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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 -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
이정철 지음 / 역사비평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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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조선 중기 실시되었던 대동법에 관한 학문적인 연구서다. 저자는 대동법이 단순히 세제(稅制)개편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국가기본정책상의 개혁이라고 진단한다. 조․용․조로 대변되는 조선조 초기부터 실시되던 국가조세정책의 문제점을 인식한 위정자들이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같은 국가적 위기에 직면해 새로운 차원의 국가재정운용 방안을 입안한 것이 바로 대동법이라는 것.

 

     저자는 종래의 연구방식과는 달리 대동법이 가진 세제로서의 기능과 상업에 끼친 영향보다는 그것이 지닌 정책적 개혁 의의에 초점을 맞추어 백여 년간 진행되어 온 이 지난한 작업을 차분히 설명해내고 있다. 

 

 

 

2. 감상평 。。。。。。。               

 

     조선왕조는 어떻게 500년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짧게는 수십 년, 길어야 2, 3백 년 안팎을 지속했던 중국의 제 왕조들과 비교한다면 월등히 오랫동안 한 왕조가 지속된 셈이다. 더구나 병자호란과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겪은 후에도 3백 년을 더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다. 저자는 그 이유를 당시 위정자들이 달라진 상황에 맞는 국가운영정책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시행해왔기 때문이며, 그 대표적인 정책이 대동법이라고 말한다.

 

     대동법은 하루아침에 입안되고 시행된 간단한 정책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운영의 기본이 되는 세제를 바꾸는 것이기에 대단히 조심스러우면서도 큰 파급력을 지닌 것이었다. 때문에 정책담당자들은 백여 년의 걸친 오류의 시정 끝에 마침내 이 새로운 정책을 자리잡도록 할 수 있었다. 흔히 텔레비전 사극에 등장하는 것처럼, 그리고 일제가 식민교육을 통해 심어둔 것처럼, 그들은 매일 같이 궁궐을 드나들며 자기 권력유지에만 목을 맸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적어도 그들은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사실을 알고, 최소한 백성들이 먹고 살 수는 있도록 하는 데에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두고 있었다.

 

 

     오늘날 이 나라의 정책 당국자들은 어떤 생각으로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물론 일이란 게 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인공섬이니 대운하니 하며 국민 세금을 쓸 데 없는 토목공사에 쏟아 부으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으며 도리어 눈에 보이는 치적을 위해 그렇게 예산을 낭비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들을 보면서, 또 힘없고 가난해서 자기들의 이익을 위한 어떤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예산은 늘 지워버리고, 자기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에게 몰아주는 비열한 이들을 보면서, 이제 막 건국 된지 60년이 된 이 나라가 과연 조선왕조처럼 오백 년을 이어나갈 수는 있을지 의문이 든다.

 

 

     대단히 잘 정리 된 괜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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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스터디 - 미국대학 교양교육 핵심과정과 한국에서의 인문학 공부안내
마크 C. 헨리 지음, 강유원 외 편역 / 라티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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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러나 오늘날 핵심 커리큘럼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라지거나 다른 과목으로 대체되었다. 

학생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4년 동안의 공부를 마치고 모든 요건을 이수해 손에 졸업장을 든다 해도 

많은 학생들이 당혹감과 불안감을 품은 채 대학을 떠난다.



 

 

1. 요약 。。。。。。。                    

 

     흔히 인문학이라고 통칭하는 문학, 역사, 철학, 그리고 신학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대략적인 설명과 함께 각각의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읽어보아야 할 추천/참고 도서들을 소개해 놓은 책이다. 원래는 미국의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제작된 것이라 소개되는 책들은 영어 원서들뿐이지만,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각 분야의 번역자들이 추천하는 국내도서들이 함께 실려 있다. 

