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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문명의 아버지 고선지 평전
지배선 지음 / 청아출판사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결과적으로 고선지의 탈라스 전투 패배는
서양 문물의 발전을 넘어 인류 문명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 요약 。。。。。。。
고구려가 당에게 망한 후 당으로 많은 사람들이 유입되었다. 일부는 노예로 갖은 고생을 하다가 죽은 반면, 대조영 일행과 같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당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인물들도 제법 된다.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으니, 백제의 흑치상지처럼 당 정부 내에서 공을 세워 크게 이름을 떨친 경우다. 고선지라는 인물도 바로 그런 케이스다. 그의 성도 고구려의 후예임을 알 수 있는 고씨다.
저자는 중국 측 역사서의 내용을 기초로 하되 서양의 학자들의 의견과 자신의 적절한 상상력을 더해 고선지라는 인물에 대한 전기를 완성했다.
2. 감상평 。。。。。。。
고구려 출신의 이민족 장수가 당 제국 안에서 거의 중앙아시아 전역을 지배하는 자리에까지 올라갔다는데 고선지의 일대기의 의미가 있다. 거기에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까지 더해지면, 연구자들에게는 한 편쯤 글을 써 보고 싶은 욕구가 드는 것은 당연.
하지만 시도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사료다. 한 인물에 관한 모든 기록이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남아 있어야 할 터. 저자는 이를 위해 중국 측 사서들을 제법 뒤져 얼마간의 글을 모았지만, 내 생각에는 사료 자체의 양이 워낙에 부족하고, 거기에 중국측 사가들의 왜곡까지 더해지면서 처음부터 온전한 평전을 쓰기에는 어려움이 너무 많았다.
필연적으로 저자의 상상력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상황. 뭐 이것 까지는 뭐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상상력이 또 지나치게 편향적이라면 그것 또한 문제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고선지 장군의 업적은 최대한 부각시키고, 그에 대한 역사서의 부정적인 서술들은 모두다 그에 대한 시기나 편견에 기초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그런 서술이 한 두 번이 아니라 책 전체에 걸쳐 나오고 있다면 좀 지루해질 만도 하다. 그러다보니 고선지 장군은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대조영이나 장보고 같은 무결점 인물이라는 마네킹처럼 실감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물론 실제로 그랬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여기에 글의 내용상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기 마련인데, 전술 등에 관한 저자의 부족한 통찰은 아쉬움을 많이 남긴다. 이를테면 적은 수의 군대로 단숨에 적의 심장부를 공략해 전체를 무력화 시키는 전술은 ‘전격작전’이라고 불려야 할 텐데, 저자는 계속해서 ‘게릴라 전술’이라고 쓰고 있다.(게릴라 전술은 주로 비정규군에 의한 소규모의 국지적 전투를 반복함으로써 적의 전반적인 전력을 소진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선지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새롭게 부각시켰다는 데서 이 책의 특별한 장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해발 6,000m를 넘어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파미르 고원을 만 명에 달하는 군사들을 이끌고 넘어 토번(오늘의 티베트)을 공략하고 인근 제국들을 영향권 아래 넣고, 결국 ‘안서도호부’의 총독에까지 이른 고구려 출신의 장군. 드라마로 제작해도 괜찮겠다. 결말이 비극이라는 점이 좀 안타깝긴 하겠지만.
마지막으로 한 마디. 고선지 장군이 ‘유럽문명의 아버지’라는 책의 제목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책을 잘 읽어보면 탈라스 전투에서 고선지 군이 대패를 하고, 그로 인해 끌려간 당의 장인들이 아랍세계에 종이 제작 기술 등 중국의 앞선 문명을 서양에 전해주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인데, 솔직히 좀 낯간지럽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