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퍼스트 리폼드를 보았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안 돼 관람을 포기하고 그냥 나가 버리는 관객들이 있었다. 하긴 영화 시작되기 전부터 관객 수가 채 10명이 안 돼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배우 에단 호크가 등장한 영화치고는 관객이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영화였다. 특히 내가 주목한 것은 주인공 툴러 목사(에단 호크 분)가 막힌 변기를 뚫고자 뚫어 뻥을 사용하는 장면이었다. 성직자도 사실은 일반인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는 암시이자 상징이 아닐까? 하긴 성직자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을 때 일반인의 고통이 체감되고 절대자의 말씀이 여실해질 것 같다.

 

영화의 결말이 충격적이었다. 갑자기 필름이 끊긴 듯 화면 처리가 돼, 나는 영사기가 고장 났구나!’ 생각했다. 내 어릴 적에 모든 시설이 미비한 시절에는 그런 경우가 있었지만 요즈음처럼 기술 문명이 발달한 시대에 그런 일이 일어나니 다소 황당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직후에, 출연 배우들과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정상적으로 화면에 뜨는 걸 보면서 영화감독의 놀라운 엔딩 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귀가하면서 놀라운 그 엔딩 처리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답이 나왔다. 일종의 여운을 주는 결말이었다. 주인공 목사가 사람들이 많이 모인 행사장에서 자폭(自爆)하는 대 참사를 준비하다가, 배부른 임신부를 목격한 순간 극적으로 포기하면서 그녀와의 사랑 장면으로 선회하는데 세상의 그 누가 그런 장면의 뒷얘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 천생 영사기가 고장 난 듯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퍼스트 리폼드

내게 깊은 감명을 준 명화였다. 영화관에서 상영된 지 이제 며칠 안 된다.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기대하는 건 아직은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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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월말이다. 동해안의 소읍에 있는 양양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부임 발령받은 때가.

새 학기는 32일부터 시작되니 사나흘 양양읍 사거리에 접한 모 여관에서 하릴없이 머물러야 했다. 그 여관에서 첫날 밤 잠잘 때다. 얼마나 강풍이 밤새 부는지 나는 놀라서 잠 한 번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밤새, 양동이 세숫대야 깡통 화분 등등이 강풍에 날아가거나 뭐에 부딪쳐 깨지거나 하는 소리들 때문이었다. 물론 내가 밖으로 나와서 그런 광경을 목격한 건 아니다. 하지만 밤새 그런 소리들을 들으면 누구라도 그 정체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양양에서의 첫날을 그리 보낸 후 나중에 알았다. 그 강풍이 양강지풍이라고. 낯선 한자성어에 어리둥절한 내게 동료교사가 설명해 줬다.

예로부터 봄철마다 태백산맥을 넘어 부는, 양양과 강릉 사이로 부는 바람이 유명하다니까! 그래서 양강지풍 하면 알아주지.”

 

이번 4월초에 간성, 속초 지역을 강타해 주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바람을 양간지풍이라 하여 나는 처음에는양강지풍을 잘못 말하는 게 아닌가우려했다. 설명도 따랐다. ‘양간지풍은 봄철마다 태백산맥을 넘어 부는, 양양과 간성 지방 사이로 부는 바람이란다.

양간지풍이라 하거나 양강지풍이라 하거나 어쨌든 우리 마음을 속상하게 만든 자연현상이다.

지금 양양에는 40여 년 전 제자들이 지역의 원로가 돼 살고 있다. 내 젊은 날 사제지간의 연을 맺어 작년만 해도 양양중고총동창 모임에 나를 초대하기도 했다.

태백산맥을 넘어 부는 건 못된 강풍만 있는 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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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희를 처음 본 건 1973년이었다.

모두들 잠 들은 고요한 이 밤에 어이해 나 혼자 잠 못 이루나

하면서 시작되는그건 너노래가 전국을 강타하던 그 해 봄, 흑백 TV에서 처음 본 것이다.

이장희 그는 등장부터 남달랐다. 대개의 가수들이 옷차림을 단정하게 하고 TV화면에 나오는 데 비해 그는 오토바이를 타다 막 내린 차림 그대로였다. 게다가 젊은 나이에 콧수염까지 길렀으니.

