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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 오늘부터 행복해지는 내려놓기의 기술
우석훈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6월
평점 :
경제학자 하면 떠오르는 선입관이 있다. 숫자들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각종 지수들을 끄집어 내 세상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지 하는 거시적 문제를 다루거나, 현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돈을 벌 수 있을지 하는 지극히 지갑론적 이야기들을 떠드는 사람들.
그런데 우석훈의 책은 조금 다르다. 그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젊었을 때는 달랐다고 하는데 여튼 지금은 그렇다) 그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경제적 상황이 그리 녹록치 못하다는 것을 간단히 인정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대신 그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일을 차근차근 해 나가며, 버텨내라고 말한다. 적은 돈이라도 정기적으로 저축하고, 비록 계산이 나오지 않더라도 사랑의 힘을 믿어보고 뭐 그런 식의.
이 책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조금은 늦게 얻은 두 아이를 집에서 키우면서 살아가고 있는(본인이 평가하기에 가사분담률이 40% 쯤 된단다) 50대가 된 한 경제학자가, 이제 조금 덜 치열하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소박한 행복론을 담아 쓴 에세이다. 사실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경제학과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그 바탕에는 대한민국의 50대가 처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는 건, 전작들을 읽어본 독자들을 알 수 있으리라.
육체적으로도, 지적으로도 정점을 지난 50대가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다보면 결국 삶이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경차를 타고 다니면서 누가 난폭운전을 하면 ‘바쁜 일이 있나보다’ 생각하며 넘어가고, 도저히 보기 싫은 미운사람이 있으면 조용히 휴대폰 주소록을 열어 이름을 지워버리면 된다. 욕하며 아등바등 살면 뭐가 조금 나아지겠는가 하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힘이 빠진, 체념 섞인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조언이야말로 실제적인 조언이 아닐까. 클릭만 하면 당장 이번 주 당첨될 로또 번호를 알려주겠다고 우리를 유혹하는 팝업광고처럼 가벼운 말장난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보다야 얼마나 나은가.
오늘도 소위 경제를 다룬다는 사람들은 온갖 정보들에 수십 가지 이유를 붙여가며 숫자 놀이에 여념이 없다. 한참 그들의 설명을 들으면서는 그렇겠구나 싶다가도, 문득 정말 그게 의미가 있는 건가 싶을 때가 많다. 어쩌면 ‘경제’라는 건 사람들의 믿음을 통해 움직이는 건 아닐까. 즉,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이 모두 그 논리대로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믿는 동안에만 유효한 건 아닐까 하는 말이다.
만약 그런 거라면, 우리의 생각을 다 같이 바꾼다면, 조금 다른 세상을 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무슨 대단한 ‘세상’까지는 아니라도, 우리의 삶을 그렇게 바꿔갈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