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온 종일 싸움만 가르치는 조직에서 훈련을 받아 전문적인 킬러가 되었다는 료와 미사키. 단 한 번도 임무를 실패하지 않았던 콤비였지만, 어느 날 뜻하지 않았던 방해자(리오)로 인해 실패하고 만다. 료가 노리던 목표를 그보다 한 발 먼저 칼로 찔렀던 리오. 료는 그런 리오가 마음에 들었던지 사건 현장에서 그녀를 데려왔고, 덕분에 조직을 위험에 처하게 했다는 이유로 배신자로 몰리게 되는데..

 

 

 

 2. 감상평 。。。。。。。                  

 

     그냥 허탈한 웃음이 나오는 영화. 겉멋이 잔뜩 든 두 주인공이 거침없이 총질을 하는데, 역시나 어떤 권총인지 반동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한 손 연사가 가능한 말도 안 되는 영상들로 덮여 있다. 그렇게 총질을 하는 데도 경찰은 뭐하는 지 도통 보이지도 않고, 살인자들은 백주에 거리를 활보하면서 온갖 폼은 다 잡는다.

 

     스토리에서 딱히 매력이 느껴지지 않으니, 당연히 캐릭터들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하다. 영상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들로 가득한 습작 같은 영화. 극장보다는 처음부터 텔레비전 용 영화가 아니었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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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외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던 중 할아버지에게 여섯 살짜리 딸, 아니 자신에게는 이모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스물일곱 살의 다이키치. 엄마라는 사람은 어디 있는 지 알 수도 없고, 가족들은 서로 린을 떠맡지 않으려고 피하기만 하는 상황이 짜증나는 다이키치는 덜컥 자신이 린을 맡아 기르겠다고 말하고 만다. 일단 아이와 함께 집으로 오기는 했는데 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아는 게 없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유쾌한 동거 이야기.

 

 

 

 

2. 감상평 。。。。。。。              

 

     깨어진 가족이나 나이차가 역으로 상당한 가족관계와 같은 설정들을 다 치우고 나더라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어린 아이를 정성을 다해 돌보고 기르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울림이 있는 영화다. 특히 린 역을 맡은 아역 배우의 우울한 표정이 점점 바뀌어 가는 모습은 저절로 미소가 띄워지게 만든다.

 

     영화 전체에 걸쳐서 특별히 충격적인 장면이나 극적인 반전 같은 것은 없다. 약간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뭐 꼭 모든 영화가 배스킨라빈스의 슈팅스타처럼 씹히고 톡톡 튀는 맛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기본에 충실한 맛있는 바닐라나 은은한 차향이 담긴 아이스크림을 찾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니까.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충격적인 영상을 만들어 놓고서 예술입네 하는 궤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나름 만족스러운 구성과 전개였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 녀석들만 자라는 게 아니라, 키우는 이들도 함께 성장해 나간다는 메시지가 좋다. 갈수록 죽을 때까지 즐기고 놀면서 살겠다는 니트족들이 늘어가는 이즈음 의미가 있는 교훈이다. 하긴 뭐 이렇게 예쁘고 말 잘 듣는 아이를 키우는 거라면 즐겁기도 할 것 같다. 좀 더 커서 말 안 듣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지..

 

     따뜻한 괜찮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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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집는 기독교 - 바벨론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비전
브라이안 왈쉬 지음, 강봉재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0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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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가 진단하는 현재 기독교회의 상황은 바벨론 포로가 된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과 같다. 힘과 권력을 중심에 둔 신화를 바탕으로 한 세계관 속에서 그들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길을 잃어버린 것. 그 결과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사회의 지배적인 세계관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기에 이른다. 저자는 세상과 구별되지 못한 이런 상황은 분명 문제가 있으며, 그리스도인은 역사의 종말을 소망 안에서 바라보며 자신이 서 있는 상황을 선지자적으로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 감상평 。。。。。。。           

 

     리처드 미들톤과 함께 쓴 ‘그리스도인의 비전’이라는 책이나, 역시 그 둘이 쓴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책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이름을 알고 있는 저자다. 이번 책은 공저자가 아닌 단독 저자로 나왔는데, 전체적인 느낌은 앞서의 책들과 비슷했다. 확실히 대가의 느낌이 물씬 든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확실히 교회 밖의 지배적인 논리에 순응해버린 것이 사실이다. 더 높고, 더 웅장한 무엇을, 더 많이, 더 큰 규모라는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교리를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것인 양 받아들이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의 안과 밖의 차이가 줄어들어버렸다. 굳이 구별되지 교회에 속하고 싶은 마음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했고, 이는 실제 통계적인 감소로 드러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교회는 성경보다는 세상을 더욱 더 따라 가는 전략을 택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세상에 대한 선지자적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고 있고, 그보다 앞서 교회 자체에 대한 반성과 비판조차 잘 보이지 않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 책은 정확히 바로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교회가 선지자적 목소리를 힘 있게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특별히 저자가 자주 인용하는 선지자가 예레미야다. 유다 왕국이 멸망할 당시 활동했던 선지자이기도 했고, 열악한 상황에서도 용기 있게 바른 목소리를 내려고 애썼던 젊은이였다. 저자가 풀어 나가는 예레미야의 이야기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더구나 저자는 자기반성에도 충실하고 있다. 기독교회가 범하고 있는 잘못들을 비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저자 자신이 속하기도 한 개혁주의 신학 자체가 안고 있는 한계 - 지나치게 지적인 영역을 강조하는 - 까지도 지적한다.

