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절은 뼈와 뼈 사이가 서로 맞닿아 연결되어 있는 부위를 말하며 우리 몸의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부위라고 사전에서 정의했다.

 

밤길을 걷다가 관절 닮은 것을 보았다. 물론 사람 키보다 크고 쇠로 만들어져 있어서, 짐작하기에, 하수관과 하수관을 연결시키는 구조물인 것 같았다. 그런 판단과 달리 사람의 관절을 따로 빼내 도로에 내놓은 모양 같다는심정에서 K는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가던 발길을 멈추고 그것을 사진 찍은 게 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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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 가 살고 있는 후배 허진이 사진 여러 장을 SNS에 올렸다. 나는 그 중 나무와 사람사진이 가장 마음에 든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 봤다.

우선 푸르게 등장하는 게 일반적인 나무들이, 사람과 함께 검게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사람과 나무 모두, 같은 존재임을 느끼게 한다. 하긴 땅에 태어나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만다는 생명의 숙명에서 사람과 나무는 어느 하나 벗어나지 못한다. 동일 운명체다. 그래서일까 사진 속의 사람과 나무들은 모처럼 기념사진이라도 찍듯 함께 나란히 서 있다는 느낌이다.

칼라로 찍은 사진인데 장소가 그늘져서 흑백으로 나왔는지. 아니면 본래부터 흑백 사진을 찍은 건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 하나는, 사람과 나무는 같은 운명의 것이란 사실. 그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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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넓은 찻길을 달리는 차들. 찬란한 전등불빛. 4층 높이나 되는 역사(驛舍).

이런 풍경은, ‘군데군데 파인 아스팔트 도로에, 약간 기운 전봇대에, 역사마저 단층이던 때와 너무 다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역사 부근에 카페와 고깃집이 널려 있다. 출입문부터 삐걱거리던 낡은 다방이 주요한 풍경이던 때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K는 발길을 멈추고 서서 잠시 어리둥절하지만젠장, 세월이 몇 십 년 흘렀다는 것을.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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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그 여자네 국숫집’에는 60편 가까운 시들이 수록돼 있다.

나는 시집을 증정 받은 그 이튿날 아침 거실 소파에 앉아 두 시간여 만에 수록된 시들을 다 맛봤다. 시들이 맛있었다. 부담 없이 읽혔다. 그래서 페이스 북에서 장은숙 시인을 찾아 우선 간단히 몇 줄 소감을 남겼다. 다음은 소감 중 일부이다.

“… 쉽게 읽히면서 삶의 그 무엇을 뒤돌아보거나 깨닫게 하는 시들이었습니다. 현대시의 강점이자 난점인 난해성 문제를 단번에 극복한 시들이어서, 좋았습니다. … 작품 ‘그 여자네 국숫집’이 압권이었습니다. 시집의 제목으로 삼을 만했습니다.”


국수.

그만큼 편하고 대중적이고‘발음까지 입에 잘 붙는’ 음식이 있을까? ‘국’의 ㅜ, ‘수’의 ㅜ 로써 모음 ㅜ의 이어지는 발음만으로도 친숙하다. 그래서일까, 경조사 현장에서 가장 잘 쓰이는 음식이 국수다.

장 시인의 대표작 ‘그 여자네 국숫집’의 첫 행이 ‘간판은 없다’이다.

우리는 이 한 마디로 헐하게 음식을 파는 식당임을 눈치 챌 수 있을뿐더러‘식당 주인의 열린 마음’ 또한 직감할 수 있다. 한 편으로는 굳이 간판을 달지 않아도 손님들이 찾아오는, 국수를 맛있게 끓여내는 맛집임도 알 수 있다. 나아가서는 삶을 여유 있게 가꿔나가자는 시인의 어조까지 깨달을 수 있다.

내가 대표작으로 꼽는 이 시에는 ‘지나가는 말처럼 했으되 예리함을 잃지 않은 표현들’이 곳곳에 자리했다.

 

‘겨울에는 눈발이 고봉으로 쌓이는 집’이란 표현에서, 실제로 눈발이 높이 쌓이는 지붕 낮은 식당의 이미지와 함께 그만큼 푸근하게 국수를 손님한테 대접한다는 암시까지 나는 받았다.

‘비법의 육수도 없다’와 ‘날씨 따라 계절 따라 간이 흔들리기도 하겠다’란 표현에서는 요즈음 TV에서 경쟁적으로 다루는 먹방 속 맛집과는 다른 차원의 맛을 깨닫게 했다. 즉 인정(人情)의 맛이다. 특별한 육수라거나 정해진 간… 은 인위적일 수밖에 없다. 결코 인위가 아닌 넉넉한 마음으로 공급하는 국수임을 화자는 말한다.

