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한 성경읽기 - 성경전문가들과 나누는 16편의 흥미진진한 대화
조지 거스리 지음, 홍종락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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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제대로 읽어내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먼저는 성경읽기의 의의와 효과, 그리고 필요성에 관한 강조가 들어있고, 이어서 구약과 신약 성경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각 장르의 특성에 맞춰 읽는 방법에 관한 교훈들을 전해준다. 마지막으로는 성경읽기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에 어떤 적용점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잘 짜인 구성.

 

 

 

2. 감상평 。。。。。。。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믿는 모든 내용은 성경에서 나오고,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 필요한 내용들을 가르치고 인도하신다고 믿는다. 하지만 놀랍게도!!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읽지 않는다. 그리고 성경을 읽는 일부분의 그리스도인들도 그것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쯤 되면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이 애매해지기 시작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선 방대한 분량의 책이기도 할뿐더러,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지금으로부터 적게는 2천 년 전에서 많게는 3천 년 이상 차이가 나는 고대에 관한 기록들이다. 여기에 그 문학적 특성까지 역사기술과 시, 묵시록과 예언들 등으로 다양하니까. 그리고 사실 성경에 대한 선이해 없이 무작정 읽어가는 것은 이런 어려움들 때문에 종종 전혀 엉뚱한 방식의 읽기로 빠져버리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적절한 조언들을, 친절하게도 한 권에 담아낸다. 그것도 중구난방으로 던지는 식이 아니라, 좋은 구성 아래 각 분야의 최고의 전문가들을 저자가 직접 만나 얻은 조언들을 대화체로 설명하고 있으니, 그 내용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기만 해도 성경과 성경읽기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건전한 복음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으며,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기보다는 이 작업이 얼마나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줄지를 설명하며 부드럽게 도전하는 방식이라 큰 부담 없이 읽어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성경에 대해 진지한 탐구를 하기 원하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도 좋은 안내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추천할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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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書의 역사
크리스토퍼 드 하멜 지음, 이종인 옮김 / 미메시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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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이 책은 말 그대로 성서(혹은 성경)의 역사를 서술한 책이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서 신학이나 신앙적인 진술은 배제한 채 철저하게 그 독특하고 오랜 전통을 가진 책이 전해져온 역사에 관해 집중하고 있다.

 

    책은 4세기 후반 히에로니무스(영어식으로는 제롬)라는 이름의 수도사가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사건부터 시작한다. 라틴어는 그 당시 유럽의 공용어였다. 그 이전에도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또 라틴어 번역들이 있었지만 히에로니무스는 그 수준들에 만족하지 못했고, 직접 히브리어성경에서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시작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것이 불가타(영어식으로는 벌게이트)성경이다. 이 당시 성경은 모두 직접 필사를 했고, 그 종이도 상당히 비싼 양피지였기에 일반인들은 가질 수 없었다. 때문에 이 책은 상당히 고가품으로 귀족이나 왕과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화려하게 만들어진다.

 

    중세 초기인 11세기에도 이런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이 시기 제작된 성경들은 거대하고 화려한 채색과 장식이 되어 있는 게 특징이었다. 그리고 12세기까지 이르면서 여러 성경에 관한 주석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성경 본문에 주석이 더해진 형태의 책도 이 시기 많이 등장했다.

 

    13세기에 들어서면서 거대한 성경들은 크기가 작아지기 시작한다. 이전의 책이 비치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휴대용으로의 용도전환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이동하며 설교를 했던 수도단들의 성립에 힘입은 일이었다. 또 하나 이 시대의 중요한 발전은 이전에는 대부분 여러 권으로 나눠 출판되던 성경이 한 권짜리로 합본되어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중세 말 성경은 다시 화려해지기 시작한다. 13, 14세기로 접어들면서 각종 삽화들이 들어가면서 크기도 두께도 늘어났다.