 

그건 너가 전국을 강타하면서 뒤늦게 나는 그의 뛰어난 다른 노래들까지 알게 되었다. ‘그 애와 나랑은’‘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촛불을 켜세요.’ ‘한 소녀가 울고 있네.’ 등등.

어떻게 거친 오토바이 사내가 그런 감성 풍부한 노래들을 만들고 심지어는 자신이 직접 노래 부르기도 하는지, 참 불가사의했다.

 

그런 그가 2019330, 내가 사는 춘천의 이웃동네 가평에 왔다.

가평뮤직빌리지 음악역에서이장희 콘서트, 나 그대에게콘서트가 열린 것이다.

우리 며느리가 그 귀한 표를 두 장이나 마련해 줘, 나는 아내랑 오랜만에 부부동반으로 이장희를 보았다. 아니 다시 고쳐 말하겠다.

나는 아내랑 오랜만에 부부동반으로1970년대 감성을 만났다.”

 

이제는 오토바이 대신 기타를 곁에 둔 변한 모습이지만 그 마초적인 감성은 여전했다. 해거름의 노년에도 지칠 줄 모르는 이장희 감성.

이 짧은 단상만으로는 그의 감성을 다 표현 못한다. 그렇다고 마냥 표현하자니 끝이 없을 듯싶다.

어제 그의 콘서트를 보고 뮤직 빌리지를 나왔을 때 가평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룻밤이 지난 이제도 그 말밖에 못하겠다. 벅찬 감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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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2 0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심이병욱 2019-04-02 11:31   좋아요 0 | URL
가수 이장희는 천재입니다. 노랫말도 짓고 곡도 쓰고. 그리고 그 노래도 잘 부르다니, 정말 기가 막힙니다.
어언 해거름 나이에 다다른 그를 보며 인생의 짧음을 한탄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저 자신도 만만치 않게 늙었으니 나 참!-----.
 

 

7년 전이다. 무심이 척박한 골짜기 땅 800평을 장만했다는 사실을 모임자리에서 털어놓자, 지인(知人) 봉명산인이 관심을 보이며 말했다.

그 땅의 풍수지리를 봐 드릴까요?”

약속한 날에 현장에 나타난 봉명산인. 전문 지관(地官)처럼 둥근 풍수 지남침까지 지녀서 무심은 내심 놀랐다. 하긴 봉명산인은 세상사 모르는 게 없는 도사 같은 사람이다.

그는 풍수 지남침을 들고서 골짜기 땅의 방위와 형세를 유심히 살피더니 이튿날 A4용지 두 장 분량의 글을 써 이메일로 보냈다. 이를 테면 무심이 모처럼 장만한 땅에 대한풍수 보고서이다. 전문은 나중에 기회가 될 때 블로그에 올릴 예정이며 그 중 일부만 발췌해서 여기 옮긴다.

 

(상략)

2. 밭의 위치가 대룡산 구봉산의 지기와 오봉산의 원기를 모두 받아 대와 기운이 적당히 세며, 땅의 모양새와 구릉이 마치 공작이 알을 품어 부화시킨 후 푸드득 날아간 이른바 '공작포란형'이라 포근하게 안겨있는 풍수라서 사람의 성정을 또한 부드럽고 안돈시키게 하는 지풍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3. 일조(햇볕)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산세가 아주 높지 않아 동남향의 해를 크게 가리지 않고 서북 방향으로 부채꼴 모양 툭 터져 있어 서남향 쪽 일조를 대부분 끌어들이면서 지는 해까지 볼 수 있으므로 아침 8~석양까지 충분히 하늘 기운을 담아낼 수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다만, 앞쪽이 지세의 기운(地氣)을 함부로 방출하기 쉬운 부채살모양이라 안팎으로 탈이 나기 쉬운 형상이니 입구의 적당한 곳에 비보(備補) 풍수 차원에서 밭에서 나오는 돌을 모아 돌탑을 쌓거나 솟대나 장승 모양이라도 두세 개 해두면 보기도 좋고 그런 문제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하략)

 

 

요약한다면 장만한 땅이 길지(吉地)가 분명한데 다만 복이 밖으로 새나갈 우려가 있으므로 한 군데 비보(裨補)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심은 얼마 후 골짜기 땅에 중장비를 동원해 밭으로 만들 때 부수적으로 나온 돌들을 밭 입구에 따로 모아놓음으로써 춘심산촌 농장의 비보 문제를 해결했다.  

