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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행성 밖에서 C. S. 루이스의 우주 3부작 1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공경희 옮김 / 홍성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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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요약 。。。。。。。                 

 

     영국의 한 지방을 여행하던 언어학 교수 랜섬은 우연히 방문하게 된 한 집에서 두 남자에게 납치된다. 탐욕스러운 드바인과 명석한 물리학자 웨스턴은 랜섬을 우주선에 태워 태양계의 다른 행성으로 가고 있었다. 마침내 도착한 곳에서 랜섬은 이제까지 춥고 어두운 황량한 불모지라는 우주에 대한 생각과는 달리 각종 아름다운 생명체들로 가득한 어느 행성에 도착한다. 자신을 ‘소른’에게 바치기 위해 납치한 것을 알게 된 랜섬은 틈을 타 탈출을 하고, 그 행성의 거주민들을 만나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우주와 지구에 얽힌 비밀들을 알아가게 된다. 

 

 

 

2. 감상평 。。。。。。。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실제로 그러했든, 문학 속에서 그런 작업을 했든 말이다.(물론 후자가 좀 더 쉬울지 모르겠다. 아무튼 앞서 존재하는 것들을 참고할 수 있으니까) 이 작품에서 C. S. 루이스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낸다.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톨킨과 절친한 관계이기도 했던 루이스는, 그의 친구와 함께 지금 존재하고 있는 세상과는 좀 다른 새로운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로 했고, 그 결과 나온 것들이 ‘나니아 연대기’나 이 작품과 같은 우주 3부작이다.

 

     이 작품에서 루이스는 화성에서 살아가는 서로 다른 모양의 지적 생명체들을 창조해냈다. 인간이라는 한 종이 지배하고 있는 지구와는 달리 그가 그리고 있는 화성은 서로 다른 종의 인격체들이 다른 존재들을 말살시키려하지 않고 저마다의 특징을 간직한 채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다. 오야르사, 말렐딜, 엘딜 등의 영적 존재들의 등장은 이 짧은 이야기가 단순히 심심풀이로 쓴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단서들이다. 루이스는 여전히 이 책에서도 ‘신비’라는 주제에 관한 깊은 통찰을 담아내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세 명의 사람들은 각각의 가치관을 상징하는 성격을 부여받고 있다. 오직 황금에만 집착하는 드바인은 물질중심주의를, 필요하다면 다른 생명체들을 모두 멸절시키고서라도 인간 종족의 영속성을 유지시키려는 웨스턴은 극단적인 과학지상주의를 상징한다. 작가는 화성인의 입장에서 본 두 사람의 행동이 얼마나 이해할 수 없는 지를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널리 퍼져있는 이 두 가지 관점이 그 영향력과는 별개로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 같다. 구조 자체가 멋진 접근이다.

 

     ‘나는 이 책에 매료된 나머지 다 읽을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던 톨킨의 감상이 이 책의 전체적인 인상을 잘 대변해준다. 물론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단순한 외계인 이야기로만 보일지도 모르지만, 루이스의 문학이 가지는 독특함을 알고 읽는다면 더 큰 재미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바타보다 나은 주제인데다, 이 정도 배경에 스토리라면 영화로 만들어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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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못한 기쁨 믿음의 글들 196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 홍성사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철저한 무신론적 경험론자였던(영국의 그놈의 경험론적 분위기란..) C. S. 루이스가 기독교인이 되기까지 여정을 담은 자전적 성격의 책이다. 출생부터 시작해 어린 시절의 이야기, 학교를 다니면서 겪었던 이야기 등 일반적인 자서전의 순서를 따라가고 있지만, 책의 목적인 ‘회심’에 관한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저자에게 지적인 영향(루이스에게 있어서 회심은 지적인 영역에서의 작용이 가장 컸다)을 준 인물과 사건들 위주로 서술되어 있고, 결정적으로 그의 회심장면에서 이야기는 급격하게 마무리된다.

 

 

2. 감상평 。。。。。。。                  

 

     C. S. 루이스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이름으로 나온 책이라면 그가 직접 쓴 책이든, 다른 이가 그에 관해 쓴 책이든 가리지 않고 거의 사 보고 있으니 뭐 말 다했다. 이 책도 다른 무엇보다는 그저 루이스가 썼기 때문에 구입을 했다. 일부 신학적 차이는 있지만 그의 글에는 묘한 끌림이 있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지적인 영역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는 그의 건전한 의식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의 정신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기록해 놓았다.

