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1998년,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에 가입한 것을 축하하던 때로부터 얼마 후,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대기업의 부실채권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시중 금융사(그리고 금융사는 아니지만 이 채권 돌리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던 투자신탁회사, 줄여서 ‘투신사’)의 유동성과 신용도에 문제가 생겼고, 이는 다시 투신사를 통해 어음을 돌리던 중소기업의 자금위기를 일으킬 위험이 있었다.
문제를 일찍 알게 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는 총장에게 이를 보고하고, 경제수석의 리드 아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신속하게 상황을 시장에 알리고 선의의 피해자를 막아야 한다는 시현의 의견은,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을까 우려하는 재정국 차관(조우진)의 강한 반대에 직면한다.
그러나 정부의 공식 발표와는 달리 국가부도사태가 임박했음을 짐작한 또 한 명의 인물 윤정학(유아인). 투신사에서 일하던 그는 직장을 때려 치고 나와 주가가 떨어졌을 때 수익을 얻는 마이너스 옵션에 투자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한시현이 예측한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지만 좀처럼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하지만 뭐 역사가 스포일러니 어떻게 더 꾸밀 수가 없네.
2. 감상평 。。。。。。。
지난 IMF 사태는 아마도 6.25 이후로 가장 충격적인 국가적 사건이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리고 있는 대로, 이 사건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는 완전히 바뀌게 되었고, 특히 대부분의 노동자들의 삶이 이전에 비해 훨씬 불안정해지는 것과 동시에 소수의 특권층들은 합법적으로 그 특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국가의 거짓말을 믿고 있던 선량한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길에 나 앉게 되었는데, 세계 최고수준의 자살율과 적지 않은 빈부격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무엇이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우선은 경제에 문외한이었던 대통령과 권력의 핵심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무능력 때문일 것이고, 영화 속 재정국 차관으로 응집된 당시의 기득권 세력의 이기주의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한시현 같은 인물이 존재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소신 있는 관료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꽉 막힌 공무원 계급구조의 탓도 있을 거고. 물론 일반 국민들의 책임도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정보와 권한의 양에 책임이 비례한다고 한다면, 이들은 상대적으로 가볍다
.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국가부도라는 엄청난 위기를 기회로 삼아 국가의 구조를 뜯어 고치려고 하는 재정국 차관역이다. 사람들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재난’을 지렛대 삼아, 평소라면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다양한 조치들을 기습적으로 강요하는 전략인데, 이런 전략과 그 실제 예는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에 잘 설명되어 있다.
이때 ‘쇼크’는 비단 국가부도사태만이 아니어서, 미국 뉴올리언스의 허리케인 카트리나나 인도네시아의 대규모 지진해일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난 후, 그 지역에 살던 빈곤층들은 대대적인 (강제 이주 같은 방식으로) ‘청소’를 당했고 대신 그 자리에는 부유층들을 위한 고급주택가나 리조트가 들어서는 식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독재정권 아래서 발생하는 시민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도 ‘쇼크’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고.
흔히 IMF가 우리나라의 경제를 이렇게 망가뜨렸다는 식으로 생각을 하곤 하지만, 정확히는 IMF를 도구 삼아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하고 지배자의 위치로 올라서려고 했던 이 땅의 탐욕스러운 이들이야말로 진짜 범인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채로, 국민들이 모아 놓은 금으로 재벌들의 빚을 갚아주는 기만책을 써가며 재산과 권력을 불려가고 있으니...
정권이 바뀐 지 오래지만, 여전히 기득권 세력은 손해 보지 않을 길을 잘 찾아다니는 것 같다. 정치인이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경제 관료들의 ‘전문성’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가 말했듯, 개혁이란 그 개혁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실감하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개혁으로 뭔가를 뺏기는 사람들은 금세 실감하는 법이라 극렬한 반대가 먼저 나오는 법이라 좀처럼 성공시키기가 어렵다.
영화는 반복적으로 ‘속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누구에게, 누구로부터 속지 말라고 하는 것인지는 대략 짐작이 되지만, 과연 어떻게 우리가 속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상 정보의 집중과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보통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란 지극히 제한되어 있으니 말이다. 정보와 권력의 민주적 통제가 시급하지만, 좀처럼 국민의 직접 통제가 어려운 신분인 공무원들이 이 일에 참여하고 있다면 딱히 답이 없어 보이기도... 속고 싶지 않아도, 어떤 게 속지 않는 일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랄까.
올해가 가기 전 꼭 한번 봐야할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