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진, 길들여지지 않은 - 무시하기엔 너무 친근하고 함께하기엔 너무 야생적인 동물들의 사생활
사이 몽고메리.엘리자베스 M. 토마스 지음, 김문주 옮김 / 홍익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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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간에 주름을, 아니 줄무늬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고양이의 눈빛이 인상적인 표지다. 동물을 사랑하는 두 명의 저자가 각자 동물들과 함께 하며 겪은 일들을 풀어놓는 책이다. 페이지마다 동물에 대한 애정이 가득 묻어나오는 건 물론, 애정을 가지고 어떤 대상을 바라보면 이렇게 신선한 앵글로도 볼 수 있구나 싶은 내용도 적지 않다.

     여기저기 오줌으로 냄새를 남기는 개들의 행동은, 실은 SNS로 자신의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떠드는 인간의 모습과도 비슷하고, 고양이들이 남긴 자국을 추적해 보니 밤만 되면 세 마리의 고양이가 일행이 되어 동네를 탐험하고 있다던가 하는. 개를 마치 몸의 일부분처럼 묘사하는 부분은 꽤나 재미있다. 샤워할 때 강아지가 들어오는 것은 마치 우리가 다리의 존재를 특별하게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자연스럽다는 것.(‘반면 어떤 사람이 들어온다면이라고 묻지만, 물론 억지다. 강아지 자리에 화분이나 나비를 넣어도 우린 별로 의식하지는 않을 테니까.)

     동물들의 생태에 관해 집중하며 관찰했기에 알 수 있는 정보들도 많다. 들쥐들이 사람에게 기대어 쉬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았던 사람이 있을까? 새들이 리듬에 맞춰 춤을 출 줄 알고, 쥐와 닭들이 서로의 이름을 구별해서 부를 줄 안다고 한다!(심지어 사람에게도 이름을 붙인다) 이 외에도 동물과 관련된 다양한 전설과 이야기들도 실려 있다.

 

 

     그냥 편하게, 감상적으로 읽어볼 만한 책. 다만 여전히 저자들이 말하는 수십 억 년의 진화와 그들이 동물에 대해 갖는 특별한(신비하기까지 한) 감정 사이에 어떤 합리적 연결고리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누군가 그 진화의 과정을 세심하게 조절하거나 이끈 게 아니라면 순전히 그 모든 과정은 우발적이라고 해야 할 텐데, 그 우발성에 대한 감상적 반응은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거기서 뭔가 대단한 필연적 의미를 이끌어 내려는 건 아무래도 무리일 듯싶다. 뭐 자신의 감성에 푹 빠지다 보면 약간의 논리적 손실은 감안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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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 오늘부터 행복해지는 내려놓기의 기술
우석훈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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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자 하면 떠오르는 선입관이 있다. 숫자들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각종 지수들을 끄집어 내 세상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지 하는 거시적 문제를 다루거나, 현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돈을 벌 수 있을지 하는 지극히 지갑론적 이야기들을 떠드는 사람들.

 

     그런데 우석훈의 책은 조금 다르다. 그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젊었을 때는 달랐다고 하는데 여튼 지금은 그렇다) 그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경제적 상황이 그리 녹록치 못하다는 것을 간단히 인정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대신 그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일을 차근차근 해 나가며, 버텨내라고 말한다. 적은 돈이라도 정기적으로 저축하고, 비록 계산이 나오지 않더라도 사랑의 힘을 믿어보고 뭐 그런 식의.

 

 

     이 책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조금은 늦게 얻은 두 아이를 집에서 키우면서 살아가고 있는(본인이 평가하기에 가사분담률이 40% 쯤 된단다) 50대가 된 한 경제학자가, 이제 조금 덜 치열하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소박한 행복론을 담아 쓴 에세이다. 사실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경제학과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그 바탕에는 대한민국의 50대가 처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는 건, 전작들을 읽어본 독자들을 알 수 있으리라.

 

     육체적으로도, 지적으로도 정점을 지난 50대가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다보면 결국 삶이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경차를 타고 다니면서 누가 난폭운전을 하면 바쁜 일이 있나보다생각하며 넘어가고, 도저히 보기 싫은 미운사람이 있으면 조용히 휴대폰 주소록을 열어 이름을 지워버리면 된다. 욕하며 아등바등 살면 뭐가 조금 나아지겠는가 하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힘이 빠진, 체념 섞인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조언이야말로 실제적인 조언이 아닐까. 클릭만 하면 당장 이번 주 당첨될 로또 번호를 알려주겠다고 우리를 유혹하는 팝업광고처럼 가벼운 말장난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보다야 얼마나 나은가

 

 

     오늘도 소위 경제를 다룬다는 사람들은 온갖 정보들에 수십 가지 이유를 붙여가며 숫자 놀이에 여념이 없다. 한참 그들의 설명을 들으면서는 그렇겠구나 싶다가도, 문득 정말 그게 의미가 있는 건가 싶을 때가 많다. 어쩌면 경제라는 건 사람들의 믿음을 통해 움직이는 건 아닐까. ,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이 모두 그 논리대로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믿는 동안에만 유효한 건 아닐까 하는 말이다.