 

     의도적으로 유신론을 피하며 자신의 정신세계를 지키려고 했던 완고한 루이스였지만, 그는 결코 자신의 내부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없는, 일상에서 문득문득 찾아오는 급작스러운 ‘기쁨’에 정직하게 반응하려고 했고, 결국 이는 그를 하나님께로 이끌었다. 루이스는 책의 말미에서 ‘정말이지 자기 믿음을 지키고자 하는 젊은 무신론자는 극히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회심이란 현실과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자연스러운(모두가 그러하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고의적 왜곡이 없다는 의미에서) 반응이었다는 말이다. ‘만물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로 가득하다’(롬 1:20)는 바울의 고백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오늘날의 문제는 이와 같은 도전에 진지하고도 정직한 반응을 보이려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쉽게도 책은 생각만큼 잘 와 닿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저자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들어가는 서양고전에 관한 사전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건 뭐 실용주의적 교육을 추구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어린 시절을 모두 보내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건 대단히 아쉬운 부분이라 책의 내용 이해에 장애가 될 뿐 아니라, 책이 담고 있는 흥미로운 전개의 상당부분을 놓쳐버리게 만든다. 마치 비싼 돈을 들여서 해외여행에 나서긴 했는데, 그 나라의 말과 문화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그저 하루 종일 가이드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꼴이라고나 할까.

 

     책은 저자의 다른 작품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여기 나오는 수많은 인물들과 특별히 서양의 문학들에 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딱히 재미없는 책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은 루이스가 말하는 생각과 지적 통찰보다는 루이스 자체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내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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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려 본 슬픔 믿음의 글들 208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 홍성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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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거의 평생을 혼자 살아오다 늦은 나이에 만난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진 루이스. 하지만 이미 그의 연인이자 아내는 암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었고, 결혼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 책은 그렇게 온몸과 마음으로 사랑했던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난 후의 격정적인 슬픔에 관한 기록이다.

 


 

2. 감상평 。。。。。。。

 

     이 터져버릴 것 같은 감정적 언어로 가득 채워져 있는 책은 C. S. 루이스가 그의 아내인 조이가 죽은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시점에 남긴 기록들을 엮은 것이다. 나에게 루이스의 이미지는 ‘사랑’이라는 감정마저도 깨알같이 차근차근 따져 분석하는 분석가(『네 가지 사랑』), 그리고 기독교의 진실성을 믿어 의심치 않고 당당히 주장하는 변증가(『순전한 기독교』) 등이었다. 그런데 그 동안 읽었던 루이스의 책이 열권이 되지 않았더라면, 이 책을 통해 그에 관해 갖고 있었던 이미지가 상당부분 무너질 뻔 했다.

     이 책은 루이스도 슬픔에 대해 분석하기에 앞서 슬픔을 느끼는 사람임을 보여주었고, 그의 논쟁가적 기질은 기독교가 확고한 진리임을 변증하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가 믿는 믿음이 진실인지를 고통스러울 정도로 회의하는 방향으로 표출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물론 초기의 격정적인 몇 날들이 지난 후 그의 심경은 점차 안정기로 접어들고 이전의 모습들을 점차 회복하기는 하지만 말이다.(그렇다고 그가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며칠 만에 잊어버렸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전보다 훨씬 더 짙게 그리움을 느낀다)

 
     공교롭게도 알고 지내던 분의 사모님이 돌아가셔서 그 장례식장에 가며 이 책을 들고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이 책을 다 읽었다. 그래서 그런 지 이 책에 담겨 있는 한 문장, 한 문장이 더 깊게 와 닿는다. 고통은 삶의 의미를 묻도록 만든다. 그래서 성경의 책들 중 인생의 의미, 세상의 본질에 대해 가장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욥기다. 때문에 아내의 죽음을 마주하며 남긴 이 책은 삶과 죽음, 그리고 특별히 결혼 생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한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이 기록을 읽을 때는 루이스의 주장을 너무 성급하게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는 지금 아내를 잃은 한 명의 남자로 이 기록을 남기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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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사색 믿음의 글들
C. S.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 / 홍성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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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영문학자로서의 루이스가 시편을 읽으며 느꼈던 난제들에 대해 찬찬히 풀어놓는다. 책은 1편부터 150편까지 차근차근 순서대로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으며, 대신 심판, 저주, 죽음 등 시편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몇 가지 주요 주제들을 중심으로 시를 읽어나가는 방법을 고민해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책의 후반부는 ‘알레고리적 해석’이라고 불리는 ‘두 번째 의미’에 관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데 할애된다. 문학전공자로서의 루이스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책.

