 채권자들을 말려 죽여가고 있는 은행과 대부업자들, 이 소름끼치는 상황을 정상적인 것이라고 끊임없이 세뇌시키는 수준 이하의 언론들(특히 ‘한국경제’, ‘머니투데이’ 등 자칭 경제신문을 자처하는 찌라시들) 등 이 비열한 약탈에 동참하거나 부역하고 있는 이들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하지만 역시나 가장 어려운 건, 어찌됐건 현재의 빚더미에 올라 있는 사람들 자신의 잘못이 없는 건 아니냐는 질문일 것이다. 언론에 놀아났든, 금융회사의 유혹에 넘어갔든, 능력이 안 되는 데도 대출을 받아 부동산투기에 뛰어든 것도 그들이고, 집값이 상승했다고 우쭐해 말도 안 되는 과소비를 했던 것도 그들이고, 이율을 제대로 계산하지 않고 빚을 돌려막으려다 일을 더 크게 번지도록 한 것도 그들이니까. 그들을 일방적인 피해자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각해 보면 이 나라엔 제대로 된 경제 교육이 거의 전무한 것 같다. 학교 다닐 시절엔 당연히 수능에 별로 안 나오는 경제과목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없고, 졸업 후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학습 통로인 언론도 기업들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선동가(煽動歌)만 불러대기 일쑤니까. 뭐 거의 제대로 배워보지도 못한 사람이 맨손으로 암벽등반을 하겠다고 나서는데 안전도구도 없이 실제 산에 올려 보내는 느낌이랄까. 제대로 된 경제 교육, 그러니까 무조건 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행복해진다느니, 대기업이 잘 돼야 서민들도 잘 산다느니 하는 헛소리 말고, 진짜 현명한 경제적 관념을 길러줄 수 있는 그런 게 좀 필요하다.

 

     채무자들도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는 저자들의 주장은 특히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노예제도를 인정하지 않고 있음에도, 비인간적 추심제도에 의해 사실상 고대의 채무노예제가 되살아 난 것이 아닌가 싶은 정도의 일들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으니까.

 

 

     지금 혹시 대출을 생각하고 있다면, 한 번 읽어봐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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