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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가슴으로 끌어안기
제인 루비에타 지음, 조계광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목회자는 항상 대기상태로 지내야 하며,

사람들의 본이 되어야 하고,

늘 교인들의 기대에 부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1. 요약

 

        그 자신도 한 목회자의 아내로서 오랫동안 교회를 섬겨왔던 저자 제인 루비에타는, 자신의 경험과 함께 다른 많은 실제적인 사례들을 더해서 목회자가 목회 사역을 하면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들에 대해 매우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목회자의 어려움을 알고, 그것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자연히 그 일차적인 독자들은 목회자 혹은 목회자 훈련생들이라기보다는 (상대개념으로서의) 평신도들이다. 저자는 성도들이 어떻게 목회자가 안고 있는 고민들과 어려움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은 매우 넓어서 신임 목회자가 새로 부임했을 때부터, 은퇴 후의 일까지 포함하고 있을 정도이다. 



2. 감상평

 

        언뜻 단지 평신도들을 위한 책으로만 여겨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는 평신도들로 하여금 목회자들을 마음으로 품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 목회자들이 겪을 수 있는 매우 실제적인 문제를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목회의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도록 하고 있다. 

        목회의 사택문제, 적은 사례비, 자녀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 턱없이 적은 개인 시간, 그리고 이로 인한 가정의 문제 등, 저자는 약간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문제들을 사실적으로 설명한다.(사실 어떤 의미에서 약간 사기가 꺾일 정도이다) 아마도 이 점이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목회자로서 교회를 섬긴다는 것이 어떤 어려움들을 감당해야만 하는 것인지를, 뜬 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피부에 와 닿는 설명으로 진행한다. 역시 사역은 감상이 아니라 실제 삶과 관련된 일이다. 철저한 영적 준비뿐만이 아니라, 직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도 미리 준비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목회자로 ‘생활’하면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도록 만드는 책. 하지만 미국과 우리나라는 상황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읽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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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10계명 - 건강한 교회, 아름다운 교회를 위한
로렌스 패리스 지음, 김용운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정기적인 운동과 적절한 식사는 자신을 섬기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드려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길 힘을 기르기 위함이다.

 

 

 

1. 요약

 

        목회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신학교에서 이론은 몇 년씩 배웠을지 모르지만, 실제 목회 현장에 나가면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문제들, 아니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었더라고 하더라도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미묘한’ 문제들을 자주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로렌스 페리스 목사는 이런 실제 목회 현장에서 신임목사들이 겪을 수 있는 ‘미묘한’ 문제들에 대한 ‘지혜로운’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처음 목사가 교회에 부임해서 어떻게 그 교회에 녹아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부분부터, 어떻게 교회에 변혁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지역 사회와의 관계는 어떻게 형성해야 하는지, 목사 개인의 삶을 어떤 식으로 질서를 부여할 것인지 등, 매우 실제적인 지침들로 가득 차 있는 책이다. 



2. 감상평

 

        ‘목회 10계명’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질 수 있는 ‘지나치게 단순하고, 도식적이며, 딱딱한 대답’이라는 느낌은 지워버려라. 저자는 현장에서의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경험들을 매우 실감나게 제시하면서, 자연스럽게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다.

        흔히 이런 종류의 책들은 자신이 체험한 경험만이 절대적인 것처럼, 자칫 강압적인 주입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은데, 저자는 이런 부분에서도 적절한 ‘수위’를 지키고 있다. 글의 내용뿐만 아니라, 글의 형식에서도 저자는 독자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몇 가지의 ‘계명들’(특히 8~10계명)은 내용상 서로 크게 구분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각각의 항목에 대해 꼭 해야만 하는 중요한 말들이 많아서일지도 모르지만, 언뜻 10개라는 숫자를 맞추려고 일부러 늘린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준다. 



        꼭 담임목사의 경우가 아니라도, 교회에서 여러 분야에서 섬기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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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롤라모 사보나롤라 - 중세의 세례요한
김남준 / 솔로몬 / 199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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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내가 원하는 바는 추기경의 모자도 아니고 주교의 관도 아닙니다.