 

 

     최근에 ‘도대체 교회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난 이 책을 추천해줬다. 2천 년 전 가장 역동적이었던 조직이, 그리고 그보다 또 수천 년 앞서도 가장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던 전통이 오늘날 이렇게 간단한 질문에 대해서도 굳이 일부러 물어볼 필요 없이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그 교회의 일원으로서 참 답답했다.

 

     얇은 책으로, 큰 그림만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 제일 아쉬운 부분이다. 책 속에 소비와 번영을 우상으로 섬기는 오늘날의 세상에 대해 교회는 분명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부분이 어느 정도 담겨 있기는 하지만 만족보다는 갈증이 느껴진다. 현실에 대한 좀 더 폭넓은 분석과 실제적인 통찰을 담은 좀 더 풍성한 책이 나왔으면 하는 기대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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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가족밖에 모르고 평생을 일만 하며 살아온 엄마 순옥. 매달 나갈 돈은 많은데 허리가 아프다는 남편은 좀처럼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청소일을 하러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인원감축으로 인해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게 된다. 결혼을 해서 분가해 있는 큰 딸 걱정은 한 시름 놓았지만, 도시에 나가서 일하고 있는 착한 아들과 일찌감치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멋 낼 줄만 아는 둘째 딸은 늘 마음속의 걱정꺼리다. 그러던 어느 날 순옥에게 암이 생겼다는 진단이 떨어졌고, 그녀는 가족들과 함께 죽음을 준비해나간다.

 

 

 

2. 감상평 。。。。。。。          

 

     한참 웰빙이라는 개념이 전국을 휩쓸더니, 언제부턴가는 웰 다잉(well-dying)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잘 죽는 법. 누구는 그것을 건강하게 살다가 죽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 혹은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죽는 순간까지 소유하는 것으로 풀기도 한다. 물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그저 죽은 후에도 남겨진 사람들이 곤란해지지 않게 돈도 좀 마련해 두고, 이런저런 준비들을 해 놓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보통 사람들 중 한 명의 이야기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일해 왔으면서도, 죽은 이후까지라도 뭔가 해 주고 싶어 하는 그런 어머니를 그리고 있다. 어머니들은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시는 건지.

 

     자연스럽게 영화를 보면서 부모님이 떠오른다. 몇 년 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군에 있는 동안 돌아가신 아버지와 실질적으로 가장의 역할을 감당하시면서 한 번도 힘들다는 말 한 번 안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있으면, 여전히 불효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딱히 뭐라 할 수 있는 분들이 아니었다. 주연을 맡은 윤석화를 비롯해 이경영, 김영옥 같은 중견배우들은 물론이고, 심이영이나 임지규 같은 젊은 배우들도 맡은 몫을 훌륭하게 감당한다. 다만 연극을 오래 해 온 윤석화의 연기는 약간 과장된 느낌이 강해서 조금 거슬리기도 했다. 관객과의 거리가 먼 연극과는 달리 카메라로 충분히 클로즈업이 가능한 영화에서는 그런 ‘큰 연기’가 오히려 어색하다.

 

     부모님과 함께 가서 보면 괜찮을 것 같은 영화다. 함께 간 부모님들이 더 감동받을 것 같은 영화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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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대학시절 건축학 개론 강의에 들어온 서연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 승민. 설레는 마음으로 조금씩 그녀에게 다가가지만, 알 듯 말 듯한 그녀의 반응은 승민을 혼란스럽게만 한다. 작은 오해는 둘 사이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들었고,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지고 만다.

 

     오랜 시간 후, 건축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승민을 찾아 온 서연. 제주도에 있는 집을 다시 짓고 싶다며 부탁한다. 건축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떠오르는 회상들. 그리고 과거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게 되지만 이미 승민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2. 감상평 。。。。。。。             

 

     휴대전화가 아닌 삐삐로 연락을 주고받던 시기가 있었다. 이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기다림과 그 시간들의 빈 공간을 채우는 상상력과 설렘이 남아 있었던 시대였다. 영화는 처음부터 그 시대에 관한 강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데 공을 들이고 있었고, 이 부분을 제대로 캐치할 수 있는 관객이라면 충분히 공감하며 볼 수 있을만한 영화였다.

 

     건축학개론이라는 제목은 다분히 의도적인 느낌이 금방 들었다. 승민과 서연의 첫 만남을 성사케 해 준 시간인 동시에, 처음 사랑을 시작하는 승민과 서연의 이야기를 가리키는 중의적 표현이기도 하고, 둘을 다시 만나게 하는 연결고리까지 된다. 뭐 너무 대놓고 하는 이야기라 낯간지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말이다.

 

 

 

 

     연기력 차원에서는 대체적으로 무난했다. 물론 영화에 첫 출연한 수지의 대사처리나 연기가 미숙한 건 당연한 거고. 문득 수지를 출연시키기 위해 일부러 과거와 현재의 배우들을 다르게 배치했던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딱히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는데 굳이 다른 배우들을 쓰는 게 아무래도 어색하지 않은가. 아마도 수지를 중심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이끌고 가기에는 좀 버거웠던 게 아닐까 싶다.(사실이 그랬고) 근데 덕분에 영화의 완성도는 좀 떨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이 영화로 수지가 신인상을 받았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그렇게 특별한 연기였나.

 

     향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릴 것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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