 

    책은 이 외에도 위클리프와 그의 추종자들을 중심으로 잉글랜드에서 시작되어 종교개혁으로 크게 일어난 자국어 번역의 흐름과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미친 영향들, 또 해외 선교를 위해 외국어로 번역 출판된 성경들, 그리고 고고학적 연구로 새롭게 발견된 고대 문서들에 관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2. 감상평 。。。。。。。  

 

    큼지막한 크기에, 책 전체에 걸쳐서 많은 도판이 실려 있어 보는 재미도 있었던 책이다. (, 좀 무게가 있어서 지하철에서는 자리가 나지 않으면 서서 들고 읽기엔 무리였다.) 시대에 따라서 성경의 크기와 장식에 일정한 취향이 있었다는 점은 새로웠고, 책 전체에 걸쳐 실려 있는 화려한 중세식 양피지 성경 사진들을 보는 건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전해져 온 성경의 내용이 사본들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사소한 오탈자 등은 발견되지만, 내용 상 결정적인 차이를 가져올만한 부분은 없었다. , 일부 과격한 비평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특히 신약성경의 경우) 고고학적 발견에 따르면 그 저작연대는 훨씬 더 이른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군데 정도의 오타가 보이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큼직한 크기에(이건 책에 실린 삽화들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살필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런 책에 걸맞은 사철 방식으로 제작되어서 한눈에 봐도 공들여 만들었다는 느낌을 준다. 마치 13세기 후반, 14세기 유행했던 그림성경을 보는 느낌이랄까.

 

    다만 책 후반에 실린 동양 쪽의 성경의 역사 부분은 약간 미흡하다는 느낌도 준다. 아무래도 저자 자신이 주로 서양의 중세 고문서를 전공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유럽인들의 아시아 진출이 일어나기 천년도 전인 7세기 이미 경교라고 불리던 네스토리우스교 선교사들에 의해 한문으로 번역된 성경이 중국에 전래되었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언급은 아예 빠져있다. 외국어로의 성경번역사를 논하려면 꼭 한 번은 짚어야 하는 부분인데 아쉽다.

 

 

    꼭 종교적인 관점이 아니라 그냥 인문학적인 관점으로도 성서의 역사에 관해 공부하려고 할 때 보면 괜찮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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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여름 2014-09-06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입니다 ㅎㅎ

노란가방 2014-09-06 12:41   좋아요 0 | URL
감사감사
 
정말 기독교는 비겁할까? - 본회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행동.의
디이트리히 본회퍼 지음, 만프레드 베버 엮음, 정현숙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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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독일의 양심이라고 불리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글들 중 일부를 뽑아 항목을 나눠 엮은 책이다. 오랫동안 본회퍼의 글을 전문적으로 펴냈던 편집자답게 다양한 저작들로부터 좋은 문장들을 골라냈다.

 

 

 

2. 감상평 。。  

 

 

     본회퍼가 속해 있었던 독일 루터파 교회는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종교개혁자 루터의 고향이자 그의 개혁이 시작되어 결국에 열매를 맺었던 나라인 독일에서 이 신앙형태는 단순히 종교적인 차원에서만 의의를 갖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당시 로마교황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유럽에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던 신성로마제국의 압제로부터 독일민족의 독립 쟁취하는 데 중심이 되던 사상이기도 했다. 오늘날 독일의 루터파 교회에서 일하는 성직자들이 일종의 공무원처럼 정부로부터 사례를 받으며 그 신분이 보장되는 이유도 (대신 그 자격을 획득하는 게 우리나라처럼 녹록하지 않다) 이런 역사적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어찌되었든 국가와 교회 사이의 이런 일종의 밀월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하면 반드시 부작용도 나올 수밖에 없다. 교회의 세속화가 그것인데, 자칫 교회가 정부의 힘과 권위에 의존하려는 태도를 보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히틀러의 출현을 바라보는 독일교회의 태도가 그랬다. 그리고 이런 흐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독재자와 싸우다 처형된 이가 바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였다.

 

 