나는 그 어느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추기경의 붉은 모자 대신에,

오직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서 당신들의 성자들에게 주신 바

순교의 붉은 피로 물든 모자 그것을 원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뿐입니다.

 

        중세 이탈리아에서 베네치아와 함께 최고조의 문화적, 경제적 영향력을 자랑했던 피렌체. 그 도시에 나타났던 이색적인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이 책의 제목인 기롤라모 사보나롤라였다. 사보나롤라는 매우 극단적인 두 가지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한편에서는 광신적인 선동가로, 피렌체에 신정국가를 수립해 그 최고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섰다가 몰락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반면, 반대편에서는 중세 기독교의 부정적인 면에 대한 개혁을 시도했던 개혁가라고 평가되고 있다. 

        책의 부제인 ‘중세의 세례요한’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사보나롤라라는 인물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사보나롤라는 중세라는 영적으로 혼탁한 시대적 상황에서 진리를 외치다가 결국 반대자들에 의해 순교를 당한 인물로 본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그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어린 시절에 관한 기록 자체가 적었기 때문인지 주로 청장년 이후의 일에 관해 쓰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전기문은 아니다. 저자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사보나롤라라는 인물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를 우선 하나의 위대한 설교자로 보고, 오늘날 설교자들이 따라가야할 한 표상으로 그를 조명하고 있다. 때문에 그와 관한 에피소드들도 대부분 설교자로서의 그의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때문에 역사서로서의 측면은 좀 약한 편이다. 내가 사보나롤라라는 인물을 읽었던 다른 책과는 매우 평가가 다른데, 그런 평가를 내리게 된 이유에 대한 설명이 약간 부족한 느낌이 든다. 또, 저자가 쓴 책에서 자주 찾아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 ‘약간은 지나친 감이 있는 반복적 서술’이 아쉬웠다. 목적을 가지고 쓴 글이 대부분 그렇듯이 저자는 자신의 생각에 독자들이 따라와 주기를 바라고 있고,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주제의 반복이라는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지적하자면, 저자도 인정하고 있는 사보나롤라라는 인물이 가진 한계다. 저자는 그 한계를 단지 ‘시대적 상황’으로 돌리거나, 그다지 중요한 부분이 아닌 것으로 보는 감이 없지 않아 있는데,(내가 생각하기엔 그 ‘한계’는 결코 작지만은 않은 부분이다.) 이런 한계점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지, 왜 문제시되지 않는 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한마디로 균형있는 서술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사보나롤라라는 인물이 흥미로운 인물인 것은 분명하다. 아직 사보나롤라가 누구인지 모른다면, 잠시 시간을 내서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그리 길지 않은 책이다.) 특별히 설교자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설교 하나로 한 도시의 시민들을 리드했던 사보나롤라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결코 헛된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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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동생 야고보 유골함의 비밀 - 찬우물 고고학 시리즈 1
허셜 섕크스 외 지음, 이원기 옮김 / 찬우물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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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 유골함이 발견됨으로써

우리는 과거에 야고보에 관해 알려진 것 대부분을

재검토할 수 있는 계기를 맞았다.

 

        어떤 사람이 골동품상으로부터 유골함 하나를 구입했다. 처음에는 그 유골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몰랐던 소장가는, 어느 날 그 유골함을 저자에게 보여준다. 여러 고고학 관련 잡지의 편집장을 맡고 있었던 생크스는 그 유골함에 써 있는 글귀를 보고, 유골함이 매우 특별한 가치를 지닌 것임을 알아본다. 유골함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야고보, 요셉의 아들, 예수의 형제.”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의 동생(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의미에서)이자,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고, 야고보서의 저자로 알려진 바로 그 야고보의 유골함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생크스의 주장이다. 

        과연 그런 명문 하나만을 보고서 그것이 정말 그 당시의 물건인지, 그리고 그 당시에 새겨진 것인지, 또 설사 그것이 진품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를 이르는 것인지 하는 산적한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저자는 매우 여러 장에 걸쳐서 그 유골함이 진품이며, 그 당시 요셉이라는 아버지를 두고, 예수라는 형제를 둔 야고보의 숫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증을 몇 가지 자료를 통해 주장한다. 