 



2. 감상평 。。。。。。。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체계적인 신학교육을 받지 않은 영문학자가 성경의 한 책을 읽어나가며 들었던 감상들과 의문들에 대해 영문학자로서 대답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체계적이며 전문적인 신학교육은 알아야 할 것을 알게 하고, 사고의 낭비를 막아주는 유익이 있지만, 한편으로 이미 나 있는 길로만 걷게 만드는 면도 있다. 그래서 루이스의 글을 읽으면 가끔 평소에 생각지 못했던 (어찌 보면 엉뚱하기까지 한, 하지만 깊은) 측면을 볼 수가 있어서 좋다. 이 책 역시 이런 매력이 물씬 느껴지는 책이다. ‘어 그랬었나?’ 하는 뭔가 특별한 발상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시편과 신약의 여러 사건들 - 특히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관성 -을 연결시키는 해석에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부여하려고 애쓴다. 저자에 따르면 적어도 그런 해석의 방식은 ‘문학적으로’ 볼 때 반드시 틀린 해석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풍유적인 해석의 한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었던 차에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책 후반부에 자주 등장하는 저자의 성경관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루이스는 다양한 전승과 출처를 가진 문서들이 ‘들어 올려져’ 신비한 권위를 지닌 책이 되었다고 믿는 것 같지만(그래서 종종 이교적 내용들이나, 야만적인 생각들이 담겨있기도 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래서는 그 책의 권위에 어떻게 의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점들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독특한 발상과 지적은 시편을 읽는 기본적인 입문서로서의 이 책의 가치를 썩 괜찮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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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지 사랑 믿음의 글들 226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 / 홍성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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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무조건적 헌신을 

인간적 사랑에 바쳐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악마가 될 것입니다.

 

1. 요약 。。。。。。。

 

     C. S. 루이스가 말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 저자는 스트로게와 필리아, 에로스와 아가페라는 그리스식의 네 가지 사랑의 구분 개념을 차용해, 이를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해 낸다.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루이스만의 독특한 문체가 잘 드러난다.

 



2. 감상평 。。。。。。。

 

     우리나라 사람들도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과 느낌을 묘사하기 위한 많은 의성어와 의태어들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리스인들도 그 못지않게 어떤 개념에 대한 많은 분화된 어휘들을 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사랑’이라는 말에 대한 네 가지 구분이다. 우리말로는 육친에 대한 사랑(스트로게)과 친구에 대한 사랑(필리아), 이성에 대한 사랑(에로스)과 무조건적 사랑(아가페) 등으로 흔히 구분하지만, 이 단어들에 관한 그런 단정적인 구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감정을 누가 그렇게 칼로 베듯 예리하게 나눌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우마다 구별해서 사용했다면,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사실 사랑에 대한 그리스식의 구분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은 많다. 자칫 이 책도 그런 뻔한 책 가운데 하나가 될 법도 싶었지만, 역시나 C. S. 루이스는 많은 사람들이 가는 그런 식의 방향으로 책의 전개를 끌고 가지 않는다. 그는 단순히 사전적인 정의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여기에 대한 기독교적 내용을 재구성해나간다.(루이스가 말하는 애정과 우정, 에로스와 자비가 그리스의 사랑 구분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  

 

      당연히 저자가 쓴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사랑에 대한 네 가지 구분을 해 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네 가지가 각각 어떻게 작용해 나가며, 또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리고 (흔히 하는 오해인) 사랑은 무조건 옳은 것이라는 생각이 어떻게 파괴적으로 변질될 수 있는 지, 사랑의 부작용에 관한 내용들이다. 그리고 이 네 가지 사랑의 서열을 세우려는 부질없는 시도(이를 테면 남녀 간의 사랑인 에로스보다는 무조건적 사랑인 아가페가 더 우월한 것이라는 식의)에서 벗어났다는 점도 포함되겠다.  

 

      다만 아쉬운 것은 책의 후반으로 갈수록 글의 내용이 현학적으로 흘러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부분이다. 복잡한 내용을 대중을 적절한 예와 비유 등을 사용해 무릎을 탁 칠 정도로 명쾌하게 정리해 내는 것이 루이스의 장점일진대, 그런 장점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사랑에 관한 빛나는 통찰력들(사랑이 최고로 고양될 때 그것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설명이 그 한 예)은 그런 약점을 만회하기에 충분한 득점을 올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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