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요즈음 춘천시농업기술센터에서 캘리그라피를 배운다. 나는 그게 뭔지 잘 몰랐다. 그러다가 오늘 그 교재가 우리 집 거실 탁상 위에 놓인 것을 보고 캘리그라피가 뭔지 깨달았다. 글씨를 활자(活字)처럼 어떤 정해진 형태에 맞게 쓰는 게 아니라 제 각기 개성을 살려 멋지게 쓰는 거라는 걸.

내가 충격을 받기는, 그 교재의 표지에 쓰인농장 네이밍포장 디자인 제작하기라는 글씨다. 얼마나 못쓴 글씨인지 마치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갓 배운 어린이 글씨 같았다. 그래서 나는 충격을 넘어 감명까지 받았다.

, 현대회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피카소 그림을 보자. 미술 비평가들은 그의 그림을 어렵게 분석하고 심각하게 해설하지만 나는 그냥 느끼는 대로 간단히 말하겠다. ’어린애가 그린 장난 그림 같다.’.

어린애가 그림을 그릴 때 무슨 기교가 있을 거며 무슨 사상이 있을 건가? 단지 즐기는 장난일 뿐이다. 거장 피카소의 난해한 그림 또한, 아무래도 그의 장난 같다. 하긴 피카소는 유언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내게 떠오른 수많은 익살과 기지로 비평가들을 만족시켰다. 그들이 나의 익살과 기지에 경탄을 보내면 보낼수록, 그들은 점점 더 나의 익살과 기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오늘날 명성뿐만 아니라 부도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홀로 있을 때면, 나는 나 스스로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세계적인 전위 행위예술가 백남준은 이렇게 예술을 딱 잘라 정의했다.

예술은 사기다.”

TV를 겹겹이 쌓은 것으로 마무리된 그의 작품 하나만 봐도, 사기를 넘어 어린애 장난 같지 않은가.

 

캘리그라피는 장난을 즐기는 동심이 깃들어 있다.

동심(童心)은 천심(天心)이다. 인간은 본래 자연에서 비롯됐다. 오랜 세월 문명 문화를 일구며 살아오면서 자연을 잊어버렸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은 어린이 마음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캘리그라피는 동심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정해진 형태에 매이지 않고 자기 좋은 대로 멋지게 쓰는 글씨 캘리그라피. 다만 자기절제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장난으로 끝나고 말 것이기에.

    


강상규님이 내 블로그의 타이틀을 캘리그라피로 새롭게 써 주셨다. 나는 새 타이틀 글씨를 받는 순간 젊었을 적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젊었을 적 나는 괴팍한 성격의 사내였다. 방황도 잦았다. 어쩜 내 젊은 모습을 글씨로 잘 나타냈는지!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