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애도의 문장들 - 삶의 마지막 공부를 위하여
김이경 지음 / 서해문집 / 2020년 10월
평점 :
개인적으로 죽음을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접했던 건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큰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사촌형들이 둘이나 있었음에도 왜인지 나더러 상주가 되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에 장례 절차 내내 함께 했었다. 병원의 시신안치실에도 처음 들어가봤고, 아마도 시신을 직접 마주한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꽤 오랫동안 마음과 머리를 어지럽혔던 기억이었다.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고,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의무만 가득한, 그러면서도 죽음이라는 무거운 상대를 아무런 준비 없이 대해야 했던 경험의 여파였다.
오래 전부터 ‘죽음’을 공부해 온 이 책의 작가는 우리가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죽음을 공부한다는 게 어떻게 하는 건가 싶었는데, 아마도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여러 책들을 읽으며 생각의 깊이를 늘려온 것을 말하는 듯하다.
이 책은 그런 작가가 공부한 내용을 짧은 글들로 풀어내 모은 에세이집이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는 아버지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며 떠올랐던 단상들을 담았고, 2부와 3부는 죽음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매 이야기의 첫 머리마다 죽음에 관한 다양한 작품들에서 발췌한 문장들이 실려 있다. 그것만 읽어도 꽤 흥미로울 듯하다. 그리고 책 마지막에 실려 있는, 아마도 작가가 그동안 읽어왔던, 죽음에 관한 많은 책의 제목들을 보면, 저자가 ‘죽음을 공부’해왔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게 와 닿는다. 무슨 대학에서 학위과정을 진행한 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공부를 제대로 해 온 듯하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주제가 자연과학처럼 실험으로 검증하거나 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는 것, 그렇다고 인문학이나 사회학처럼 경험들을 모아서 일종의 추정을 할 수도 없다는 점은 결국 공부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결국 유물론적 관점을 지니고 있는 작가에게서 나올 수 있는 죽음의 교훈은, 그것이 현재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주로 심리적인 부분에서의) 영향을 준다는 생각에 기초한 내용에 한정된다.
물론 작가의 통찰 중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데 곱씹어 볼 만한 내용들이 여럿 보이기도 하고, 특히 죽음과 관련된 제도라든지 관습 등에 관한 내용은 여러 모로 생각해 볼 부분이 많다. 그리고 유물론자라고 해서 모두가 현재의 삶에 충실하지 않다는 것도 편견이다. 어차피 우리가 살을 맞대고, 발을 딛고 사는 세상은 현실이니까.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이 좋다. 죽음이라는 주제에 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