        책의 두 번째 부분은 또 다른 사람이 쓴 것이다. 앞서 생크스가 유골함의 진위여부에 대한 글을 썼다면, 둘째 부분을 쓴 벤 위더링턴은 그 야고보가 어떤 인물인가에 대해 쓰고 있다. 내용상으로 앞의 것에 2배가 약간 안 되는 분량이었다. 

        위더링턴은 성경과 그 이외의 몇 가지 참고문헌들을 통해 야고보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 사실 그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야고보라는 인물이 초기 기독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 그런 그가 왜 오늘날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되었는가 등의 문제를 그리 깊지 않게 써 내려가고 있다. 

        한편의 ‘야고보 전기(轉記)’를 쓰듯이, 야고보의 탄생부터 그의 삶, 죽음까지를 시간의 순서에 맞추어 진행한다. 



        야고보의 유골함이라. 도서관에서 과제를 하기 위한 참고도서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사실 내가 서 있던 서가에 있을 책이 아닌데, 왜 그 곳에 꽂아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우리 학교 사서들 책 분류 기준은 뭔지..) 

        책의 공동저자 중 한 명인 생크스는 이 유골함의 발견을 역사적인 ‘비밀’을 밝혀낼 수 있는 무엇인가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래서 책 제목에 ‘비밀’이라는 매우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그는 자신의 이 발견의 중요성 때문에 그것을 부인하려는 시도가 나타날 것을 대비해(사실 일부분 이런 예상은 맞았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통해 그 유골함이 진짜 서기 1세기 경의 것이고, 명문 역시 그 시기에 새겨진 것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 지나치게 장황해 보이는 ‘증명과정’은, 단지 나에게는 고고학이라는 학문에 불확정성이 얼마나 많이 개입되는가 하는 점과 인간들이란 다른 사람이 좀 좋은 것을 찾아냈다고 하면 그에 대한 시기심과 의심이 얼마나 놀랄 만큼 잘 발휘되는가 하는 점뿐이었다. 뭔가 발견되었다고 하니까 하나같이 나서서 ‘그건 가짜요.’라고 외치며 이름을 내보려고 하는지. 



        사실 이 유골함의 발견으로 달라지는 것이 있는가? 내가 보기엔 그다지 달라지는 것은 없다. 우선 생크스가 참고한 통계학적 자료들은, 솔직히 말하면 지나치게 짜 맞춘 듯한 느낌이 든다. 요셉이라는 아버지와 예수라는 형제를 가진 야고보라는 인물이 몇 명이나 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백번 양보해서, 그것이 정말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라고 하더라도, 그 유골함은 그 이상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냥 그렇다는 것뿐이다. 

        저자들은 그 사실을 통해 야고보가 예수님의 친동생(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낳은)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밝혀줄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 그 부분은 ‘믿음’에 관한 문제지, 이런 고고학적 발굴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극단적으로, 야고보가 예수의 친동생이었다라고 쓰인 글이 발견되더라도 그 신빙성을 쉽게 증명하기는 어렵다.) 

        또,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내용인 야고보의 일생에 관해서는 더더욱 알려주는 것이 없음은 분명하다. 책에 나온 것처럼 유골함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가 부유했다거나 하는 주장은 옳지 않고(유골함은 상당히 싼 가격이었다.), 그 유골함이 정확히 어디서 밝혀졌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의 죽음과 장례에 관련된 어떤 정보를 얻어내는 것도 무리가 있다. 그래서인지 2부의 거의 대부분의 내용은 유골함의 발견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추론했다기 보다는, 이런저런 고대의 문서들과 현대의 주석가들의 글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했을 뿐이다. 요컨대 새로운 무엇인가가 나왔다기보다는 이미 알려졌던 내용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대해 비판만 하는 것도 좀 미안한 일이 될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이 발견으로 인해 ‘과거에 야고보에 관해 알려진 것 대부분을 재검토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긴다면,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을 읽는데 좀 더 흥미를 갖도록 만든다면, 그 자체로 어느 정도 영향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후반부의 내용들은 비록 유골함으로부터 직접 추론한 것들은 아니라고 하나, 야고보라는 인물에 대해 제법 상세하고 일관된 정리를 하고 있다. 기록된 자료들도 제법 여러 권을 찾아가며 쓴 것처럼 보인다. 야고보라는 인물에 관해 알고 싶으면 책의 후반부를 중심으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과대포장된 면만 아니라면 무난한 느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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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 복음과 서구 문화
레슬리 뉴비긴 지음, 홍병룡 옮김 / IVP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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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인해 밝혀진 실제 세계는,

목적이 아니라 인과율 중심의 자연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였다.

