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에서 “평강의 왕”은 패자에게 평화를 강요하고,
그들의 무기를 빼앗아 불태워버리는 승자였다.
그것은 미국을 포함해서 어떤 제국에서든 마찬가지다.
물론 평강을 이루는 방법으로 그런 폭력적인 행동을 취하는
예수님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월터 브루그만, 『메시아의 이름들』 중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대부분 철학의 문장들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하려는 시도의 결과였다고 보고 있다.
종래의 철학자들의 주장들은
한결같이 그러한 주장의 합법성을 갖추지 못한 채
우리 언어의 논리를 남용한 결과
무의미한 문장들을 양산해내었다는 것이다.
- 박병철, 『비트겐슈타인 철학으로의 초대』 중에서
교회의 ‘하나 됨’은 일단 교리를 바로세우고 나서
나중에 가서 추가할 수 있는 선택적 요소가 아니다.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은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의 근간이다.
예컨대, 초기 신조들에 나타나는 교회의 표지나 속성에는
단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의 네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하나 됨’이다.
- 게빈 오틀런드, 『목숨 걸 교리 분별하기』 중에서
“나이가 들수록 자기에게 있는 세 가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더라.
먼저 내가 잘하는 일을 알아야 하고,
그다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알아야 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알아야 한다더라고.”
-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2』
가능한 것에 대한 옛 한계는
힘없는 사람들을 그 자리에 묶어두기 위해 고안된
거짓된 장치였음이 드러났다.
예수님은 그런 고안된 한계들을 없애시고,
불가능한 것을 향한 세상의 문을 여신다.
예수님은 그 선포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는
권면으로 마무리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