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데, 영화 속 세상이 뭔가 익숙해 보이면서도 이질적이다. 화폐 가치는 폭락했고, 사람들은 실업으로 내몰려 시위에 나서고 있고, 사방에 빈 건물들 천지인데다, 치안도 제대로 유지되지 않는 모습이다. 상상할 수 있는 안 좋은 모습들은 다 모아놓은 것 같은데, 뭐 감독도 제대로 설명하지는 않고 있으니까.

 

 

     아무튼 이런 절망적인 상황은 이제 막 교도소에서 나온 준석(이제훈)에게서 희망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결국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계속 되뇌던 하와이에 가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사설도박장을 강도질하기로 결심하고 마침내 성공한다. 그러나 친구들은 곧 조직에 속한 킬러 한(박해수)에게 쫓기게 되고, 그는 마치 사냥을 하듯 친구들을 조여가기 시작한다.

 

 

 

 

     넷플릭스로 개봉한 영화인데, 평이 상당히 안 좋다. 가장 큰 이유는 이야기 구조가 허술하다는 것. 사실 그런 평가는 전혀 모른 채 보기 시작했는데, 영화가 끝날 때 즈음에 느낀 건 역시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 영화는 좀처럼 몰입이 되지 못하고, 수없이 떠오르는 의문들에 별다른 대답도 해 주지 않은 채 얼버무리듯 끝나고 만다.

 

     ​영화에 몰입이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일행이 딱히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출소하자마자 또 다른 범죄를, 그것도 총기까지 동원하는 강도질을 계획하는 것도 황당하고, 여기에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갖다 붙이는데, 거기에 또 친구들이 설득이 된다. 허술한 계획이 또 성공하는 것도 우스운데, 그 뒤의 엉성한 대처도 한숨이 나오고... 도대체 조직에서 운영하는 도박장을 터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게 말이 되는가.

 

 

 

 

​     캐릭터들 하나하나의 매력을 살리는 데도 영화는 실패한 것 같다. 각자의 인물과 관련된 내러티브는 빈약하기 그지없고, 그들이 저지른 일에 비하면 이 정도의 설명으로 어떤 정당성같은 걸 부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심이어 영화의 반대쪽 주요 축인 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이 없어서 생뚱맞은 느낌도 든다. 무슨 생각으로 스크린을 보고 있어야 하는 건데?

 

      여기에 어지간히 겉멋 잔뜩 뜬 추격/대결 장면도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이가 없는데, 소총을 들고 아무데나 쏴대는 건 람보에서 배운 건가 싶고, /엄폐는 전혀 할 생각도 하지 않는 한심한 개인전술 움직임과 다음 수를 전혀 보지 못하는 듯한 판단의 연속들까지...

 

 

     이 영화의 제작에 90억이라는 거금이 들어갔다고 한다. .. 촬영 기간 일자리는 창출됐으니 좋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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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개봉했을 때 보고 싶었던 영화였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다가, 최근 집 근처 영화관에서 재개봉을 하기에 냉큼 보고 왔다. 그래고 예상치 못하게, 이 영화는 개인적 기록을 세웠는데, 지난 10년 간 다양한 요일에, 다양한 시간대에, 다양한 장소에서 수백 편의 영화를 봤음에도 처음으로 영화관 전체에 딱 나 혼자만 앉아 있었다는 것. 이쯤이면 그냥 전체 대관을 한 정도. 코로나19 사태가 만들어준 기록이다.

 

 

 

 

     영화는 (기도로?) 제한된 시간동안 제한된 영역에 맑은 날씨를 불러올 수 있는 소녀 히나와 가출해 도쿄로 무작정 상경한 호다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 없이 비가 내리고 있는 도쿄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천성이 착했던지라 서로를 번갈아 도와주다 친해지게 된다. 호다카는 히나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이용한 아르바이트 팀을 시작하지만... 얼마 후 또 일본 특유의 무슨 전설이 등장하면서 이 맑음 소녀는 일종의 인간 제물로, 그의 희생이 있어야 날씨가 평소처럼 돌아오게 된다는 게 밝혀진다.

 

     그러는 동안에도 비는 쉴 새 없이 내리고 있었고,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조금씩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히나는 마침내 결심을 하고 호다카를 떠나지만, 호다카는 그런 히나를 놓을 수가 없었다. 새드엔딩으로 치닫는 영화를 멱살 잡아 끌고 가는 호다카. 사실 이쯤에서는 이제 제대로 된 설명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사라진 듯하지만, 강렬한 음악과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환상적인 이미지들이 그런 의문을 덮어 버린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만난 두 사람. (다행이다.)

