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특산물 명이나물이 우리 밭 가에서도 자란다. '강원도 감자바위 마을로 시집온  울릉도 호박 엿 댁'을 본 듯 반갑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의 살던 고향은"으로 시작되는 동요가 있다. 고향의 봄이란 제목의 그 동요에는 "아기 진달래"란 귀여운 표현이 있다.

오늘 국사봉에 갔다가 아기 진달래라기보다  "갓난아기 진달래"를 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밭농사를 하면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사실 잡초와 작물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풀들이다. 흙과 물과 햇빛만 갖추면 잡초나 작물이나 한껏 푸르게 자라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잡초는 농부에게 배척당하는 처지이고 작물은 보살핌을 받는 처지라는 점에서 운명이 달라질 뿐이다.

만일 밭에 작물을 심어는 놓았으되 보살피지 않거나 보살핌을 게을리 한다면 얼마 안 가 잡초 밭이 돼 버리고 만다.

사실 작물에 대한 농부의 보살핌이라는 게, 잡초들 입장에서는 그토록 얄미울 수가 없을 것이다. 작물들과 같은 땅에 뿌리를 내렸는데 잡초들에게는 물과 햇빛의 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비닐 멀칭도 그렇고, 기껏 힘들게 자라났는가 싶었는데 사나운 낫으로 상부를 쳐내버리거나 아예 뿌리째 뽑는 김매기라니

 

그런데 결말은 기막힌 반전이다. 잡초와 구별되어 일방적인 보살핌(혹은 사랑)을 받는 작물이 막상 다 자라면 농부의 손에 삶을 마쳐야 하는 것이다. , 작물에 대한 그 동안의 일방적인 애지중지는 오직 사람의 식량으로서 쓰이기 위함이었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난다.

 

하긴 작물은 이미 그 이름에 운명이 정해져 있었다. ‘()’은 사람 인변(=)이 들어있는 한자이니 애당초 사람 손에 죽을 처지가 아니었던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내가 요즈음 춘천시농업기술센터에서 캘리그라피를 배운다. 나는 그게 뭔지 잘 몰랐다. 그러다가 오늘 그 교재가 우리 집 거실 탁상 위에 놓인 것을 보고 캘리그라피가 뭔지 깨달았다. 글씨를 활자(活字)처럼 어떤 정해진 형태에 맞게 쓰는 게 아니라 제 각기 개성을 살려 멋지게 쓰는 거라는 걸.

내가 충격을 받기는, 그 교재의 표지에 쓰인농장 네이밍포장 디자인 제작하기라는 글씨다. 얼마나 못쓴 글씨인지 마치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갓 배운 어린이 글씨 같았다. 그래서 나는 충격을 넘어 감명까지 받았다.

, 현대회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피카소 그림을 보자. 미술 비평가들은 그의 그림을 어렵게 분석하고 심각하게 해설하지만 나는 그냥 느끼는 대로 간단히 말하겠다. ’어린애가 그린 장난 그림 같다.’.

어린애가 그림을 그릴 때 무슨 기교가 있을 거며 무슨 사상이 있을 건가? 단지 즐기는 장난일 뿐이다. 거장 피카소의 난해한 그림 또한, 아무래도 그의 장난 같다. 하긴 피카소는 유언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내게 떠오른 수많은 익살과 기지로 비평가들을 만족시켰다. 그들이 나의 익살과 기지에 경탄을 보내면 보낼수록, 그들은 점점 더 나의 익살과 기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오늘날 명성뿐만 아니라 부도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홀로 있을 때면, 나는 나 스스로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세계적인 전위 행위예술가 백남준은 이렇게 예술을 딱 잘라 정의했다.

예술은 사기다.”

TV를 겹겹이 쌓은 것으로 마무리된 그의 작품 하나만 봐도, 사기를 넘어 어린애 장난 같지 않은가.

 

캘리그라피는 장난을 즐기는 동심이 깃들어 있다.

동심(童心)은 천심(天心)이다. 인간은 본래 자연에서 비롯됐다. 오랜 세월 문명 문화를 일구며 살아오면서 자연을 잊어버렸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은 어린이 마음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캘리그라피는 동심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정해진 형태에 매이지 않고 자기 좋은 대로 멋지게 쓰는 글씨 캘리그라피. 다만 자기절제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장난으로 끝나고 말 것이기에.

    


강상규님이 내 블로그의 타이틀을 캘리그라피로 새롭게 써 주셨다. 나는 새 타이틀 글씨를 받는 순간 젊었을 적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젊었을 적 나는 괴팍한 성격의 사내였다. 방황도 잦았다. 어쩜 내 젊은 모습을 글씨로 잘 나타냈는지!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 흐린 봄 날씨다. 그나마 파릇파릇한 퇴비가 배달돼 우울하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