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쇼 - [할인행사]
피터 위어 감독, 에드 해리스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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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도 많이 알려져서, 영화를 직접 보지 않았더라도 대략적인 내용을 알고 있을 만한 영화인 트루먼 쇼. 한 섬을 무대로 삼아, 주인공 트루먼의 출생부터 성장, 결혼과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과정을 실시간 방송 프로그램으로 만든다는 스토리다. 주인공의 삶은 철저하게 세트 안에서 살도록 유도되고, 혹 미리 세팅된 상황을 벗어나려고 하면 제작진의 개입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이 개입이라는 게 꽤나 살벌해서, 종반부에는 폭풍을 일으켜 배를 뒤엎기까지 한다

 

 

 

 

     모든 종류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 20년 전 처음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기발한 아이디어쪽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즐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처음에는 저런 일이 어디 있어싶었던 상황이지만, 어느 샌가 우리는 몇 초마다 한 번씩 온갖 카메라에 찍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물론 또 한 편으로는 각종 SNS의 발달로 영화 속 트루먼과 같은 고립된 상황에는 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장 중국이나 일본만 하더라도 진실에 눈을 뜨지 못하도록 하는 대규모의 정보통제와 조작들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니 안심하기엔 이르다. 이미 우리는 크고 작은 여론 조작에 휩쓸리는 대규모의 무리들을 보는 게 익숙해졌다. 말하자면 시대를 앞서간 영화랄까.

 

 

 

 

     비단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이들에 의한 조작이 아니라도, 우리는 얼마든 다른 사람의 삶을 우리의 뜻대로 조종하고 싶은 욕구를 가질 수 있다. 사실 영화에서 가장 끔찍했던 부분은, 트루먼의 삶을 브라운관으로 보며 울고 웃으면서도 대다수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늙은 노인 자매들도, 일본의 가족들도, 평범한 경비원들도... 

 

     ​무서운 건 매우 자주 그런 식의 조작 충동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너를 내가 사랑하는(즐기는) 대가로 뭔가를 얻고 있으니, 너에게 내가 무슨 욕을 해도 그건 감당해야 한다는 식의 헛소리도 비슷한 사고구조다. 내가 어떤 이를 사랑하는 건 그를 위해 나를 내어준다는 것이지, 나를 위해 그를 이용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준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걸 위해 진실에 눈을 감거나, 망상에 빠져 머무는 건 악한 일이다. 문제는 오늘날 대중문화를 통해 값싸게 뿌려지는 많은 즐거움들이 (영화에서처럼) 이런 식의 망상과 조작된 관계를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문화에 오래 빠져 있을수록, 우리는 좀 더 자극적이고, 좀 더 즉각적이고, 좀 더 강렬한 관계를 찾아 헐떡이게 될 것이다. 사람을 도구로 전락시키는 악한 문화에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 반대로, 진실하고 정직한 삶을 통해 전해지는 기쁨은 느리고, 은은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건 좋은 차()의 향기가 오래 남는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기쁨을 줄 것이고.(우리 사회는 이런 종류의 기쁨을 거의 잊어버린 듯하다)

 

     제대로 된 관계는 조작과 통제가 아니라, 진실과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들은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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