 

 

 

 

     영화의 중심에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한 사람의 희생이라는, 전형적인 희생양 모티브가 놓여 있다. 보통은 이런 구도에서 마음 약한 주인공이 주변 사람들을 슬프게 만들면서 스스로 희생의 자리로 나아가는 흐름이 많지만,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만) 호다카의 결정으로 이야기의 흐름은 급히 바뀐다. 세상 따위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으며, 자신은 히나를 구하겠다는 그의 결정은 자칫 개인주의로 보일 수도 있지만, 애초에 누구도 히나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으니까. 히나를 구하기 위한 호다카의 결심을 비난할 수는 없을 터.

 

     사실 영화 속에서 히나에 대해서 희생의 압박을 가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강하게 그려지지 않은 것이 좋았다. 오히려 영화 속 두 명의 노인이 하는 말은 좀 다른 분위기까지 보여준다. 첫 번째는 인간 제물이라는 신화에 대해 설명해주는 신관(?) 비슷한 할아버지로, 그는 기상이변이라는 것도 다 인간들 기준으로, 그것도 100년도 안 되는 짧은 관측에 근거해 내리는 판단이라며 역정을 낸다. 또 한 명은 호다카와 히나에게 의뢰를 했던 할머니로, 그녀는 영화 말미 3년이 넘는 연속적인 비로 일본 영토가 상당히 물에 잠긴 상태에서도(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달라진 현실에서 만족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낸다.

 

     일반적으로 희생양 이야기에서 희생의 대상이 되는 건 공동체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이다. 옛날이야기에서 마을을 괴롭히는 괴물에게 바쳐지는 건 젊은 여성이나 어린 아이인 경우가 많다. 이런 이야기에서 가장 불만인 건, 나머지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것, 다 같이 힘을 합쳐 싸우거나, 그렇지 못한다면 함께 고통을 나눠질 생각은 하지 않느냐는 건데, 적어도 영화 속 두 노인에게서 최소한 누군가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좀 더 나은 삶을 기대하는 뻔뻔스러움을 찾아볼 수 없다

 

     이게 인생을 충분히 산 사람들이 갖게 되는 염치라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반면 정치적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본의 아베 총리를 보면서 우리가 구역질을 하는 이유는 이런 비열함을 부끄러움 없이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을 구하지 못할 거라면, 최소한 염치는 갖고 살자.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영화 말미 일본 열도는 쉴 새 없이 내리는 비로 상당부분 물에 잠기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굉장히 충격적이었는데, 대충 상상했던 결말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호다카가 내뱉은 말이 현실이 된 건데, 흥미로운 건 그것도 또 나름대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영화 속 사람들이나, 그걸 보는 관객이나) 영원이니, 불멸이니 하는 손에 잡히지 않는 허상을 쥐려는 욕심을 조금 내려놓는다면, 얼마 간의 충격과 혼란은 있겠지만 또 나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비와 개인 날이라는, 날씨라는 소재를 이렇게까지 발전시킬 수 있는 상상력에 박수를 쳐 주고 싶었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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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해 제작된 대만 영화. 뭐 이런 장르로는 대만 영화 쪽이 워낙 많이 만들고 또 분위기도 잘 살리는 편인지라 어느 정도 평타는 치겠지 했는데, 기대했던 것만큼의 완성도는 보이지 않았다. 사실 처음부터 개연성 따위는 1도 없는 만화 같은상황을 배경으로, 토닥거리며 진행되는 이야기가 영 몰입되지 않는다. 그냥 집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편하게 보려고 선택했는데 말이지. (요새 네이버에서 주기적으로 영화를 무료로 다운로드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감사.)

 

     성적에 따라서 차별대우를 공식적으로 하는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과 인물들은 터무니없고, 사고로 갈 데가 없다고 덜컥 다 큰 딸과 함께 친구네 집(이 아닌 저택)에 얹혀살기 시작하는 주인공의 아빠나(그나마 별다른 일도 안 하는 듯?), 수년을 짝사랑하며 남주인공을 따라다니는 예쁜 여주인공이라는 부분도... 사실 처음부터 그냥 만화의 실사판, 판타지성 강한 만화적 설정과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보면 그런가보다 할 수 있을지도.

 

 

 

 

     마찬가지로 개연성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인물 중에서 가장 호감이 갔던 건, 남자 주인공의 어머니 캐릭터. 영화의 초반부터 한결같이 여주인공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던 그녀는 조금의 선입관이나 편견 없이 주인공을 보고 있다. 약간의 푼수 캐릭터를 넣어두어서 볼 때마다 웃음이 나게 만들었지만, 가장 순수함이 느껴졌던 인물. 누군가를 편견 없이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듯.

