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 시작된 국가금융위기로 많은 기업들이 부도를 맡았다. 정책 당국의 무능함과 기업들의 방만한 경영 등 여러 원인들이 지적되지만, 여튼 문제는 그렇게 일어났다. 그리고 이 문제의 끝자락 즈음에 달려 있었던 것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태였다. 국책은행인 외환은행은 금융위기 사태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결국 매각 절차를 밟기로 결정되었다. 이 때 나타난 것이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였다. 이 영화는 바로 이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때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는 여러 가지 불법적 정황이 있었다. 우선 금산분리법을 어기고 산업자본인 론스타가 은행을 인수하는 것 자체가 위법이었고, 그나마 이 과정에서 인위적인 주가조작을 통해 헐값으로 인수가 이루어졌다. 이 영화는 그 중에서도, 금산분리법을 피해가기 위해 자기자본비율을 조작한 허위문서의 제작과 제출 과정의 문제를 실마리로 삼아 파고들어간다.
이 일을 담당한 은행직원과 금감원직원이 내연관계였고, 얼마 후 두 사람 모두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사건을 맡고 있던 양민혁 검사(조진웅)이 수사를 시작하지만, 갑자기 수사 과정에서의 성추행 스캔들이 일어나면서 수사가 중단된다. 자신의 누명을 벗고 사건을 실체를 파고들어가던 중 이 거대한 문제와 맞닥뜨린다는 것.
때문에 영화는 시종일관 우울하다. 사태는 이미 벌어졌고, 그 과정에는 불법과 탈법이 잔뜩 묻어 있었다. ‘모피아’라고 불리는 전현직 재정관련 부서의 고위 공직자들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다 하는 거대 로펌의 사주들은 물론, 자칭 타칭 통상전문가라고 불리지만 결국 막대한 현금에 굴복하는 비열한 인물들, 그리고 승진을 위해 법 적용을 미루고 타협하는 검사까지... 수 조원의 국민 세금을 지들끼리 나눠먹는 비열한 모습이 영화 속에서 그렇게 펼쳐진다.
사실 영화를 보는 관객을 더 우울하게 만드는 건, 이런 영화 속 상황이 현실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나랏돈은 눈 먼 돈이라고 여기며 기회가 되는 대로 먹을 줄 아는 ‘똑똑한’ 이들과, 자신이 가진 권력을 오직 자기 한 몸을 위해 아낌없이 사용하는 ‘부지런한’ 인간들은 널려있는 데다, 그런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좀 더 작은 규모로 열심히 연습하는 ‘꿈 많은’ 이들까지 있으니까.
영화의 결론도 감독의 이전 작품들처럼 썩 개운하지 않다. 끝까지 현실과의 접점을 연결해 두고 싶어 했던 걸까. 정의감이 넘치던 한 검사의 싸움은 거대한 벽에 부딪혔고, 믿고 있었던 젊은 통상전문가는 이익 앞에 비굴하게 입을 닫아버렸다. 나머지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그림―힘없는 이들의 시위와 이를 가로막는 공권력 그리고 진압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평온함...―이다. 하.. 한숨만 나온다.
하지만 이런 답답한 가운데서 작게나마 문제를 풀 실마리도 발견된다. 영화 속 모피아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여론이다.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어떻게든 숨겨, 여론의 악화를 막으려 한다. 어차피 정치권은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니까. 강력한 여론의 지지는 이들이 세금으로 잔치를 벌이는 것을 저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일 것이다.
그러려면 결국 더 많은 정보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자세히, 그리고 정확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사실 이 역할을 하라고 언론이 있는 건데... 하.. 또 한숨인가. 어쩔 수 없다. 누군가는 조금 귀찮고 불편하더라도 먼저 나서서 진실을 밝히고, 알리는 수밖에. 이런 영화도 그런 진실을 알리기 위한 작은 노력 중 하나일 거고.
우리에겐 힘이 있다. 다만 스스로 그런 힘이 있음을 모르고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