 

     만약 그런 거라면, 우리의 생각을 다 같이 바꾼다면, 조금 다른 세상을 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무슨 대단한 세상까지는 아니라도, 우리의 삶을 그렇게 바꿔갈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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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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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작품으로 국내에도 꽤나 팬층을 확보한 작가 테드 창이 낸 신작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과학과 판타지를 적절하게 조합한 독특한 분위기의 작품을 써냈다.

 

     아홉 편의 중단편 소설이 실려 있는 이번 책에도 시간여행이 가능한 문, 공기로 작동하는 기계장치로 이루어진 인간(?), 인공지능과 온라인이 결합된 가상 반려동물, 경험하는 모든 것을 촬영해 시각해 보여주는 시스템, 사고하는 앵무새, 다중우주 사이의 통신을 가능케 하는 기계 같은 기발한 소재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소재가 아무리 흥미로워도 그것을 잘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와, 그 안에 담겨질 교훈 혹은 메시지가 허약하거나, 애초에 글 솜씨가 부족하다면 이 정도의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 확실히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를 보면 대단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작가는 노련하게 이야기마다 생각할 꺼리들을 담아낸다.

 

 

     책 전체 분량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가상 인공지능 반려동물을 주제로 한 이야기다. 인간과 동물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가상의 존재들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이들과 인간의 차이를 어느 수준에서 이해할 것인지를 등장인물의 고민을 통해 끊임없이 묻는다

 

     개인적으로는 문득 16세기 즈음 신대륙에서 만난 원주민들을 인간으로 대우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 논쟁을 다룬 소설 바야돌리드 논쟁이 떠오르기도 했다. 인간의 조건이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 질문들을 녹여낸 작품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 배경을 미래로 옮겨, 인공지능이 어느 정도 발전하면 인간다운대우를 해주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표현하고 있다. 다만 내용이 조금 질질 끄는 감이 있고, 결말도 그리 시원치 못하다는 점은 약점.

 

 

     책 전체 제목이기도 한 도 기발하다. 전체적으로 엔트로피의 증가로 결국에는 열 평형상태가 되어 모든 것이 끝장날 것이라는 고전적인 열역학 이론을 살짝 비틀어, 기압차가 사라지고 일종의 우주적 기압평형상태가 되어가는 과정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여기에 기계장치로 구성된 주인공이 스스로의 뇌(부위)를 해부하며 이 과정을 확인하는 장면을 넣어 긴장감까지 북돋는다. 어쩌면 이 작가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인 듯싶기도 하다.(그래서 타이틀작으로 선정되었을까)

 

     두 개의 시간(‘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이나 두 개의 공간(‘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을 잇는 다리라는 소재는 자주 사용된다. 확실히 접근할 수 없는 것에 손을 대보고 싶은 마음은 인간 공통의 갈망인 듯하다. 첫 번째 이야기의 경우 살짝 단순한 구조였지만,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개성 있는 주변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좀 더 복잡하게 구성해 낸 것도 인정할 만.

 

 

     즐겁게 볼 수 있는 소설. 하나하나 붙잡고 이야기 해 볼만 하기도 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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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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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봤던 같은 이름을 가진 영화의 원작 소설이다. 공유와 정유미가 연기했던 영화와 큰 틀에서는 비슷한 내용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두 개의 매체가 소재를 다루는 방식도 구성도 약간 다르다

 

     ​가장 크게 눈에 들어오는 건 남편’(영화에서는 공유가 연기했다)의 비중이다. 영화에서는 남편의 비중이 소설보다는 커서, 그는 자신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의 문제에 끊임없이 공감을 시도하면서 도움이 되고자 노력한다. 감독의 의도는 짐작이 간다. 영화가 단지 남녀의 대립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며 문제를 풀어나가는 그림을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닐까 싶다. 다만 덕분에 남편이 그렇게 잘해주는 데 복에 겨워 그런다는 의도치 않은 비아냥거림이 나오기도 했지만.(그런 빈정거림은 저열한 태도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면 극의 느낌이다. 소설이라고 해서 좀 더 극적인 구성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책 뒷표지에 실린 소개글처럼 한편으로는 보고서의 느낌이 들 정도로 작가는 담담하게 서술을 이어나간다. 여기에는 자주 인용되는 통계자료와 연구 보고서 등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도 한 듯. 물론 이건 영화와 소설이 다르다는 말이지, 어느 한쪽이 더 낫다는 뜻은 아니다. 둘 다 나름 장점이 있는 작업이었다.