 

 

 

2. 감상평 。。。。。。。                  

 

     사실 이런 책을 내는 게 쉽지 않다. 필연적으로 결과에 대해 이런저런 반론이 예상되기 때문인데, 이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워낙에 말이 많은 사람이기도 해서 그렇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일단 문제를 제기하고, 논쟁을 벌이며, 상대를 설득(공격)하거나 하는 것이 일상적이니 폭넓은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주로 고전 중심의 스터디 맵을 제시함으로써 이런 난관을 잘 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은 결과적으로 이 작고 얇은 책에 적당한 무게감을 더해준다.

 

     인문학의 위기는 교양의 위기이기도 하다. 실용학문도 물론 중요하지만 역시 모든 것을 기술로만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다. 여기저기서 말실수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깊은 생각을 할 수 없게 된, 교양을 상실한 시대의 단면이다. 이게 단순히 말실수 같은 것에서 끝나면 다행이지만, 교양을 상실한 사고(思考)는 사회 전체에 그 자체로 사고(事故)를 초래한다.

 

     인문학이란 인류가 오랫동안 쌓아 온 지혜의 보고다.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든지 인문학을 익힌다는 것은 그가 하고 있는 일에 깊이를 더해줄 수 있다. 이 작은 책은 그러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공부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썩 괜찮은 도움을 준다. 당장 나도 읽어보지 못한 책들이 꽤 많으니 어서 한 권 들고 읽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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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오줌의 역사
마르탱 모네스티에 지음, 임헌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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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줄거리 。。。。。。。                  

    

     똥과 오줌에 관해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책. 묘하게 진지한 이 책의 저자는 이 인류 공통의 주제를 매우 노골적으로 다루는데, 그 영역 또한 대단해서 시간적이고 (주로 서양의 사례에 집중되기는 하지만) 공간적인 변화에 따른 추이를 매우 세세한 부분까지 다루고 있다.

 

2. 감상평 。。。。。。。                 

 

     사람이라는 게 그렇다. 평소에는 이상하게 여기던 일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워낙에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자신도 모르게 ‘아 이거 이렇게 하는 게 원래 괜찮은 건가?’하며 저항의 수위를 낮추곤 한다.(영화 같은 것들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여기에 ‘예술’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기가 팍 죽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따라간다. 어떤 것이 예술인지 아닌지는 뭔가 혈통이 다른 고귀한 ‘예술가님들’이 결정하는 것이고 자신들은 그저 복종하면 될 뿐인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이 딱 그랬다. 물론 ‘목소리’는 하나였지만, 그 ‘목소리’가 워낙에 세세하면서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들리니 이 그로테스크한 책이 내추럴한 건가 싶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배변활동이란 게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거의 매일 수행하는 일들이니 딱히 ‘이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상적인’ 것이라고 해서 늘 노골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한때 많은 사람들이 ‘성해방’이니 뭐니 하면서 성을 문화의 전면으로 끌어내는 것이 성숙한 것이고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그 이후 이와 관련해 나타난 변화는 포르노 산업의 확산과 엄청나게 늘어난 성폭행과 성폭행 연령의 저하와 같은 것이 대표적이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똥과 오줌을 무조건 감춰야한다는 건 아니지만,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자기 똥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화가에까지 이르게 되면, 이건 뭐 거의 자기파괴적인 자유추구의 종말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요컨대 자아가 팽창되자 못해 자기와 관련된 모든 것에 숭고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종의 노출증에 걸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전에 한 요리사가 쓴 중세 음식사에 관한 책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고, 나아가서 그 역사를 연구하고 책으로까지 엮어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참 멋져보였다. 어떻게 보면 이 책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일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다양한 문헌과 자료로 흩어져 있던 것들을 하나의 주제로 이렇게 엮어낸다는 것은 대단한 노력의 결과이니까. 각각의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자기 분야에 관한 미시사(微示史)를 차곡차곡 쌓아놓을 때 결국 역사학 자체도 두터워지고 풍성해지는 법이기도 하다. 도시위생이나 설계를 전공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쯤은 읽어볼만할 것 같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은 연구 자료로서는 충분히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내 생각엔 그냥 사람들이 모였을 때 사용하는 B급 유머의 주제로 사용될 가능성이 더 높을 것 같다. 하지만 뭔가 독특한 것을 즐기는 것 같은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런 식으로 책의 내용이 사용된다고 하더라도 딱히 기분나빠하기 보다는 호탕하게 웃고 넘길 것 같으니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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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3 - 최후의 노력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3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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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갑작스러운 이민족의 침입으로 잇따라 군인 출신의 황제들이 나타나 상황을 수습하기 바빴던 3세기가 지나고, 로마는 제국 전체의 상황을 돌아보고 새로운 정책을 세울 줄 아는 두 명의 황제를 맞이하게 된다. 제국을 네 명의 황제가 나누어 방위한다는 전략을 세웠던 디오클레티아누스와 이를 다시 하나로 통합해 전제군주국가로 전환시켰던 콘스탄티누스가 그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시민들의 지지나 동의가 없이 오로지 권력을 가진 황제 자신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이미 로마의 성격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2. 감상평 。。。。。。。                    