비보 풍수.

풍수지리 상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준다는 개념이다. 이런 비보가 잘 이뤄진 곳 중 하나가 양양의 조산(造山) 마을이다. 낙산 옆 조산리. 그 지역 땅의 기운이 좋은데 다만 바다 쪽으로 새나갈 우려가 있으므로, 마을 주민들이 협동으로 작은 산 하나를 만들어 놓아 그 우려를 불식시켰단다.

 

춘심산촌의 비보로써 농장 입구에 돌무더기가 만들어진 지 어언 7년이다. 돌무더기가 높지 않지만 비보는 상징적인 활동이라 그 정도로 충분하다.

비보가 이뤄지자 묘목도 심지 않았는데 나무 하나가 그 옆으로 자리잡더니 잘 자라고 있다. 그뿐 아니다.  농장에 작은 컨테이너 창고를 들일 일이 생겨, 처음에는 농막 옆에 두려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비보 돌무더기 옆에 둘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심지어는 가로등까지 비보 가까이에 세워지게 돼 돌무더기 일대는 저절로 막강한 기세를 띤다.

여하튼 비보의 중심은 돌무더기다. 돌무더기 자체에도 놀라운 일이 생겨 여기 소개한다.

어느 날 춘심산촌 이웃에서 농사짓는 분이 무심한테 놀란 얼굴로 말했다.

글쎄, 어제 길이가 두 발은 될 무서운 독사 한 마리가 저 돌무더기 속으로 유유히 들어가더라니까! 훤한 낮에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놀랐겠소!”

그가 말한 우리, 그의 농막에 자주 놀러오는 분들을 포함하는 말이다.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목격한 객관적 사실임을 강조한 거다.

무심은 그 얘기를 듣던 순간 그 무서운 독사가 지킴이임을 알아챘다. 지킴이까지 자리 잡은 춘심산촌 입구의 비보 돌무더기. 밭의 복됨이 한 치도 새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그 후로 무심은 그 돌무더기 옆을 지나갈 때마다 각별히 조심한다. 특히 여름에 잡초가 무성해질 때 발아래를 조심한다. 자칫 그 독사를 밟았다가는 큰일 나기 때문이다. 어디, 지킴이 독사가 밭주인을 알아보랴. 그저, 서로가 조심하면서 일대의 평화를 유지하면 그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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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경이면 사실 그리 머지않은 시기다. 100년이 채 안 된다. 그 즈음 춘천에는 호랑이가 살았나 보다. 김유정의 산골 나그네’란 단편에호랑이가 두 번이나 언급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지문에서, 또 한 번은 대사에서다.

먼저 지문을 본다.

 

"요새 날씨가 차지니까 늑대, 호랑이가 차차 마을로 찾아 내린다.”

 

산골 나그네의 계절적 배경이 가을이다. 겨울이 가까워지니 산토끼 같은 작은 짐승들이 굴속에서 움츠려 지내는 시간이 늘기 마련이다. 겨울잠을 준비하기도 할 것이다. 이런 때 그런 작은 짐승들을 잡아먹고 살던 늑대나 호랑이가 하는 수 없이 가축들이 있는 사람의 마을(훗날 김유정 문학촌이 들어선 마을?)로 내려오는 상황을 위의 지문이 선하게 보여줬다. 

이번에는 대사에 등장하는 호랑이를 본다

 

  괜시리 산신령이 노하면 눈깔망나니 내려보낸다.”

 

호랑이를 눈깔망나니로 표현한 것이다. 얼마나 절묘한 표현인가. 원래 망나니란 조선시대에 사형수의 목을 베는 사형 집행수. 사형 집행수처럼 무서운 존재 호랑이를눈깔망나니라 부른 것이다.

상상해 보자. 컴컴한 밤에 산에서 내려온 호랑이의 첫 인상은활활 타오르는 불길 같은 눈동자가 전부가 아니었을까? 어두운 밤에 이웃 마을로 마실가던 사람이 그런 불길과 맞닥뜨렸다면 이미 혼이 반 이상 나갔다. 그 결말은 상상에 맡긴다.

뛰어난 대유법(代喩法)이다.

 

밤이면 늑대나 호랑이가 출몰하던 100년이 채 안 되는 춘천의 한 풍경을 그려본다. 무섭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리운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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