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용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우리는 항상 같은 도식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거지?」

「인간이란 존재를 쉽게 변화시킬 수 없으니까요.」

 

 

 

1. 줄거리 。。。。。。。

 

     과밀한 인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테러, 끊임없이 소모적인 논쟁만 벌이는 정치인들과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종교인들, 이 모든 것은 더 이상 지구에 소망이 없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우주과학자인 이브 크라메르는 아버지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우주범선을 제작할 꿈을 꾼다. 양자로 구성된 빛을 이용해 우주선에 돛을 달아 움직인다는 생각이었다. 말기 암으로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했던 억만장자 맥 나마라의 자금력은 이 황당한 프로젝트가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제공해주었다. 여기에 이브가 일으킨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전직 요트 항해사 엘리자베트까지 합류하면서 얼추 프로젝트 팀은 완성되었다.

     이브의 계획은 태양계 밖의 새로운 행성을 찾아 ‘건강한’ 사람들만을 정착시키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아무리 빨리 날아가도 족히 1,000년은 걸리는 이 여행의 가장 큰 적은 시간이었다. 이브는 완전히 새로운 발상 - 우주선 안에서 계속 생명을 번식시키겠다는 -으로 이 난관을 헤쳐 나가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2. 감상평 。。。。。。。

 

     기독교 신자든 아니든 ‘노아의 방주’라는 말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작가는 아마도 노아의 방주로부터 모티프를 얻어 이 이야기를 써 내려간 듯 보인다. 또 그것 말고도 책 전반에는 성경 이야기에 대한 패러디들이 많이 엿보인다. 144,000명은 요한계시록의 상징적인 숫자(12 X 12 X 1,000)이고, 탐험에 참가할 사람의 숫자를 줄여내는 작업은 사사기의 기드온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사람과 동물이 쌍을 이루어 배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나, 마지막 장의 창세기 패러디는 작가의 재치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성경적’이라거나 ‘기독교적’이라는 말은 아니다.(오히려 작품 전체에는 종교에 대한 반감이 좀 더 자주 드러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첫 작품인 『개미』에서부터 작가의 작품들이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신과 함께 사는 인간’이 아니라 ‘혼자서도 충분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제도 ‘인간’이다. 특히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아쿠아리움’, 혹은 ‘마이크로 월드’에는 이런 소망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외부의 간섭(신?)없이 완벽하게 돌아가는 ‘닫힌 세계’가 그것이다.

     외부의 개입을 완전히 거부하니 자연히 남는 것은 인간들 자신의 의지뿐이다. 이런 세계가 망하지 않으려면 인간 개개인에게 ‘선한 무엇’이 갖춰져 있어야만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혹은 원시공산주의로 돌아가자는 히피나 공산주의자, 또는 무정부주의자들의 주장은 여기에 근거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만이 그들의 주장이 설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해 주니 말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는 그 반대증언을 자주 하고 있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작품 안에서도 파노라마식으로 보이듯 사람들은 정부도 군대도 종교도 없는 세상, 곧 모든 종류의 인위적 질서를 없애버린 세상에선 오래 살 수 없었다는 것이 현실이니까. 이브의 탐험이 결국 ‘실패 같은 성공’을 남긴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들은 인간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인간은 그들의 생각처럼 기계와 같은 정밀성으로 움직이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멋진 상상력을 접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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