 

     로마라는 나라는 참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기원전 8세기 중반에 건국되었다고 알려진 이 나라가 4세기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니 족히 1,200년 째 나라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야 고려와 조선만 해도 각각 오백 여년은 되고, 신라는 천 년 가까이 나라를 유지했으니 어떤 나라가 몇 백 년을 지속했다고 하더라도 딱히 놀라지 않겠지만, 사실 세계사를 봐도 이런 경우는 매우 독특한 사례다. 이 정도로 버틸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장점을 갖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기간 동안 한결같은 국가 형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초기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넘어간 것도 실로 놀라운 발전이었고, 다시 제정으로 변했고, 후에는 절대군주국가로 생명을 이어나간다. 다행이 이러한 변화는 각 시대마다 로마가 처한 현실에 가장 잘 반응할 수 있는 흐름을 탄 것이었고, 덕분에 로마가 망하지 않고 이어져나갈 수 있었다.

 

     사실 이렇게 본다면, 이 책의 군데군데 등장하는 것처럼 콘스탄티누스에 의한(사실 이미 이민족의 침입에 시달리면서 로마는 강력한 군주를 원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전제군주국가로서의 전환을 딱히 퇴보니, ‘이렇게까지 해서’(355)라니 하며 안타까워하거나 평가절하 할 이유는 없다. 로마가 언제 일관된 정체를 가지고 있었던가? 그런 식으로라면 시오노 나나미가 그렇게도 찬양해 마지않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야말로 공화정에서 한 사람에게 권력이 독점된 체제로의 변화를 시작한 인물이 아닌가.

 

     물론 이 시기 과거 로마를 강하게 만들었던 여러 미덕들이 점차 줄어가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건 로마라는 국가가 쇠락해가는 시기이기 때문이지,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했기 때문도 아니고, 콘스탄티노플로 사실상의 수도를 옮겼기 때문도 아니다. 전제군주국가로의 전환도 따지고 보면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마든지 황제를 암살해버린 로마인들 자신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도 자신들이 고대 로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사람들이나 되는 양 안타까운 척을 하는 학자나 저술가들을 보면 그 순진함에 어이가 없어지기도 한다.

 

 

     저자는 3장에서 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사실상 장려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설명을 시도한다. 저자에 따르면 시민들과 원로원의 지지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기존의 원수정을 전제군주정으로 바꾸기 위해 신이 수여한 왕권이라는 개념이 필요했고, 이는 기존의 로마의 다신교 신관으로는 불가능했기에 새로이 기독교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 면이 있는데, 사실 로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실력주의(이 단어가 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로 나아가서 원로원과 시민들의 지지란 사실 명목상에 불과한 것이 된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절대군주가 된 것처럼 행동했던 황제들은 이미 앞에도 있지 않았던가. 더구나 왕권신수설이라는 천년 후의 개념은 천년 뒤에나 나오게 된 것이다. 중세가 되기 이전엔 교회가 황제에게 관을 씌워준 적도 없었고, 저자에 따르면 여전히 소수파에 불과한 기독교가 어떻게 제국의 황제의 위치를 공고히 해줄 수 있었겠는가.