 

 

        40년 가까이 선교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선교사. 그런 인물이 쓴 기독교 변증서는 어떤 모양일까? (적절하지는 않으나) 일반적으로 선교 사역을 하시는 분들에게 신학적 깊이를 요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선교 사역이라는 것이 워낙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일이 주가 되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으며 연구를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 책의 저자가 35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선교 사역을 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 그 사역의 고귀함을 인정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 내용에 대해 약간의 의심을 가졌었다.(모두가 이전에 뉴비긴을 몰랐던 내 무지 때문이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너무나 좋았다. 

        책의 주요 내용은 현대주의에 물든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성경적 진리를 가르치고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있었다. 이를 위해 우선 그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고(1장), 현대 사회(특별히 서양근대사회)의 기초적 전제들을 검토한 후(2장), 그에 대응을 했던 교회의 반응들과 우리가 택해야 할 기본적 방향을 정리 한다.(3장) 이렇게 올바른 방향을 정립한 후, 저자는 좀 더 구체적으로 현대인들에게 복음을 받아들일만한 것으로 제시할 수 있는 ‘타당성 있는’ 논증을 소개한다.(4장) 복음은 단지 신앙의 차원이 아니고 사회의 실제적인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 함을 강조한(5장)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오늘날 교회의 사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으로(6장) 책을 마무리 한다. 



        왜 나는 이 책을 좋다고 말하는가? 저자에 대한 선이해가 전혀 없었던 나로서는, 오직 이 책의 내용만이 그런 평가에 영향을 주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책의 내용은 매우 탁월했다. 특히 말하고자 하는 논점을 흩트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서술해 나가는 집중력, 그리고 외적으로 드러난 현상 이면에 감추어진 기초적인 전제들을 정확히 집어내는 날카로운 분석능력, 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키(key)로서의 성경을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번역’해 내는 능력 등이 그러하다. 

        저자의 말처럼, 서양근대사회는 결코 정상적이지 못하다. 죄의 영향 때문이다. 복음을 따라가는 사람으로서는 결코 세속사회의 가치관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다면 세상과 따로 떨어져서 살아야 하는가? 저자는 바울의 오래된 설명(고전 5:10)처럼,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임을 말한다. 적어도 이 세상에서 살면서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인격적인 분열을 겪고 말 것이다. 방법은 이 시대의 세계관이 어떤 면에서 잘못되었는지를 명백히 지적하고, 올바른 세계관으로의 ‘시각의 교정’을 이루어내야만 한다. 저자는 이 시각의 교정을 ‘회심’이라는 말로 부른다.(이 얼마나 탁월한 표현인가.) 

        현대 사회는 세계에서 ‘목적’이라는 개념을 지워버리고, 오직 ‘인과율’이 지배하는 세계로 설명한다. 그런 눈으로 신앙을 바라볼 때, 그것은 결코 받아들일만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기독교인들의 일반적인 시도가 이런 문제, 즉 적의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데 있다고 보고, 그 안경을 벗겨내는 데 이 책의 내용의 대부분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의 전개와 고찰은 불분명하거나 흐리지 않고 매우 선명하다. 



        책 내용은 매우 무게감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논리적 전개나 저자가 사용하는 어휘들에 담긴 함의가 지나치게 난해하지는 않다. 그래서 책을 읽어나가는 일 자체가 우리에게 어려움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이것이 이 책이 갖는 또 하나의 장점일 것이다.(두려워하지 말고 사서 읽어보라는 말이다.) 

        저자의 이력 가운데 WCC의 주요요인이라는 것이 있고, 그래서 매우 가끔 물음표가 떠오르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단지 신학생들, 혹은 목회자들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특별히 그런 그리스도인 청년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주님의 이름이 온 세상에 가장 크게 높임을 받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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