    기본적으로 어떤 사람의 말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 사람의 삶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으로 무슨 좋은 말을 하든, 삶으로 자신의 말에 신뢰감을 더해주지 못한다면 그냥 헛소리일 뿐이다. 이 책에 실린 본회퍼의 평이한 듯한 말들이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지 그가 나치에 의해 처형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이 내뱉은 말을 삶으로 옮기려는 오랜 고민과 행동을 해왔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 곳에서 이렇게 발췌한 문장들을 읽는 것도 좋지만, 역시 그보단 전체 글 속에서 진주를 발견하는 게 더 재미있는 작업이 아닐까 싶다. 그 정확한 문맥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지나치게 의미가 산란되어 버리는 감이 있으니까. 영양제 안에 아무리 여러 가지 영양소가 모두 담겨 있다고 해도, 직접 음식을 먹는 즐거움 또한 포기할 수는 없으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짧아서 살짝 당황했다. 여백을 널찍하게 줘서 사실 담겨 있는 내용도 많지 않고.. (그런데도 정가는 9천원이나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목에서 제기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썩 시원하게 되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금방 다 읽고 나서 좀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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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n 2014-10-07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곳에서 이렇게 발췌한 문장들을 읽는 것도 좋지만, 역시 그보단 전체 글 속에서 진주를 발견하는 게 더 재미있는 작업이 아닐까 싶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소개한 목적은 청소년들에게 본회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답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부제로 `청소년을 위한`이 붙었어요. 청소년들에게 진정 자유로운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는 서문 정도의 의미를 가진 소책자라고 볼 수 있지요. 한국에서 너무 엄청나게 소개된 경향이 있어 번역자로서 조금 아쉽지만, 본회퍼 설교집을 읽으면 여러 설교에서 발췌된 내용의 전후 맥락을 알 수 있답답니다. 물론, `제자도`나 `성도의 공동생활`, 그리고 덴마아크에서의 강연 등을 읽어 보셔야 하구요. 정확한 지적 감사드리며!

노란가방 2014-10-07 09:16   좋아요 0 | URL
아.. 번역하신 정현숙 선생님이신가요? 댓글까지 달아주시고 감사드립니다.

인터넷 서점 책소개의 어디에도 말씀하신 것 같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소책자` 느낌을 받을 만한 내용이 없어서요. 엄청나게 치밀하고 치열했던 투쟁이 담겨 있을 것 같다는 분위기만 물씬...
말씀하신 것처럼 일종의 디딤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전 총리가 추천할 정도의 무게감을 지닌 책일까 싶기도 합니다.

네, 말씀하셨던 다른 책들을 직접 읽어봐야겠지요.. ^^
 
평신도들이 혼동하기 쉬운 성경 50 - 이단들이 잘못 사용하는 성경 구절에 대한 바른 이해
이인규 지음 / 카리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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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성경의 잘못된 해석들을 교정하기 위해 쓴 책이다. 좀 더 정확히는 이단이라고 불리는 집단의 비문법적이고 몰역사적인 해석의 오류를 지적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50개의 장에 걸쳐 50개의 오류들을 엮어 풀어내고 있다.

 

 

2. 감상평 。。。。。。。  

 

    세월호 사건 이후 구원파라는 이름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면서 이단이라는 집단들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지고 있다. 교주 개인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믿음을 강조하는 게 이단들의 주요 특성인데, 대개가 기독교의 성경의 특정한 구절들을 임의로 짜 맞춰 교주의 주장을 뒷받침하곤 한다. 전직(?) 기독교인들이 특별히 많이 이런데 빠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교회 안에서 건전한 성경해석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의외로 많지 않다는 점. 물론 요새는 이전보다는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저 예수 믿고 복 받자는 식의 허황된 미국식 주문(呪文)이 한동안 한국 교회를 거의 뒤덮다시피 했으니까. 그래도 최근에는 점점 건전한 교리를 회복하고 그 진지한 실천에 대해 고민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분명 바람직한 조짐이다.(모 출판사에서 나온 교리교재가 상당수의 판매량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런 긍정적인 조짐의 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특별히 가장 자주, 또 많이 문제가 되고 있는 성경구절들을 중심으로 그 잘못된 해석을 교정하는 좋은 책이 나온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책에 추천사를 실은 이승구, 심창섭 교수가 책도 제대로 안 보고 무작정 좋은 말만 써 주는 분들이 아니라는 것도 책의 내용에 신뢰감을 더해준다. 그리고 내용 역시 오랫동안 이단 관련 문제를 연구해 온 저자답게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아쉬운 부분은 오십 개나 되는 항목들이 특별한 논리적 구조 없이 그저 열거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물론 각 항목이 한 가지 성경구절만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주제가 되는 성경의 순서대로 나열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등장하는 각각의 이단들과 관련된 사항들을 한데 모으거나, 해석오류의 방식 - 문법적 오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무시한 자의적 해석 등 -에 따라 항목을 구분했거나 했더라면 좀 더 짜임새가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몇 개 항목은 논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 듯하다. 한두 군데 정도 오타로 보이는 부분은 추후 수정되어야 할 거고.