 

 

     소설이 여성중심이고, 여성들이 겪었던 부당한 대우와 시선들을 모아놓은지라, 자칫 시대착오적인 주장으로 보일 여지가 있다. 예컨대 50년 전 어떤 이들이 겪었던 일을 오늘 내가 겪은 일로 여기면서 어떤 주장을 하는 경우다. 작품 속 지영의 어머니 미숙이 겪었던 일은 지영이 겪은 일과는 분명 다르다이런 상황에서 (책 뒤 비평가의 글처럼) ‘딸 김지영의 삶은 어머니 오미숙의 삶에서 한 치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단언하는 것은 그저 감상적 반응일 뿐이다. 마치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황정민)를 보고, 그 나이 대 사람들(혹은 남성들)이 모두 자신이 덕수인 것처럼 생각하는 게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사회는 변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대우, 아니 인간에 대한 관점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미숙이 겪은 일은 분명 지영과는 다르다. 그리고 지영의 딸 지원이 겪을 일은 분명 지영과는 또 다를 것이다. 미진한 부분들이 많이 보이겠지만 분명 그래왔고, 그럴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어떤 이들이 겪은 문제를 그들의 문제로만 여기고 외면하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과 연대할 수 있고,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나 다양한 희생자들에게 힘을 더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감상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에 근거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공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오히려 소설을 넘어서는 힘이 느껴진다. 3자의 시선으로 주인공을 따라가면서 담담하게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서술해나가는 방식은, 영화 속 감정을 고조시키는 장면들과는 또 다른 설득력이 있다.

 

 

     조만간 내가 있는 교회에서 이 책을 함께 읽는 남성들의 독서모임을 준비해 볼 생각이다. 영화를 보고도 그랬지만, 문제는 관련된 사람들이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입장에 서볼 때 조금씩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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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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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파리의 벨빌에 사는 주인공 모모(원래 이름은 모하메드로 아랍계 소년이다), 양육비를 받고 창녀들의 아이를 맡아 길러주는 유대인 로자 아줌마의 집에서 (아이를 맡겨놓고 사라지는 경우도 있기에 아이들은 종종 입양이 되기도 한다) 수시로 바뀌는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쉽지 않을 것 같은 삶이지만, 책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모모의 생각은 어린아이답지 않은 능청스러움(당연하지, 작가가 성인이잖아)과 애써 담담하게 보이려는 어린 아이 특유의 치기 같은 것이 짙게 묻어나온다.

      소설 속 모모는 종종 신선한 통찰을 보여준다. 로자 아줌마의 곁에는 아무도 없기에 자기 살이라도 붙어 있어야 한다며,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을 때 사람은 뚱보가 된다고 말한다.(99) 외로움이라는 정서를 살이라는 시각적 소재로 기발하게 표현해 내는 부분. 불치의 병에 걸린 로자 아줌마가 개였다면 안락사로 편안하게 죽을 수 있을 텐데, 사람들은 개에게 더 친절하기에 사람이 고통 없이 죽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130)는 지적은 조금 슬프다.

 

     사실 스토리의 진행보다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런 통찰들이 좀 더 인상적인 작품인지라, 이런 구절들을 발견할 때마다 해변에서 예쁜 조약돌을 줍는 느낌이었다.

 

 

      이민자들과 창녀들, 소매치기와 마약상, 힘을 과시하는 패거리들이 주민인 거리의 모습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결코 안전하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주인공 모모에게는 그런 거리의 엘리베이터도 없는 6층 집의 꼭대기가 가장 지키고 싶은 장소였다. 절망과 희망, 불행과 행복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님을 강변하고 있달까.

 

      여느 아이들과 달리 모모는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내고 있었다. 그가 얻은 행복은 누군가에 의해 수여된 것이 아니기에, 더 값져 보인다.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자처하며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데서 낙을 찾는 문명화된 십대들의 모습과는 얼마나 다른가.

 

      지킬 것은 지키고,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으면서,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모모가 행복을 찾는 비결이 아니었나 싶다. 이걸 알고 있는 사람은 사막에서도 꽃을 피워낼 수 있는 거다. 물론 이 비결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도 적절히 사용될 수 있을 것 같고.

 

 

     씩씩한 모모에게 응원의 박수를. 그리고 그 못지않게 치열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에게 격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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