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농사를 하면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사실 잡초와 작물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풀들이다. 흙과 물과 햇빛만 갖추면 잡초나 작물이나 한껏 푸르게 자라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잡초는 농부에게 배척당하는 처지이고 작물은 보살핌을 받는 처지라는 점에서 운명이 달라질 뿐이다.

만일 밭에 작물을 심어는 놓았으되 보살피지 않거나 보살핌을 게을리 한다면 얼마 안 가 잡초 밭이 돼 버리고 만다.

사실 작물에 대한 농부의 보살핌이라는 게, 잡초들 입장에서는 그토록 얄미울 수가 없을 것이다. 작물들과 같은 땅에 뿌리를 내렸는데 잡초들에게는 물과 햇빛의 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비닐 멀칭도 그렇고, 기껏 힘들게 자라났는가 싶었는데 사나운 낫으로 상부를 쳐내버리거나 아예 뿌리째 뽑는 김매기라니

 

그런데 결말은 기막힌 반전이다. 잡초와 구별되어 일방적인 보살핌(혹은 사랑)을 받는 작물이 막상 다 자라면 농부의 손에 삶을 마쳐야 하는 것이다. , 작물에 대한 그 동안의 일방적인 애지중지는 오직 사람의 식량으로서 쓰이기 위함이었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난다.

 

하긴 작물은 이미 그 이름에 운명이 정해져 있었다. ‘()’은 사람 인변(=)이 들어있는 한자이니 애당초 사람 손에 죽을 처지가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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