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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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작품으로 국내에도 꽤나 팬층을 확보한 작가 테드 창이 낸 신작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과학과 판타지를 적절하게 조합한 독특한 분위기의 작품을 써냈다.

 

     아홉 편의 중단편 소설이 실려 있는 이번 책에도 시간여행이 가능한 문, 공기로 작동하는 기계장치로 이루어진 인간(?), 인공지능과 온라인이 결합된 가상 반려동물, 경험하는 모든 것을 촬영해 시각해 보여주는 시스템, 사고하는 앵무새, 다중우주 사이의 통신을 가능케 하는 기계 같은 기발한 소재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소재가 아무리 흥미로워도 그것을 잘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와, 그 안에 담겨질 교훈 혹은 메시지가 허약하거나, 애초에 글 솜씨가 부족하다면 이 정도의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 확실히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를 보면 대단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작가는 노련하게 이야기마다 생각할 꺼리들을 담아낸다.

 

 

     책 전체 분량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가상 인공지능 반려동물을 주제로 한 이야기다. 인간과 동물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가상의 존재들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이들과 인간의 차이를 어느 수준에서 이해할 것인지를 등장인물의 고민을 통해 끊임없이 묻는다

 

     개인적으로는 문득 16세기 즈음 신대륙에서 만난 원주민들을 인간으로 대우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 논쟁을 다룬 소설 바야돌리드 논쟁이 떠오르기도 했다. 인간의 조건이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 질문들을 녹여낸 작품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 배경을 미래로 옮겨, 인공지능이 어느 정도 발전하면 인간다운대우를 해주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표현하고 있다. 다만 내용이 조금 질질 끄는 감이 있고, 결말도 그리 시원치 못하다는 점은 약점.

 

 

     책 전체 제목이기도 한 도 기발하다. 전체적으로 엔트로피의 증가로 결국에는 열 평형상태가 되어 모든 것이 끝장날 것이라는 고전적인 열역학 이론을 살짝 비틀어, 기압차가 사라지고 일종의 우주적 기압평형상태가 되어가는 과정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여기에 기계장치로 구성된 주인공이 스스로의 뇌(부위)를 해부하며 이 과정을 확인하는 장면을 넣어 긴장감까지 북돋는다. 어쩌면 이 작가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인 듯싶기도 하다.(그래서 타이틀작으로 선정되었을까)

 

     두 개의 시간(‘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이나 두 개의 공간(‘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을 잇는 다리라는 소재는 자주 사용된다. 확실히 접근할 수 없는 것에 손을 대보고 싶은 마음은 인간 공통의 갈망인 듯하다. 첫 번째 이야기의 경우 살짝 단순한 구조였지만,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개성 있는 주변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좀 더 복잡하게 구성해 낸 것도 인정할 만.

 

 

     즐겁게 볼 수 있는 소설. 하나하나 붙잡고 이야기 해 볼만 하기도 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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