 

     사실 엄청난 빈부격차와 이를 공식화하는 차별적 학교(사회)구조, 외모지상주의 같은 요소들이 범벅이 된 영화이지만, 흥미롭게도 영화 속 인물들은 대체로 빈부의 문제를 두고 사람을 깔보거나 무시하지 않는 편이다(이 또한 만화 같은 설정이라고 해야 하나). 그들의 차별은 성적에 국한되어 있고, 이 부분은 (여주인공이 보여주듯이) 자신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극복할 수 있는 요소였다.(물론 단지 성적이 계급을 나누기에 충분한 요소인가 하는 점은 남지만)

 

     덕분에 학교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인상을 찌푸려지게 만들기 보다는, 그저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일종의 경기’, 혹은 게임처럼 느껴진다. 한 리그 안에 강팀과 약팀이 있지만, 약팀이라고 해서 항상 강팀에게 지는 것만은 아니니까. 역전의 기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판은 훨씬 인간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다만 영화 말미 여주인공은 잠시 모두가 잊고 있던 재력이라는 큰 벽을 살짝 인식한다. 남주인공이 자신보다 더 가문 좋고, 돈도 많고, 미모도 훌륭하며, 남주인공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또 다른 여성 캐릭터와 관계를 형성해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일종의 자격지심을 느끼게 되는 것. 개인적으로는 영화 전체를 통틀어 이 부분이 가장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

 

      사실 영화가 현실적으로 돌아가려면 여기에서 여주인공은 완전히 마음을 단념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나가야 했다. 사람은 감정으로만 사는 게 아니고, 자신이 상대에게 가장 좋은 선택지가 아니라는 걸 알면, 뒤로 물러서는 것도 꼭 비참한 일만은 아닌 거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여주인공이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데... 또 그런 용기를 내는 아이가 있다면 열심히 격려하고 싶은 것도 사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너무 좌절하지 않도록. 영화 속 주인공 같은 젊은이들에게는 아직 기회가 많으니까.

 

 

 

 

     딱히 추천목록에 들어갈 것 같지는 않은 영화. 시간이 아주 많이 남는다면야... 주인공들의 우월한 외모 감상 목적이라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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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교회 주보

     내가 전에 속해 있던 교회에서는 매주 주보 1면에 실종아동의 사진과 정보를 넣곤 했다. 매주 1,500여 부를 인쇄했는데 1/3은 교회 안에서 사용했고, 나머지는 전도용으로 배부되었다. 단순히 교회소개만이 아니라 실종아동을 찾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하는 생각이었고, 주일 오전 예배 때는 주보에 실린 실종아동을 위한 기도시간이 꼭 들어 있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나름 의미가 있는 부분이었다고 본다.

 

     ​한동안 내가 그 주보를 직접 제작했었는데, 실종아동찾기 란을 채우기 위해서 알아보던 중 한 해에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실종되는지를 알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중 절대다수는 집으로 돌아온다고 하지만, 실종된 아이를 둔 입장에서는 전체 비율이 어떻든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충격일 테니까.

 

 

 

 

#2 - 염전 노예

     몇 년 전 서해의 한 염전에서 정신지체 장애인을 노예처럼, 수십 년 동안 부려먹었던 악덕업자가 붙잡힌 적이 있다. 끔찍했던 것은 몇 번인가 도망쳤지만 섬이라 나갈 수도 없었고, 업주와 한 패인 지역 파출소에서도 도망쳐 나온 사람을 다시 업주에게 돌려보냈다는 점.

     외부로부터 고립된 상황에서 피해자는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을 완전히 상실했고, 결국 이런 시대착오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토양이 되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것, 그리고 인간 본성의 깊숙한 자리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악이 도사리고 있어서 조금만 물을 주면 금세 삐져나온다는 걸 생각하게 보게 만드는 일이었다.

 

 

 

 

#3 - 이영애

 

     ​솔직히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에서까지 아직도 아직 여전한 인기를 구가한다는 드라마 대장금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이영애라는 배우에 대해서도 오래 전 광고에서 종종 봤던 예쁜 배우 정도의 느낌이었고, 부잣집 며느리로 들어가서 고상하게 살고 있나보다 정도. 그녀가 나왔던 영화를 마지막으로 본 게 벌써 15년 전에 나왔던 친절한 금자씨였으니까..

 

     ​이 영화를 보면서, 아 이 사람은 배우였구나 하는 생각이 불쑥. 그리고 사실 친절한 금자씨도 상당히 센세이셔널 했던 작품이었는데, 그 안에서 주연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냈었다는 걸 떠올리게 되었다. 이번 영화에서는 아이를 잃고 온힘을 다해 꿋꿋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아이를 찾기 위해 몸싸움도 불사하는 어머니 역을 능숙하게 연기해 낸다

 

 

 

 

#4 - 여전히 어딘가에는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매년 2만 명 가까운 아동들이 실종(최근 기준이 18세 미만으로 되었고, 가출 등도 포함된다)되고, 백여 명의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비율적으로는 상당히 적지만 그게 부모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사라진 아이들은 어딘가에서 다른 이름으로 살고 있거나, 사고를 당했거나, 또는 이 영화처럼 범죄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아이들이 범죄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으면 하지만...

