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28일 후… : 뉴 슬리브
대니 보일 감독, 브렌단 글리슨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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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원숭이들을 철장에 가둬둔 한 시험실에 복면을 쓴 괴한들이 침입한다. 동물보호단체로 추정되는 그들은 철장에서 원숭이들을 꺼내려 하고, 그 때 나타난 한 연구원은 원숭이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며 풀어주면 안 된다고 외친다. 무슨 바이러스냐고 묻는 복면 괴한들에게 연구자는 한 단어를 말한다. "Rage". 

 

     가장 먼저 튀어나온 원숭이가 맹렬한 기세로 철장 앞에 선 여성 괴한에게 달려들면서 바이러스는 세상에 퍼졌고, 잠시 화면이 어두워지다가 28일 후라는 자막과 함께 밝아지면서 주인공 짐(킬리언 머피)이 병원에서 깨어난다. 감염된 사람들은 비감염자들을 맹렬하게 공격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세상은 완전히 초토화 되어버린 상황...

 

 

 

 

     영화는 주인공이 감염자들을 피해 살아남은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사방이 적대적인 존재들로 가득 찬 상황에서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남은 사람들이 서로를 경쟁자로 볼지, 협력자로 볼지가 중요할 터. 어린 시절 도덕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따르자면 당연히 협력을 택하는 것이 옳아 보이지만, 영화 속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짐이 만난 사람들의 성격은 초반과 후반을 기점으로 크게 달라진다. 영화 대부분 동안 파티원이 되었던 셀레나(나오미 해리스) 일행과 한 아파트에서 만난 부녀들은 짐과의 협력을 택했지만, 그들이 희망을 걸로 찾아 나섰던 군부대의 사람들은 짐 일행을, 정확히는 짐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여자들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영화는 다행히 우리의 바람(?)대로, 그리고 많은 좀비영화의 결말처럼 작은 희망을 주면서 끝난다. 군대 같지 않은 군대(군기가 엉망이고 최소한의 전술적 움직임도 부족한 걸 보면, 급조된 어중이떠중이들이 총을 쥔 게 아닌가 싶다)는 살아남은 사람의 숫자를 더 줄이는 최악의 선택을 했고, 전체적으로 보면 그건 남은 인류의 유익에 반하는 태도였다. 뭐 어디나 전체보다는 개인을 우선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지만,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아니, 이 경우엔 그냥 교육받지 못한) 이들이 보여주는 오합지졸의 모습이란 보고 있기 괴로울 정도.

 

 

 

 

     몇 년 전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한 소설에서, 협력이 대결보다 장기적으로, 그리고 확률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을 본적이 있다. 사실 이 간단한 내용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주구장장 듣고 배워오던 내용인데, 문득 전체주의에 대한 공포로 개인에 대한 강조가 굉장히 강해진 서양에서는 좀 다른 느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겪어온 역사와 문화가 다르니까 뭐 그런 태도 자체를 뭐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문제는 최근 코로나19가 같은 광범위한 사건에 대처하는 데는 굉장히 불리한 태도라는 것.

 

     ​이제는 확연히 증가세가 줄어든 우리나라의 코로나19 확산 속도에는, 분명 정부(특히 방역당국)의 발 빠른 대처가 큰 공헌을 했지만, 그런 정부의 지침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일부 일탈도 있었지만) 자발적으로 협조했기 때문이라는 점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큰 일은 협력이 중요하다는 말.

 

     ​사실 인류는 개인이나 한두 개 국가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큰 문제를 점점 더 많이 마주하고 있다. 기후변화나 쓰레기 문제 같은 환경 이슈, 여전히 세계 어느 곳에서는 끊이지 않고 있는 전쟁의 문제(대개 이 문제에는 이런저런 나라들의 직간접적인 개입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 가장 큰 문제인 전염병, 또 다양한 질병 퇴치와 같은 보건의 문제가 그 예다

 

     ​온라인을 뒤덮고 있는 분노와 저주, 공격성들을 보면, 이미 분노 바이러스는 퍼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과연 우리는 협력할 수 있을까? 아니면 저마다 각개전투를 하다가 하나씩 쓰러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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