‘마음이 마른 면같이 부숴지는 날은 / 주인장 노을 보러 갑니다 써 붙이고/ 저녁 장사 접는 날도 있다.’이란 구절에서는 그 선한 저녁노을이 내 눈앞에 떠오르며 삶이 이윤(利潤)이 아닌 노을 보기 같은 여유에 있음을 깨닫게 했다. 나는 이 구절이 이 작품의 절정이라는 생각이다. 교과서적인 수사법의 활용으로 본다면 직유 (마음이 마른 면같이 부숴지는 날)는 물론 은유 및 상징(노을 보러 갑니다: 삶의 여유 )이 다 쓰인 구절이면서 주는 감흥이 대단하다. 어디 누가 ‘마음’을 국수의 ‘마른 면’에 빗댈 생각을 했을까.

고(故) 김동명 시인의 시‘내 마음’에서 마음을 정감 어린 사물들(호수, 촛불, 나그네, 낙엽 )에 빗대던 경우와 비교해본다면 장 시인의 비유법 활용은 놀랍다.

이 비교되는, 은유의 사용을 정리해 봤다.

............................................................

김동명의 ‘내 마음’

마음 = 호수, 촛불, 나그네, 낙엽 ( 고요하며 외롭다)

장은숙의 ‘그 여자네 국숫집’

마음 = 국수의 마른 면 (음식의 재료로써 잘 부숴진다)

............................................................

삶에 대한 장 시인의 건강한 어조는 작품 곳곳에서 눈에 뜨인다.

작품 ‘전기포트’에서 ‘그 사이 우리는 어느 열선이 끊겨’라는 구절은 애정이 예전만 못하게 된 부부사이를 갈파하면서도 동시에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한다. 전기포트라는 사물과 부부간의 애정을 이렇듯 비유로써 이을 줄이야 그 누가 알았으랴.

 

‘초등 입학 첫날/ 아들과 책가방을 같이 학교에 보냈는데/아들만 집으로 돌아왔다/ 조심스레 책가방의 행방을 묻는 말에/의기양양하게 글쎄! 한다’라고 시작되는 작품‘짱돌’.

대개의 어머니라면 책가방을 입학 첫 날 잃고 귀가한 아이를 단단히 야단쳤을 게다. 다시는 그런 방심과 실수가 없도록.

하지만 이 작품에서 화자는 그러는 대신 화통한 마음을 드러낸다.

‘앞으로 어깨를 무던히 짓누를 책가방을 향해 /선빵을 날리고 돌아온 아들// 그래 지지 마라!’

이 얼마나 화통한 학부모인가.

 

장은숙 시인의 첫 시집 ‘그 여자네 국숫집’에는 그 외에도, 가슴 저린 사연을 읊은 작품들도 여럿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만 언급한다. 장 시인의 문운을 빈다.

 

 

<덧붙임>

11월 27일 저녁에 8호 광장 가까운 어느 설렁탕집에서 장은숙 시인을 처음 만났다. 장 시인을 보자마자 내가 물었다.

“국숫집을 합니까?”

장 시인이 고개 저으며 웃었다. 나는 농담이 아니라 시인이 정말 국숫집을 운영하며 그 시를 쓴 줄 알았다.

 

그 날 그 설렁탕집에서 여러 젊은 예술가들을 만났다. 서현종 화백, 조현정 시인, 장은숙 시인, 류기택 시인. 만남이 파할 무렵에 다른 일로 늦게 나타난 최삼경 시인까지.

그 날의 만남은 유쾌했다. 뜻 깊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 날의 만남을 글로 써 보고 싶다.

 

*그 날 시집 ‘짱돌’을 선사한, 유쾌한 미소의 류기택 시인.‘짱돌’에 수록된 시들에 대해서도 나중에 그 소감을 써서 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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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던 시절을 학창 시절 (學窓時節)이라 한다. 의문이 생겼다. 왜 하필()’이란 글자가 쓰였을까?

우선 떠오르는 생각이배우는 장소의 밝기를 위한 창의 중요성이었다. 예나 제나 배우는 장소(서당이건 학교이건)는 책을 보며 공부하는 곳이므로 절대 밝아야 했다. 따라서 밝은 햇빛이 들어오는 창은 아주 중요한 시설일 수밖에. 그 때문에 학생 시절을 달리는 학창 시절이라 부르게 되지 않았을까.

 

옛날 사람들이 밤에도 책 보며 공부해야 하는데 너무 가난해서 등 하나 밝힐 형편이 못 되면여름에는 반딧불이를 잡아서, 겨울에는 하얀 눈빛에 비쳐서밝기문제를 해결했다니 (螢雪之功을 말하는 건데 사실인지는 의문이다.) 낮에 창은 얼마나 소중한 시설이었을까.

 

내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선생님은 교단에서 가르치는데 정작 나는 창밖 풍경을 보며 잡념에 잠겨 있기일쑤였다.

교실 창밖으로 보이던 계절의 풍경들. 가을날이면, 교정에 한 잎 두 잎 떨어지던 낙엽들. 겨울날이면, 눈 내릴 듯 잔뜩 찌푸린 하늘. 봄날에는 하늘과 교정을 모조리 뒤덮는 황사. 여름날에는 푸르른 나뭇잎들. 그런 창밖 풍경을 보다보면 어느 새 수업이 끝났다.

 

그렇다.

그 때문에 나는 학창 시절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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