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국내 문화연구의 대가인 신국원 교수의 글이 인상적이다(사실 체크해 둔 밑줄이 거의 다 신 교수님의 글이다). 기술이 초래할 수 있는 인간 소외 문제를 지적하고, AI 역시 인간이 만든 문화적 도구 중 하나이기에, 그것을 만든 인간의 부패한 속성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설교에 AI를 이용할 수 있는 범위에 관해 고찰하는 김희석 교수의 글도 흥미롭다. 그는 우선 설교문을 작성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나누어 본 뒤, AI는 자료를 수집하고 해석하는데는 분명 도움이 되지만 그것의 깊은 적용에 관해서는 결국 설교자가 가지고 있는 바른 신학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문제는 그 정도로 깊은 고민과 연구를 통한 적절한 분석과 적용을 할 수 있는 목회자가 얼마나 있을까 하는 부분이지만.
AI가 교회 교육에(단지 어린이나 청소년만이 아닌 교인 전반을 위한) 도움이 되는 면이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이건 그냥 세상이 만들어 주는 뭔가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빠르게 적응하고 그에 대응하는 응용 프로그램들을 만들 때야 그렇다는 것인데, 이 부분을 제대로 하려면 결국 자본이 필요하고, 그걸 만드는 데 사용되는 특정한 신학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 문제가 쉽게 풀릴 것 같지는 않다.
은근 신학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부분이 많아 흥미롭다. AI는 결국 이제까지 만들어 놓은 다양한 자료들을 학습하는 식으로 대답을 해 주는데, 여기에 당연히 그 자료를 만든 사람들의 신학적 전제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말. 물론 오늘날 신학이 실종된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범위를 넘어서는 엉뚱한 할루시네이션이 생산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근데 이건 이제까지 등장한 수많은 이단들에서 열심히 하던 일이라 아주 새로운 문제는 아니다. 단, 접근성이라는 측면에서 훨씬 큰 문제를 일으킬 소지는 있어 보이지만, 애초에 완전히 방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