 

 

    한 권의 책이지만, 한국 교계에 널리 알려진 이단들과 잘못된 가르침들의 오류를 잘 지적하고 밝혀냈다. 각각의 문제들에 대해 더 깊은 논의를 하려면 훨씬 더 많은 지면이 필요하겠지만, 종합서로서는 괜찮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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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적 아르뱅주의
신광은 지음 / 포이에마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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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는 한국 교회가 겪고 있는 윤리적 실패를 잘못된 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바로 ‘아르뱅주의’가 그것.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칼뱅주의를 적당히 편의에 따라 조합시킨 이 ‘실용적 신학’은, 자신의 결단에 따라 구원을 얻을 수 있고, 그렇게 얻은 구원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절대로 무효화되지 않는다는 문장으로 요약된다.

 

     이 새로운 신학의 탄생은 매우 큰 결과를 가져온다. 구원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가능하다는 설명은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일단 그런 확신이 들고 난 뒤에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 구원이 영원히 폐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니 이제 어떤 식으로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판을 치게 된다. 도덕적, 윤리적 실패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저자는 이를 한국교회가 발행하는 ‘면죄부’와 같다고 칭하기도 한다.

 

     책은 칼뱅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에 관한 역사적, 신학적 고찰을 통해 두 신학 사조의 장단점을 살핀 후, 아르뱅주의와 같은 기형적 신학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모색해 본다.

 

 

2. 감상평 。  

 

     한국 교회의 윤리적 실패와 타락의 원인을 잘못된 신학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보는 저자의 진단에 동의한다. 저자는 ‘아르뱅주의’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사실상 신학의 부재라고도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입만 열면 ‘칼빈주의’를 외치면서 협잡과 뒷거래, 줄 서기에 여념 없는 보수교단의 신학교 교수들, 성경연구를 충실히 하지 않으면서도 부끄럼 없이 강단에 오르는 목회자들과 역시 일주일 가야 성경 한 번 제대로 펼쳐보지 않는 신자들에게서 무슨 바른 신학적 지식과 적용과 실천이 나타날 수 있겠는가.

 

     물론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해 왔던 것들이지만, 이 책은 그에 대한 본격적인 신학적, 학술적 정의와 정리를 시도했다는 데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특히 칼뱅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장단점을 비교하는 부분은 명쾌하고, 오랫동안 잘 준비해왔다는 인상을 주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는 부분도 바른 방향이다.

 

 

     하지만 책이 지나치게 길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처음부터 책의 주제가 일찌감치 나와 있는데 계속해서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여 반복되는 내용도 상당하고, 뒤로 갈수록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가 줄어들더니 정작 저자가 힘을 주고 있는 제3의 대안을 설명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집중하기 어려웠다.

 

     내용면에 있어서도 ‘튤립(TULIP) 교리’를 축으로 삼아 책에서 다루는 모든 사조들을 설명하려다보니, 그 신학이 담고 있는 ‘내용’과 과정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는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분류를 하는 느낌을 준다. 저자는 칼뱅주의와 아르미니우스 주의를 비판하면서 ‘논리적 모순’, ‘신비’라는 측면을 강조한다. 하지만 ‘모순을 그대로 두고,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실존(140)’이라는 저자의 설명은 자신이 제기한 문제를 그대로 답습하는 건 아닌가? (저자의 설명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하도 논리를 따지기에 해 보는 말이다)

 

     이 외에도 저자가 193-194쪽에서 설명하고 있는 ‘일반은총’은 사실 ‘일반계시’를 가리키는 것으로, 아르미니우스의 ‘선행은총’과 대비되는 칼뱅주의의 개념은 이름이 비슷한 ‘일반은총’이 아니라 ‘일반계시’다.

 

 

     결국 교회는 바른 신학을 가지고 있을 때에야 건강할 수 있다. 꿩 잡는 게 매라는 식의 실용주의적 접근은 교회의 순수성을 훼손시키고, 나아가 교회의 교회다움을 지워버리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현재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신학적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나름의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는 괜찮은 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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