 

     저자는 자신이 비종교적 관점(354)으로 꽤나 중립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신도’라는 일종의 다신교 문화에 익숙한 일본인이어서인지 일신교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신교를 서술할 때면 꼭 한 번쯤 비꼬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14권부터는 본격적으로 로마가 멸망한 원흉으로 기독교를 지목하는 듯한 뉘앙스를 보이니 말이다. 역시 인간은 자신이 자라온 공기가 아닌 다른 공기를 들이마시면 불편함을 느끼게 되나보다.

 

 

     확실히 뒤로 가면 갈수록 재미가 떨어지는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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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2 - 위기로 치닫는 제국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2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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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역사 시리즈도 벌써 열 두 번째 책을 맞았다. 로마 건국 초부터 시작되었던 이야기도, 벌써 로마가 ‘심각하게’ 흔들리게 되는 시기까지 와 버렸다. 열 두 권이라는 적지 않은 책을 통해, 로마라는 한 공동체가 태어나서부터, 성장하고, 성공하고, 병들어 가는 모습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게 된 점에 대해서는 시오노 나나미라는 작가에게 크게 고마워해야 할 부분이다.

 

 

     로마 제국의 멸망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려면 자연히 그 원인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저자도 이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내놓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로마인의 비로마화라는 부분이다. 그 대표적인 표지가 공공의식의 약화. 기병 위주의 야만족의 침입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창설된 기병단은 로마군의 기본구조를 바꾸어놓았고, 문관과 무관의 분리정책은 균형 잡힌 인재양성을 방해하고 말았다.(사실 이 시기 제국을 구할 인재라고 할 만한 인물들이 거의 없었던 것 같지만)

 

     공공의식의 약화라는 주제가 나와서 말인데, 어떻게든 로마를 변호하고 싶었던 저자는 이 시기 기독교에 대한 박해마저도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식으로 몰아간다. 기독교도들이 병역도 공직도 나서지 않고 자기들끼리의 공동체 안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제국 공동체에 저해요소가 되었다는 식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병역이야 마리우스의 개혁 이래로 의무가 아니라 선택으로 바뀐 지 오래고, 공직 역시 강제로 나가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더구나 저자도 인정하듯이 이 시기 로마인 전체의 공공의식의 약화는 두드러진 것이었다. 굳이 기독교도들만의 특별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적 위기를 맞이한 로마의 지배층이 결국 희생양을 찾아낸 것이 기독교도였다고 보는 게 좀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시오노 나나미 역시 그저 심통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있어서 초기 기독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저자의 무지함은 놀라울 정도다. 기독교도들이 처음부터 로마가 망하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은 아니다. 순서상으로 보면 제국이 기독교도들을 희생양으로 삼기 시작하면서부터, 방어적인 자세로 돌아선 것뿐이다. 저자는 다신교를 대단히 포용적인 사고처럼 묘사하지만, 결국 자기들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는 존재는 괴롭혀도 된다는 식의 사고는 대단히 폭압적인 것이 아닐까.(물론 이 점에 있어서는 훗날 교회가 주류가 되었을 때도 동일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멸망이 가까운 이 시기는 실로 혼란의 시기였다. 수많은 황제들이 세워지고, 죽고, 다시 세워지는 과정을 서술하면서, 저자는 로마가 서서히 어떤 질병에 걸렸고, 어떻게 서서히 죽음에의 길로 나아갔는지를 약간은 씁쓸한 문제로 서술하고 있다. 로마에 푹 빠져버린 저자로서는, 로마가 멸망해 가는 모습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그 때문인지 저자의 이 시대의 인물에 대한 애착은 이전에 비해 많이 약해진 느낌이다. 저자가 영웅시 하는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와 같은 인물에 대해 서술할 때 보여주었던 생생함이, 이 시기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인물들이 많이 평면화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뭐 한 권에 십 수 명의 인물을 담으려다보면 개개인에 대해 애정을 갖고 서술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이렇게 제국이 몰락을 향해 치닫고 있다. 성자필쇠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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