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는 확실히 대단한 자기애의 소유자였다. 첫 아내가 죽고, 사랑하던 아이가 죽은 뒤에도 곧 재혼을 하고 또 다른 아이를 낳았다. 그의 총장으로서의 경영은 매우 독재적이었고, 측근들만을 교수진에 고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류 분류학에 관한 그의 업적은 탁월했고, 1906년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지진으로 그가 만들어 놓은 어류 표본들이 죄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망가졌을 때에도, 그는 다시 하나씩 그 표본을 복구할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작가가 데이비드에 대해 점점 더 깊이 알아갈수록 잘 알려지지 않았던 어두운 모습이 점점 더 드러났다. 그는 우생학에 대한 열렬한 신봉자였고, “좋은 인종”을 남기는 것이 과학적으로 옳다는 맹신에 빠져서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을 강제로 수용하고 불임수술을 하는 법을 통과시키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데이비드에 대한 막연했던 동경을 점차 포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던 스탠퍼드의 공동설립자였던 제인 스탠퍼드의 독살의혹에 개입되어 있다는 내용까지 나오면서 이 철회는 결정적이 된다. 그는 그냥 고집센 악당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이 오랫동안 동경해왔던 데이비드를 보내주는(?) 것이 성에 안 찼던 것인지, 저자는 책 말미,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사실을 적어둔다. 현대의 새로운 분류학자들은 “어류”라는 종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는 것(어류로 묶인 생물종들 간의 차이가 의외로 크다는 말로, 무슨 철학적인 의미는 아니다). 작가는 이로서 데이비드가 평생을 바쳐 해왔던 일들이 실은 아무 소용이 없는 헛일이었다고 한 방을 먹인다(물론 그는 진작 세상을 떠났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