 

     ​앰버 경고 같은 제도적 정비도 필요하고, 관련 인력을 확충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은, 시민 일반의 관심 재고다. 아이들의 얼굴이라는 게 자신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면 다 비슷비슷해 보이기 마련인지라, (특히 나처럼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더더욱) 잘 구별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 관심을 갖고 주변의 아이들을 살핀다면 문제가 길어지는 것을 조기에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이건 아동학대 같은 다른 범죄에도 마찬가지고.)

     영화를 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실제로 이런 범죄가 발각되었다고 해도, 솜방망이만 내려치는 우리나라 법정에서는 그리 무겁지 않은 처벌로 유야무야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때문에 감독은 정연(이영애)의 손에 비공식적 해결책을 들려주어야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동 대상 범죄에 대한 엄격한 처벌과 아동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 그게 아이들을 좀 더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들이 취해야 할 자세일 것 같다. 이런 영화가 이를 위한 작은 관심이라도 불러일으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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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이런 영화일 거라고는... 영화의 시작에는 돈 가방이 등장한다. 앞으로 펼쳐질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소재. 그놈의 돈, , .

 

     도망간 애인 때문에 진 빚으로 허덕이고 있는 항만출입국사무소 직원 태영(정우성)은 사채업자인 박사장(정만식) 일행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었다. 우연찮게 자신이 일하고 있는 찜질방 캐비넷에 돈가방이 든 것을 알게 된 중만(배성우)는 치매에 걸린 노모를 모시며 궁핍하게 살아가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생각을 품게 된다. 그럼 돈가방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태영의 도망간 여친 연희(전도연)은 아마도 빼돌린 돈으로 술집을 차려 사장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 같고, 거기에서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학대를 받는 직원을 도와주는 척 하다가 남편의 보험금을 빼돌렸다.

 

     문제는 이 돈을 가지고 해외로 나가기 위해서 전 애인인 태영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것이고, 태영은 더 이상 연희를 믿지 않고 있었고, 박사장 일행은 그런 태영을 뒤쫓았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떨어진 돈가방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중만은 너무 허술했다. 돈가방을 들고 마치 꼬리잡기 게임처럼 돌고 도는 이야기가 복잡하게 펼쳐지는 영화.

 

 

 

 

 

     위에서 말했듯, 제목을 보고 눈치 챘어야 했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말 그대로 다 짐승같은 캐릭터라는 것. 그래서 누구 한 명에게도 좀처럼 몰입이나 공감을 하기 어려울 거라는 것. 또 짐승들이 그러하듯 목적을 위해 상대를 물어뜯고 상처 입히고 종국에는 죽이는 장면들이 수없이 나올 것이라는 점을.

 

      문제는 그 모든 인물들의 동인이 오직 돈 가방하나일 뿐이고, 다른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 돈을 어디다 쓸 지에 관해서 고민하는 사람도 중만 외에는 없다. 그게 무슨 절대반지라도 되는 양, 모두들 어떻게든 돈가방을 손에 넣으려고 서로를 찢어발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감독은 잠시 사건들의 순서를 뒤섞고, 그렇게 섞인 장면들이 조금씩 연결되는 모습을 여주면서 영화적 구성을 만들었다고 뿌듯해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연기파 배우들이 연기는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느냐고 자위할지도 모르지만(물론 연기는 나쁘지 않았다. 캐릭터들의 행동에 공감이 가지 않아서 그렇지),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어쨌다는 건데하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치울 수 없었다.

 

 

 

 

     그래, 세상엔 나쁜 놈, 이기적인 놈, 비겁한 놈, 생각이 짧은 놈, 그냥 폭력적인 놈들이 많다. 그래서 그걸 영화로 만든 건가? 캐릭터들의 묘사조차도 얄팍해서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하는데다가, 슬래셔 무비를 방불할 정도의 폭력성, 다 보고 나서도 메시지가 뭔지 찾기 어려운 부분까지... 확실히 내 취향은 아니었던 영화.

 

     코로나19 확산으로 요새 영화관에 가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지만(주로 조조를 이용하는 내 경우에는 원래부터도 많진 않았지만, 그래도 주변에 대학교가 있는지라 괜찮은 영화의 경우 아침부터 그래도 관객들이 있을 때도 보였지만, 확실히 요샌 적더라.). 이 정도 영화는 단지 전염병 탓, 타이밍 탓을 하지 못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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