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째 고시공부를 해왔지만 좀처럼 합격하지 못하고 있는 자영(최희서)의 삶은, 좁은 원룸이 어지러워지는 것처럼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마침내 시험을 포기하고 남자친구와도 이별한 자영은 한강 둔치에서 캔맥주를 마시려다가 열심히 달리고 있는 현주(안지혜)를 만난다

 

     자영의 시선을 대신하는 카메라는 현주의 탄탄한 몸매를 따라 훑어간다. 비단 이 부분만이 아니라, 감독은 영화 내내 여성 캐릭터들의 몸매를 카메라로 훑는데(참고로 감독도 여자다), 이 시선의 의미가 뭔지 정확히 와 닿지 않는다. 그게 건강함에 대한 동경인지, 성적 판타지인지...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애매함이 단지 몇몇 장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영화 전반에 걸쳐 묻어나오고 있음이 점점 분명해진다.

 

 

 

 

 

     단순히 시놉시스만 보면, 좌절할 만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 운동을 통해 서서히 몸을 세워나가면서 점차 삶을 보는 관점도 건강하게 변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을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렇게 이해될 만한 부분도 있다. 달리기를 통해서, 영화 초반의 둔한 모습을 탈피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도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무엇보다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장면에서도 조금씩 자신감이 생긴다.

 

     하지만 주인공이 처한 현실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보러간 면접도 쉽지 않았고, 친구의 도움으로 늦은 나이에 시작한 인턴생활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여기에 극중 현주의 죽음 이후 자영이 보인 돌발행동은 그녀가 처한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들기만 한다.

 

     그런데 그 돌발행동은 하나로 그치지 않았고, 영화의 종반부에서 자영은 현주와 우울감에 빠진 현주와 했던 대화 속 바람을 이루기 위해 또 다른 충동적 행동을 취한다. 그 소원이라는 게 최고급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마음껏 성관계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이 허탈한 소원은 또 남자가 아닌 자영의 자위로 묘사되기만 한다. 이쯤 되면 뭔가 밝고 명랑한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 영화를 보려고 한 사람은 혼란에 빠질 뿐.

 

 

 

 

     영화의 제목인 아워 바디(Our Body)'가 새삼 의미심장해 보인다. 일반적으로 영어에서 our라는 표현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우리 몸이 되겠지만, 일반적인 대상을 두루 이르는 표현으로서의 우리와 좀 더 구체적인 대상을 특정하는 느낌이 강한 ’our'는 정확히 동일한 단어가 아니다.

 

     ​영화 속 아워 바디가 가리키는 대상은 뭘까? 우선 주인공인 자영의 몸을 가리킨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분명 그녀의 몸은 변화를 경험하니까. 여기에 그녀의 몸과 묶여 'our'라는 단어를 형성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몸은 현주의 몸이다. 영화 시작부터 계속 카메라로 훑던 그 몸 말이다. 두 사람이 친해진 후, 현주는 자영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데, 집이 덥다며 겉옷을 모두 벗어버리며 속옷 차림이 된다. 자영은 놀라면서도 그런 현주의 몸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한다

 

     ​어쩌면 그 순간 두 사람의 몸은 하나가 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후에 자영이 회사에서 충동적인 사건을 저지를 때, 그녀는 죽은 현주가 바랐던 소원을 자신의 것인 양 실행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자영의 마지막 자위장면은, 이제 두 사람(여자)의 몫()으로 살아가고 있음을(그래서 다른 사람이 필요 없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약간 억지 해석처럼 보이기도 한데, 맞다, 영화가 이런 식의 말을 하려고 했다면 억지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순간 멍해지는 영화. 내가 뭘 본 걸까 싶은 생각에. 그 와중에 한강변의 조망은 쓸 데 없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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